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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74화 (92/233)

고스트그룸은 어느 틈에 타 중대의 부대원들 몇 명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고, 그 옆에 있던 병사들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간격 벌려!”

“다리를 공격해!”

공격받았던 16중대의 부대원들은 간신히 뒤로 물러나며 간격을 벌렸고, 고스트그룸의 정면으로 총알이 퍼부어졌다.

각각 고스트그룸의 양쪽 다리 앞에 서 있었던 17중대와 우리 18중대는, 검을 든 병사들이 가까이 접근하여 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수, 대기.”

“예.”

내 옆에 있던 엘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총을 쓰는 인원인 엘과 나, 그리고 다른 소대의 인원들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실수로 총을 쏘다가 병사들을 공격하면 안 되니까.

그리하여 나는 불안하게 전투를 지켜보기만 했다.

일단 아직까지 나는 안전한 것처럼 보였지만….

병사들은 분대에 따라 교대해 가면서 고스트그룸에게 달려들었고, 그동안에도 고스트그룸은 정면에 있는 16중대의 부대원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스트그룸의 다리를 베어내려 애썼지만, 1급 마물답게 검이 잘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불을 두른 아퀼라의 검이 주변을 화하게 밝히며, 마침내 고스트그룸의 다리 하나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됐어!”

그 기세에 이어 윈터도 다리 하나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고, 17중대의 병사들은 여럿이서 꼬리에 달려들어 아까부터 그들을 후려치던 꼬리를 베어 냈다.

비록 많은 병사들을 희생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우리가 승기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 아직까지는.

그때, 부상을 입은 고스트그룸이 고통스러운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그건 정말로 해괴하고 기이한 울음소리였다.

드래곤의 울음소리는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흉포한 짐승의 것이었다면 고스트그룸의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귀신처럼 음산하고 우울한 소리였다.

“으으….”

막 교대하고 뒤로 물러난 제이슨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스트그룸의 울음소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힘이 있었다.

“안 돼!”

울음소리와 함께 고스트그룸이 또 누군가를 빨아들였는지, 16중대 쪽에서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끈질긴…!”

엘이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다리와 꼬리가 잘려 나가고 지금도 계속해서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고스트그룸의 생명력은 정말 질겼다.

“고스트그룸은 꼬리가 재생되니 조심하도록!”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윈터가 외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혼란스러운 전투 속에서 지시를 빠르게 따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조심해!”

“아앗!”

새로 돋아난 꼬리가 크게 휘둘려졌고,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꼬리에 맞은 병사들은 자리에 넘어지기까지 했으니까.

탕-! 탕-!

16중대 쪽에서 입 안으로 총을 열심히 쏘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마침내 고스트그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우우우….”

고스트그룸은 다시 한번 구슬프게 포효하고, 큰 꼬리를 허공에서 몇 번 휘두르더니.

“…뭐야?”

“피해, 피해!”

고스트그룸의 몸이 뒤집혔다…?

‘뭐지?’

고스트그룸은 남아 있는 꼬리와 다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뒤집어 버렸다. 아니, 그건 뒤집기보다는 몸을 굴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고스트그룸은 산비탈을 따라 자신의 거대한 몸을 스스로 굴리고 있었다!

“으아악!”

“손을 잡아!”

고스트그룸은 우리가 있던 방향으로 굴러왔다. 거대한 몸이 자신을 덮치려 하자 당황한 병사들이 황급하게 달려 몸을 피했다. 그 거대한 크기를 보았을 때 그 아래에 깔리기라도 하면 즉사할 것처럼 보였으니까.

“XX!”

그 엄청난 덩치 때문에 고스트그룸은 멀쩡한 다리로 움직일 때보다 몸을 굴려 움직이는 게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고스트그룸의 몸통 중앙에 있어서 차마 옆으로는 피하지 못했던 병사들은, 뒤에서 굴러오는 고스트그룸을 피해 앞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달려야 하나 머뭇거릴 때, 엘이 외쳤다.

“일단 달려!”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곧장 그의 말을 따랐다. 이곳에서 선임의 말을 따르는 건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우리는 구르다시피 하며 달려 내려갔고, 우리의 뒤를 따라 거대한 고스트그룸의 몸통도 굴러왔다. 심지어 나무 몇 개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평지에서 멈추도록!”

윈터의 말대로 저 멀리에 우리도, 고스트그룸도 멈출 수 있을 법한 평지가 보였고, 우리는 정신없이 앞으로 달렸다. 중간에 내 발을 주체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며 달렸다.

마침내 평지에 도착하며 나는 황급히 달리기를 멈췄고, 발이 꼬여서 한 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벌떡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선두에서 달렸기 때문에 가장 먼저 도착한 엘과 나는 얼른 자세를 잡고 뒤를 돌아봤다.

고스트그룸이 굴러오는 아래에서 우리 중대의 병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달리고 있었고, 고스트그룸의 뒤를 다른 중대의 병사들이 급박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지금 쏩니까?!”

“아직. 다른 부대원들이 맞을 수 있어.”

쿵-!

