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익-!
“흡!”
선반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무기에 오러를 두르고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야 했다. 아르콘의 뛰어난 신체 능력은 화살들을 피하고 그것을 쳐내는 일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가만히 있기만 한다고 해서 화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총으로 화살을 쳐내야 어떻게든 몸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저 종이를 챙기기 위해서는, 총을 휘두르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살에 맞게 되겠지.
“사루비아, 내가 가서 종이를 챙길 테니 너는 얼른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도록!”
윈터는 내가 피할 것을 재촉했지만.
바쁘게 총으로 화살을 쳐내는 동안에도, 나는 종이가 놓인 위치를 흘끗 쳐다본 후 결국 결론을 내렸다.
“윈터 님, 엄호 부탁드립니다!”
“뭐?”
그 말을 남기고, 나는 달렸다.
보폭을 넓게 해서 달린 세 걸음.
그것만으로 나는 종이에 도달할 수 있었고.
휘이익-!
화살이 내게로 쏟아지고 나는 무방비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흡!”
왜냐하면 곧 윈터가 나를 지켜 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윈터가 얼음의 오러 블레이드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증폭시키는 것과, 내가 종이를 잡아채는 일은 동시에 일어났다.
쾅-!
윈터의 오러 블레이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날아오던 화살들을 모두 얼려 버렸고.
찌이익-!
그 틈을 타, 아퀼라는 선반에 놓여 있던 다른 서류들을 빠르게 챙길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원했던 것이었다.
각자 종이를 챙기자마자, 아퀼라와 나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윈터의 오러 블레이드는 꽤 큰 힘을 발휘했다.
“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저 화살들에 의해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사태가 발생할 뻔했다….
“사루비아, 괜찮아?”
“응, 놀라서 그래….”
아퀼라가 나를 자리에서 일으키며 부축하고 있을 때, 윈터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외쳤다.
“사루비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
그렇게 말하는 윈터는 꼭 분노한 것과도 같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푸른 눈에 담겨 있는 건 분노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래, 꼭….
‘걱정하는 거야?’
내가 알고 있는 평소의 윈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표정이었다.
윈터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를 보자, 그는 아무 말 없던 내가 답답했던지 목소리를 높였다.
“흑마술로 만들어진 화살에 맞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왜 아무 대책도 없이 그곳에 뛰어들었나?”
…솔직히 그건 나뿐만 아니라 아퀼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윈터와 아퀼라는 뭐 원래 서먹한 사이이므로 서로 걱정 따위는 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화살에 맞을 거라는 두려움도 없이 뛰어든 이유는….
“윈터 님이 막아 주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 말에, 윈터가 당황한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뭐?”
“윈터 님이랑 있을 때는 죽거나 다칠 위험은 없지 않습니까.”
윈터는 내게 있어서 언제나 신뢰의 아이콘이었다. 나는 그의 라인이기도 하고 그가 나를 도와준 적이 꽤 있는 만큼 윈터가 내게 있어 마냥 부담스러운 FM 선임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윈터에게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윈터는 고작 그런 불충분한 근거로 위험한 곳에 뛰어들었냐고 나를 혼내는 대신.
“그랬나?”
그는 미소를 지었다.
‘…어?’
인지 부조화가 오는 기분이었지만, 윈터는 정말로 눈을 부드럽게 휘고 입꼬리까지 올려 웃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래, 그럼 그걸로 됐어.”
윈터는 자상한 목소리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자상한 목소리였다.
‘뭐지…?’
‘주인님! 로판 회로입니다! 원래 겨울이 온 것처럼 늘 싸늘한 남주가 갑자기 봄이 온 듯 미소를 지으면 사랑입니다!’
…내가 속을 것 같냐. 지금까지 당한 게 얼마인데.
그렇지만 정말로 윈터의 미소가 낯설어서 내가 마음속에서 의심을 지워 내지 못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사루비아, 이거 확인해 볼래?”
“아, 맞다. 이게 있었지.”
“자켓 벨트 풀렸다. 다시 해 줄 테니까 읽고 있어.”
“응.”
아퀼라가 자신이 챙겨 온 서류들을 내게 내밀었기에 나는 얼른 그것을 받아들었다.
‘흑마술사의 비밀 서류니까 틀림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있을 거야.’
그런 이유로 나는 아퀼라에게 다른 서류도을 챙기라고 눈짓했던 것이었다. 내가 서류를 가볍게 넘겨보는 동안, 아퀼라는 자신이 내 뜻을 알아차린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뒤에서 내 벨트만 매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뭘 말하는지 잘 알아챘네? 고마워!”
“네 눈빛은 읽을 수 있으니까.”
함께 보낸 시간이 워낙 길어서 이제 우린 서로의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읽어 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지하를 빠져나가며, 나는 서류들을 빠르게 읽어봤다. 흑마술을 사용하는 방법 같은 내용도 있었지만, 그건 또 내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니까 쓸 마음이 없었고.
“…잠깐, 이건.”
그 서류들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편지였다. 그것도 다른 흑마술사들과 주고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얼마 전 에이브가 체포당했다. 나를 추적하는 군인들도 따라붙었어.
요즘 국가 동태가 심상치 않아. 그러니 이종족들이 필요해진 모양이지. 너도 골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잘 확인해 둬.
어차피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순 없어. 그러니 나는 은혜도 모르고 우리를 짓밟는 그놈을 제거하려 한다.
이 편지가 도착했을 때쯤 나는 이미 계획을 실행했겠군. 그럼 그동안 너도 무사하기를 바란다.
