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기억나는 순간부터, 카론은 자신을 키우는 노부부와 함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의 양부모라고 했다.
그의 친부모는 국경방위군에서 장교로 일하며 카론을 조부모에게 맡겨 놓고 주말에만 보러 왔는데, 마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그의 조부모까지 나이가 들어 사망하자, 그 옆집에 살던 부부가 카론을 데려온 거라고 했다.
그의 양부모는 카론에게 썩 친절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고된 집안일을 시켰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방 손찌검을 날리고는 했다.
그렇지만 카론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을 딱히 서럽게 느끼지는 않았다. 꼭 감정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그저 무덤덤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남자가, 카론이 아르콘임을 알아보고 자신과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넸다.
“바로 그 남자가 흑마술사였습니다.”
“…아.”
이전에 윈터가 말했던 내용.
흑마술사들이 어린 아르콘들을 이용한다고 했던 그 말.
‘멀리 갈 것 없이 그게 바로 카론의 과거였구나….’
카론의 과거가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흑마술사 아래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던 거겠지.
재료 손질과, 마물의 시체 해부와, 그리고 사람의 시신…까지 다뤄 봤을지도 모른다. 망치는 그래서 익숙했던 거고.
그러고 보니 카론은 그동안 흑마술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입대 전 흑마술사와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산체스가 별로라고 한 적이 있고, 흑마술 아티팩트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때는 단지 카론이 뛰어난 육감 때문에 본능적으로 흑마술을 찜찜해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다 흑마술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랬던 거구나.’
본인이 흑마술사에 의해 입었던 피해 때문에 기억을 잃고 나서도 흑마술을 꺼렸던 거라니, 진작 그 사실을 알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그래서 기억은 왜 잃었던 건데? 흑마술사를 따라갔다면서, 왜 기억을 잃고 네 원래 집 앞에 서 있었던 거고?”
“아, 그건….”
카론이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그 흑마술사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알아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을 봤는데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흑마술사가 제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흑마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억을 전부 날려 버리게 된 거였습니다.”
하긴, 화재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었다기에는 좀 이상하긴 했다.
기억이 너무 많이 날아가 있었고,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누가 인위적으로 카론의 기억을 조작한 쪽에 가까워 보였지.
“그럼 그 불… 양부모님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던 거는…?”
“제 기억이 완전히 날아가서 수습이 불가해지니까, 그냥 양부모님의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것처럼 보이려고 만들도록 저를 그 집 앞에 데려다 둔 것 같습니다.”
…정말 환장할 이야기였다.
사실 어릴 때 흑마술사에게 이용당하다가 기억까지 날려지고 양부모님까지 잃고….
그렇지만 가장 어색한 건, 이 이야기를 얘기하는 카론의 모습이 너무 해맑아 보였다는 점이다.
‘나라면 진즉에 나를 이용해 먹은 흑마술사를 죽여 버리겠다고 날뛸 텐데….’
하지만 카론은 정말 스스로의 과거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예?”
“과거를 깨달았으니까, 이제 흑마술사에게 복수한다든지….”
“예? 복수할 이유가 있습니까?”
“네 기억도 망가뜨리고 양부모님도 죽였잖아.”
“기억이 사라져도 별로 삶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양부모님도 원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전 지금이 좋습니다.”
“…음, 아니면 원래 뭘 할 수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았으니까. 이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망치로 내리치고 다니겠다든가….”
“그런 건 나쁜 일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난 가끔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든.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카론의 과거를 듣고 나서, 나는 그의 과거를 알기 전보다 더욱 답답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분명 원작은 가볍고 발랄한 군부물 로맨스였는데? 원작 남주들의 불행한 과거사 같은 건 나오지 않았는데?
그들의 최대 역경은 고작해야 원작 사루비아가 죽은 것 정도였다. 그들의 숨겨진 다크한 과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너무 뜬금없는 거 아냐?’
작가가 이런 가벼운 소설에 안 어울리는 비설을 남주4에게 숨겨 놨을 줄은 몰랐다. 아니, 진짜 어색하잖아.
게다가 대놓고 어두운 거면 ‘아하, 작가가 남주4에게 매력 포인트를 부여하려고 어두운 과거를 숨겨 놨구나!’ 했을 텐데. 정말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얼마 전 하던 고민인, 기억을 되찾은 카론의 성격이 변할 가능성을 다시 머릿속에 그려 봤다.
카론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로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는 이전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흑마술사의 일을 뒤처리하고 불법적인 일까지 했던 과거를 떠올려 냈다.
더 이상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에 거리낌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그의 행동이 미묘하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후임들이 마음에 안 들면 칠 수도 있는 거고.
카론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고 있던 그 순간,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깐. 그런데 아까 그 남자랑 부딪친 거랑 흑마술이 깨진 거랑 뭔 상관이야? 흑마술이 그렇게 잘 깨져?”
