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로 엉성하게 지어진 듯한 창고는, 엉성한 겉모습에 비해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저 안에 식량이랑 무기가 모두 있단 말이지?’
저것만 날아가더라도 2황자군이 진압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창고 폭파를 위해 수류탄을 제공받기도 했다. 물론 허가받은 자만 쓸 수 있겠지만.
“상태 확인해.”
“예.”
“오른쪽, 병력 없습니다.”
“왼쪽, 없습니다.”
이전에 역할을 나눈 대로 목소리가 차례대로 돌아왔다. 뒤쪽은 다른 부대가 확인하고 있었으니, 지금 중요한 건 창고 내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만일 안에 2황자군이 있다면 그들을 아예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서 황궁 감옥에 가두라고 지시받았으니까.
‘아오, XX. 2황자는 죽었다는데 왜 얘들은 아직 날뛰는 거야.’
주인도 사라졌는데 날뛰는 군사들에 대한 불평을 속으로 쏟아 내며, 나는 천천히 창고 안으로 접근했다.
곧 조금 떨어진 옆 방향에서 올라온 부대 하나도 모습을 드러냈다. 카론네 부대였다.
‘카론!’
그에게 손짓하니, 카론 또한 단번에 나인 것을 알아본 듯 얼굴이 환해졌다.
‘내부 수색하면 됩니까?’
‘그래, 들어가자.’
카론과도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눈빛으로 대화하는 것 정도야 쉬웠다. 덕분에 우리는 아예 다른 부대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연계 작전을 수행해 내고 있었다.
막사의 입구에서, 우리 소대의 가장 앞에 선 내가 카론에게 손짓했다. 카론은 막사의 입구를 가리고 있는 천을 잡더니, 짧게 숨을 쉰 후 그것을 휙 걷어 내었다.
“1인 발견!”
안에 있던 2황자군과 마주치자마자, 내가 빠르게 외쳤다. 다행히도 그는 우리의 습격에 당황한 차였기에, 그를 제압하는 건 쉬웠다.
“야압!”
“좋아, 잘했어.”
애쉬는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가려던 그를 붙잡아 바닥에 눌렀고, 다른 병사가 다가와 얼른 그에게 밧줄을 묶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임무가 끝날 리는 없었다. 아직 내부 진입이 남아 있었으니까.
우리가 이미 입구에서 2황자군 한 명을 잡았으니, 그 안에 사람이 더 있다면 그들이 대비할 시간이 없게 지금 바로 들어가야 했다.
‘내부 진입!’
내가 입 모양으로 명령을 내리자, 카론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뻗어 자신의 부대원들에게도 손짓했다. 우리는 동시에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탕-!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론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다행히 총알이 우리를 빗나간 듯 다친 곳은 없었다.
“2인 발견!”
창고 내부에 있던 건 두 명의 남자였다. 그들은 입구에서 일어난 전투의 소리를 듣고 대비를 하고 있었던 듯 총을 들고 있었다.
내 눈이 빠르게 그들이 든 총을 훑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건 쉬웠다.
‘저건 최신 권총일 텐데, 그래 봤자 총알 네 발이 끝이야. 오른쪽 소총은 더 많이 들어가는 거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총알이 금방 떨어질 왼쪽의 남자를 경계하며 오른쪽의 남자를 제압하고, 그 후에 총알이 떨어진 왼쪽 남자를 공격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론! 우측!”
쾅-!
카론은 앞에 있던 거대한 테이블을 들어 그들에게 던졌고, 그들이 쏜 총알이 테이블에 꽂힌 순간 빠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우측에 있던 남자는 테이블에 정통으로 맞았는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끙끙댔고, 왼쪽의 남자는 쓰러진 채로 총을 잡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남자의 총을 잡아 총구를 위쪽으로 올렸다.
탕-! 탕-! 탕-! 탕-!
그가 쏜 탄환이 모두 하늘을 향해 날아가 바닥에 댕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순식간에 모든 탄환을 잃은 그가 허망하다는 눈빛을 했다.
“아악, 그만!”
그동안 카론은 오른쪽 남자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콘 중에서도 단순히 신체의 무력만으로 싸우자면 카론을 이길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신체 조건도 좋고 힘과 체력도 상당히 뛰어나니까.
하물며 제국민은 어떻겠는가? 2황자군이라던 남자는 바닥에 누운 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소총이 있었기에, 마냥 카론을 믿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카론이 그를 제압하고 있는 동안 얼른 그로부터 소총을 빼앗아 들었다.
찰칵-!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권총의 장전 음이 났다.
‘XX!’
내가 방심하고 있던 동안 왼쪽의 남자가 탄환을 재장전한 것이었다!
“사루비아 님!”
나는 들고 있는 소총으로 남자를 겨냥하려 했지만, 그것보다는 카론이 나를 잡아당기는 게 빨랐다.
탕-!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요란한 총알의 격발음과 함께 내가 있던 자리를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다.
‘뭐야?’
카론에게서 벗어나 보려 했지만 몸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가 힘이 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카론은 내가 벗어나려 한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전혀 힘을 풀지 않고 나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가.
“죄송합니다!”
나를 바닥에 홱 내팽개친 후, 그대로 왼쪽에 있던 남자에게로 돌진했다.
격한 몸싸움이 이어졌지만 물론 그 몸싸움에서의 승자는 카론이었다.
