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45화 (163/233)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카론은 일단 환영에 집중했다.

남자는 정확히 환영 너머의 카론을 응시하더니, 피를 뱉어내면서도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내 아들이… 내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목걸이를 향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바닥을 긁은 탓인지, 손톱은 전부 뒤집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감정이 엿보였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지키고자 했다는 사실을….”

이내 남자의 손이 힘을 잃고 땅으로 툭 떨어졌다.

카론은 순간적으로 남자가 무엇을 발현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소원 마법이었다.

목걸이 너머의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습이 사라졌지만 목걸이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났다.

한참 후 그 빛은 하나로 응축되는 듯하더니 목걸이 안으로 사라졌다. 꼭 그 목걸이가 여전히 힘을 품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카론은 다른 사람들도 이 환영을 보았는지 확인해 보았으나, 루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환영은 카론에게만 보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범한 목걸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긴 했지만, 카론은 목걸이가 보여 준 내용이 썩 흥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건 알겠지만, 카론은 아직 그 사랑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목걸이를 보고도 어떠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카론은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했다.

“카론, 뭘 봤어?”

사루비아가 이 목걸이에서 본 내용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즉 사루비아에게 더욱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루비아에게 목걸이에서 본 내용을 알려 준다면 자신에게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거야말로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 * *

목걸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 일에 대해 해명이 필요할 것 같아, 나는 카론에게 오러를 그쪽으로 잘못 발산했다고 해명하라고 전달했다.

시키는 대로 해명을 마치고 돌아온 카론이 나에게 목걸이에 대해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버지의 소원이 저를 무슨 상황에서도 지키는 것이라 했는데, 어떤 힘이 이 목걸이 안에 깃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전에 부대에서 소원 마법으로 인해 국경이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지.

그때 소원 마법은 계약 마법에 걸린 대상의 체내에 존재하던 흑마술이 폭발하며 벌어지는 마법이라고 주워들었다.

그러니 만약 저 목걸이에 깃든 게 흑마술이라면….

‘혹시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데에 도움을 줄지도 몰라!’

흑마술사를 발견했을 때 카론의 위험을 감지한 저 목걸이가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감은 대체로 맞아 떨어지는 편이었으니까.

“알려 줘서 고마워, 카론.”

그렇게 말했지만 어째 카론이 실망한 얼굴을 하기에, 나는 내 실수를 깨닫고 다시 정정했다.

“정말 잘했어, 카론!”

짝짝짝-!

내가 박수까지 쳐 주자 그제야 카론은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하, 아퀼라 말대로 내가 애를 너무 업어 키운 건가? 다른 집 애들은 참 어른스럽던데.

일단 수색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흑마술사를 찾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여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아오, XX….”

나는 등산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바위산이 울퉁불퉁해서 그런지 굉장히 힘들었다. 점점 숨이 차오르고 호흡이 불편해졌다.

“콜록, 콜록!”

그래, 꼭 침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XX, 피가 왜 나오지?!

“흡!”

빡센 훈련을 하다가 침을 뱉어 보면 피가 섞여 있는 일은 이곳에서 꽤 흔한 일이다. 진짜 힘든 훈련을 하고 난 후에는 토하는 병사들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피가 나올 정도로 숨이 차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이건 침에 피가 섞이는 게 아니라….

“콜록, 콜록!”

갑자기 기침이 나와서, 나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뜨뜻한 무언가가 손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입가에서 손을 떼어 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손을 흥건히 적신 피였다….

“…이건 뭐… 읍!”

말을 하다 말고 다시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것을 땅바닥에 뱉어 냈다. 이번에도 피였다.

내가 아마 후임들의 앞에서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여서인지, 후임들도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괘, 괜찮으십니까?”

“지금 피를 토하신 것 같은데!”

이건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피가 속에서 역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장에 손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점점 생명력을 빼앗겨 단시간 내에 말라 죽게 될 겁니다.”

산체스가 분명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분명 다른 후임들은 괜찮은데.’

지금 이렇게 피를 토해 낼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한 건 우리 부대에서 나뿐인 것 같았다.

나만 유난히 빠르게 건강이 악화되는 이유는 아직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직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던 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야, 멀뚱멀뚱 뭐 해?! 빨리 찾아!”

이럴 때일수록 흑마술사를 얼른 찾아내서 폭력과 공포의 맛을 보여 줘야 한다!

그제야 후임들은 정신을 차린 듯 더욱 불타는 기세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다른 부대도 우리 부대의 열정적인 모습을 본 뒤 속도를 올렸다.

