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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98화 (116/233)

한편, 알타이르는 왠지 즐거운 얼굴로 윈터를 툭툭 쳤다.

“야, 여기가 바로 예전에 네가 말했던 그곳이지? 에고트 마을 말이야.”

“그래.”

“아, 여기가 거기야?”

알타이르와 유리는 에고트 마을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이 마을에 특별한 뭔가가 있나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봤다.

아퀼라는 이 도시에 유서 깊은 가문들이 모여 있다고 했는데, 확실히 정말 웅장하지만 고리타분한 곳이었다.

저 너머 보이는 작지만 역사가 있어 보이는 고성이라든가, 마을 곳곳에 놓인 조각상과 동상, 그리고 도서관 등.

하지만 별다른 특이한 점은 찾아내지 못해서 내가 다시 흥미가 식은 얼굴을 했을 때, 윈터가 입을 열었다.

“저곳이 바로 내 집이다.”

“예?”

내 표정이 어리둥절해졌지만 윈터는 진지해 보였다. 농담을 하고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멍한 얼굴로 윈터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저곳이 정말 윈터 님의 집이라는 겁니까?”

“그래. 제대하면 다시 돌아갈 곳이지.”

윈터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내가 조금 전 보았던 고성이었다.

도대체 귀족도 아니고 제국민도 아닌 그가 어떻게 그곳에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와, 남주력 폭발한다.’

갑자기 윈터의 ‘대공력’이 폭발하고 있었다.

‘대공’이나 ‘공작’이라는 단어가 그의 얼굴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런 고성을 소유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그가 더욱 대공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성은 분명히 화려하고 고풍스러웠지만 외벽이 온통 까만 것이 어쩐지 음산하게 보이기도 했다. 로판에 나오는 ‘화려한 성’과 ‘무서워 보이는 성’을 동시에 충족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이곳은 ‘북부’이기까지 하니. 그의 북부대공력이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듯했다.

내가 입을 벌리고 감탄하자, 윈터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비치는 듯했다.

“계속 저기서 살아오신 겁니까?”

이건 정말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윈터에게 질문하자 그가 약간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전에 황제가 휴양을 떠나느라 이 지역을 거쳐 이동할 때, 내 조상께서 갑자기 나타난 마물들로부터 황제를 구하고 보상을 받았지. 그때부터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다.”

아마 보상으로 받은 건 저 성과 토지, 그리고 금은보화 같은 거였겠지. 원작에서도 이런 설명이 있었는지 나는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원작에서는 군대 얘기만 다루었기에 그들의 군대 밖 삶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윈터, 이런 큰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니….’

도대체 원작에서는 이렇게 남주스러운 요소를 왜 드러내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윈터, 남주력 +100.

내가 여전히 흥미로운 눈으로 성을 보고 있을 때, 윈터가 별안간 이상하리만큼 친절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 성에 관심이 있나?”

“예? 아, 그냥 대단해 보이셔서 본 겁니다.”

“원한다면, 저 성을 가질 방법이 너에게 있는데.”

“…예?”

뭐지? 하지만 내가 제대하고 3,000마크네를 받아 나가도 저 성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알타이르는 갑자기 흥미로운 것을 구경하는 표정이 되었고, 윈터의 얼굴은 진지해졌다. 사실 그의 얼굴은 늘 진지하므로 ‘진지해졌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

“무슨 방법이 있는 겁니까?”

“나와 함께-”

“윈터 님.”

그 순간 이시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시나는 곤란한 얼굴로 나를 자신의 쪽으로 휙 잡아당기며 대신 윈터와 얼굴을 맞대고 섰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글쎄, 너야말로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평소 원칙주의자이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좀 자중하실 필요가 있으십니다.”

“내가 원칙을 따르길 원한다면, 네 태도가 건방진 것 또한 지적해 주길 원하나?”

“벌을 주시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요즘 다들 자꾸 슬쩍 선을 넘어가려 해서 말입니다.”

이제 나는 더욱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뭐지? 뭔데?’

나는 윈터의 성을 흥미롭게 봤을 뿐인데 갑자기 윈터와 이시나가 마치 여주를 두고 싸우는 남주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마치….

‘오랜만이다! 로판 회로!’

사실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남주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었고, 짬을 먹으니 갑자기 집착할 가능성도 존재하나?

나는 희망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열렬히 바라보았다. 드디어 내 인생에 로판 전개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로맨스가 가득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동안 윈터와 이시나는 알타이르의 만류로 대치를 그만두었다. 대신 할 말이 있는 듯 윈터는 알타이르와 유리와 따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시나는 여전히 내 옷깃을 붙든 채 나를 끌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이시나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루비아?”

“예?”

“너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잖아.”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 들어 봐.”

이시나가 어린애를 다루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을 사려면 뭐가 필요하겠어?”

“…돈?”

“그래…. 하지만 네가 제대를 해도 모인 돈으로는 저 성을 사기에 부족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 그렇다면… 사업해서 돈 벌기?”

원래 빙의물 여주들은 지구의 기억을 이용해서 사업 같은 거 하던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세계에서 활용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방법으로 그 돈을 벌….

문득,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윈터는 내게 저 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즉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했다. 그리고 윈터는 미쳐 버린 원칙주의자 FM 선임이다.

“나와 함께….”

윈터는 나에게 자신과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말하려고 했고.

“그렇지만 내가 제대한다면 잃게 될 것이 있으니, 제대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군.”

얼마 전 윈터는 제대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 말뚝 박기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그렇다면…

“설마 윈터 님이 저한테 국경방위군에 말뚝 박기를 권유하신 겁니까?!”

