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25화 (143/233)

내가 그것을 보고하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도 그 발자국을 발견한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발자국이 보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발자국을 발견한 부대원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국경을 넘어온 마물이 산 아래의 마을을 습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왕창 깨지는 건 그들이 될 테니까.

“모두 발자국을 따라 내려간다! 얼른!”

소대장이 지시를 내리자마자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열에 맞춰 산 아래로 달렸다. 꽁꽁 얼어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 위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빠르게 달렸다.

‘미치겠네.’

이렇게 얼어 있는 산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그들의 속도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나무를 잡으며 간신히 내려가고 있을 때, 내 뒤에서 따라오던 애쉬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좀 적응하실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는 눈을 감고도 넘어지지 않고 내려갈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이전부터 참아오고 있었지만, 역시 그들의 태도는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은 숙소에만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잠을 자며 그들의 태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마물 토벌에서까지 이렇게 굴다니.

그러나 그의 말대로 설산을 타는 내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이를 악물며 그들의 속도를 맞추려 노력했다.

“왼쪽!”

그때, 누군가의 긴박한 목소리에 모두 왼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흰색 털로 온몸이 뒤덮여 있는 거대한 짐승. 두 발로 서 있는 그것의 옆에는 피로 물든 토끼가 쓰러져 있었다. 그것의 입가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1분대! 대열 유지하고 돌격!”

전투를 알리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익숙한 듯 자신의 자리를 찾아 예티에게로 달려들었다. 총을 들고 있기 때문에 후방에 속해 있는 나는 총을 꽉 쥐고 그것을 겨누었다.

2급 마물에 속하는 예티는 꽤 위험한 놈이다. 방심한다면 아직 미숙한 훈련병들은 자칫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이 부대의 병사들이 전투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워낙 사망률이 높은 부대에서 구르다 보니 그들은 정해진 체계를 잘 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충실하게 훈련된 병사였다.

“빈자리 곧장 2분대가 채워!”

…하지만 때로는 변칙적인 전투가 필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다.

1분대에서 아직 미숙해 보이는 병사들이 넘어지며, 곧장 대열이 무너졌다. 넘어진 병사들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상등병 애쉬는 눈을 질끈 감으며 2분대에게 그 자리를 채우라는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엎드려!!”

크게 소리를 지르자 목이 갈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부대로 발령받은 뒤 한 번도 지금처럼 목소리를 높여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옛날의 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말년이니 뭐니를 따질 틈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인내심은 이제 전부 고갈됐기 때문이다.

“다 뒤졌어! XX!”

* * *

“크윽…!”

후임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지만, 대열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루나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해 검을 고쳐 쥐던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힘이 깃들어 있는 높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엎드려!!”

위압감이 깃들어 있는 그 목소리에, 1분대에 있던 후임들이 일제히 무너지듯이 땅으로 엎드렸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면서 선임의 명령은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사고가 반영된 행동이었다.

그들이 엎드린 것과, 허공에 피가 튀며 예티가 물러난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 뒤졌어! XX!”

루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가, 달콤한 산호색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아래로 묶은 여자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총을 들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이 부대에 온 뒤 늘 숙소에 처박혀 잠만 자던 그들의 지휘사관 사루비아였다.

여린 인상답게 도무지 이 추운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빌빌대던 여자는,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탕-! 탕-!

빠르게 날아든 탄환이 예티의 두 눈을 정확하게 맞혔다.

그 돌발행동에 후임들의 어쩔 줄 몰라 하던 찰나, 사루비아가 다시 소리를 높여 버럭 외쳤다.

“뭐 해, 이 XX들아! 아래에서 찌르든가, 아니면 그냥 뒤지든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후임들이 바닥에 엎어진 와중에도 검을 휘두르며 예티를 공격했다. 검격의 반동 덕에 그들은 재빠르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평소 그들의 전투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정신 챙겨, XX!”

그렇게 외치며 반쯤 넋 나간 눈으로 탄환을 쏘는 사루비아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마침내 루나는 깨달았다.

‘저거 미친X이군.’

국경방위군의 많은 병사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새로 온 지휘사관은 미쳐 있는 게 분명했다.

* * *

‘확실히 이 총이 좋네.’

예티를 쓰러뜨린 뒤, 열심히 쏴 댔던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난 생각했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 명중률이 훨씬 정확하니 급소를 공격하기가 좋았고 주변 인물들까지 다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 덕분에 가까이에 후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물의 눈을 노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대열이 무너졌으면 그냥 무조건 공격해야 하는데 후임들이 다시 새로운 대열을 만들려는 꼴이 거슬려 목소리를 좀 높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으니 된 것 같았다.

‘XX, 그냥 원래대로 살아야지.’

하여튼 성격을 죽이겠다는 다짐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었다.

생각을 마치며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이상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후임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뭐야? 할 말 있냐?”

“아, 아닙니다! 하하!”

상등병 노만이 어색하게 대꾸했고, 그 뒤에 서 있던 루나 또한 딱딱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사격 솜씨가 참 뛰어나시다 싶어서….”

저 상등병 녀석들은 그동안 나를 무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로 먼저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하긴 훈련이 끝나고 흥분감이 주체되지 않으면서 갑자기 옆에 있는 전우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 그런 현상을 겪고 있나 보군.

그렇지만 난 너희와 하하 호호 웃을 생각이 없다, 이 XX들아.

“뭐야? 얼마 전에 나 총 쏘는 거 본 거 아니었어? 기억력에 문제 있냐?”