“하아, 하아….”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동안 나는 우리 부대의 뒤편에서 가슴 부근을 부여잡고 산을 올랐다. 이제는 속까지 쓰려 오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루나가 나를 부축해 주며 걱정했지만, 가만히 있다고 해서 이 통증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왜 나만 이런 거지?’

나만 ‘흑마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만한 이유가 있나?

‘내가 흑마술을 사용한 적이 있어서?’

나는 이전에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을 사용한 적이 있고, 주변에 있는 마물의 수를 알려주는 시계도 자주 사용했다. 남들에 비해 흑마술을 자주 접해서 영향도 크게 받는 걸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흑마술을 그 누구보다 많이 접한 산체스는 이곳에 갇히자마자 앓아누웠어야 할 것이다. 그건 산체스뿐 아니라 카론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리고 흑마술사가 그동안 아르콘들에게 한 짓을 고려해 볼 때, 이 많은 병사들 중 흑마술사에게 잡혀 있었던 사람이 카론뿐일 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나만 이 꼴인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역시 흑마술사를 찾아야 답이 나올 것 같았기에, 나는 후임들을 더 열심히 쪼아 댈 수밖에 없었다.

후임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던 그때였다.

휘익-.

누군가가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귓가에 박혔고, 우리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꽂혔다. 저건 설산 대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우리는 모두 휘파람 소리가 들린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거대한 바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찾았어?!”

이미 도착한 몇 명의 병사들이 바위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후임들을 그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줬다.

“찾았다, 이 XX!”

흑마술사는 병사들에 의해 제압되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어떤 병사의 손에 흉측하게 생긴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 원래 흑마술사가 저 무기로 공격을 시도한 모양이다.

“빨리 간부들을 불러와… 콜록! 어휴, XX, 기침이 멎지가 않네. 콜록, 콜록!”

계속해서 목에서 피가 나기에 내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기침하며 그것을 뱉어 내고 있었을 때, 바닥에 엎어져 있던 흑마술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너….”

나를 본 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서렸다.

“너, 흑마술을 사용했구나?”

그 말에 후임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내가 흑마술 사용한 것에 불만 있는 XX 손 들어.”

“당연히 없습니다, 하하!”

“원래 흑마술은 1일 1회 해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하하?”

후임들의 시선을 다시 흑마술사로 돌려놓고 나서, 나는 분노가 담긴 눈동자로 그를 쏘아봤다.

“됐고, 넌 여기서 나가는 법이나 불어라, XX야.”

“대체 얼마나 큰 흑마술을 사용했으면 그 꼴이 된 걸까?”

흑마술사가 피로 물든 내 입가와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오자마자 피를 토할 정도라면…. 도대체 무슨 흑마술이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지는군. 엄청나게 큰 흑마술을 사용한 모양인데.”

‘…엄청나게 큰 흑마술?’

내가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이나 마물의 수를 알려 주는 시계 따위를 사용한 게 그리 엄청나게 큰 흑마술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종류의 흑마술이 나와 연관되어 있다는 건데….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은 있었다.

‘빙의.’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이 세계로 빙의하게 됐는지 영문을 모른다.

그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 봤자 원래의 사루비아도 별로 행복하지는 않고 군대에서 구르다가 죽기만 했을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이 삶을 받아들인 거였는데.

만약 내가 누군가에 의해, 예를 들어 ‘진짜 사루비아’에 의해 이 세계에 불려온 거라면? 그 과정에 흑마술이 사용된 거라면?

다른 세계의 영혼을 불러오는 건 ‘엄청나게 큰 흑마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아?

“야, 그래서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고!”

그가 제 입으로는 말해 주지 않을 것 같기에 우리는 그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아, 중대장님!”

우리가 흑마술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듯, 중대장이 다른 소대장들과 함께 우리의 뒤에 서 있었다.

“아공간을 만든 주범인 듯한 흑마술사의 신원을 확보했는데, 이 자가 여기서 나가는 법을 실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들 비키도록. 이제부터 우리가 심문한다.”

중대장은 우리에게 비키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약물을 쓰도록 하지.”

흑마술사는 밧줄로 꽁꽁 묶인 채 간부들에게 둘러싸였다. 게다가 그들은 심문을 위한 특수한 약물, 예컨대 자백제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약물까지 동원되는 모습을 보면 심문은 수월할 것이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카론의 목걸이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는데.

간부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가가다가, 나는 아까 전 흑마술사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엄청나게 큰 흑마술을 사용한 모양인데.”

물론 그게 빙의인 건 뻔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가 이왕 알아본 김에 더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로 가끔씩 내가 빙의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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