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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38화 (156/233)

“우선 사루비아 님은 아퀼라 님을 사랑하시니, 너무 돌진하셔서는 안 됩니다. 지금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셔야 합니다!”

“으음, 그렇구나….”

루카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카론은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분노의 이유를 고민하던 카론은 자신이 붙잡아 온 인질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루비아 님께 무례하게 구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지?’

사루비아는 늘 열심히 하는데도 그녀에게는 유독 그녀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많이 꼬였었다. 예를 들면 방금 그들이 산에서 내려 보낸 민간인들이라든가.

물론 그들에게 보복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사루비아가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인질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셨으니까.’

쾅-!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던 인질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카론은 가만히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큰 체격의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니 겁에 질린 건지 인질들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카론은 그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고 짧게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사루비아 님을 건드리면 안 되지. 무례하잖아.”

그 후 카론은 국경방위군에서 배운 것들을 충실히 이행했다. 긴 비명이 공간을 채웠다.

“사루비아 님 앞에서 바로 이런 모습을 보이시면 안 되는 겁니다.”

루카는 언제나 그렇듯 카론의 옆에서 충실하게 조언해 줬고 말이다.

그들에게 보복하는 동안에도 카론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사루비아 님께 무례하게 굴 수 없도록 만들자. 그리고 사루비아 님이 절대 나를 버릴 수 없게 해야 해.’

그녀는 이제 그가 지켜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 * *

“아오, XX.”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한 말이었다.

급하게 나가느라 난장판인 숙소의 모습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났다. 무엇보다….

“아, 편지도 못 쓰고 갔잖아!”

구겨진 편지지와 바닥에 떨어진 펜을 보니 열받았다. 이 편지 한 장 다 쓰기도 전에 일이 터져?

그래, 군대를 믿은 내가 잘못이다. 애초에 내 인생에 로판이 끼어들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국경방위군이 로맨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미사여구로 장식해서 빙빙 돌려 말하는 연서 따위를 쓸 때가 아니었단 말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의사를 직설적으로 전할 수 있는 편지였다.

나는 새로운 편지지를 홱 꺼내 펼치고 바닥에 떨어진 펜을 주웠다. 잉크가 얼마 없어서 짧은 말밖에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긴 글을 쓸 건 아니니 상관없었다.

종이 위에서 펜이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였고.

“다 됐다!”

나는 마침내 완성한 편지를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아퀼라에게

널 사랑하는 것 같아.

결혼하자.

사루비아 보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적었어!’

이거면 내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뿌듯한 눈으로 편지를 내려다보며, 나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나는 이제 아퀼라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인정했고, 그렇다면 내 미래에 아퀼라 또한 함께 그려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혁명도 같이 하려나?’

아퀼라는 틀림없이 나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을 함께해 줄 것이다. 음, 혁명군이 늘어나면 좋지.

안타깝게도 제대 이후의 로맨틱한 인생을 그리기에 내 머리는 너무 폭력과 공포로 찌들어 있었다….

그래, 로맨틱한 미래를 그리는 건 나중으로 미뤄 놓자.

* * *

『이시나 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시나 님!

저번에 이시나 님의 조언 덕분에 모든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아퀼라에게 청혼 편지를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이시나 님 덕분입니다!

사루비아 올림』

“하아….”

자신에게 도착한 편지 한 장을 보며 이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사루비아다운 편지였다.

‘잘된 걸까?’

이시나는 평소 아퀼라가 사루비아에게 수작을 부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둘의 결혼 자체에는 이의가 없었다. 그거야 그들이 아니라면 누가 서로를 감당하겠는가.

‘하지만 왠지 거슬린단 말이지.’

이시나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장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거슬린다.

그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시나는 역시 사루비아를 다시 한번 만나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루비아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대대장님.”

마침 각 부대의 생활을 조사하기 위해 장교들이 지휘사관들과 차례로 면담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시나는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대대장님이 말씀하셨던 부대 내 전투력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 말입니다. 다른 부대와 연합 훈련을 한다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강하기로 유명한 설산 대대라든가….”

