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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21화 (139/233)

감이 잡힐 것도 같고 여전히 헷갈리는 것도 같았지만, 나는 우선 오늘 읽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책장을 덮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책은 다 읽은 것 같았다. 곧 경계 근무 시간이라 슬슬 가 봐야 할 때였다.

‘아퀼라는 요즘 근무를 쉬니까.’

그는 유격 훈련 때 보상으로 경계 근무 휴가를 얻었기에 최근 경계 근무를 서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볼 일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아쉬운 일이었다. 자유 시간에는 내가 대대 본부로 자주 오고, 경계 근무도 함께 서지 않으니까.

우리 진급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 전에 얼굴이라도 오래 봐 둬야 할 텐데. 카론도 나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내일부터는 대대장실에 오는 대신 자유 시간에 아퀼라와 대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제대 D-747일.

“아퀼라, 오랜만이네!”

그의 휴가가 끝나서 오늘은 아퀼라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서게 되었다!

그를 본 게 너무나도 반가워 나는 한 손에 총을 든 채 다른 손으로는 그의 팔을 붙들고 물었다.

“잘 쉬었어, 응?”

그렇지만 가까이서 본 아퀼라의 얼굴은 잘 쉰 사람의 것 같지가 않았다. 눈 밑에 드리워진 옅은 다크서클이나 묘하게 피곤해 보이는 눈빛. 오히려 휴가를 받기 전보다 더 피로가 쌓인 얼굴이었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패티랑 매티가 또 사고를 쳤나? 아니면 달린이 사고를 쳤나? 그것도 아니면 혹시 로산이 앙심을 품고 아퀼라를 건드렸나?

아퀼라를 그렇게 만든 원인을 당장이라도 제거하겠다는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으나, 아퀼라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담담했다.

“사루비아.”

“응.”

“난 너한테 약속한 건 꼭 지켜.”

“뭐?”

이 맥락 속에서 갑자기 그가 저런 말을 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퀼라가 한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경계 근무 후였다.

근무가 끝나고, 나를 숙소로 돌려보내는 대신 아퀼라는 남자 숙소 복도 앞에서 잠시만 기다리라며 나를 세워 놓고 안으로 사라졌다.

뭐 보여 줄 것이라도 있나 싶어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릴 때, 아퀼라는 손에 거대한 바구니를 안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본 내 입이 쩍 벌어졌다.

“…야. 야, 너….”

나는 이 부대에서 누구보다 아퀼라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 바구니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봤을 때, 나는 아퀼라가 어떤 의도로 그것들을 준비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너 진짜….”

나는 내 뺨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입대한 뒤 눈물을 터뜨린 건 지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알타이르를 구한 후 힘들어서. 두 번째는 이시나와 화해한 후 안심이 되어서.

그리고 세 번째, 바로 지금. 기뻐서.

기뻐서 울음을 터뜨리는 건 정말이지 내 인생 최초였다.

왜냐하면, 그가 들고 있는 바구니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무수한 편지 봉투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래서 근무 휴가를 썼던 거야?”

“네가 답하지 못하더라도, 난 매일 너에게 말을 걸 테니까.”

얼마 전, 내가 진급하기 무섭다고 할 때 나를 달래며 아퀼라가 해 준 말.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그와 헤어져 있는 2년 동안 읽을 수 있는 편지들을 쓴 것이다.

“이게 대체 며칠 치야…?”

“매일.”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2년간 매일, 너한테 말을 걸게.”

그는 유격 훈련을 통해 대대장으로부터 받은 소원권을 통해 경계 근무 휴가를 썼고, 조금이라도 늘어난 자유 시간 동안 편지를 썼다.

총 730장의 편지를.

“너 잠은 잤어…?”

그렇지만 이곳에서 얼마 없는 자유 시간 동안 저 편지를 전부 쓰는 게 가능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편지를 써야 했을 것이다.

아퀼라가 피로해 보였던 이유는 바로 거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아예 안 잔 건 아니야.”

“너 진짜….”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부터 그 바구니를 받아들었다가, 내 눈물이 편지 봉투 위에 떨어지는 것 같아 얼른 그것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신, 비어 있는 두 손으로 아퀼라를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

“이건 중간에 사정이 있어서 편지가 끊길 때를 대비한 거니까. 매일 편지를 써서, 일주일마다 몰아서 보낼게.”

“그럼 나도 그렇게 할래….”

나도 매일 그에게 편지를 한 장씩 쓸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편지를 보내는 날이 되면 그 일곱 장을 한 번에 보내야지. 아퀼라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하루에 한 장씩 읽어 봐야지.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그럼 우리는 함께 있는 게 될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너 이대로 끝내면 안 돼. 난 제대하고도 너를 찾아갈 거야.”

그를 안은 채 칭얼거리듯이 그렇게 말했더니, 그가 부드럽게 등을 쓸어 주며 답했다.

“내가 찾아갈게. 그러니까 엇갈리면 안 돼.”

“응….”

이제 눈물을 그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눈물을 꾹 삼키며 그만큼의 힘으로 그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진급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 * *

제대 D-731일.

시간이 흘러, 마침내 내일은 내가 진급하는 날이었다.