본인도 말뚝 박기를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후임이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으니까, 함께 말뚝을 박자고 하려던 거구나!

와, 윈터 정말 선임이 되어서 어떻게 후임에게 그럴 수 있지? 정말 너무하다.

“그,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이시나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충격받은 얼굴을 한 걸 보니 윈터의 인성질에 정말로 당황했던 모양이다.

“…맞아. 윈터 님은 사루비아 너에게 말뚝을 권유하신 거지…. 하마터면 너는 넘어갈 뻔한 거고.”

“그럴 리 있겠습니까!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윈터 님 너무하시네.”

에휴, 로판 회로 그걸 진짜 어디다 갖다 팔든지 해야지. 군대 말뚝 박기를 권유하는 남주라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냐고.

* * *

“푸하하!”

윈터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타이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윈터가 완전히 썩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와, 너는 여전히 발전이 없구나~? 다 잘하면서 어떻게 연애는 못 하냐고, 푸흡!”

알타이르는 이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고 있었다. 반면 유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봐 봐, 내가 너는 전혀 가망성이 없다고 했지?”

“…….”

“네가 그렇게 딱딱한 선임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너한테 설렘을 느끼냐고.”

그 말에 윈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기에, 알타이르는 이번에는 그를 두둔해 주었다.

“야, 그래도 윈터 쟤는 돈도 많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얼굴이 잘생겼잖아.”

“장점이 그게 전부야?”

“…그리고 가슴과 어깨?”

“고작 그것밖에 없잖아.”

“다 가진 거 아니야?”

알타이르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유리는 단호했다.

“아니, 쟤는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게 뭔데?”

“있어, 그런 게.”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짧게 끊어 낸 후, 유리가 한심한 얼굴로 윈터를 보았다.

“야, 생각해 봐. 사루비아 쟤한테 있어서 너는 루이즈 님이나 플라토 님 정도의 존재감이라고.”

“…….”

“너는 그냥 가망이 없어, 가망이.”

유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윈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흠.”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알타이르 또한 어느새 엄숙해진 얼굴로 윈터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적어도 다른 선임들과는 구별되는 위치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은….”

“너를 그냥 선임보다는 더 특별한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만 윈터는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얼굴이었기에, 알타이르와 유리는 마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대로라면 윈터는 아마 제대할 때까지 사루비아에게 FM 선임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 * *

내가 윈터의 인성에 경악하고 있을 때, 윈터와 대화를 마친 듯한 유리가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사루비아, 얘기 좀 하자.”

“예?”

유리는 그 누구보다 박력 있게 내 손목을 잡고 이시나로부터 나를 떼어 냈다. 와, 유리 남주력 +60.

“사루비아, 네가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조언해 줄 게 있는데.”

“예?”

“예전에도 말했지만,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성이야.”

“그렇지만 유리 님도 솔직히 사회성은….”

“알아! 나도 안다고! 그래서 하는 얘기야!”

늘 쿨하고 민트하고 아이시하며, 윈터보다 고작 사회성이 조금 나은 수준인 유리가 격분하여 외쳤다.

“아퀼라 걔나, 윈터 그 XX나 둘 다 사회성을 밥 말아 먹었잖아!”

“갑자기 윈터 님이랑 아퀼라의 얘기를 왜 꺼내시는 건지….”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유리가 흠칫하며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흠흠, 그냥 사회성이 없는 사람의 예시를 든 거였어. 어쨌든….”

“아, 예….”

“차라리 국경방위군을 나오지 않은 놈들을 선택해. 여길 나올 놈들은 다 조금씩 돌아 있잖아.”

“예? 하지만….”

이번에는 내 얼굴이 진지해졌다.

국경방위군을 제외하면 제국민밖에 선택지가 없는데, 난 절대 제국민과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민은 적폐지 않습니까.”

“…어?”

“저는 제국민들이 다 재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를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는 게 기분 나빴습니다. 적폐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그, 그래?”

“그래서 저는 아르콘이 더 낫습니다.”

유리는 떫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어쨌든 사회성 없는 놈들은 안 돼. 절대 안 돼!”

…그럼 나는 사회성이 있는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나는 눈치를 챙기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도 이 세계가 원래 로판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유리 이거 자꾸 알타이르랑 플래그를 꽂고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아는 인간들 중 가장 사회성이 뛰어난 인간은 바로 알타이르니, 유리의 기준에 따르면 신랑감으로 가장 적절한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역시 나 빼고 모두 연애 플래그가 꽂히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유리에게 이 얘기를 했다가는 탈탈 털릴 것 같아서 나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언젠가 날아올 유리의 분홍빛 소식을 기대해 봐야지.

* * *

잠시 후 대기가 끝나고 우리는 임무를 전달받았다.

그동안 이 마을에서 계속 이상한 일들이 발생해 왔는데 아무래도 흑마술사가 흑마술을 사용한 흔적 같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기간을 고려했을 때 흑마술사는 오랫동안 마을에 숨어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아내야 했다.

“진짜 지긋지긋하다.”

내가 이를 빠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아오, XX, 대체 흑마술사 때문에 지금까지 외부 근무를 나온 것만 몇 번째야? XX 빡치네.”

“빡치신대. 눈치 챙기자.”

“분위기 타.”

“다 들린다고, XX들아.”

난 뒤에서 속닥거리는 후임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후 다시 정면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우리가 찾아야 할 그 흑마술사가 바로 제국 북부의 3대 흑마술사 중 마지막 남은 한 놈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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