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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37화 (155/233)

그 눈빛을 보고 마찬가지로 겁먹었는지, 남자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일행들에게 눈치를 주더니 다시 말을 바꿨다.

“흠흠, 뭐. 내려갈 겁니다. 뭔가 오해하셨나 본데, 저희도 지금 내려갈 거라고요.”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비굴해져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웅얼대다가 일행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러나 카론은 여전히 그들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루비아 님,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난 그들에게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지구에 있었던 진상들이 이 세계에는 또 있다는 것에 놀라고 ‘진상 보존의 법칙’에 대해 생각했을 뿐이지. 만일 내가 진짜로 그들에게 분노했다면 내 성격에 못 참고 이미 그들에게 폭력과 공포를 선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론은 그들이 내게 불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 됐어.”

내가 다시 한번 힘주어 강조하자 카론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예, 그럼 저희도 얼른 내려가지 말입니다!”

카론이 다시 해맑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기에, 결국 나는 카론에게 성격도 좀 변한 것 같다는 말은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잠깐만, 혹시 이것도 로판 전개인 건가?

‘어릴 때는 순둥이였는데 커서는 흑화하는 남주!’

이것도 로판에서 상당히 흔한 타입이었다.

다만 카론은 안타깝게도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이기에 메인 남주가 될 가능성은 몹시 낮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만일 카론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나와 떨어져 있던 1년 동안에 성격이 바뀌었고, 나에게 집착하게 되었지만 내 앞에서는 변한 성격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면?

이건 절대로 김칫국이 아니었다! 아퀼라와 윈터가 연달아 내 앞에서 로판 남주가 된 이상,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로판 전개가 아닌지 의심할 자격이 충분하단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1년 동안 떨어져 있었잖아.’

잠깐 떨어져 있던 사이 남주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집착하는 건 상당히 흔한 전개였다.

‘이건 어떻게 판별하면 되지?’

그가 진짜로 무해하고 순수한지, 아니면 내 앞에서만 순진한 척하고 사실은 집착 남주인지 의심해 보려면….

‘그래, 카론의 후임들을 확인하자!’

원래 집착 남주가 본성을 숨기고 여주 앞에서 순진하게 웃을 때 남주의 부관들은 놀람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정작 여주는 그들의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하지.

나는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카론을 쳐다본 뒤 그의 뒤에 있는 후임들을 쳐다봤다. 카론과 친하다고 한 후임이 분명 루카라는 여자애였지.

그러나 루카는 아까와 같이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카론이 보이는 태도를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흠, 역시 카론이 내 앞에서 흑화를 숨기는 집착 남주 같은 게 되진 않은 모양이다.

* * *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그래, 너희가 할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아직 산에서 2황자군을 진압하는 일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걸 맡은 부대는 다른 부대이므로 이제 우리의 임무는 끝이었다.

‘아퀼라랑 이시나를 못 만난 건 아쉽지만.’

특히 아퀼라에게는 내 생각을 직접 말해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 게 아쉽다. 그래도 카론에게는 부모님의 유품을 전해 줄 수 있었으니까.

“카론.”

헤어지기 전 그에게 다시 인사를 하기 위해, 나는 카론의 두 손을 붙잡았다. 지금 보니 내 것보다 훨씬 크고 핏줄이 드러나 있는 성인 남자의 손이어서, 카론이 좀 낯설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카론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카론은 내 앞에서 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왔으니까.

“가서도 잘 지내고, 내가 먼저 전역해서 기다리고 있을게.”

“예, 사루비아 님. 저도 편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손에 힘을 꽉 준 채 말하는 카론은 정말 나와 헤어지는 것이 속상하다는 얼굴이었다.

“제대하기 전 다시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외부 근무가 또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사실 외부 근무는 우리에게 있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유품은….”

그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싶어 다시 넌지시 말을 꺼내니 카론이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네! 저는 정말로 상관없습니다!”

“그래.”

괜찮다는 사람을 붙잡고 굳이 더 위로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카론의 손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카론, 그럼 다음에 보자.”

“예, 사루비아 님도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

다시 우리 설산 대대가 이동하는 동안 나는 뒤를 흘끗 쳐다봤다. 카론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한결같은 애였다.

* * *

“음….”

카론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아버지의 유품, 로켓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사루비아는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노란 꽃.”

