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40화 (158/233)

“훈련 시작!”

마침내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 부대와 상대 부대 측 모두 어이없다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영부영 전투하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검을 떨어뜨려!”

이 훈련에서는 상대측의 검을 전부 쳐내는 측이 이기는 걸로 되어 있었다.

물론 오러까지 쓸 수 있는 ‘국경방위군 역할의 팀’이 우리를 제압하지 못할 리는 없었으니, 사실상 제압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크윽!”

그러나 상대방 팀은 고전하고 있었다. 우리 설산 대대는 병사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니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에잉! 제2대대는 영 시원찮구먼!”

간부 중 한 명이 그렇게 외치자 상대 부대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들의 부대 실세로 보이는 상등병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아까보다 더욱 열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치잉-!

바로 내 옆에 있던 후임 한 명에게로 검이 날아들었고, 검과 검이 맞닿으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으악!”

그건 오러가 실린 검이었기에 후임은 검을 놓쳐 버렸다. 그래도 나는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서로서로 사정을 봐주며 협력하는 편이 좋았으니까.

다만….

“저쪽은 너무 공격적인데.”

내 바로 옆에 있던 후임이 하마터면 오러 블레이드에 손을 다칠 뻔했다. 후임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살폈다.

“야, 괜찮냐?”

“예? 예….”

전혀 괜찮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열 받은 나는 인상을 쓰고 대충 검을 휘두르면서 상대방에게 소리쳐 항의했다.

“아, 저희도 적당히 할 테니 그쪽도 좀 살살 합시다. 이러다 애 잡겠습니다.”

상대는 상등병이지만, 다른 부대이니 적당한 존댓말을 쓰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저희 대대장님 성격이 어떤지 그쪽이 아십니까? 돌아가면 왕창 깨진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에 수긍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의 말싸움은 시작되었다.

“그쪽이 약한 걸 우리 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아니, 설산 대대는 본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면서 좀 봐주지! 지금 저희만 털리게 생겼다는 걸 이해 못 하십니까?”

“아, 저희는 매일 마물한테 털려서 말입니다. 간부한테 털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말입니다.”

그와 내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루나가 뒤쪽에서 속삭였다.

“사루비아 님, 그래도 다른 부대인데….”

“…그래, 뭐. 대충 해 주자.”

루나 말대로 괜히 다른 부대와 싸움을 벌이는 건 좋지 않긴 했다.

결국 우리는 그들을 배려해서 적당히 손에서 힘을 풀고 검을 떨어뜨려 주었다. 그들도 더 이상 우리에게 강한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에 대해 흥분한 게 보이기는 했다.

삐이익-

그래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역할을 바꿀 때가 됐을 때, 두 부대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야.”

한판 붙기 전, 나는 후임들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압하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리면, 그만큼 우리의 실력을 키우자는 의미로 돌아가서 함께 훈련하도록 하자.”

“들었지? 너희를 죽여 버리시겠다고 한다.”

“예,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곧장 애쉬가 후임들을 보며 으름장을 놓았고, 후임들도 군기가 빳빳하게 든 채 대답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무슨 방법을 써서든 그들을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된 후….

“커헉!”

“뭐, 뭐야!”

“너무 강하잖아!”

제2대대는 우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일격만으로 상대방의 검을 떨어뜨릴 수 있었으니까. 이 설산 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정도도 기본이었다.

“역시 설산 대대는 모두 훌륭하군.”

“다른 부대도 분발해야 할 텐데, 쯧.”

우리를 지켜보며 간부들이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훈련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다들 잘하더라.”

그래도 후임들을 칭찬해 주려는 의미로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루나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사루비아 님! 그럼 오늘 기분 좋으신 겁니까?”

“뭐? 일단 지금은 좋은데, 왜?”

“와! 오늘은 나한테 왜 금발이냐고 화내지 않으시겠구나, 헤헤!”

…아니, 저 XX가 간땡이가 부었나 보군.

어쨌든 모든 후임들이 다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아까 제2대대에 속했던 병사들 중 한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뭐야?”

나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 아까 나와 시비가 붙었던 바로 그 상등병이었다.

“아, 아까는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아까 전 우리 부대의 처사에 대해 불평하려는 모양이었다.

방금 대대장에게 털리고 온 모양이었는데, 하여튼 간부가 주적이라며 그를 관대하게 넘겨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왜냐하면 그는….

‘금발!’

나는 금발이 싫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금발이었으니까!

‘게다가 푸른 눈이야!’

심지어 황태자, 아니, 이제 황제가 된 그자와도 눈 색이 같다! 한마디로 그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요소들을 모두 몸에 갖추고 있었단 말이었다!

“저는 금발에 푸른 눈이 싫습니다. 그러니 좀 물러나 주십시오.”

솔직히 우리가 강해서 이긴 걸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쫄았냐?’라며 도발할 수는 없으니, 대충 다른 핑계로 그를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그 말에 더욱 분해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외관으로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건지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는 씩씩댔다.

