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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04화 (122/233)

그들의 옆에 있던 베니와 산체스도 자신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다.

“봐, 산체스.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착취하는 자들은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해. 그게 바로 정의야.”

“예. 오늘도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국가에서는 그냥 감옥에 가두는 정도로 끝날 텐데, 저 정도로는 약한 감이 있긴 하지.”

베니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사루비아 앞에서는 잘 내지 않는 낮은 목소리였다.

“아퀼라 님. 그런 놈들은 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베니의 말에, 아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론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때, 카론. 직접 해 볼래?”

그 말에 카론은 쭈뼛거리면서도 흑마술사에게로 다가왔다.

잠시 후, 흑마술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아퀼라는 이제 흑마술사에 대한 카론의 트라우마가 전부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사루비아가 챙기라고 했으니까.’

사루비아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퀼라는 전부 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 결과 아퀼라는 5년째 카론을 챙기고 있었지만….

‘사루비아가 원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 * *

윈터의 집을 향해 이동하는 동안, 나는 윈터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신나지도 않나?’

따지고 보면 윈터에게는 휴가를 나와서 집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다른 아르콘들은 꿈도 꿔 보지 못할 상황.

그러나 당연히 설레야 할 이 상황에도 윈터는 자신의 집에 가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

‘나라면 내 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한 순간부터 가족이 보고 싶을 텐데.’

물론 나는 보고 싶을 가족도 없지만, 하하!

…생각해 보니 안 웃겼다, XX.

내가 다시 속으로 이 세계에 대해 332번째로 욕을 시작한 순간에도 우리는 윈터가 사는 성을 향해 충실히 걸어갔다.

비를 뚫고 빠르게 움직이고 나서 우리는 마침내 성문 앞에 도착했고, 윈터가 발걸음을 멈추며 우리에게 말했다.

“도착했다.”

“아….”

작은 고성의 입구에는 화려한 조각이 되어 있는 문이 있었는데, 윈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을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드러난 건 작은 정원이었다. 내가 ‘로판’이라고 했을 때 흔히 상상하던 배경과 같은 모습이었다! 비가 와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지경이었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윈터가 성큼성큼 걸어 건물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누구지.”

“엄마야!”

나는 우리의 앞에 스윽 나타난 두 명의 사람을 보고는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고 말았다.

각자 손에 긴 검을 쥐고 시리도록 날카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중년의 남녀. 그들의 검 끝에서 일렁이는 오러가 금방이라도 우리를 공격할 것 같았다.

놀란 내가 본능적으로 총을 고쳐 잡으려고 하는 순간 윈터가 무덤덤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아버지.”

“아들?”

‘아, 윈터의 부모님이었구나.’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의 부모님일 텐데 그들이 내뿜는 기운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긴장해 버렸다.

지금 보니 그들은 누가 봐도 윈터의 부모님이었다. 흑발에 회색 눈을 가진 남성과, 흑발에 푸른 눈을 한 여성. 그리고 그들에게서 풍겨 오고 있는 윈터 특유의 시린 분위기. 냉철한 표정. 마지막으로…

‘와, 소리 없이 다니는 것까지도 꼭 닮았어.’

가끔 윈터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고는 하는 것은 바로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게 틀림없었다.

내가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윈터는 자신의 부모님과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들, 여긴 무슨 일이니? 탈영이라도 했나?”

“탈영했는데 아직 살아 있구나. 네가 탈영할 애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나?’

설마 부모님으로부터 아무런 애정도 받지 못하고 자라온 그런 로판 남주 타입?

“외부 근무가 있어서 나왔습니다. 방금 흑마술사 체포를 마쳤는데, 인계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두 분께 여쭤 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랬군. 우리는 방금 네가 침입자인 줄 알았다.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누가 갑자기 문을 열더군.”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이종족이라고 얼씬도 안 하니까, 틀림없는 외지인이라고 생각했지.”

“그러셨군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잠깐 질문만 하고 얼른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능하다면 집에 더 있다 가도 좋을 텐데.”

“여보, 어차피 쟤도 제대가 몇 달 안 남았는데, 뭘.”

‘…원래 저런 가족이군.’

아무래도 윈터네 가족은 모두 윈터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모두 무표정으로 딱딱한 어조의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듣고 있자니, 정말 어색한 기분이었다.

‘정말 북부 대공 같군.’

윈터의 가족을 보자면, 마치 삭막하고 정 없는 북부에 사랑스럽고 병약한 남부의 아가씨가 시집와서 북부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 그런 느낌….

“마님! 마님이 오신 뒤로 북부에도 봄이 온 것 같아요!”라는 대사를 치는 시녀가 존재하는 그런 집안의 느낌….

내가 윈터네 가족을 관찰하며 오랜만에 로판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저쪽은 네 후임이니?”

“예, 그렇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어색한 목소리로 인사하자, 윈터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휙 고개를 돌리더니 변함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윈터에게 말했다.

“너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지만 후임은 비를 맞아서 입술이 파랗게 질렸구나.”

본인도 피와 눈물은 없어 보이시는데요….

“이런, 그렇네요. 빨리 따뜻한 곳에서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는 윈터의 가족들을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게 됐다.

