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총기 훈련장에 오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었다. 식당에 갈 때마다 병사들이 어떤 방향에서 몰려오는지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훈련장에 나타나니 그곳에 있던 몇몇 병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하긴, 내가 이곳에 온 뒤에는 늘 잠만 잤으니까.
총기 훈련장에 있는 병사들은 세 명에 불과했다. 노만이라는 상등병과 다른 두 명의 후임들이었다.
“노만, 연습 좀 하려고 하는데.”
“아…. 꺼내다 드리겠습니다!”
노만은 내가 말을 걸자 놀란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서 있더니 얼른 창고에서 총기 하나를 들고 왔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 몸동작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느릿느릿하더니.’
상등병들은 내가 명령을 하면 그 지시를 따르기는 했지만, 늘 다른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오겠다고 하며 지시 이행을 좀 미루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오늘의 노만은 내게 꽤 깍듯해 보였다.
“…뭐야?”
나는 내 손에 들린 총기를 유심히 뜯어봤다. 18중대에서 내가 쓰던 것과는 다른 총이었다.
“라이플?”
유격 훈련을 갔을 때 그 훈련장에서 구경했던, 새로 보급되기 시작한 총이었다.
아직 우리 부대까진 오지 않았으나, 위험 요소가 더 많은 설산 대대에서는 이 총을 벌써 쓰는 모양이다.
손에 맞지 않는 총이 불편하긴 했지만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었다. 유격 훈련장에서 그 총을 쏘는 법을 대강 들었으니까.
“흠.”
이전에 쓰는 것보다 더 무게가 나가기는 하지만, 목표물을 더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에 더 많은 탄환을 장전할 수 있기도 했고.
나는 장전을 마친 후, 보폭을 넓히고 총을 견착했다. 곧 방아쇠가 당겨짐과 동시에….
탕-!
“XX, 오러 두르는 거 깜빡했네.”
귀가 얼얼했기 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라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한동안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탄환이 과녁 가운데에 정확히 명중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이게 낫네.”
이전에 쓰던 건 탄환이 흩어지는 형태라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정확한 명중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건 명중하는 느낌이 있으니 사격 후 기분이 더 좋았다. 다른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쏘기에도 좋을 것 같고.
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총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 아까부터 옆에서 이쪽을 티 나게 쳐다보던 노만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 사루비아 님….”
“왜?”
“그, 혹시 저희가 여쭤볼 게 있는데 말입니다.”
“뭔데?”
나는 총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 어쩐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다.
노만은 갑자기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고, 그의 뒤에 있는 두 후임들은 왠지 애처로운 얼굴이었다.
“원래 주특기가 총기셨습니까?”
“어, 그런데?”
그 말에, 노만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간절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어떻게 쏘는 건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아무리 총기가 새로 보급되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쏘는지 대략적인 교육은 받았을 텐데, 그걸 모른다고?
나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느냐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헤헤 웃으며 지금까지와 달리 갑자기 순종적으로 돌변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들은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원래 이 부대의 상등병과 일등병 중에는 총을 쏘는 사람이 셋 있었는데, 얼마 전 마물 토벌 때 1급 마물의 습격을 받는 바람에 모두 죽어 버렸다고 했다.
사격수가 있던 곳을 덮친지라, 사격수들이 죽은 건 베타 소대와 감마 소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남아 있는 사격수라고는 후방에 있었던 훈련병들 한두 명밖에 없어서, 지금 그들은 부대 안에서의 사격수를 모두 잃은 상황이라고.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노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야, 지금 장난해?”
비록 그들의 주특기가 검이라 할지라도, 사격의 기초는 대략적으로라도 익혀 놓아야 했다. 윈터만 해도 사격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등병 때 내게 사격을 알려 주지 않았는가.
하다못해 이런 최신 총을 보급받았으면서도 그것을 못 쓰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거 완전 업무 태만이잖아. 너는 후임들 죽이려고 작정했냐?”
여기서는 좀 얌전히 살려고 했더니만, 그들의 행보가 어이없어서 저절로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부, 부탁드립니다….”
‘내가 필요해지니까 부탁을 해?’
그동안은 무시하더니,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건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이젠 나도 너희가 필요 없다고, 이 XX들아.
당장이라도 총으로 그들을 한 대씩 쳐 준 후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안 가르쳐 주면 얘들도 죽겠지…?’
그리고 부대에 사격수가 적은 건 나한테도 피해가 오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이 너무 간절해 보였기에….
“에휴, XX.”
내 업무를 다하기 위해, 여기서는 내가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팔을 더 위로 띄우란 말이야. 개머리판은 어깨에 붙이고!”
“아하! 감사합니다, 사루비아 님!”
“감사고 나발이고 연습이나 하라고, 이 XX들아! 그리고 훈련 끝나면 다시 말 걸지 마, 짜증 나니깐!”
나는 오랜만에 18중대의 사루비아 버전이 되어 그들에게 사격 강습을 했고, 이 부대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 * *
“그래? 사격하는 법을 알려 줬다고?”
“네, 그랬습니다! 명중률이 엄청 높던데 말입니다?”
노만이 호들갑을 떨며 하는 말에, 루나와 애쉬는 미심쩍다는 얼굴을 했다.
“주특기가 총이었으면서 그동안은 왜 검을 든 거야?”
“글쎄, 뭔 생각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들은 이제 낮 동안 훈련병들이 존경심 어린 눈으로 사루비아를 쳐다보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루비아는 그들의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거니까.