카론이 그 꽃을 보고 떠올린 건 부모님의 기억 같은 게 아니라, 그저 꽃이 사루비아의 눈 색을 닮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목걸이가 마음에 들었고, 그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라고 느꼈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부모님?’

그런 건 정말로 아무런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한테는 사루비아가 있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카론 님.”

바로 그때 루카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루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사루비아 님이란 분이 아퀼라 님?과 결혼하신다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그건 괜찮은데 왜?”

“카론 님! 두 분이서 결혼하시면 아퀼라 님이 카론 님을 그대로 두실 것 같습니까?”

“아퀼라 님은 나를 잘 챙겨 주셔.”

“그게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퀼라 님은 카론 님을 경계하실 겁니다! 자기 여자한테 다른 남자가 접근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카론 님은 사루비아 님과 함께 있기 힘들어질 거란 말입니다!”

그 말에 카론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루카는 카론을 상당히 잘 따르는 후임이었다. 카론은 그가 새로 배정된 부대에서 루카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뛰어난 두뇌를 가진 루카는 그 당시 부대를 잘 통솔해 가고 있는 상등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물과의 전투 중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해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카론이 가까스로 그녀를 붙잡아 구해 준 뒤로 루카는 카론을 생명의 은인처럼 따르게 된 것이다.

제법 친밀한 관계가 된 뒤, 카론은 루카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사루비아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 주곤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카론의 깊은 애착을 알게 된 루카는 그에게 사루비아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들을 조언해 주었다.

예를 들어 사루비아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카론에게는 그런 게 오히려 잘 어울린다고.

그래서 이전에 카론이 보낸 편지의 내용도 그녀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생각해 봤는데, 저에게는 정말 사루비아 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사루비아 님이 계시지 않다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달린과 달리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제대한 뒤로 그 약속대로, 사루비아 님이 늘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루비아는 카론이 이전에 썼던 그 편지를 받고 진심으로 카론을 걱정해 준 것 같았지만, 사실 카론은 그저 제대 후 사루비아가 자신을 버리지 않도록 할 마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루비아가 아퀼라와 결혼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저 그들 옆에 자신도 함께 있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 루카가 하는 얘기에 따르면 그들이 결혼할 경우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는 조금 전 보았던 사루비아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달콤하게 보이는 산호빛 머리카락과 노란 눈, 동그란 눈이지만 늘 화를 내려는 얼굴을 하고 있기에 올라간 것처럼도 보이는 눈꼬리, 얇은 목과 긴 손가락.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카론이 주목했던 건….

‘작았지.’

사루비아는 너무 작았다.

사루비아를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순간, 카론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사루비아는 늘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존재였다. 가끔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다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사루비아는 늘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 냈다. 카론은 그저 사루비아가 시킨 대로 하면서 그녀를 돕기만 하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그네를 해결했고, 자이든을 굴복시켰고, 알타이르를 구해 냈고, 마물에게 삼켜지고도 빠져나왔고, 흑마술사도 척척 잡았고, 카론 자신이 힘들어할 때도 늘 도와줬고, 모든 후임들이 그녀를 두려워하며 따르게 만들었고….

그의 안에서 사루비아는 굉장히 커다란 존재였고, 어른이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자신의 가슴팍까지 오는 사루비아의 모습을 본 뒤에야.

‘원래 이렇게 작았구나.’

카론은 사루비아의 체구가 작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다음에는, 사루비아의 나이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보다 고작 한 살이 더 많았다.

그러니 그의 기억 속에서 늘 멋지고 어른스럽던 사루비아는….

“저를 처음 봤을 때가 몇 살이셨습니까?”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잖아. 그러니까 열일곱이었지. 그건 왜?”

그녀는 그때 고작 열일곱이었다. 지금의 카론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그 나이의 사루비아는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의젓한 선임 노릇을 해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카론은 깨달았다.

“작았구나.”

그는 더 이상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사루비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사루비아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힘들면 바로 사루비아한테 속상하고 슬픈 티를 내고,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안절부절못하며 사루비아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사루비아는 이전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원하는 것 같기에, 사루비아 앞에서는 환하게 웃으며 밝은 척하기는 했지만….

‘내가 지켜야 해.’

사루비아가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일 때마다 카론은 곧장 뛰어들었다. 자신의 몸이 다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위험이라도, 사루비아가 그것에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퀼라가 사루비아와 결혼한다면, 지금처럼 사루비아 옆에 붙어서 그녀를 지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루카, 그럼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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