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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84화 (102/233)

그동안 마물로 단련이 됐는데, 흑마술사 정도야 우습게 느껴졌다.

게다가 흑마술사는 우리가 자신의 인상착의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모른다.

왜냐하면 카론이 아까 그와 충돌하고도 아무런 원한이 없는 것처럼 너무 얌전히 굴었기에, 카론이 아직도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우위에 있어.’

이번 수색은 2인 1조로 진행되었고, 당연히 나와 함께 움직이는 건 카론이었다. 지금 카론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건 나뿐이니까.

‘어차피 나중에 아퀼라도 알게 되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빠르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아퀼라는 섭섭해할 것이다, 흠.

그렇게 카론과 함께 마을을 뒤졌지만, 그를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해야 했으므로, 마을 사람들에게 ‘갈색 머리카락과 주근깨’ 등에 대해 캐묻고 다닐 수도 없었고.

“카론, 그 흑마술사가 갈 곳이라든지,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음….”

카론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 얼굴을 했다.

“예전에도 이 마을에 몇 번 오긴 했습니다. 보통 그 사람은 정해진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녔으니까.”

“여기 와서 뭐 했는데?”

“사기를 쳤습니다.”

“아하….”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기꾼이었군.

“아픈 사람을 치료해 준다거나, 자신에게 투자하면 나중에 큰돈을 벌 수 있다든가, 땅을 캐면 사실 금이 나온다든가, 주로 그런 식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잠깐만….”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 말대로, 그 흑마술사가 사기를 치고 있을 법한 장소들을 찾아가 보자고.”

“그렇다면….”

“일단 의원부터 시작하자.”

잡히면 뒤졌어, 이 흑마술사 XX.

* * *

마을에는 의원 한 명이 운영하고 있는 작은 의료소가 있었다.

우리는 곧장 의료소로 들어가는 대신, 창문을 통해 그 안을 흘끔거렸다.

“어때? 뭐가 있는 것 같아?”

“저는 아직 안 보입니…. 어?”

나보다 큰 키를 활용해, 높은 창문을 통해 내부를 주시하던 카론이 창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뭐?”

역시 사기를 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하는군.

그러나 막상 흑마술사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명치부터 쳐야 하나? 아니면 목? 처음에 욕을 하는 것보다는 일단 한 대 치는 게 더 임팩트가 강하겠지?’

치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그 순간, 마침내 의료소 밖으로 나오는 흑마술사의 옆모습이 보였고.

“일단 잡아!”

내가 카론을 향해 그렇게 외쳤기 때문에, 내 목소리를 들은 흑마술사도 우리를 발견했다.

“뭐, 뭐야!”

흑마술사는 당황하여 도망가려고 했으나, 평범한 제국민이 아르콘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쾅-!

카론은 남자의 팔을 뒤에서 붙잡아, 그를 바닥에 짓누르며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익…!”

남자가 마구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도, 카론은 그를 제압한 손에서 힘을 풀지 않고 있었다. 카론은 그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래, 정말 ‘제압’만 했다.

“카론, 안 빡쳐?”

“예?”

“네가 한 대 칠 줄 알았는데, 안 치길래.”

“제압하라고 하셔서.”

“…아.”

정말 지나치게 말을 잘 듣는 카론의 모습을 보자, 또다시 가슴이 찌르르 울려 오는 기분이었다.

자이든, 산체스, 패티와 매티…. 다양한 방향으로 말썽인 그놈들을 떠올리다가 눈앞에 있는 카론을 보자니 카론에 대한 호감도가 수직상승 하는 것 같았다. 역시 맞후임이 짱이야.

내가 감동에 젖어 있던 그 순간, 발버둥만 치고 있던 흑마술사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모든 것이 무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그의 벌려진 입 너머로,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검은 혀가 보였고.

지금 보니 그 검은 혀는 마법진 같은 것이 그려진 흔적이었다!

그가 주문을 외자마자 내가 뭔가 대처할 새도 없이 그의 혀에서 검은 연기가 휙 풍겨져 나와 나를 강타했고.

“…음.”

나는 무언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너 방금 흑마술 쓴 거 아니었냐?”

그렇지만 나보다도 더 당황한 건 역시 흑마술사 본인인 듯했다.

“뭐지?! 몇 년 동안 아껴 둔 비장의 무기였는데! 완전히 자아를 잃고 백치가 되어야 하는데!”

아하….

자아, 그래, 자아라.

‘그건 옛날에 이미 한 번 잃어버렸었지….’

이 세계로 넘어오며 과거에 나에 대한 것도 모두 잃고, 이름까지 잃어버림으로써 이전 세계에서의 자아는 완전히 끝내 버렸으니까.

아무래도 그의 흑마술이 내게 통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 같다. 잃어버릴 자아가 없어서….

물론 나는 나를 사루비아로 여기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열일곱의 사루비아부터 나였고 그 이전은 내가 아닌…. 어쨌든 복잡한 문제이다.

