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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35화 (153/233)

그 후,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루비아 님…?”

“으응?”

그도 오랜만에 봐서 나를 낯설어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나는 입대한 뒤로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내 성장판이 닫힌 지는 한참 됐을 것이다.

“사루비아 님, 원래 이렇게 작으셨습니까?”

“뭐?”

고참에게 하기는 좀 무례한 말이었지만 악의는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차마 그 말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예전부터 내가 카론에게 제대로 화내지 못하고 유독 무르게 굴기도 했고.

“나는 처음부터 이 키였지.”

국경방위군에 들어왔을 때 나는 이미 성장기가 끝난 후였으니까, 쭉 이 키였다.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보통의 키.

그러자 카론은 침묵하더니, 다시 느릿느릿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해 목소리도 훨씬 굵어져 있었다.

“저를 처음 봤을 때가 몇 살이셨습니까?”

“열일곱이었지. 그건 왜?”

그러나 카론은 내 말에 대답해 주지 않고, 여전히 낯선 얼굴로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작았구나.”

“뭐?”

갑작스러운 반말에 내가 놀라 되물었지만, 카론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작으셨구나….”

그는 혼자만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와중에도 진지한 얼굴과 넓은 체격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너 많이 변했다?”

카론에게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놀리기라도 하려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후, 카론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보였다.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환하고 순진무구한 웃음이었다.

“저는 늘 사루비아 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카론은 뒤에서 나를 끌어안듯이 내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그렇지만 아까와 달리 그 팔에 힘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나를 배려해 준 것 같았다.

“그랬어?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굵어졌다지만 어조나 단어 선택도 예전과 같아서, 그제야 나는 다시 카론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외형이 조금 자랐다지만, 그는 내가 아는 카론이었다.

* * *

“곧 출발하겠습니다!”

간부가 그렇게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카론과 회포를 풀던 나는 놀라 고개를 화들짝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카론에게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카론, 내가 너한테 줄 게 있는데.”

“저한테 말이십니까? 그게 뭡니까?”

카론이 신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은 그에게 설명해 줄 시간도 촉박하니 임무가 끝나고 나서 전해 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다.

-카론, 이 임무가 끝나면 너한테 줄 게 있어.

-예, 그게 뭡니까?

-후훗, 비밀이야.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정신 차려 보십시오! 사루비아 님!

-카, 카론…. 내 주머니 안에 목걸이 하나가 있어.

-흐윽, 차,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네… 아버지의… 유품….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절대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는 데드 플래그에 대한 민감도가 아주 높아서, 조금이라도 데드 플래그스러운 짓을 하면 곧장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단 말이다.

“이게 뭔지 알아?”

나는 그에게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건넸다. 카론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목걸이를 받아든 뒤, 타원형 모양의 펜던트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 말린 노란색 꽃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뭡니까?”

그는 목걸이를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단서를 찾지 못한 듯싶었다.

그 모습을 보고 왠지 침울해져서, 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아버지의 유품이야.”

“…넷슴다?”

“너희 부모님이 설산 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시다 사망하셨더라. 너의 아버지, 카이센 님은 예전에 우리 부대의 중대장이셨어.”

“아….”

카론은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목걸이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부대에서 유품을 보관하고 있으셨다는데, 너한테 전해 줘야 할 것 같았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내 설명을 듣는 동안, 그는 무언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노란 꽃을 보고 있었다.

“혹시 뭐 느껴지는 게 있어? 그 꽃이 너에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유품을 의심 없이 나한테 넘겨도 되는 건지 의문을 표했을 때, 대대장은 이렇게 답했었다.

“그 후임이 진짜 그들의 아들이라면, 이 펜던트를 통해 무언가를 찾아내겠지. 오직 허락된 자만이 볼 수 있는 게 있어…. 그게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물건이니.”

카론이 그들이 진짜 아들이 맞다면, 유품에서 무언가 발견해 낼 수 있는 게 존재한다고 했다. 혹시 유품에 마법이 걸려 있고, 그 마법이 카론을 인식하기라도 하는 걸까?

카론은 여전히 꽃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의미가 있습니다….”

“아, 뭔가 보이는 거야?”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카론에게 보인다는 게 궁금해서 그렇게 물었더니, 카론은 대답 없이 입꼬리만 올려 웃어 보였다. 나에게는 뭐가 보이는지 말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쨌든 뭐가 보이긴 한다니, 그걸로 카론이 유품을 되찾아 갈 자격이 있는 사람인 건 확실하겠지.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고, 대신 슬쩍 카론을 관찰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잘 다독여 줄 생각이었다.

