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퀼라에게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진심을 다해 아퀼라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는 동안, 저절로 올라간 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아퀼라에게 편지를 쓸 때나 그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 나는 늘 이런 상태였다.
“왜 저렇게 웃으시는 거지?”
“누가 또 실수했나?”
“몰라, 그냥 무서워….”
후임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지금 나는 기분이 좋았으므로 그들에게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편지 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퀼라에게 보낼 편지 작성을 모두 마친 후, 나는 아퀼라가 보냈던 편지를 뜯어봤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일상이 빼곡하게 보고되어 있었다.
심지어 시간까지 자세히 나와 있는 그의 하루 일과표를 보며, 나는 어쩐지 음침한 무언가가 된 기분이긴 했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그 후 나는 카론의 편지를 뜯었다. 카론은 이제 ‘제39보병여단 제1대대’라는 곳으로 진급해 있었다.
에이프릴이 있던 바로 그 부대인 것이다.
‘뭐, 보나 마나 보고 싶다는 내용이겠지.’
카론은 언제나 내가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도배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
이번에 카론이 보낸 편지는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루비아 님께
사루비아 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새로운 부대로 온 후, 저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사루비아 님은 안 계시고, 이제 저는 낯선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상등병이었던 시절, 달린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장교가 되겠다며 떠났습니다.』
‘…진짜 말뚝 박겠다는 거였구나.’
클레도어 산악대대가 배출한 미친X 목록에 달린도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사루비아 님은 제대 후 저를 기다리겠다고 말해 주셨지 않습니까.
생각해 봤는데, 저에게는 정말 사루비아 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사루비아 님이 계시지 않다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달린과 달리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제대한 뒤에도 그 약속대로, 사루비아 님이 늘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론 올림』
‘왜 이렇게 애가 어른스러워졌지?’
내가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카론의 말투와 많이 달라져서 낯설었다. 아무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카론도 많이 성장한 모양이다.
게다가 카론은 새로운 부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제대 뒤에도 계속 있어 주겠다고 약속할 거긴 하지만, 그거 말고도 카론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했지.’
하긴, 오히려 달린은 이것저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편이었는데, 그동안 카론의 관심사는 오직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카론의 말대로, 제대한 후에 카론에게는 정말 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카론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모르니….
…잠깐만.
“그분들은 밖에 아들도 하나 있었다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소식을 모른다지. 뭐, 전해져 내려오는 부대 괴담 같은 이야기이니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훗.”
프로스트가 분명 그렇게 말했지.
‘물론 밖에 아들을 남기고 사망한 장교 부부가 카론의 부모님만 계신 건 아니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장교 부부를 카론의 부모님으로 의심해 볼 만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이 부대로 온 건 대단한 우연의 일치겠지만, 로판 세계에서는 그런 기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가 프로스트를 찾았다.
“프로스트 님, 프로스트 님!”
“사, 사루비아?”
맹렬히 달려오는 내 기세에 놀란 프로스트가 멈칫했지만, 곧장 양손을 들어 나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여유를 좀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사루비아, 훗.”
“아니,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의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 선 내가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예전에 이 부대에서 돌아가셨다는 중대장 부부가, 정확히 언제 사망하셨는지 아십니까?”
“글쎄,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라고 들었는데….”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벌렸다.
“아, 중대 자료실에 가면 중대장님 부임 기록이 있지. 그걸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들이 카론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해서 뭔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는 달린과 달리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카론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때 그가 모르던 그의 부모님에 대해 알게 된다면 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만을 유일한 가족으로 여기던 카론에게, 본래 가족의 흔적을 찾아 주는 일은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카론을 돕기 위해 다시 달렸다.
* * *
중대 자료실에서 나는 프로스트가 말했던 대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에 부임했던 간부들의 사진이 있는 앨범에는 카론과 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카론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꼭 닮은 모습이었다. 카론의 아버지가 아닌 편이 더 이상했다.
“이 시기면… 카론이 두 살일 때 사망하셨구나.”
사망 연도로부터 내가 추측해 낸 사실이었다.
카론의 어머니에 관한 기록은 옆 중대 자료실에서 확인해 볼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단서가 모인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들의 아들과 아는 사이라면서 사진을 요청한다면, 현 중대장이 나한테 사진 한 장 정도야 건네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님의 유품 같은 건 그들도 인정할 만큼 소중한 것이니까.
그래서 그 일을 실행에 옮기려다가,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사진을 갖다 주면 기뻐할까?’
오히려 그가 가진 슬픔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는 아무런 그리움도 없는 대상인데 내가 괜히 설레발을 치는 거일 수도 있고.
내가 봐 왔던 카론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는 실제로 가족에게 별 감흥이 없던 것 같기는 했다….
‘그래, 일단 카론에게 넌지시 의사를 떠봐야겠다.’
결국 털레털레 자료실을 나와 걸어가다가, 나는 막 중대장실에서 나온 중대장을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낯선 부대의 중대장이었지만, 이전 부대의 중대장과 같다고 생각하면 참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그냥 모든 부대의 중대장들은 자주 실망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 사루비아 양이 여기는 무슨 일이지?”
“잠깐 자료실에 앨범을 보러 왔습니다. 그, 저….”
아, 지금 중대장에게 카론의 부모님에 대해 떠봐야겠다. 과거 중대장 부부가 사망한 사건이 진짜로 이 부대에서 발생했는지.
“제가 이 부대에 대한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 예전에 이곳에서 근무하시던 중대장님과 옆 부대의 중대장님이 부부셨는데 함께 전사하신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고….”
“지금 그 일을 왜 입에 올리는 거지?!”
중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건 어딜 봐도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화내는 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떠벌리는 것에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대장님도 그 일을 기억하시는 겁니까?”
“그런 일상적인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새로운 지휘사관은 아주 입이 가볍군! 실망이다!”
그가 나에게 더 화를 내기 전에 나는 얼른 상황을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중대장님이, 제가 있었던 부대 후임의 부모님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잠깐, 그렇다면… 카이센 님과 라일라 님 말인가?”
“예, 맞습니다!”
카이센은 바로 앨범에 나와 있었던 카론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일화가 유명하긴 한 듯, 중대장은 바로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는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낯빛이 바뀐 채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쳐다봤다.
“자네가 그분의 자식을 알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아마 현 대대장님이 그분들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분들의 자식과 소식이 닿는 데 실패했거든….”
분명 카론에게는 조부모님이 계셨다고 들었는데 왜 소식이 끊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군대식 일 처리가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든 대대장을 직접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
그들의 유품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아까는 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 척한 걸까?
“저도 중대장님처럼 행동해야 하는 겁니까?”
“무슨 뜻이지?”
“아까 중대장님은 그분들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혹시 저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군법이라든가 부대의 불문율을 어겨 버린 건가? 죽은 사람을 모른 척하는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있었나?
그러나 중대장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그냥 첩자인 줄 알았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