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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11화 (129/233)

* * *

베니가 숙소를 뛰쳐나가고서 몇 분이 지난 뒤.

그녀는 다시 상쾌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베니는 여전히 침상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경쾌하게 외쳤다.

“사루비아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해결될 겁니다!”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잘됐다. 고마워.”

내가 인자한 목소리로 베니에게 감사를 표했더니, 갑자기 나를 보는 베니의 눈이 미묘해졌다.

“…저, 혹시.”

앗, 내 연기가 너무 형편없었나?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성의 없게 반응하기는 했다. 베니의 계획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안심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 않은가.

역시 나의 태도가 문제였는지 베니는 수상한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혹시 사루비아 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뭘?”

“제 아버지가 사단장이시라는 걸….”

모른 척 시치미를 떼 보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모른 척하는 것도 이미 글러 먹은 것 같다.

“히익!”

“으악!”

왜냐하면 이미 달린과 지나는 놀라 자빠지고 있었으니까.

저들처럼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내가 이미 베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법이다.

“음…. 정확히 투스타인 건 몰랐지만, 어쨌든 높은 분이시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을 했다고나 할까….”

원작을 통해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 거짓말을 해야 한다.

“아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가끔씩 아버지 타령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베니 너는 너무 귀티가 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감?”

“예, 예….”

베니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엉덩이를 움직여 나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베니,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째 태도가 심상찮은데. 설마 내가 지금까지 잘해 준 이유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를 꺼리게 되는 건 아니겠지?

* * *

예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루비아의 앞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에 베니는 양팔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사단장이신 걸 알고 있었다고?’

아니,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베니의 연기는 완벽하지 않았다. 군대 용어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는다든가, 가족과 사이가 좋다고 했으면서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피했다든가….

만일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베니의 가족에 관한 진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루비아는….

‘그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날 갈군 거야?!’

달린이 헛짓거리를 할 때마다 연대 책임으로 갈구기, 숙소 청소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검사하기, 자신이 잠잘 때 실수로 깨우면 성질내기 등, 그녀의 갈굼은 혹독했다.

다른 선임이라면 베니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괜히 베니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사루비아는 그걸 알면서도 베니를 다른 후임들이랑 함께 공평하게 갈군 것이다.

‘역시 많이 돌아 있으셨군.’

베니는 오늘도 사루비아에게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와, 정말 후임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미친 태도를 보여 주는구나!

* * *

베니의 충격 발언으로 인해 부대는 크게 뒤집어졌다.

지금까지 6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지낸 부대원이 알고 보니 투스타의 딸이라는 건 드라마에 나오는 출생의 비밀 같은 것보다도 훨씬 강한 파급력을 자랑한다.

심지어 베니의 아버지는 곧 중장 진급을 앞두고 있다고 하셨다. 쓰리스타가 될 예정인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간부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베니에게 실수한 게 없나 되짚어 보는 눈치였고, 괜히 우리 소대에 얼쩡거리며 베니에게 뭔가 필요한 게 없는지 묻고는 했다.

특히 베니가 아버지께 보낸다는 그 편지가 뭔지 다들 진심으로 궁금해했는데, 사실 베니는 간단한 안부 인사만 써서 보냈다고 내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정말 부럽다….’

나도 저런 가족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흠.

예전의 나였다면 이 빙의를 원망했겠지만, 솔직히 빙의한 지 6년이 되어가니 이제 무덤덤해지는 기분이다.

어쨌든 베니 사건의 결과로, 간부들은 내 흑마술 아티팩트 사건 따위는 완벽하게 잊게 되었다.

“중대장님, 혹시 저번에 말씀하셨던….”

“뭐, 그거? 우리 베니 양은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더군!”

베니가 졸지에 부대 내의 제1권력자, ‘우리 베니 양’이 되면서 권력을 잡겠다는 지휘사관들의 꿈은 완전히 무너졌고 내 영창 건도 완전히 무산되었다.

그러나 나는 로산을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로산은 에이프릴을 무서워한다는 거지.’

나한테 이러는 걸 보면 부대에 있었을 때는 에이프릴에게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뒤늦게 분하고 억울해지니까 나한테 화풀이를 했겠지.

그리고 로산만큼이나 나도 에이프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야! 훈련에서 낙오한 놈들은 산에서 산딸기나 따와!”

“호호, 네 위로 내 아래로 집합.”

“제초 이따위로 한 놈은 빨리 바위를 굴려서 저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란 말이야!”

나는 후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갈구는 방식을, 정확히 에이프릴이 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바꿨다.

“사, 사루비아?”

“호호, 로산 님! 로산 님이 원하시는 대로 후임들의 기강을 잘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산의 앞에서는 에이프릴과 비슷한 말투를 쓰기로 했다.

“호호, 얘들아…. 어머, 로산 님?”

“에, 에이프….”

“저한테 말씀하실 게 있습니까? 어디 한번 해 보시지 말입니다.”

“으아악!”

이제 로산은 나를 보면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음, 블루가 알려 준 정보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에이프릴이라면 ‘버릇없는 후임’에게 반드시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얘들아! 청소 상태가 엉망이니, 자갈밭에서 쇠구슬을 찾도록 한다!”

“으악!”

