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이곳이 현대였다면 아스팔트로 되어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흙길을 직접 다지지 않아도 됐겠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닌가? 혹시 아스팔트도 다시 칠하고 껌 붙어 있는 것도 긁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해 보니 차라리 흙길이 낫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길 정비가 거의 끝나가자, 윈터는 한 걸음 물러나 뒷짐을 지고 선 채 매의 눈으로 길을 확인했다.
“흠….”
“혹시 부족해 보이는 곳 있으십니까?”
그의 옆에서 함께 길을 확인하던 내가 얼른 윈터의 눈치를 살피자, 윈터는 냉철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울퉁불퉁하군.”
“…예, 더 평평하게 다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길을 다지기 위해 베니는 바람 속성의 오러까지 사용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베니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나는 애써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새로 즉위한 황제가 이 길로 지나간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몰려들어서 우리가 길을 정비하는 것을 구경하며 황제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구경꾼들은 베니가 사용하는 정밀한 오러 컨트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런 걸로 인정받고 싶지 않았다고.
‘그나저나 거슬리네.’
나는 사람들이 있는 쪽을 흘끗 쳐다봤다. 이미 외부 근무를 몇 번 나가 봤으므로 나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정말 괴물을 보는 눈으로 우리를 보았으며 눈에 띄게 우리를 두려워했다.
당연하지만 나를 꺼리는 사람들 틈에 있는 기분은 아주 별로다.
그때 내 눈에 띈 건 달린의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있어서 그런지, 부대에 있을 때보다 달린은 훨씬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꼭 입대 초기의 모습 같았다.
“달린!”
“예?”
내가 이름을 부르자, 달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빠릿빠릿하게 행동 안 하냐?”
“예, 예?!”
“왜 네가 있는 쪽만 그렇게 작업 속도가 느려? 이게 뒤지려고, 진짜. 들어가서 한따까리 할래?”
“아, 그, 그, 빨리하겠습니다!”
달린은 빠르게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보는 게, 이제 사람들에 대한 불쾌감 같은 건 잊어버린 모습이었다.
휴, 후임의 기분 상태를 이렇게까지 고려해 주는 나, 정말 멋진 선임인 것 같아.
“…빨리 안 하냐? 손 보이잖아, 어?”
“시정하겠습니다!”
난 역시 멋진 선임이야.
마침내 길 정비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서, 우리는 도로의 양쪽에 일자로 서서 황제가 지나갈 길을 비워 놓았다. 혹시 사람들 틈에 암살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 그것을 경계하기 위한 일이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 양 끝에서는 또 다른 부대의 사람들과 만나는 구조였다. 국경방위군뿐 아니라 다른 사령부의 병사들도 좀 섞여 있다고 들었고.
하필 황제가 이 길을 지나가기로 한 시간은 태양이 가장 높게 떠 있는 시간이라 등에서 땀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
‘황제 이 XX, 진짜 죽여 버린다….’
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으니, 누가 봐도 더워 보였는지 윈터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사루비아, 많이 덥나?”
“예.”
그렇게 대답하다가, 나는 문득 윈터의 푸른 눈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윈터는….
‘곁에 있으면 좀 시원하려나?’
불 속성 오러를 사용하는 아퀼라의 손을 잡으면 따뜻해지는 것처럼, 윈터도 좀 시원한 효과를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을 마친 내가 윈터가 서 있던 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나랑 자리 좀 바꿔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런데 왜지?”
“음, 그냥 이쪽 햇빛이 더 강해서 말입니다.”
햇빛이 강해서 후임과 자리를 바꾸겠다는 정말 싸가지 따윈 엿 바꿔 먹은 대답이었지만, 주위에 있던 후임들은 내 발언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으며 윈터마저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그래서 나는 정말로 윈터의 옆자리에서 대기했다.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효과인지 조금 시원해진 것도 같다.
“오고 있군.”
우리가 대기를 시작하고 난 뒤, 문득 윈터가 정면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전에 황태자가 부대에 방문했을 때에도 윈터가 가장 먼저 잡아낸 것을 보면, 아무래도 땅의 울림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말들이 이쪽으로 오는 진동이 느껴진다.”
“오…. 야, 들었지?”
내가 얼른 후임들이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을 노려보자, 그들은 몸을 긴장으로 더욱 빳빳하게 세웠다.
황태자, 아니, 황제 그 XX XX가 왜 이렇게 군기가 빠져 있냐는 말 한마디만 해도 우린 다 뒤지는 거다.
그렇게 우리가 긴장을 곤두세우고 황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뭐야?”
마을 사람들 틈에 있던 누군가가 이 길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누가 봐도 수상한 흑마술사스러운 복장의 남자.
‘흑마술사?!’
그래, 저번에 카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지역에는 제국 3대 흑마술사가 있다고 했지!