나는 미리 짐을 싸 두고 있었는데, 올 때 완전히 빈털터리로 왔기에 사실 갈 때 챙길 것도 별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내가 마물과 아르콘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필기해 두었던 종이들 정도?

“아, 이게 있었지.”

관물대를 뒤지다가 봉투 하나를 발견한 내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윈터의 집 주소와 함께 그가 주었던 금빛 열쇠가 들어있었다.

이시나는 나에게서 압수했던 그 열쇠를 본인이 떠날 때 돌려주고 갔는데, 괜히 관심 갖지 말라며 나에게 몇 번이고 엄포를 놓았었다. 여전히 이 열쇠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흠….”

그렇지만 일단 윈터가 나에게 준 내 개인 물품이긴 하니, 나는 그것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가장 중요한 편지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편지들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히 아퀼라는 자신의 소원권을 사용하여 이 편지지를 얻어낼 때 이것을 담을 만한 가방도 얻어내었고, 나는 추가적인 가방 하나에 편지들을 담아야만 했다.

올 때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는데, 갈 때는 가방 두 개를 빵빵하게 채워서 가다니. 이것만으로도 이 부대에서 얻은 게 충분히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짐을 모두 챙기고 난 뒤, 나는 가방 두 개를 한구석에 밀어 놓은 뒤 숙소에 누워 부대원들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우아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베니, 바닥을 열심히 문질러 닦고 있는 지나, 그리고 티아와 뭐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달린…. 뭔가 티아에게 꼽 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나는 내일 떠나는 사람이니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자….

어쨌든, 이렇게 그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지나와 티아는 내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후임인데도 불구하고, 내일이 이 부대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에 대한 유대감마저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지나, 티아.”

“예?”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지나는 황급히 걸레를 내팽개친 뒤 내 앞으로 달려왔으며, 티아도 쏜살같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별일 아니었기에 왠지 민망해진 내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흠흠,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잘 지내라고.”

“예! 알겠습니다!”

“사루비아 님…? 저한테는 왜 그런 말씀 안 해 주십니까…?”

그들의 뒤에서 달린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기에,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야, 내가 얘네는 별로 대화해 본 적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그럼 저는….”

“아, 너도 잘 지내 버리든가!”

“헤헷.”

…예전 같았으면 빠져 가지고 선임 앞에서 이빨을 보이냐고 으르렁댔겠지만, 일단 놔두도록 하자….

나는 고개를 돌려, 별로 대화해 본 적 없는 두 후임들에게 생존을 위한 조언을 시작했다.

“티아, 지나.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

그 뒤로도 내 조언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 * *

잠시 후 사루비아가 나간 방, 티아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휴, 저 미친X.’

사루비아가 드디어 이 부대를 떠나 진급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 탱고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어쩐지 입대하고 욕이 느는 기분인데.’

그렇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부대에 악명이 자자한 미친X인 사루비아는 둘째치고, 그녀의 충실한 심복인 달린 또한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다. 티아는 이제 “엥?”이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나는 절대 저런 고참이 되지 않겠어….’

티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사루비아가 나간 자리를 쳐다보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창문을 닦고 있는 달린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자신은 반드시 저 두 인간들처럼 미친X이 되지 않고! 후임들에게 천사 같은 선임이 될 것이다! 후임들에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신경 써 주고, 훈련에서 뒤처지는 후임들을 잘 챙겨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티아는 예쁘게 미소 지었다.

4년 뒤, 자신이 “어휴, 그 미친 천사중독병 또 시작이다.”, “왜, 또 뭐가 불편하냐고 물어봐?” “어, 지금 후임 하나 붙잡고 불편한 점 세 가지를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어.”, “왜 본인이 가장 불편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라는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순진한 미소였다.

* * *

제대 D-730일.

진급의 날이 밝았다.

평소라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숙면하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잘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어떤 부대로 갈지 나오는 날이었으니까.

‘이시나 님이랑 같은 부대라면 좋을 텐데.’

운 좋게 아는 사람이 있는 부대에 걸린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성 파탄 85기는 제외하도록 하자.

어쨌든,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아퀼라와 나는 중대장실로 불려갔다. 그곳에는 베타 소대의 동기 블루와 감마 소대의 동기 데미안이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편지하자.”

“그래.”

중대장이 올 때까지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훈훈한 동기애를 다졌다.

벌컥-!

“그래, 다들 와 있었군.”

“안녕하십니까.”

잠시 후 중대장이 들어오고, 우리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네 장의 종이로 향했다. 그 안에 우리의 운명이 적혀 있을 것이었다.

‘아퀼라는 이미 확정이고.’

원작에서 아퀼라는 이 부대에 잔류했다. 그러니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부대로 발령받느냐의 문제이다.

“사루비아 양, 받도록.”

“예!”

나는 중대장에게서 내 발령 부대가 적힌 종이를 펼쳐보았고.

천천히 그 종이를 열어 보았다가….

『설산 대대 288중대 알파 소대』

‘XX.’

설산 대대? 지금 장난하냐?

나는 국경방위군 중에서도 가장 빡세고 X같기로 유명한 부대에 걸리고 말았다. 정말 환장할 일이었다,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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