“아니, 지금 저한테 뭐라고…!”

“사루비아 님!”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나 남자의 팔을 휘익 붙잡았다.

“아, 아!”

갑작스럽게 팔이 꺾이자 남자가 고통스런 소리를 내었지만, 카론은 굴하지 않고 그를 붙들고 있는 채였다.

그러나 그에게 추가로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다. 카론은 단지 남자를 제압한 채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루비아 님, 이 자가 무례하게 구는데 가만히 둡니까?”

“야, 야!”

나는 역으로 당황하여 카론에게 손짓했다.

쉬는 시간이라 간부들이 이쪽을 주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대 사이에 마찰이 발생한 것을 들키면 우리 모두 영창행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영창을 피했는데! 이럴 거면 그냥 연애하고 영창 가는 게 낫지!

“빨리 놔 줘!”

“예, 알겠습니다.”

내가 다급하게 명령하자, 카론은 이전에 임무 수행 때 그랬듯이 미련 없는 얼굴로 남자를 휙 놔주었다. 남자는 붙들렸던 팔이 얼얼한 듯 그곳을 매만지며 분한 눈으로 카론을 보았지만, 카론의 시선은 오직 나에게만 꽂혀 있었다.

“야, 다른 부대랑 이러면 안 된다니까?”

“그래도 사루비아 님께 무례한 것 같아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예, 알겠습니다….”

카론의 얼굴이 시무룩해 보였다. 풀 죽은 듯한 그 모습을 보면 조금 전 남자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던 사람과는 동일인이라고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남자는 항의하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카론이 나에게 그러하듯 나도 카론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카론, 네가 그럴 필요 없었어.”

“넷슴다….”

“왜냐하면 저 XX가 거슬리게 군다면 내가 저 XX인 척하고 은근히 신상이 드러나도록 황당한 내용의 사랑의 편지를 쓸 생각이었거든…. 그렇게 되면 저 XX가 털릴 거고….”

“히익!”

상상도 하지 못했을 복수 방법을 들은 남자가 기겁하여 달아났고, 나는 카론에 대한 훈계를 늘어놓는 일을 그만두었다.

순간, 나는 카론의 갈색 눈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감정을 엿보고 말았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아는 카론은 늘 순진무구한 모습이었다. 그는 늘 방긋방긋 웃었고, 겉과 속이 일치하는 인물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이번의 카론은, 방금 전 그 남자에 대한 살의를 분명히 숨기고 있었다.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이 국경방위군에서 살기를 인지하는 능력이 발달했으니까.

그러니까 카론이 나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건 집착이다.’

지금까지 나한테 하던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순수한 애정으로서의 집착 말고, 지금 그는 여주에게 거슬리게 구는 사람들을 모두 치워 버리려고 하는 집착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결론을 내렸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남주 네 명이 모두 나한테 집착한다.

아퀼라, 윈터, 이시나, 카론….

원작의 남주 네 명이 모두 나한테 집착한단 말이다!

‘XX,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전에도 말했지만, ‘어라? 왜 나한테 집착하지?’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들과 내 관계를 떠올리면 나한테 집착하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할 거다.

아퀼라와는 유일한 동기로 산전수전공중전을 모두 넘겼고, 윈터에게는 그가 유일하게 유하게 구는 후임이 되었고, 이시나에게는 늘 챙김을 받았고, 카론은 내가 친동생처럼 잘 챙겨 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남주들과 몇 번씩이나 쌍방 구원을 해 오고, 그들에게 대단히 인상적이었을 대사를 던졌는데!

그래,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이제 와서 집착하면 어떡해, XX들아!’

이미 이 군대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제대만을 바라보는 말년 병장, 아니, 지휘사관이란 말이다!

결국 나는 견디지 못하고 허공을 보며 육성으로 외치고 말았다.

“진작 좀 집착을 했어야지, 이 XX들아!”

대체 나는 뭐 때문에 칠 년 동안 고생만 하면서 지낸 거지? 이제는 예전만큼 로판이 필요하지 않단 말이다!

내가 집착 좀 하라고 그토록 울부짖던 시점에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제 와서 네 놈이 모조리 집착을 한다고?

게다가 아퀼라랑 윈터는 그렇다 치고, 이시나랑 카론까지 집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카론이 집착하면 그건 캐붕 아닌가?

아냐, 원래 집착은 로판 남주의 패시브 속성 같은 거니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내 인생이 역하렘이었다니.’

갑자기 넘쳐나는 선택지의 향연 속에 나는 좀 아연해졌다.

나는 아퀼라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는 데에도 큰 노력이 필요했을 정도로 ‘사랑을 모르는 양철 로봇’이 되었는데, 남주들은 이제 나한테 티나게 애정을 퍼붓고 있다.

‘대체 사랑이란 뭘까….’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다들 이렇게까지 맹렬한지.

정말 어려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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