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술 수색 특수군
장점:
1. 보수가 높음
2. 출퇴근임
3. 너희들의 소중한 선임들이 붙잡혀 있음.
관심이 있다면,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로 찾아와.
-에이프릴-』
“아니, 이런 데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미친놈들이 어디 있어?!”
테이블 위에 펼쳐진 편지를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유리가 언성을 높였다. 평소의 그녀는 늘 고저 없는 일정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는 편이었지만, 제 동기들이 자신을 끌고 재입대를 하려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소중한 선임들이 붙잡혀 있다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벌써 불쌍해!”
유리는 그들과 나름 친하게 지냈던 선임들을 떠올려 보았다. 루이즈라든가, 플라토라든가….
그들보다 먼저 제대한 이들은 이미 에이프릴의 마수에 넘어가 재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불쌍해서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젠 그들을 두고 자신들에게 협박까지 하다니.
“유리, 그렇게 화내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고~.”
반면 알타이르는 태연하게 유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이미 군 복무를 마쳤기 때문에, 훈련을 받는다면 제국민들과 달리 바로 장교 과정부터 시작할 수 있잖아?”
“어차피 거기 가면 높은 계급이 득실댈 텐데, 그게 왜?”
“월급이 다르잖아.”
“아하….”
그 말에 유리의 얼굴이 차분해졌다. 물론 그들은 충분한 금액을 수당으로 받았다지만, 꾸준한 수입원이 더 있는 편이 좋긴 하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이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가는 것 이상의 돈을 벌기는 힘들 거고.
“사실 무엇보다도….”
알타이르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나이 인생에 이런 큰일 정도는 해 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닥쳐, 이 꼰대야!”
유리가 질린 얼굴로 알타이르를 퍽 치며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윈터를 보았다.
“야, 얘 좀 말려 봐! 너는 네 동기가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겠다는데 그걸 두고 볼 거야?!”
“유리, 네가 그래 봤자 이미 쟤 머릿속에는 한 명밖에 없다고.”
장난스러운 어조의 알타이르가,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시에 떠올렸을 그 이름을 꺼냈다.
“사루비아 말이야. 윈터는 기껏해야 자기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갔을 때 사루비아에게 도움이 되는지만 생각하고 있을걸.”
그 후 유리와 알타이르는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런 이유로 재입대를 하겠다고? 정신 차려, 윈터! 네가 있어야 할 건 군대가 아니라 사회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만 사회성을 기르라니까? 너한테 있는 게 돈 말고 또 뭐가 있어?”
“얼굴이랑 몸?”
“…그건 그렇지. 하여튼, 내가 보기에 너는 가망이 없어. 네가 사루비아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보다 더 가진 게 돈 말고 뭐가 있는데?”
그 순간, 윈터가 눈을 빛냈다.
“돈이라….”
“…뭐야? 너 왜 그렇게 불길한 얼굴을 해?”
“그래, 사루비아를 만날 수만 있다면….”
마침내 생각을 마친 듯, 윈터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결정했다.”
편지 보낼 주소를 분명 알려 줬지만, 사루비아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대 이후의 사루비아를 그가 먼저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연락 수단도 없이 어떻게 그녀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건 간단했다. 사루비아가 있을 만한 모든 곳에 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먼저 사루비아가 지낼 만한 지역을 알아본다.’
제대한 국경방위군이 살 만한 지역은 이 제국에서 몇 되지 않았다.
유리의 말대로 그에게는 돈이 있었다. 그러니 사루비아가 살 만한 마을들에 집을 하나씩 사들인 뒤, 아르콘에게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매매하겠다고 하는 거다.
그렇다면 집을 사기 위해 접근한 사람들 중 사루비아가 섞여 있을 수도 있고, 그는 사루비아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두 번째 방법 또한 마련해 두어야 했다.
제대 이후의 사루비아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기? 답답한 걸 못 견뎌 하는 사루비아가 그럴 리 없었다.
