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00화 (118/233)

그들은 심지어 나에게 다 들리는 성량으로 귓속말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달린.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야 해.”

“블레어 님과 토피오 님이 사라지신 뒤로 사루비아 님이 더욱 자유분방해지신 건 너도 알겠지?”

“예, 물론입니다. 목숨을 걸고 찾아낼 겁니다….”

‘아오, 저 간땡이 부은 놈들은 나중에 조져야지.’

어쨌든 나는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어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저 지하실에는 흑마술사가 있어. 아니면 흑마술사는 집을 비우고, 그의 공간만 있을 수도 있고.”

“아, 그렇다면!”

“당장 내려가 보겠습니다!”

“둘이 대사 나눠서 말하지 말라고, XX들아! 아니, 애초에 가만히 있으라고!”

결국 다시 한번 화를 쏟아 낸 뒤, 나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 저렇게 수상하고 위험해 보이는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그거야 당연히!”

“소리를 지르며 내려갑니다!”

“음… 사루비아 님과 함께 내려갑니다?”

이어지는 황당한 대답들에 나는 정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나 없이 저들만 있었다면, 저들은 공포 영화 클리셰를 완벽하게 답습하고 차례차례 죽임당할 게 분명했다.

“너희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XX들아.”

저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마침내 나는 지시를 내렸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주변에 있는 다른 부대원들을 끌고 와!”

“예?”

“최소 여섯 명 이상은 끌고 오란 말이야!”

우리는 떼거리로 저 지하실에 우르르 내려갈 것이다.

나는 절대 공포 영화 클리셰에 당하지 않을 거니까!

* * *

그리하여 조금 뒤, 지하로 내려갈 인원 열 명이 모두 모였다.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었기에 모든 부대원들을 불러오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근처를 지나던 아퀼라와 달린의 맞선임 둘, 그리고 카론과 이번 신병 기수들을 끌고 왔다. 아퀼라와 카론도 이 지하실이 수상해 보인다는 데에는 동의를 표했다.

‘이렇게 열 명씩 떼거리로 몰려간다면 클리셰는 피해 가겠지….’

공포 영화에서 ‘수상한 지하실’에 이렇게 우르르 내려가는 그림은 본 적 없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야 할 어두운 지하실을 바라보다가 아퀼라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런데 나 무서우니까 네가 앞장서야 돼.”

“그래.”

나는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섰고 내 뒤로는 달린을 세웠다. 적어도 패티와 매티는 둘이 붙여 놓으면 1인분을 하니까, 달린 이 전설의 고문관이 혹여라도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늘 감시해야 한다.

끼익-. 끼익-.

지하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에서는 불길하게 삐그덕대는 소리가 났다.

“꺅, 꺄악…!”

“달린, 원한다면 저 나무 계단 소리가 네 입에서 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조용히 하겠습니다. 갑자기 소리가 안 무서운 것 같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정한 달린을 끌고, 나는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갔고.

화르륵-!

아퀼라가 검에 오러를 둘러 앞을 밝혔다.

그리고 지하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눈앞에 보인 건….

“…누가 봐도 흑마술사가 사는 곳이잖아?”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수정구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흑마술 아티팩트들, 누가 보더라도 기이한 피가 담긴 약병들….

그건 어딜 봐도 흑마술사를 위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그 흑마술사의 공간이 맞았던 것이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선반에 가득 놓인 아티팩트를 보며 내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마법적인 물건들이 가득한데, 이 세계가 로판 같아서 기대감으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그냥 무서워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여기가 맞는 것 같지?”

“응. 보고해야겠다.”

아퀼라가 카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카론, 신병들 데리고 보고드리고 부대원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넷슴다.”

카론은 신병들을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고, 이제 이 지하에 남아 있는 건 일곱 명이었다.

“우린 그동안 먼저 이곳을 확인하고 있자.”

“응.”

아까라면 다른 부대원들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행동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퀼라가 있으니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아퀼라는 원작의 메인 남주니까 나라면 몰라도 아퀼라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근데 나 무서우니까 손잡아 줘.”

“응.”

그 후 우리는 함께 흑마술 아티팩트가 놓여 있는 선반으로 다가갔다.

참으로 친절하게도 흑마술사는 모든 아티팩트의 앞에 그 효과와 사용 방법, 특이사항이 적힌 쪽지를 놓아두었다. 그냥 그 녀석의 기억력이 부족한 건가?

어쨌든 아티팩트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금이 가 있는 수상한 거울이었다. 거울 앞에 놓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다른 쪽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음』

‘오, 완전 판타지 같아.’

판타지 소설에서 이런 거울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용의 대가는….

“오우….”

그 대가는 너무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했기 때문에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나는 얌전히 거울을 선반에 내려놓았다.

‘대가로 기억 일부를 바치는 것 정도는 양반이었군.’

마찬가지로, 그곳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아티팩트들은 너무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대가 또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쓸 만한 게 있다면 하나 정도는 슬쩍 챙겨 볼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저것들은 좀 아닌 것 같다….