이전에 그 흑마술사가 그러했듯, 지금 달려오고 있는 저 남자도 범죄를 일으키려는 게 분명하다!
혹시 흑마술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비워 놓은 길에 달려드는 걸 보면 황제를 목표로 한 범죄를 시도하려는 게 틀림없는 상황!
XX, 부대원들의 모가지가 다 함께 날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지나, 뒤!”
“잡아!”
윈터와 내가 거의 그렇게 동시에 외쳤고, 신병 지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뒤늦게 이 방향으로 달려오는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안 돼!”
곧 황제가 이 길을 지날 거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가장 먼저 행동한 건 카론이었다.
지나의 옆에 서 있던 카론이, 내가 ‘잡아!’라고 외치기가 무섭게 몸을 날려 남자를 붙잡은 것이다.
“크윽!”
카론은 남자를 덮치다시피 하여 한 바퀴 구르며 그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남자는 황제가 지나갈 길로 뛰어드는 데 실패했다.
‘휴, 하마터면 방금 청소를 끝낸 깨끗한 길에 발자국을 남길 뻔했네.’
카론은 부대원들 중에서도 힘이 아주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 남자도 아무런 반격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했다.
‘그나저나 3대 흑마술사라더니 지난번 그놈도 그렇고 왜 이렇게 다 허술한 거지?’
역시 앞에 ‘몇 대’가 붙는 사람들치고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악당 조직의 4대천왕 같은 건 사실 주인공에게 차례로 발릴 허접들이지….
한편 흑마술사가 붙잡히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크윽, 황실…! 그 빌어먹을 황실 놈들을!”
흑마술사가 계속해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제에 대한 어떠한 원한이 있는 사람 같았다.
“저, 저거 저주 인형 아닙니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토템을 보며 내가 윈터에게 묻자, 윈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흑마술을 사용하기 위한 물건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황제를 암살하기 위한 테러를 시도하려던 것 같았다.
‘XX, 이번이야말로 진짜 뒤질 뻔했다.’
내가 고스트그룸에게 먹혔을 때보다 오늘 더 위험해질 뻔했다.
한편, 그동안에도 흑마술사는 카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구 발버둥 쳤다.
“흑마술을 이용하는 주제에 감히 흑마술을 박해해?!”
당연하지만, 흑마술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카론이 그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카론은 웃음기라곤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무서운 얼굴로 흑마술사를 내려다 보고 있었으니까.
카론이 그를 위에서 짓누르자, 로브가 거의 벗겨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흑마술사에게서 물러났다.
누가 보더라도 꺼려질 듯한 음침한 얼굴에 퀭한 눈가, 핼쑥한 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군.’
흑마술사는 우리에게 붙잡힐 것에 대비한 대처도 하지 않고 무작정 몸부터 날렸다.
아무래도 황제가 이곳을 지난다는 사실을 듣고 분노에 잠식되어 곧장 달려온 게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거고.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는 카론에게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도 황제에게 이용당하는 주제에 왜 황제를 돕는 거지?!”
부대원들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정확히 찔렀기에, 그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모두 앞에 집중하도록.”
윈터의 차가운 목소리가 모두를 집중시켰다.
부대원들은 곧 황제가 이 길을 지나갈 거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카론을 제외한 모두는 아까와 같이 긴장한 태도를 유지했다. 카론의 빈자리만 빼고 본다면 아무 일도 없던 것 같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소대장은 어떻게 행동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그보다도 윈터가 능숙하게 상황을 해결했다.
“카론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간격을 넓혀서 메꿔야겠군. 그리고 카론은 그 수상한 사람을 데리고 먼 곳으로 떨어져 입을 막고 있다가 이후 병사들에게 넘기면….”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윈터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고, 흑마술사를 짓누르고 있던 카론은 순간적으로 힘을 풀었다가 흑마술사를 놓칠 뻔했으며, 이시나의 동공은 마구 흔들렸고, 아퀼라는 왠지 애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당황한 건 바로 나였다.
“서, 설마….”
“그자는 흑마술사야. 우리가 추적하고 있던 사람이니, 내가 데려갈게.”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건 평범해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였지만….
“에, 에, 에, 에이프릴 님?”
그녀는 틀림없는 에이프릴이었기 때문이었다.
훈련병들과 일등병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상등병들과 윈터는 그녀를 보고 모두 굳어 있었다.
“여긴 어쩐 일로….”
윈터가 가장 먼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자, 그녀는 여전히 바닥에 제압당해 있는 흑마술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추적하고 있었지. 내 일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에이프릴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갔었지. 그녀가 쫓던 흑마술사가 바로 저 남자인가 보다.
“너희도 지금 급한 거 아니야? 내가 해결할 테니 이따가 얘기하자.”
에이프릴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곧 황제가 이 길을 지날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에이프릴은 카론으로부터 흑마술사를 건네받아 그를 질질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