“야! 밧줄!”
내가 그렇게 외치자, 입구에 있던 루카로부터 밧줄이 날아들었다. 카론은 그것을 전달받아 두 남자를 모두 묶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들을 묶어 놓자 후임들은 얼른 그들은 인질로 붙잡아 끌고 갔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 또한 잊지 않았다.
“폭파한다! 모두 물러나!”
우리 소대의 애쉬가 화약에 빠르게 불을 붙였다. 심지가 타들어 가는 동안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인질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팡-! 파팡-!
뒤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고가 폭파되는 소리가 들렸다. 간혹 화염에 휩싸인 나뭇가지 등이 이쪽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이제 2황자군은 소리를 들고 창고로 몰려오겠지만, 그들이 습격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겠지. 다른 부대가 산 아래를 에워싸고 있을 테니까.
“후우….”
임무가 무사히 완수되었다는 생각을 하자 비로소 안심이 되어서, 나는 옆에 있던 카론에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기댔다. 물론 내 손이 그의 어깨 높이까지 닿지는 않았으므로 내 손은 그의 허리를 두르고 있었다.
카론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더니, 조심스럽게 나를 부축했다.
“사루비아 님, 괜찮으십니까?”
“어. 그냥 힘이 풀려서.”
그렇지만 지금 확실히 해야 할 문제는 있었다.
“너 아까 왜 나를 밀어냈냐?”
카론은 내가 왼쪽 남자를 제압하려는 것을 막고, 나를 붙잡아 구석으로 보내 두었다. 선임에게 보이기에는 불손한 태도라고 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카론은 나를 부축한 채로 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사루비아 님이 다치실 것 같아서….”
“야, 내가 그런 거 다 감안하고 달려들었겠지. 난 내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타입이거든?”
“하지만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카론 자신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기에, 결국 나는 그를 더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너 예전보다 훨씬 강해지기는 했더라.”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동안 저도 강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내 말에 말대꾸도 잘하고.”
“그, 그게 사루비아 님을 무시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속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지 않았는가.
내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보이자, 카론은 그제야 내가 장난치려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뺨이 붉어졌다.
‘카론은 늘 원작 그대로였지.’
내가 아퀼라와 윈터를 보며 원작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충실하게 원작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카론은 내가 보기에도 원작과 그대로 나를 잘 따랐다. 그 부분에서라도 원작과 똑같이 진행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
“카론, 너는 변하면 안 된다?”
“예? 물론이지 말입니다!”
카론은 내 말뜻이 뭔지 알지 못할 텐데도 고개를 열렬하게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기에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 * *
산을 내려오는 길, 우리는 예상지도 못 했던 다른 역경을 맞닥치게 되었다.
산에 살고 있는 마물?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건 바로….
“아우, 지금 산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산에서 불법 수렵을 하고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처음 발견하고서 우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다. 아니, 분명히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산인데 도대체 여기에 제국민들이 왜 있지? 국가가 철저하게 막아 놓은 곳에 고작 약초 따위를 캐러 올라온다고?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래, 역시 군대군.”
우리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하.
물론 여기서 당황하고 있을 게 아니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지금 임무가 진행 중인 산에 민간인들을 들여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와 함께 왔던 중대장은 인질 건과 관련된 일이 있어 우리보다 먼저 산을 내려간 상태였고, 우리의 소대장은 얼마 전 새로 부임된 신임 소위였기 때문에 영 믿음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지금 대표는 나인 것 같아서, 나는 앞장서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현재 이 산은 작전이 진행 중이어서 이 산에서 내려가 주셔야 하지 말입니다.”
“아, 알았어요. 이것만 캐고 내려갈게요.”
사람들의 대표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흙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뿌리가 드러나 있는 삼 같은 게 보였는데, 비쌀 약초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들을 기다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산에서 현재 군사 작전이 벌어지고 있어 몹시 위험합니다. 작전 지역에서 이러시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얼른 내려가셔야 합니다. 벌금을 내게 되실 수 있습니다.”
“아, 진짜 빡빡하네~.”
…이거 완전 전생에서 보았던 흔한 진상들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저희가 강제로 연행해서 내려가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시면 반드시 벌금을 물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즉시 일어나십시오.”
내가 평소에 후임들의 앞에서 보이던 강한 태도로 말하자, 그들의 표정도 변했다.
비쩍 마른 아저씨는 그런 내 태도가 못마땅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똑바로 선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 진짜, 아가씨는 에미 애비도 없어? 어, 이것만 하고 내려가겠다니까. 융통성이 없네, 융통성이!”
그는 내게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냥 그를 연행해 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내 뒤로 붙은 카론이 무릎을 낮춘 채 내 귀에 속닥였다.
“사루비아 님, 처리합니까?”
“뭐?”
처리?
왠지 범상치 않은 단어인데? 장르가 갑자기 바뀐 기분이잖아.
“뭘 어떻게 한다고?”
“감히 사루비아 님께 몹시 무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원하신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을 붙잡고 제압하겠다는 뭐 그런 뜻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 카론의 태도였다.
무릎을 숙인 채 나에게 공손하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카론의 눈빛은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는데, 어쩐지 그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내가 그동안 카론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눈빛이었단 말이다.
그래, 꼭 로판 속 집착 남주 같은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