* * *

윈터의 어머니가 말했던 대로 나는 비를 쫄딱 맞아 추위에 몸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담요를 건네받아 몸에 두른 뒤, 고풍스러운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국경방위군에서는 본 적 없는 푹신한 소파를 보며 나는 젖은 상태로 감히 저 소파에 앉아도 되나 고민했지만, 윈터의 부모님들이 너무 쿨하고 민트하고 아이시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셨기에 그냥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저 눈빛까지 유전이었구나….’

윈터의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따뜻한 차를 먹으니, 비를 맞아 얼어 있던 몸이 좀 녹는 기분이었다.

“윈터 님은 안 추우십니까?”

윈터가 나와 달리 담요를 두르지 않은 것을 본 내가 묻자, 윈터의 아버지가 그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아들이지만 저놈은 강하니까 감기 따위 걸리지 않지.”

본인의 아들을 참 잘 알고 계시는구나….

그의 말에 내가 반사적으로 어이없다는 눈빛을 하자, 갑자기 윈터의 부모님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흠.”

“신기한데.”

“…예?”

“혹시 이전에 우리와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지금 보니 윈터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신기하군.”

그제야 나는 그들과의 대화 패턴이 좀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알타이르와 윈터가 나를 두고 했던 대화였던 것이다.

그거야 북부 대공이 나오는 로판을 열 개도 넘게 읽었으니까…. 윈터 같은 얼굴이 나오는 표지를 스무 개쯤 봤는데 두려울 리가 없지.

“윈터, 참 강한 후임을 뒀구나.”

“언제나 강한 건 아닙니다. 두 분의 눈에는 강해 보이겠지만.”

“역시 후임을 잘 파악하고 있구나. 훌륭한 선임으로 자랐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됐구나.”

“감사합니다.”

‘…저거 나름 따뜻한 대화인가?’

내가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보고 있을 때 윈터가 대뜸 용건을 꺼냈다.

“요즘 국가 정세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이 있습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니?”

“흑마술사의 집을 수색하던 중 다른 흑마술사와 주고받은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국가의 정세가 심상치 않고, 그래서 국가가 이종족을 필요로 한다는 내용이었고요.”

“우리를 필요로 할 정도라면….”

무언가 떠올린 듯 윈터의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즘 펠로니 제국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 서로 번갈아 가며 도발을 하고 있다고, 국경 지역에서 복무하는 동기에게 들었지.”

펠로니 제국이라면 제국의 동남쪽과 맞닿아 있는 이웃 국가였다.

“윈터 네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전쟁을 대비해 황실이 이종족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구나.”

‘…전쟁?’

규모가 너무 커진 얘기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내가 뒤이어 느낀 건 괘씸한 감정이었다.

‘이젠 하다 하다 전쟁에도 이용해 먹으려는 거야?’

내가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윈터는 그의 부모님과 흑마술사의 편지 내용을 자세히 논의하고 있었다.

“이전에 황실이 흑마술사를 봐줬다는 건, 아무래도 이종족이 제국 내에서 서서히 없어지기를 바란 것 같구나. 실제로 이제 순혈 이종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당신 말대로 요즘 국경방위군에 가는 이종족들은 제국민보다 조금 강한 정도에 불과하지.”

“그럼 국가는 원래 이종족의 수를 줄이려 했으나,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니 이종족을 이용하기 위해 반대로 흑마술사를 탄압하는 거군요.”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국가가 아르콘의 개체 수를 줄이려 했다고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했을 때, 윈터는 시계를 흘끗 본 뒤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군. 네게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나?”

“아…! 네, 감사했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윈터의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서, 윈터는 자신의 부모님과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은행 금고에 출입할 수 있는 증표를 받아 갈 수 있겠습니까?”

“분명 네가 입대할 때 챙겨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었니?”

“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했을 리가 없는데.”

“새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얼마 뒤, 윈터는 금빛 열쇠를 받아들었다. 정말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의 열쇠였다.

“그게 뭡니까?”

궁금증을 느낀 내가 묻자, 윈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벼운 어조로 설명해 주었다.

“집안의 금고에 출입할 수 있는 열쇠다. 수도에 있는 은행 금고에 보관된 재산이 있거든.”

“아하….”

정말 모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은행 같았다. 내가 신기한 눈빛으로 열쇠를 바라볼 때, 윈터의 부모님이 연달아 말했다.

“호기심이 많은 후임이군.”

“무사히 제대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국가의 비밀을 파헤치고 다니다가는 제거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러나 건물을 나오고 나서 윈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의 말을 꺼냈다.

“두 분이 네가 마음에 드셨나 보군.”

“예?”

“원래 사람에게 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들이시거든.”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며 협박과도 같은 말을 했던 게 호감의 표현이었다고? 역시 북부 가족, 알다가도 모르겠다.

성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나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에휴, 기껏 말려 놨는데.”

몸이 다시 축축해질 걸 생각하면 성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다시 부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우리는 흑마술사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시나를 만났다.

“이시나 님!”

“사루비아?”

일이 있어 밖에 나왔던 듯한 이시나가 윈터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윈터 님, 사루비아랑 어딜 갔다 오시는 겁니까?”

“잠시 내 집에 들렀다 왔다.”

“예?”

“우리 부모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잠시 다녀왔다.”

“…으윽!”

“이, 이시나 님?”

갑자기 이시나가 자신의 뒷목을 잡았기에 나는 당황하여 그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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