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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82화 (100/233)

“알타이르 님!”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니, 윈터와 즐거운 얼굴로 대화하던 알타이르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루비아, 왜?”

내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기 때문에, ‘꼰타이르’이던 알타이르는 내게만큼은 아주 관대해졌다.

“오늘 잡으러 오신 흑마술사가 그 사람입니까? 그, 그… 제국 북부의 3대 흑마술사….”

“아, 맞지. 그중 한 명이 이 마을에 있는 걸로 추정돼서.”

“아하….”

“너희가 이번에 침수 피해 때문에 지원을 나온 것도, 그 흑마술사 때문이잖아~.”

“예?”

처음 듣는 얘기에 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니, 알타이르는 오히려 몰랐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야? 설명 못 들었어? 이번에 제국 북부의 몇몇 마을들이 침수 피해를 입은 것도, 다 그 흑마술사가 사용한 흑마술의 대가 때문인 건데.”

“…예?”

“흑마술의 대가로 특정 마을에 비가 쏟아진 거라고 하던데? 지금 우리 부대가 바로 그 흑마술사를 추적하려고 나온 거고.”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우리 산과 그리 멀지도 않은 지역인데, 우리가 있던 부대는 멀쩡한데 근처에 있는 몇몇 마을만 물에 잠길 정도로 심한 침수 피해를 입다니.

“사실 우리도 못 잡고 흐지부지될 것 같긴 한데, 일단 잡으려고 노력했다는 명분이 필요해서, 뭐.”

“그 흑마술사가 이 마을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겁니까?”

“에휴, 말도 마라…. 그 흑마술사가 유명한 사기꾼인데, 아마 옆 마을을 잔뜩 헤집어 놓았으니까 이제 올 곳은 여기밖에 없다.”

“아하. 그런데 그 일은 흑마술 수색 특수군의 역할 아닙니까?”

“우리가 놓치면 거기로 넘어갈 거야. 그쪽 체계가 워낙 특이해서.”

알타이르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웬 XX 흑마술사 하나가 사고를 쳐서, 알타이르네 부대는 그 흑마술사를 추적하러 나온 거고 우리는 그 사고를 수습하러 나온 거군.

외부 근무가 편해서 좋은 건 좋은 거고, 그거랑 별개로….

‘왜 이 XX 흑마술사 XX들이 저지른 사고는 다 우리가 수습하냐고.’

그들 때문에 추가적인 일이 생겼다는 걸 떠올리면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에이프릴, 제발 파이팅….’

나는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갔을 에이프릴을 다시 한번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뭐 할 때마다 에이프릴이 옳았음이 점점 증명되다니. 정말 치욕스럽다….

* * *

이번 작업이 진행되는 곳은 번화가의 거리였다.

저번에 작업한 곳은 평범한 시골 농가였는데, 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고 다양한 가게들이 늘어져 있는 시장에 있었다.

소설 속에서 흔히 묘사되고는 하는 수도의 시장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이 세계에 온 뒤 보아왔던 곳 중에는 제일 화려한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사회?’

오랜만에 사회의 공기를 느끼는 내 얼굴은 점점 상기될 수밖에 없었지만.

“무슨 일이야?”

“수리하나 보지.”

“이종족들 아냐?”

우리가 번화가에 있다는 얘기는, 그만큼 우리를 보는 제국민들도 많았다는 의미였다.

제국민들은 우리를 보고 놀란 듯 ‘이종족’이라고 속닥거리며 우리를 피했고, 덕분에 우리가 가는 길은 휑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도록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진짜 사람 빡치게 하네.’

내 기분은 점점 나빠졌고 내 얼굴을 본 밀피가 히익 소리를 냈지만, 우리는 작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번 작업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웅덩이를 메꾸는 일이었다.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시나의 조언에 따라 모범적인 군인의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역시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으니깐 편하군.

윈터는 몇 명씩 적당하게 인원을 나눠 놓았고, 이번에 나와 함께 웅덩이를 메꾸고 있는 건 저번과 같은 부대원들, 카론과 패티, 매티, 제이슨이었다.

“카론, 있잖아.”

“예?”

내 옆에서 열심히 삽질을 하던 카론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아주 조금 기억이 돌아왔다고 했잖아. 궁금한데, 어떤 건지 말해 줄 수 있어?”

“아, 기억 말씀이십니까.”

카론은 그 자리에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별건 아니었는데… 우선 저번의 그 마을은 제가 알던 곳이 맞았습니다.”

“그래? 예전에 잠깐 살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예전에 잠깐 그곳에서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 무슨 일?”

“사실 그게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남자 한 명을 계속 따라다녔는데…. 그런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 그렇구나….”

“그리고 이 마을도 제가 일하러 자주 왔던 마을 같습니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아마 저번에 갔던 옆 마을보다 더 많이 왔던 것 같습니다….”