흑마술은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더욱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제 흑마술사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는 꼴이, 내게는 다른 흑마술도 통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 같았다. 아마 내가 흑마술에 내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물론 그가 스스로 그렇게 오해하고 얌전히 있어 준다니, 내게는 잘된 일이었다.

“이 꽉 물어라.”

그렇게 말하며 내가 주먹을 높이 쳐들고 흑마술사를 치려 한 순간.

“저, 저기요! 계약 마법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는 대신, 저를 도와주지 않으시겠어요~?”

“…예?”

잠깐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계약 마법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예, 보아하니 저를 찾는 국경방위군이신 것 같고, 제 정체가 발각된 모양인데요~. 사실 계약 마법이라는 게 참 복잡한 프로세스인데~ 이게 매년 할당해야 하는 넘버가 있다 보니, 블러드가 계속 희석되더라도 마법이 발동된다고나 할까요~? 하프 혼혈이나 쿼터 혼혈은 물론이고, 이제 옥타브 혼혈까지 국경방위군에 가득한데, 그만큼 계약 마법의 파워도 약화되었고, 그 틈을 잘 유틸라이즈한다면~.”

“…일단 숨 좀 쉬면서 천천히 말해 봐.”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살고 싶은 듯 그가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예, 우리 클라이언트 님도 충분한 인포메이션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이종족의 블러드는 점점 희석되고 있잖아요?”

“그렇지.”

이제는 순혈 이종족을 찾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국경방위군에서 ‘이종족’이라고 불리는 부대원들도 다 제국민의 피가 조금씩은 섞여 있겠지.

“그럼 순혈 이종족만 징병하게 된다면, 국경방위군은 결국 병사들의 넘버를 채워 넣지 못하겠죠?”

“그래.”

“계약 마법은 매년 스페시픽한 넘버의 이종족을 각성시키는 스트럭처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국민의 블러드가 더 많이 믹스된 사람들까지 국경방위군에 끌려가고 있답니다~. 그럼 저희는 그 틈을 유틸라이즈 하면 돼요~.”

흑마술사는 정말 상담원처럼 친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날 빡치게 만들었지만.

“뭐야, XX. 니 말대로라면 황실은 그냥 아르콘을 박멸하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 마물의 수를 줄이는 쪽이 아니라 아르콘의 수를 줄이는 쪽에 가깝잖아.”

“아무래도 그게 황실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겠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됐고, 그래서 계약 마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다는 건데?”

“예, 저만의 특별한 메카니즘이 존재하는데요~. 우선 저는 다른 흑마법사들과 다르게 마력 3회전 공법을 사용한답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사용하는 기억 마법이나, 저주가 이 마력 3회전 공법을 사용한 예시인데요~.”

그제야 나는 아까부터 흑마술사가 ‘계약 마법에서 벗어나는 법’은 전혀 얘기하지 않고 쓸데없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쓸데없이 긴 말, 그리고 쓸데없이 문장에 섞어 쓴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는 용어’들.

‘…아하. 그냥 사기 치고 있는 거였군.’

이 자식이 옆 마을에서 사기로 한탕 치고 왔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계약 마법 해제는 무슨, 하긴 그런 걸 할 줄 아는 흑마술사가 있었다면 산체스가 국경방위군에 끌려 올 일은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그냥 예쁘게 웃었다.

“XX야, 입 다물어라.”

“예? 클라이언트 님, 뭐라고요?”

퍽-!

역시 목보다는 명치가 타격감이 나았다.

“카론, 너 원한이 있다며. 네가 직접 칠래?”

“음, 사루비아 님이 때리시는 걸 보는 게 저는 더 좋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내가 네 몫까지 쳐 줄게.”

폭력과 공포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 * *

카론의 인생은 언제나 뭔가 비어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애정도 없이 일만 지시하던 양부모를 지나.

“너, 이종족이구나? 흠, 순혈이면 부모가 난리 치겠지만… 얘, 너희 부모님은 살아 있니?”

그가 마을에 찾아온 흑마술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그럼 나랑 함께 갈래? 돈을 충분히 벌 수 있을 텐데.”

그는 그 흑마술사가 자신을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그렇지만 양부모에게 아무런 정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차라리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자신에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 뒤 흑마술사에게 이용당하던 동안에도, 카론의 인생은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로 흑마술사에게 부림당하던 다른 이종족들은 그곳을 탈출하려 시도하기도 했는데, 카론은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와 지내는 동안 천성적으로 반사회적이었던 카론의 성격은 점점 더 비윤리적으로 변해 가긴 했지만, 카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가끔씩 공허함을 느끼고는 했지만, 그 자신도 무엇이 비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자신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저 그대로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흑마술사에게 이용당하던 어느 날, 카론은 실수로 기밀이 적힌 서류를 보고 말았다.

이종족의 계약 마법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카론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는지, 흑마술사는 기밀 서류에 관한 그의 기억을 지워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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