그때, 내 눈에 유일하게 멀쩡한 대가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 보였다.

“이건….”

금색의 작은 손목시계.

『근처에 있는 마물의 수를 1부터 12까지 표시해 줌.

시곗바늘이 멈추지 않고 느리게 회전한다면 마물이 없는 경우, 빠르게 회전한다면 마물이 12마리 이상인 경우.

대가: 시계 부근에서 인간의 공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동함.』

“완전 우리한테 필요한 거 아냐?”

그야말로 국경방위군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으면서 왜 국경방위군에 보급되지 않는 거지?

흑마술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물건이 사용되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역시 대가 때문이려나?’

공포가 발생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공포’라는 게 늘 존재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쿠당탕-!

“죄, 죄송합니다!”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달린이 자신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기에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못 하냐?”

“죄, 죄송….”

달린이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자마자 갑자기 시곗바늘이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엥?”

설명에 따르면 시곗바늘이 회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두 가지. 첫 번째는 마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아티팩트가 작동하고 있다는 건데.

도대체 왜지? 대가로 공포를 바치지도 않았는데?

“뭐야, 왜….”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나는 문득 ‘공포가 발생할 때’의 의미를 깨달았다.

“달린, 너 쫄았냐?”

“아, 아닙니다!”

‘…이거 작동시키기 엄청 쉽겠는데?’

‘국경방위군’에는 늘 공포가 존재했다! 아마 이 시계가 24시간 작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 시계 정도는 슬쩍 챙겨 놓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거라면 경계 근무에서 갑자기 마물이 들이닥칠 때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물론 몰래 가져갔다가 걸리면 X되겠지….

“야, 달린.”

“예?”

“가서 어그로 좀 끌어 봐.”

“예…? 아, 예!”

달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신나서 다른 후임들에게로 달려갔다. 물론 달린은 내가 이 물건을 가져간다는 비밀을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녀와는 늘 숙소에서 함께 지내니 24시간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네로 님! 오늘은 제가 군 생활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응?”

“아시다시피 군 생활은 정말 힘들지 않습니까? 군 생활을 잘하는 팁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 그렇지.”

“군 생활의 어려운 점은 훈련, 그리고 선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이겨내는 게 참 중요하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상으로, 군 생활 잘하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대체 군 생활을 잘하는 방법이 뭔데? 너 지금 선임을 놀리는 거지!”

‘와, 역시 달린은 어그로 장인이야.’

심지어 달린은 저 말투를 사용하는 동안 자꾸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활짝 웃는 얼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달린이 모두의 어그로를 혼자서 끌고 있을 때 그 틈을 타 나는 얼른 시계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쪽지까지 함께 넣어 증거를 인멸하고 다른 아티팩트들이 놓인 위치를 조정해 빈자리를 없애는 일도 잊지 않았다.

“좋아.”

“그게 갖고 싶었어?”

“응.”

물론 공포 영화에서 함부로 물건을 주워 왔다가는 ‘저주 받은 인형’ 사태가 발생하는 법이지만, 난 이 물건의 정체가 그저 흑마술 아티팩트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럼 이제 다른 부대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런데 사루비아.”

“응?”

아퀼라가 아까부터 내 손을 붙들고 있던 자신의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아까 너희가 이 지하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됐다고 했지?”

“응, 집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아.”

“…그래. 그 소리는 뭐였을 것 같아?”

아퀼라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지하실에는 딱히 이상한 소리가 날 만한 곳이 없었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나는 벽에 손을 얹고 방을 탐색하며 수상한 무언가가 더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사루비아.”

“응?”

“이 벽 너머가 비어 있어.”

“뭐?!”

아퀼라는 달린과 후임들이 있는 곳에서 좀 떨어진 한쪽 벽에 귀를 가져다 댄 채,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너머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벽 너머가 확실하게 비어 있기도 하고.”

나는 주먹을 꽉 쥔 후 벽 너머를 툭툭 두드려 봤다. 아퀼라의 말대로 벽 너머에서 공기의 울림이 느껴져 왔다.

“이 안에 숨겨진 공간이 있나 보네.”

우리는 함께 조그마한 지하 공간을 뒤져 봤지만 저 벽 너머로 가는 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흑마술사만이 특별한 마법을 이용해서 들어갈 수 있다든가,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여기서는 다른 부대원들을 기다리며 얌전히 있는 게 상책이겠지만….

‘경계 근무 휴가!’

그게 탐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옆에는 아퀼라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내가 벽 너머를 쳐다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을 하자 아퀼라가 내게 물러나라며 손짓했다.

“왜? 방법이 있어?”

“부숴 보려고.”

“아.”

역시 폭력과 공포가 우리 모두를 구원한다. 곧 아퀼라는 몸에 힘을 실어 검으로 벽을 강하게 내리찍었고.

콰쾅-!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먼지가 확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먼지가 좀 가라앉은 후,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과 눈을 마주쳤다.

“이, 이게 무슨….”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허름한 방에 얌전히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 아르콘들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