‘에이프릴 님이 그녀에게 무언가 제안을 한 것 같았지. 제대 이후에도 사루비아를 영입하려 들 가능성이 높아.’
그녀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윈터의 사고 회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루비아는 호기심이 강하다. 자꾸 이 세계에 대해 알아보려는 눈치였지.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눈치였고.’
그렇다면 여기서 윈터가 내릴 결론은 당연히….
“가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후, 좋아! 아주 간지나겠구만!”
“야! 이 미친 XX들아! 내가 윈터 너보고 말뚝 박으랬지, 언제 동기들까지 끌고 말뚝 박으랬어? 이 미친놈들아!!”
유리가 처절하게 절규했지만, 이미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윈터와 알타이르 사이에서 그녀의 비명은 묻혀 버린 지 오래였다….
* * *
‘대체 내 인생이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온 거지?’
내가 너무 늦게 찾아온 집착 앞에서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아는 얼굴의 여자애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카론 님! …엇, 사루비아 님? 안녕하십니까.”
카론의 소대 후임이라던 루카였다. 오늘도 갈색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묶은 그녀는 참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나는 더 이상 루카와 카론을 로맨스 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카론이 나를 대하는 감정은 일반적인 로맨스 감정과는 좀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나에게 집착한다.
그리고 여주에게 집착하는 남주에게 또 다른 여자관계가 얽혀 있으면 그건 마이너스 요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루카는 정말로 카론의 충성스러운 후임일 게 틀림없었다.
내가 처음 보는 카론의 사나운 표정 앞에서 움찔하고 있으니, 루카가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어 카론의 팔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카론 님은 이 타입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요즘 집착하는 남자는 과포화 상태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블루 오션을 노리셔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 들리는데.’
내가 뻘쭘함을 이기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때, 다시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사루비아.”
“아퀼라!!”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나는 곧장 반색하여 뒤돌아보았다.
아퀼라는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아끼던 후임, 베니도 있었다!
“사루비아 님, 잘 지내셨습니까?”
“베니,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떠나 있던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건지, 베니의 갈색 단발머리는 길이가 많이 길어 어느새 하나로 묶여 있었다. 이전보다 성숙해진 얼굴의 그녀는 여전히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베니 너도 곧 진급이지?”
“예, 맞습니다. 아마 꿀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꿀이 있는 곳? 저건 꿀 빨 수 있는 편한 부대로 간다는 거겠지?
그녀의 정체를 아는 자만이 감탄할 수 있는 포스 있는 발언이었다.
내가 진급한 이후로 아퀼라, 이시나, 카론의 얼굴은 봤다지만 그 외 클레도어 산악 대대 후임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와 나눌 얘기가 많은 것 같아 내가 이런저런 말을 꺼낼 준비를 할 때, 베니의 시선이 내 뒤에 있는 루카에게로 꽂혔다.
“베니? 왜 그래?”
그러나 베니와 루카는 갑자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 *
갈색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묶은 귀여운 인상의 여자를 보자마자 베니는 깨달았다.
‘동족이다.’
그 여자는 카론에게 찰싹 붙어 있었고 카론에게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절대 이성적인 감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책사 타입이군.’
그녀의 눈에 담긴 감정은 그보다는 카론의 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에 가까워 보였던 것이다. 즉 베니 자신과 비슷한 위치였던 것이다!
‘안 돼!’
물론 베니는 사루비아가 어느 쪽과 있어도 즐거운 얼굴로 박수를 쳐 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베니가 가장 선호하는 쪽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아퀼라 말이다.
베니는 사루비아가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과 각각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퀼라와 함께 있다면 그들은 서로 집착하고 있을 거고, 윈터와 함께 있을 때는 사루비아가 리드당할 거고, 카론과 함께 있을 때는 사루비아가 리드할 거고….
‘이시나 님은 감이 안 오는데.’