내 명령에 비명을 내지른 것은 내 후임들이 아니라 바로 로산이었다. 로산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에, 에이프릴 님, 죄송합니다…! 제발 상등병들을 굴리는 것만은 그만해 주십시오! 제, 제발 상등병들을 자갈밭에서 굴리는 것만은…!”

‘…자갈밭에서 사람을 굴렸어?’

역시… 에이프릴은 그곳에서도 여전했나 보다….

뭐, 어쨌든 이걸로 나는 완전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내가 네 약점을 알고 있을 때부터 너는 나에게 진 거다….’

그렇게 로산과의 일은 완벽하게 해결되었고, 나는 굉장히 뿌듯해졌다!

* * *

“봐 봐, 내가 다 해결했다니까!”

“그래, 사루비아.”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신나서 이야기를 늘어놓자 아퀼라는 적절하게 반응해 주었고, 카론은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더 뿌듯해졌다.

‘물론 대부분 베니가 해결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이날을 위해 미리 베니와 관계를 쌓아 놨다는 데에서, 내 선구안을 칭찬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때 마침 이시나의 모습이 보였기에, 나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시나 님!”

“사루비아?”

내가 신나서 보폭을 크게 하여 폴짝거리며 뛰어가자, 이시나가 몸을 움찔했다.

“왜, 왜 이렇게 신났어?”

“그냥, 영창 갈 위기를 넘겼으니까 당연히 신나지 않았겠습니까?”

“너는 그냥 로산 님을 묻어 버리는 데 성공해서 신난 거겠지….”

내가 이전에 이시나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다고 그의 면전에 말한 이후로, 그는 가끔씩 내 앞에서 저렇게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고는 했다. 그의 흑막 속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걸 구경하는 일은 참 즐겁다.

“물론 제가 아직 이시나 님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보았습니다!”

“뭘 못 미쳐…. 그거 아니라니까.”

이시나가 아련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네가 안 다쳤으면 그걸로 됐지.”

결국 이시나가 흑막 짓을 해서 로산을 해결하는 것보다 내 해결 방법이 더 빨랐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이시나는 분명 흑막의 대사인 “거슬리군.”을 했는데 왜 아무 짓도 안 한 거야?’

내 눈빛에 다시 미심쩍은 기운이 담기자마자 이시나는 두 번째로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사루비아, 저기서 자이든이 베니한테 뭐라 하는 것 같던데?”

“아, 그렇습니까? 얼른 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자이든과 베니의 관계도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베니가 자신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정말 그야말로 모든 일이 해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베니, 너 요즘 나에게 태도가 고깝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들이 자꾸 내 앞에서 압존법도 실수하는데 그걸 가만히 둬?”

“아, 예…. 휴우, 압존법이라고 하니 갑자기 저희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압존법을 가르쳐 주셨지 말입니다. 아버지가 저희 소대에 면회를 오시면 참 좋을 텐데….”

“아, 안 돼!”

“거기, 이봐! 혹시 우리 베니 양을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

중대장까지 달려와서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며,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효과적인 협박이군….’

아마 이시나, 그리고 나와 아퀼라가 떠난 이후에도 이 부대의 평화는 잘 지켜질 것 같다. 왜냐하면 현 상등병 내에서의 권력은 앞으로 베니가 잡게 될 것 같았으니까.

* * *

“모두 잘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야.”

이시나가 자신의 앞에 있는 아퀼라와 카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루비아가 다시 밝은 얼굴을 되찾고 부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걸 보니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하다못해 패티와 매티가 사고를 쳐도 한 번쯤 웃으면서 가볍게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베니에게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카론이 진심으로 감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퀼라가 무심한 어조로 카론에게 말했다.

“너도 수고했어. 마커벨리 꽃을 따오느라.”

“그건 전혀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카론이 정말 별일 아니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동안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관물대를 열면 매번 마약으로 쓰이는 마커벨리 가루가 있어서 기겁해야 했던 로산이 보게 된다면 황당해할 태도였다.

로산은 중대장에게 관물대 수색을 건의하려 했었으나, 자꾸 누군가가 자신의 사물함에 마약을 넣어 놓는 탓에 그러지 못했다. 관물대 수색을 진행한다면 가장 큰 문제를 겪는 건 자기 자신이었을 테니까.

남자 숙소에 사루비아가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로산은 자신과 싸웠던 이시나나 아퀼라를 의심하여 그들을 쫓아다녔지만 그는 결국 아무런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관물대에 마커벨리 가루를 넣어 둔 건 그들이 아니라 카론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퀼라 너도 참 대단했지?”

이시나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아퀼라를 치하했다.

“덕분에 사루비아가 뭔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며칠 동안 로산 님은 사루비아한테 접근도 못 했잖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사루비아에게 접근하도록 내버려 둡니까.”

사루비아가 징계 결과가 내려질 때까지 숙소에서 대기하던 동안 로산이 사루비아를 불러내지 못했던 건 모두 아퀼라가 노력한 결과였다.

그 며칠 동안 그는 자신의 한 몸을 바쳐 가며 로산을 붙잡았다. 로산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신발을 숨기고, 외투를 숨기고…. 사소한 방해 공작으로 안 될 것 같다 싶을 때에는 그냥 대놓고 무례를 저지르고 갈굼을 당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시나 님의 공이 제일 크지 않았습니까.”

아퀼라의 말에 이시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꼬리만 빙그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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