“흠, 연합 훈련을 해서 여러 부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사고가 생길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마물과의 전투보다는 인간을 상대할 수 있는 전투력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 대대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시나는 암녹색 눈을 휘며 부드럽게 웃었다. 말을 듣는 사람이 저절로 그의 말을 신뢰하게 만드는 바로 그 미소였다.

“그래, 사실 그런 사고가 발생할 리는 없겠지. 좋은 의견이군.”

대대장은 이시나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이시나는 바라던 대로 사루비아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여러 부대가 동시에 자리를 비웠을 때 사고가 터질 경우’의 가능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말았지만 말이다.

* * *

“뭐? 이젠 하다 하다 부대 연합 훈련을 해? 가지가지 한다!”

루나가 내게 들고 온 소식을 듣고,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 아퀼라가 나한테 답신도 보내지 않았는데. 요즘 인생에 마가 꼈나, 어떻게 온갖 일이 이렇게 다 생길 수가 있지?

이번에 나에게 닥친 역경은 바로 ‘부대 연합 훈련’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부대들 간의 전투력을 측정하기 위해 진행하는 행사인데, 대대 내에서 한 소대씩 나와서 능력을 시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일이 있을 때 차출되는 건 바로 우리 알파 소대였단 말이다!

“아오, XX! 어떤 놈인진 모르겠지만 이딴 X같은 훈련을 기획해 낸 XX를 죽여 버리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사루비아 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간악한 자식일 겁니다.”

우리는 불평을 쏟아 내었지만 당연히 이 훈련을 피할 방법은 없었고, 우리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훈련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아퀼라, 카론, 이시나!’

부대끼리 줄을 지어 서 있을 때 나는 이쪽을 보고 있는 아퀼라와 카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움직일 수는 없으니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따가 아주 잠깐의 틈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시나는 내 바로 왼쪽에 서 있었다.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위치였다.

“이시나 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사루비아. 교육 때 마지막으로 봤었지.”

이시나는 특유의 다정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더니, 은은한 미소를 유지한 채 물었다.

“아퀼라에게 청혼했다며.”

“예, 아직 답은 못 들었지만 말입니다.”

“아니지. 아퀼라가 너한테 먼저 청혼했으니까, 너는 이미 그 청혼에 화답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아, 그렇습니까?”

역시 늘 현명한 이시나였다. 그렇다면 아퀼라의 편지가 좀 늦는 것도 이해가 갔다. 우리의 결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써야 할 테니까.

내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이시나는 어쩐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런데 사루비아, 확신해?”

“예?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가 정말 아퀼라를 사랑하는지 확신하냐고.”

“어….”

이전과는 다른 이시나의 태도에 놀라서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분명 내가 아퀼라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심어 준 사람은 이시나 본인 아닌가?

“아퀼라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걸 상상하면 아퀼라를 죽여 버리고 싶어지는데, 이게 사랑 아닙니까?”

“사루비아, 난 단지 네가 더 확실한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야.”

이시나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성급하게 결혼을 한다면 네가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너희는 충분히 서로를 알고 있지만 혹시나 사랑이 식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헤어질 수 있…. 잠깐만.”

“예?”

“결혼한다면 깨질 가능성도 존재하는구나.”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지만, 이시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남녀 간의 사랑은 안정적이지 않아…. 그 자리는 욕심낼 이유가 없어.”

“예?”

“아냐, 사루비아.”

갑자기 이시나가 밝아진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는 아퀼라와 천생연분인 것 같아. 역시 너희 둘이 결혼해야 하는 게 맞아.”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아냐, 내가 잠깐 헷갈렸는데, 네 얼굴을 보니 확실해졌을 뿐이야. 네가 아퀼라를 사랑한다면 아퀼라와 결혼해.”

“아, 예….”

정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후 훈련이 이어졌기에 나는 이시나에게 그 의미를 더 캐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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