“뭐…. 그렇게 약해 보였으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면 능력은 좋은 거겠지.”
루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사루비아를 무시한 건 산악 대대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지, 그것과 별개로 지휘사관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병사는 객관적으로 뛰어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다.
“능력 좋고 성격 나쁘고. 뭐, 뻔하지.”
그들이 줄여 부르기를 ‘능좋성나’는, 이 설산 대대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를 악물다 보니 다들 능력과 성격이 반비례하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사루비아 님께 잘해 드려야 하는 겁니까?”
노만이 루나와 애쉬에게 물었다. 이제 사루비아에게 능력이 있는 점이 밝혀졌으니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나와 애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뭐, 자기도 조용히 있다 가고 싶댔잖아?”
“능력이 있는 거랑 별개로 우리가 굳이 설설 기어야 할 필요는 없지.”
“음…. 넷슴다.”
맞선임들의 말에 노만은 떨떠름하게 답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래도 앞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같은데, 이렇게 텃세를 부려도 되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대 범상하진 않은 성격 같던데.’
어쩌면 조만간 사루비아가 그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 * *
『사루비아 님께
안녕하십니까, 사루비아 님!!!! 아퀼라 님이 제 편지까지 함께 보내 주신다고 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루비아 님이 보고 싶어서 탈영을 고민했지만, 아퀼라 님이 그건 아니라며 저를 뜯어말렸습니다. 탈영이 안 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사루비아 님께서 원하시면 탈영은 해 볼 거니까, 탈영을 원하신다면 저한테 답장 주시길 바랍니다!
사루비아 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퀼라에게
아퀼라, 아주 잘하고 있어. 제발 카론이 탈영 얘기를 꺼내면 지금처럼 뜯어말려 줘. 아무래도 애가 좀 미친 것 같아서 걱정된다.
그리고 카론한테 내가 보고 싶은 건 잘 알겠으니까, 편지지 세 장 분량을 보고 싶다는 말로 도배하는 것도 그만두라고 전해 줘.
아퀼라 너는 잘 지내고 있어? 다른 후임들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걔들은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요즘 네가 보고 싶어. 정말정말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아니, 이러면 내가 카론이랑 다를 바가 없구나.
여긴 너무 추워. 지옥이야. 탈영하고 싶어!!! 아, 이것도 카론이랑 똑같네….』
『사루비아에게
카론은 걱정할 필요 없어, 사루비아. 내가 잘 챙기고 있으니까.
다른 후임들도 그대로야. 산체스는 여전히 강하고, 패티와 매티는 여전히 사고를 치고, 제이슨은 여전히 힘들어해. 달린은 요즘 성격이 좀 변한 것도 같고. 베니는 여전히 좋은 후임이야.
다만 나는 그곳이 춥다는 걸 읽고 네 걱정을 많이 했어. 넌 추울수록 예민해지니까.
나는 네가 예민해져도 괜찮아, 사루비아. 다른 후임들의 의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만 마물 토벌을 나갔을 때 예민해져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 난 네가 다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해. 다른 후임들은 중요하지 않고.』
『아퀼라에게
고마워, 요즘 네가 미리 준 편지를 잘 읽고 있어.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예민해지는 거랑 자꾸 다른 후임들이 반복돼서 언급되는 건 무슨 이유야?
내가 예민해지면 다른 후임들이 괴로워진다는 뜻이야? 내가 별로 그런 타입은 아니지 않나?』
『당연히 아니지. 네가 예민해질 때 다른 후임들이 다 오바하는 거야. 너는 무섭거나 나쁜 선임은 아니잖아.』
* * *
제대 D-702일.
오늘은 한 달마다 있는 정기 마물 토벌의 날이었다.
이전 부대에서의 마물 토벌도 늘 귀찮고 힘든 일이었지만, 여긴 설산 대대인 만큼 이곳에서의 토벌은 더더욱 귀찮을 게 틀림없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서 몸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옷을 벗었다가는 동사할 거고.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았다.
“아오, XX….”
이 추운 바깥에서 전투까지 할 생각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나는 투덜투덜 욕을 하며 길을 걸었다.
한 달 동안 이 혹한 속에서 살았더니 내가 느끼기에도 내 신경은 점점 예민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잘 때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하마터면 자리를 뛰쳐나가 소리를 낸 근원의 멱살을 움켜쥘 뻔했지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그들의 목숨만은 살려 둘 수 있었지.
하여간, 내가 원래 있던 곳과 지형이 많이 다른 만큼 이곳에는 그곳과 상당히 다른 종류의 마물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 추운 기후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마물들이었다.
얼마 전 이 산에서 예티의 목격담이 들어왔다고 했기에 이번 토벌 때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예티는 새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고릴라처럼 생긴 마물인데, 물론 그것은 고릴라에는 비할 수도 없는 흉폭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에 잡힌 것을 모두 갈가리 찢어버린다는 특징이 있었다.
병사들이 모두 열띤 눈으로 예티를 수색하는 가운데, 나는 혼자 뚱한 표정으로 몸을 움츠린 채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 추위 때문에 도저히 몸을 곧게 펼 수가 없었다.
바스락-.
발에 걸린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에서 발을 빼내기 위해 땅을 보았다가, 나는 우리가 찾고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
“예티의 발자국.”
내 발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고릴라의 발자국처럼 생긴 것.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아래쪽 산으로 이어지는 예티의 발자국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