“아닙니다, 하하….”

그러나 내가 대놓고 면박을 줘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흠, 설산 부대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전부 뛰어난 엘리트들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좀 띨빵한 놈들도 많은 것 같다.

* * *

“다들 오늘 봤지?”

마물 토벌에서 사루비아가 예티를 해치웠던 그 날, 알파 소대의 세 명의 상등병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강하던데? 뭐, 이때까지 살아남을 만했어.”

사루비아의 실력에 대한 루나의 평가였다.

“예, 저 총은 거의 처음 다뤄 보신다고 하셨는데, 적응도 빠르고 전투 센스가 있으십니다.”

이건 사루비아의 사격 솜씨에 대해 노만이 한 말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심각한 얼굴의 애쉬가 말을 꺼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다.”

“…아, 맞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저분은 XX 미치신 게 틀림없다.”

“하긴, 여기서 미치신 분이 한둘입니까?”

“몸을 사릴 필요가 있어.”

사루비아의 성격에 대해 결론을 내린 그들은, 이제 앞으로 사루비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겠어?”

“어떻게 해야 잘 보일 수 있는 건데?”

가장 먼저 의견을 낸 건 노만이었다.

“저는 후임들이 사루비아 님 앞에서 공손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특히 추울 때 성격이 더 예민하신 것 같은데, 후임들이 사루비아 님께 깍듯해지도록 제가 후임 관리를 잘하겠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루나가 덧붙였다.

“그럼 난 제대 이후의 이야기나 수다를 떨며 친해져 보도록 할게. 아무래도 같은 성별이니까 유리할지도 몰라.”

마지막으로는 애쉬가 방법을 제시했다.

“나는 중대장님의 신문을 관리해 드리는 일을 하니까, 사루비아 님께 세상 소식을 은근히 전해 드리면서 말을 붙여 보도록 할게.”

사루비아와 친해지기 위한 세 상등병들의 노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사루비아 님께♡♡♡

안녕하십니까, 사루비아 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

사루비아 님이 떠나신 대로 요즘 부대는 정말 평화롭습니다:D 지휘사관들은 얼굴이 밝아졌고, 후임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습니다!!XD

하지만 저는 너무 슬픕니다TT 사루비아 님이 떠나신 뒤로 좀 우울한 것도? 같습니다TTT

저뿐만 아니라 아퀼라 님이랑 카론 님, 베니 님도 우울해 하십니다…. 그리고 비올렛 님?이라는 분도 충성할 분?을 잃었다며 더욱 열심히 승부를 걸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루비아 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T^T

저도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저한테 명령을 내리시던 분이 사라지니까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사루비아 님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루비아 님이 제일 아끼시는 후임 달린 올림♡♡♡』

『사루비아 님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사루비아 님. 저 베니입니다. 이곳의 날씨는 슬슬 따뜻해지고 있는데, 설산 대대에 계신 사루비아 님이 걱정됩니다.

사실 아퀼라 님이 열심히 편지를 보내시며 두 분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 같아서, 제가 편지를 함께 보내는 건 자제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유일한 게 더 애틋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제가 전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편지를 드립니다.

사루비아 님은 아퀼라 님이나 카론 님을 걱정하셨겠지만, 제 생각에 지금 걱정이 필요한 건 달린입니다.

물론 달린은 지금도 늘 “엥? 아직도 그 일 안 끝냈어?”와 같은 말을 하며 후임들을 지도하고 있고, 신병 티아는 평소처럼 이를 갈며 뒤에서 달린을 노려보고는 합니다만…. 겉보기에는 변한 게 없어 보여도, 사실 달린이 속으로는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이전보다 발전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잘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루비아 님이 저에게 그러했듯 저도 후임을 돕고 싶지만, 아무래도 달린을 도울 수 있는 건 사루비아 님이라 생각되어 편지 드립니다. 물론 달린이 얄밉고 귀찮으실 수 있지만 조언 한 마디를 건네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퀼라 님은 여전히 사루비아 님 생각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잘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변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왕이면 제가 제대한 이후로 미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아버지께 편지를 드려서 부대 내에 피아노를 반입하고 그걸로 열심히 연습이라도 할 테니, 제발….

베니 올림』

『달린에게

달린, 잘 지내냐? 베니도 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역시 천재는 어려워.

하지만 네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있지.

너, 아무래도 네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앞으로 할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낸 일을 떠올려봐.

너는 지금까지 해낸 일이 아주 많잖아. 너는 능력 있는 국경방위군이었어.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다음에 편지를 보낼 때는 내 이름 옆에 붙은 하트 좀 줄여라.』

『사루비아 님께♡♡

사루비아 님,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좀 잡히는 것 같은데, 사루비아 님은 제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0?

달린 올림♡♡』

『어, 뭔진 모르겠지만 넌 잘 해낼 수 있을걸. 내가 지금까지 된다고 말해서 안 되는 거 봤냐?

+)하트 줄이라고.』

『사루비아 님께♡

사루비아 님, 저 말뚝 박겠습니다;)

달린 올림♡』

“…뭐라고?”

아니, 물론 옛날에 달린이 말뚝을 박기로 결심했다고 나한테 그런 적은 있는데, 실제로 말뚝을 박을 줄은 몰랐다….

“에이, 그냥 결심만 한 거겠지?”

그러나 그 이후로 달린에게 편지가 오는 일은 없었다….

‘내가 미친X을 키웠구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