내 질문에 또 다시 카론은 내 속을 뒤집어놓을 만한 말을 꺼냈다.
“아, 방금 매티를 뽑을 때 부딪쳤던 그 사람이 저를 이용했던 그 흑마술사입니다.”
밀짚모자를 쓴, 민간인처럼 보이던 그 사람?!
‘…어쩐지 카론을 무서워하더라! 이종족이라 그런 게 아니라, 이제 강해진 카론이 혹시 자신을 알아볼까 봐 그런 거구나!’
대체 이 개연성 없는 상황들의 연속은 뭐지?
“야, 야…! 도대체 왜 그 사람이 여기…!”
목청을 높여 외치다가,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밀짚모자를 쓴 사람은 카론을 이용하고 기억까지 날려버린 흑마술사다.’
그리고 알타이르네 부대가 수색하고 있는, 사기를 치고 다니는 흑마술사.
한 마을에 흑마술사가 둘이나 있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 둘은 동일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그, 그놈을 잡았어야 했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그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넌 그놈한테 아무런 원한도 없던 거야?! 대체 왜 그대로 보냈어?!”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드물게 카론에게 목소리까지 높여 가며 말했다. 이 상황이 굉장히 어이없었으니까.
“그 흑마술사에 대해 안 좋은 마음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지금은 얌전히 있으라고 하셔서.”
“…뭐?”
그제야 카론에게 했던 말을 되짚어본 나는, 모든 상황을 깨닫고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미치겠네….’
흑마술사가 그저 평범한 마을 주민인 줄 알았던 내가, 민원을 피하기 위해 얌전히 있으라고 해서.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고, 그를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카론은 원한을 억누르며 그에게 자신이 부딪친 것에 대해 얌전히 사과나 했던 것이다.
‘이래서였구나.’
…카론에게 잊어버린 기억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원작에서 카론의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느냐 마냐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이야기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테니까.
원작에서 카론의 사라진 과거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뤘던 특성은, ‘지금은 밝지만 사실 아픈 과거가 있는…’이 아니라, ‘늘 해맑고 여주인공을 따르는 성격’이었으니까.
그에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바로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였다.
기억 좀 되찾았다고 카론이 조금이라도 변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괜히 카론을 걱정한 내가 나빴다.
“카론…!”
결국 그를 힘주어 내 품으로 꽉 끌어당기며, 나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말 잘 듣는 애를 무슨….’
카론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다.
함께 사랑의 편지를 쓸 때도, 내가 무슨 일을 시키든, 그는 언제나 내 편에 있었다.
고작 초반에 자신을 잘 챙겨 준 맞선임이라는 이유로, 그는 언제나 나를 충실히 따라왔던 것이다.
“울 막내 바보같이 착해서 어떡해….”
내가 어떻게 카론이 갑자기 변할 거라고 걱정할 수 있었던 거지?
꼭 카론과 처음 친해졌을 때의 그날처럼, 나는 앞으로도 카론을 잘 챙겨 주기로 마음먹었고.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또 했다.
“죽여 버리겠어….”
감히 카론을 이용했던 그 흑마술사 XX.
마침 알타이르네 부대가 그를 쫓고 있으니, 잘된 일이었다.
‘어떻게든 그 XX를 XX해서 XXX해 버리겠어.’
* * *
내가 곧장 한 일은 윈터에게 달려가 방금 전 카론이 흑마술사와 접촉했던 일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흑마술사는 국경방위군이 쫓고 있는 흑마술사이니, 이 기회에 카론에 대한 원한까지 갚아 줄 수 있다.
윈터는 이 상황을 소대장에게 보고했고, 그 뒤로 알타이르네 부대와 우리 부대는 연합하여 수색 작전을 시작하였다.
“흑마술사는 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있는 얼굴이고, 밀짚모자를 썼다고 한다.”
윈터는 우리가 알아낸 흑마술사의 인상착의를 모두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아무리 약하고 힘없어 보이더라도, 그는 지금까지 제국 북부에서 이름을 떨쳐 온 흑마술사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그 후로는 윈터답게 흑마술사에 대한 설교가 이어졌다.
정말 당연한 소리지만, 흑마술사가 위험한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 어떤 흑마술을 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정신을 현혹시킬 수 있고, 우리를 끔찍한 공포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에게 저주를 걸어 심장이 멎게 만들 수도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흑마술사가 행동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흑마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하게 작동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미리 재료를 준비하고, 주문을 준비하고, 아티팩트를 만드는 경우에는 더 긴 시간을 요하고….
그러니 흑마술사가 우리를 발견한다 한들 당장 살인 저주 같은 걸 날려서 우리를 죽일 수는 없기에, 그가 흑마술을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흑마술사를 후드려 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