그는 이상한 데서 예상을 벗어나는 경향이 있어서, 겉보기에는 사루비아를 뜯어말리느라 피곤한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이시나와 함께 있을 때는 예상이 가지 않아서 재미있….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베니가 응원하는 쪽은 아퀼라였으니까!
빠른 스캔으로 루카가 어떤 타입인지 파악한 베니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인물 관계도가 펼쳐졌다. 그녀의 아버지가 본다면 전략을 짤 수 있는 유전적 재능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지 말고 말뚝이나 박으라며 타박을 들었을 모습이었다.
‘내가 아퀼라 님을 응원하고 있고, 저 여자는 카론 님을 응원하고 있으며, 알타이르 님은 윈터 님 편이지.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남자는 사회성’을 후임들에게 주입시키던 유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틀림없어. 유리 님은 이시나 님 파다.’
사루비아 주변의 남자들에게 각각 지지자 한 명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베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무조건 승리는 내가 차지한다!’
장담하는데, 그 지지자들 중 사루비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아마 베니 자신일 것이다. 그들은 사루비아가 기분이 좋은 날은 창문틀의 먼지만 검사하고 기분이 안 좋다면 마룻바닥 틈까지 검사한다든가, 식사에 브로콜리가 나오면 기분이 안 좋아지므로 청소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베니에게는 전략을 짜는 데 익숙한 군인의 피가 전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산체스와 함께 지내며, 그녀는 누군가와의 결투와 승부라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고….
그러니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산체스의 명예를 걸고.
베니는 그 어떤 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 * *
“카론 님, 괜찮으십니까? 저번에 사루비아 님이 그립다고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시더니!”
“아퀼라 님, 사루비아 님과 즐거운 담소 나누십시오. 늘 변함없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사루비아 님께 편지를 쓰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마음고생을 하셔도 늘 건강을 유지한 카론 님의 모습,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강인한 면모도 동시에 가진 분이시랄까?”
‘뭐지?’
루카와 베니가 갑자기 불꽃이 튀는 태도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할 말을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 왠지 그녀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다.
그동안 내 로판 회로를 국경방위군이 박살 내 버렸기에 ‘아오, 왜 이 XX들은 왜 나한테 집착을 안 하는 거야?’ 이런 XX을 했던 거지, 원래는 눈치가 빠른 편이란 말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이 로판 궤도에 올라탔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내 눈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쟤네 각각 응원하는 남주가 있는 거구나….’
나는 베니와 루카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뻘쭘하기 짝이 없었다….
알아서 잘할 테니까 내버려 두라고, 좀. 게다가 카론은 나에게 집착하긴 하지만 그건 로판 남동생 재질의 집착이란 말이야….
아니, 이쯤 되면 쟤네 혹시 독자 빙의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으드르, 즈응흐 흐르, 즘.”
내가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하자, 다행히 베니와 루카는 입을 싹 다물었다.
“알아서 대화할 테니까 꺼져, 좀!”
“예!”
그들은 욕을 먹고도 신이 난 표정을 채 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덕분에 난 더 열받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아퀼라는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두 손을 잡았다. 내가 아는 익숙한 열기가 몸으로 넘어왔다.
“사루비아, 네 답장은 잘 받았어.”
“아.”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얼마 전에 아퀼라에게 청혼을 받았고, 이를 기꺼이 수락한 상황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가….
“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던 애쉬와 루나, 노만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거나 눈을 비볐다.
“이 XX들이, 눈 안 까냐?”
내가 경고의 의미로 으르렁거리자, 아퀼라는 나를 보며 웃었다.
“사루비아, 방금 그 목소리 너무 사랑스럽다.”
“그, 그래…?”
지금 건방진 후임들에게 신경을 쏟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아퀼라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아, 다행히 상대방도 좀 미친 분이신가 봐.”
“휴, 사루비아 님을 감당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다행히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뒤에서 그렇게 속닥대는 후임들은 부대로 돌아간 뒤 조져 버리기로 결심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