이제야 부모님을 찾은 걸 자책할까? 아니면 부모님을 그리워할까? 자신을 키워 주시지 못했던 것에 대해 분노할까?

그러나 카론은 내 예상과 너무나도 다른 행동을 했다.

“사루비아 님, 이제 임무 준비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응?”

카론이 멀쩡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그렇게 물었던 것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물기도 없었고, 목소리도 평소와 같이 명랑한 것이었으며, 얼굴을 유심히 뜯어봐도 슬픔이나 충격을 감추려는 기색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단지 이 상황이 정말로 크게 와닿지 않은 것 같았다.

‘뭐, 제대로 된 기억도 없으니까.’

사실 카론에게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지. 그래, 내가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카론은 펜던트를 닫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그것을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진짜로 방금 전에 내게 들었던 것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카론, 기분은 괜찮아?”

“예? 안 좋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

하긴, 카론은 예전부터 늘 내 예상을 비켜 갔지. 흑마술사를 만났을 때, 그를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대신 내 말을 따르겠다며 순순히 그를 보내 주었던 것도 그렇고. 그는 예기치 못한 구석에서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역시 원작 남주4….’

나였다면 이미 멘탈이 약간 나가서 임무에 집중하지 못했을 텐데, 카론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카론 님, 이제 정말 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던 듯, 카론의 부대의 후임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갈색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귀엽게 묶은 여자였는데, 옷에는 상등병 견장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사루비아 님이십니까?”

“어?”

“안녕하십니까, 저는 카론 님과 같은 소대의 후임 루카라고 합니다!”

입에 달라붙는 귀여운 이름이었기에,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루카를 쳐다보았다.

“카론 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카론 님이 엄청 좋아하는 선임 분이시라고!”

“아, 그래?”

왠지 멋쩍어져서 나는 어색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반면 루카는 나와 달리 친화력이 좋은지 내 앞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카론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잠깐, 혹시….’

카론과 엮이는 여주 아닐까? 원래 귀여운 조연으로 나오는 남주는 마찬가지로 귀여운 조연의 여주랑 엮이기도 하는 법이다.

“카론 님이 사루비아 님이 없으셔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아, 그래? 하하….”

“제대하면 꼭 같이 있을 거라고!”

왠지 그녀의 저 말이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이었다. 설마 나를 연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흘리기로 했다.

“으응, 친남매 같은 사이거든. 내가 결혼하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 둘 다 카론을 친동생처럼 여겨서.”

“예? 결혼할 분이 있으십니까?!”

“예? 사루비아 님, 누구입니까?”

그러나 루카와 카론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져서, 나는 오히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카론, 나 아퀼라랑 결혼하려고….”

“아하, 그렇습니까?”

확실히 우리가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던 듯, 카론은 빠르게 수긍했지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루카는 어쩐지 허망한 얼굴이 되었다.

‘…뭐지?’

예상했던 반응과 다른데.

카론과 이 여자애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다.

* * *

임무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소총을 든 채 조심스럽게 산을 올랐다.

창고 기습은 극비리에 이루어지는 작전이어서 우리는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물론 그러기에 우리의 화려한 머리 색이나 남색 제복 등은 눈에 띄는 요소였다. 숨어 있다가 급습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조건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발견한 후 대비할 틈도 없이 공격을 퍼붓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앞에서 걸어가던 중대장이 말했다.

“제군들, 인간을 상대하는 건 마물을 상대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인간을 해쳤다는 것에 실망하지 말고, 나라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잘 기억하도록.”

솔직히 이 중에 실망을 할 사람은 중대장밖에 없는 것 같았지만, 그의 말도 일부분 귀담아들을 만했다.

만일 2황자군이 우리를 공격하려 든다면 우리는 총을 쏴서라도 그들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원치 않게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멀쩡할 수 있을까?’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대사로는 “너, 사람을 쏘는 건 처음이지.”가 있다. 그 정도로 사람을 쏘는 것은 다른 것을 쏘는 것과 감각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숙련된 사격수인 나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제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후임들에게 티 낼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후임들을 향해 속닥였다.

“야, 상대가 공격했을 때 망설이면 우리가 먼저 죽는 거야. 마물이랑 다를 바가 없다. 인간에게 죽느냐, 마물에게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 말에 후임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위험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가뜩이나 얼어 있었던 그들의 몸이 긴장감으로 더 뻣뻣해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임무를 위해서는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는 편도 괜찮을 것 같았으므로, 나는 그들의 긴장을 굳이 풀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가 목표로 했던 창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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