네가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을 들킨다면 이제는 바로 감옥에 가게 될 거야.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잠깐만, 이 편지 혹시….”
은혜도 모르고 흑마술사를 탄압하는 놈이라면… 황제를 말하는 거 아닌가? 예전에는 국가 차원에서 흑마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럼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얼마 전 황제의 즉위식에서 난동을 부렸던, 제국 북부의 3대 흑마술사 중 하나! 에이프릴이 체포한 그자! 그자가 오늘 우리가 체포한 흑마술사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렇다면 에이브는 첫 번째로 체포한 흑마술사의 이름이겠군.’
황제 테러 계획을 담고 있는 편지인 만큼 흑마술사가 비밀 공간에 숨겨 둘 만했다. 그렇지만 거슬리는 내용이 있는데….
‘국가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그래서 우리가 필요해?’
어쩐지 찜찜한 문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윈터와 아퀼라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윈터는 나와 다른 문장에 주목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을 들키면 이제는 바로 감옥에 간다라…. 그전에는 들켜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뉘앙스군.”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흑마술사 수색이 이루어진 지는 채 몇 년도 되지 않았지만, 국가가 흑마술을 금지한 일은 꽤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흑마술을 금지했던 시기에 흑마술사가 발각되어도 그들을 체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흑마술사가 아르콘을 이용하던 것의 배후에는….”
“…그래, 아무래도 아돌브 황실이 있었나 본데.”
원래 국가가 흑마술사를 쓰고 버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범죄를 눈감아 줄 정도였는지는 몰랐는데.
이 복잡한 상황에 머릿속이 점점 꼬여만 갈 때, 어느새 우리는 지하실 위에 도착해 있었다. 밝은 곳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피에 물들어 있던 종이를 바로 북 찢었고.
“마법이 풀렸다고 합니다!”
조금 뒤, 우리는 아이들의 몸에 있던 계약의 문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아이들은 자유가 된 것이었다.
부모가 있었던 아이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거고, 보호받을 곳이 없으면 고아원에 가게 될 것이다. 내가 고아원에 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행복하지는 않아도 안전했으니, 차라리 그쪽이 아이들에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아까 전 나와 함께 편지를 읽었을 때부터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던 윈터가 다가왔다.
“사루비아, 나는 편지에서 언급한 국가의 동태에 대해 알아보러 갈 곳이 있는데. 혹시 너도 함께 가겠나?”
“아,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우리는 군대에 있어 바깥소식을 잘 알지 못하니, 국가의 정세를 알려면 사회에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지.”
“그럼 이 마을 사람을 만나시려는 겁니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생각에 내가 눈을 빛내니, 윈터는 예상지도 못 했던 답을 내놓았다.
“우리 부모님이시다.”
“…예?”
하긴, 그의 부모님은 이 마을에 있으니, 지금 윈터가 만나러 가기 적합한 사람이기는 했다….
“그래, 나는 잠시 내 집에 들르려고 하는데.”
“그, 잠깐 자리를 이탈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흑마술사를 인계할 사람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잠깐 갔다 온다면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윈터의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지금 갔다 오… 아.”
당장이라도 윈터와 함께 출발할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나는 포박되어 있는 흑마술사, 그리고 그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있던 카론과 눈을 마주쳤다.
“…아퀼라!”
“응.”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아퀼라가 바로 다가왔다.
“나 잠깐 윈터 님이랑 다녀올 곳이 있는데.”
그 말에 아퀼라는 윈터를 스윽 쳐다봤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디를?”
“아까 그 편지와 관련해서 알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윈터 님의 집에 다녀올까 해.”
그 말이 갑작스러운 건지는 몰라도 아퀼라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가.
“알았어.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뭐야?”
…이제 점점 나도 아퀼라한테 속마음을 읽히고 있군.
“으응, 그동안 카론을 잘 부탁한다고.”
“알았어.”
내 저의를 알아차렸는지, 아퀼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다녀와, 사루비아.”
“응, 갔다 와서 보자!”
아퀼라와 짧은 인사를 마친 후, 나는 윈터가 있는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의미였다.
문을 열어 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 바깥 풍경이 보였지만, 윈터와 나는 그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후….”
카론의 옆에 앉아 사루비아를 기다리며, 아퀼라는 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사루비아가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눈을 마주쳐야 하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나 옆에서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기에 결국 아퀼라는 카론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카론의 시선을 보자면, 누가 봐도 그가 흑마술사를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흑마술사를 노려보면서도 차마 그쪽으로는 다가가지 못하고 몸만 꼼지락대는 게, 흑마술사에게 복수는 하고 싶지만 두려운 것 같았다.
아퀼라는 그가 옆에서 부스럭대든 말든 사루비아를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하필 그때 카론을 잘 챙기라는 사루비아의 말이 떠올랐기에, 아퀼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퀼라는 주위를 둘러봤다. 짬을 먹은 선임들은 이미 벽난로가 있는 방 앞에서 불을 쬐고 있었기에, 이곳에 있는 건 그보다 후임들밖에 없었다.
“야, 카론.”
“예?”
“봐. 이놈이 얼마나 약한지.”
그렇게 말한 후, 아퀼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흑마술사에게 다가가 그의 목 위에 손을 얹었다.
손에 힘을 싣고 꾹 누르자 그가 고통스러워했지만, 아퀼라는 그의 반응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카론에게 말했다.
“네가 싸우면 흑마술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흑마술사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카론이 멍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