카론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을을 살폈다.

“이렇게 한 번만 봐도 이 마을에 있었던 기억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음…. 이곳은 좀 더 사람이 많은 마을이니까, 시장에 오느라 자주 왔을 수도 있겠지. 혹시 다 기억나면 나한테도 얘기해 줄 수 있어?”

“사루비아 님이 원하신다면 당연히 알려드릴 겁니다!”

카론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눈을 부드럽게 휘어 웃었다. 평소와 같이 마냥 해맑아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긴 했다.

‘그래, 그래도 원작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성이 있는데 캐붕이 나진 않겠지.’

생각해 보니 아퀼라와 내가 너무 과한 걱정을 했던 것도 같다. 카론은 이렇게 별생각 없어 보이는데.

“카론, 내가 몇 번이나 말한 거지만.”

“예.”

나는 그동안 내가 기억을 잃은 카론을 위해 몇 번씩 해 주었던 기본 상식 주입을 다시 한번 시작했다.

“너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부분을 고쳐 달라고 정중하게 얘기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이면 인내해야 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건 절대 안 되고.”

“예!”

“국가가 금지한 거는 당연히 하면 안 되고. 그리고 너보다 약한 존재가 있는데 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도와야 해.”

“예!”

역시 대답은 늘 잘했다.

“내가 없을 때는 시키지 않은 일 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고.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있는데 내가 없으면 아퀼라가 하는 대로 따라 하고.”

나는 윈터에 빙의한 듯 카론이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아, 지금처럼 주위에 민간인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 조심해야 해. 아르콘이 아닌 사람들 말이야.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약하고, 시비 붙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특히 무기 같은 건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꺼내지 않도록 하고.”

사실 선임들 앞에서야 늘 헤실헤실 웃고 있는 얼굴이고 특히 맞선임인 아퀼라와 내 앞에서는 더 해맑아져서 자주 잊고는 하는 사실이지만, 덩치만 보았을 때 카론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그가 자신의 후임들에게는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후임들이 잘못을 저지르든 저지르지 않든 화낼 생각하지 않고 우리만 졸졸 따라다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화를 낸다면 후임들은 좀 쫄았을 테니까.

“모두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사실 이 내용은 이미 카론이 입대한 뒤 지금까지 카론에게 백 번은 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카론은 이렇게 명심했다고 하고, 아주 가끔씩 실수를 해서 사고를 치고는 하지…. 그러니 반복 학습은 중요하다.

“휴, 이제 일이 다 끝났으니까 가자. 또 다른 일을 하러.”

“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진흙에 몸이 반쯤 빠진 채 낑낑대고 있는 패티와 매티를 발견했다.

“그냥 제이슨…. 네 동기들 좀 챙기라니까….”

“저도 정말 억울합니다….”

“에휴….”

가뜩이나 카론 때문에 심란했는데, 그들을 보니 골이 더 울려 오는 기분이다.

“카론, 가서 쟤네 빠져나오는 것 좀 도와줘….”

“예!”

내가 손을 대충 휘저으며 가 보라는 신호를 보내자, 카론은 그곳으로 달려가 제이슨과 함께 패티와 매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악!”

카론이 무 뽑듯이 그를 들어내니 패티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튕겨져 나왔고.

“악!”

그다음으로는 매티가 뽑혀 나왔다가….

“…아, 죄송합니다.”

매티를 뽑아내며 그 반동으로 뒤로 밀려났다가, 길을 지나던 사람과 의도치 않게 충돌하게 된 카론이 사과했다.

평범한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남자가 놀란 눈으로 카론을 보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이종족을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망했군.’

제발 나중에 이종족이 자신과 몸을 부딪쳤다고 민원이나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론, 일단 지금은 얌전히….”

나는 여전히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카론에게 한 번 더 사과를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죄송합니다!”

카론이 허리를 굽혀 다시 한번 인사하니, 그제야 그 남자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괘, 괜찮아요….”

카론의 사과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남자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 하면서도 카론의 눈치를 보는 게, 아무래도 그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이종족이 두렵나.’

나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남자가 떠난 자리를 노려보며,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후임들에게 손짓했다.

“이제 진짜 가자.”

그때, 평소의 그답지 않게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카론이 날 불렀다.

“사루비아 님.”

“…어?”

카론이 어쩐지 이상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 방금 모두 기억났습니다.”

“…뭐?”

설마 기억을 다 되찾았다는 건가?

이렇게 갑자기? 대체 무슨 개연성으로?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카론은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제가 기억을 잃었던 건, 흑마술 때문이었습니다.”

“…응?”

“방금 부딪치면서 흑마술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되돌아온 겁니다.”

“대, 대체 무슨 소리인데?”

그가 내놓는 이야기의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마침내 카론이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흑마술사가 이용하고 있던 어린 아르콘들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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