이윽고 고스트그룸이 평지에서 천천히 회전을 멈추며 요란한 소리를 냈기 때문에 나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평지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윈터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평지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연달아 고스트그룸에게 달려들었다.

“사루비아, 우리는 이쪽!”

“예!”

자리를 잡은 우리는 고스트그룸에게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빠르게 탄환을 장전하고, 총을 연달아 쏘고, 다시 탄환을 장전하고.

‘XX, 이 시대는 이 정도가 한계겠지.’

얼마 쏘지도 못하고 탄환을 다시 장전하는 일을 반복하자니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정신없이 총을 쏘고, 부대원들이 정신없이 고스트그룸의 몸통 뒤쪽을 공격하고 있을 때.

그것이 갑자기 움직였다.

고스트그룸은 지금까지 보여 준 적 없던 빠른 속도로 앞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건 엘과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스트그룸이 달려들었다는 의미였다.

“XX!”

우리는 그것을 피해 마구 뒤쪽으로 달아나다가.

“아.”

뒤쪽이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서 커다랗게 쩌억 벌려진 고스트그룸의 입이 보였다.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시간 동안에, 주위의 모든 상황이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머릿속에 인지되었다.

“어? 어?”

낭떠러지에서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가려고 하는 엘.

눈앞에 있는 고스트그룸의 커다란 목구멍.

“구해! 빨리!”

이성을 잃고 처절하게 소리를 지르며 고스트그룸의 머리를 내리찍으려는 윈터.

“아….”

몸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려는 상황에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이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낭떠러지로 떨어질 경우,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함.

고스트그룸에게 먹힐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 일은 이미 실패했으므로.

내가 대비한 마지막 경우.

고스트그룸에게 먹히고도 살아남기.

…나는 엘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고스트그룸의 커다란 입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입 안으로 뛰어들고.

“뭐, 뭐야?!”

졸지에 나에게 이끌려 온 엘이 옆에서 당황한 목소리를 내자마자.

탁-!

고스트그룸의 입이 닫히고, 벌려진 입을 통해 들어오던 한 점의 빛마저 사라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안에 갇힌 이 순간, 당황할 법도 했지만 나는 빠르게 행동했다.

“엘 님!”

내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향료의 뚜껑이 열렸다.

내가 주방에서 훔쳐 왔던 바로 그것. 수상쩍게 주방에서 얼쩡거린 탓에 블레어와 토피오가 나를 탈탈 털긴 했지만, 그 와중에 내가 간신히 챙겨 나올 수 있었던 바로 그 재료.

‘도마뱀꼬리풀 가루!’

패티가 실수로 수프에 엎었던 그 재료! 마물들이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바로 그 재료! 그리고 그 마물들에는 고스트그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향료를 고스트그룸의 입 안에서 미친 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향료가 안에서 탈탈 나오며, 내 얼굴에도 향료가 묻는 것 같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고스트그룸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려고 하는 대신, 거부감을 느끼고 꿀렁이며 우리를 뱉어 내려고 들었으니까.

“사, 사루비아?”

엘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향료 통이 완전히 비었을 때, 고스트그룸의 내벽은 기분 나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를 뱉어 내고 싶을 거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고스트그룸의 목에는 안에 있는 것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막이 있으니까.

이건 동물들을 산 채로 삼켰을 때 그것들을 천천히 소화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지만,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을 삼켰을 때는 고스트그룸에게도 해가 될 수 있었다.

역겨운 향료 때문에 우리를 삼키기는 싫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뱉어 낼 수도 없는 상황.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는 고스트그룸의 목구멍이니까….

“엘 님!”

“어?!”

“저희는 고스트그룸의 코로 나가야 합니다!”

“뭐, 코?! …아!”

짬이 있기 때문에, 엘도 내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이대로 목구멍을 따라 위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우리도 죽는다.

입으로 나가는 길은 막혀 있으니….

우리는 목구멍과 연결되어 있는 콧구멍으로 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스트그룸은 아주 거대한 마물이니까, 사람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콧구멍도 거대했다.

물론 기분은 아주 나쁘겠지만….

고스트그룸의 몸 안에서 내벽을 공격해도 가죽을 뚫지는 못할 테니,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총이고.’

고스트그룸은 오러를 실어야 겨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강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오러로 격발음을 차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발사되는 탄환에 오러를 둘러 힘을 실어주는 건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었다.

‘바깥에서는 다들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절망하고 있으려나?’

고스트그룸의 가죽이 두꺼운 건지, 바깥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얼른 행동하자.

“엘 님!”

“그래! 기다려!”

시야는 여전히 어둠에 적응되지 않았지만, 엘이 허공에서 총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잡는 듯했다.

“사루비아! 이쪽 내벽을 타고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예!”

나는 엘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해, 얼른 고스트그룸의 내벽에 손을 뻗었다. 말캉한 감촉이 정말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다.

‘…참자. 빨리 나가야 한다.’

혹시나 고스트그룸이 향료의 맛을 완전히 극복하고 우리를 삼키려 들기 전에 빨리 이곳을 나가야 했다.

그리하여 엘과 내가 힘을 합쳐 내벽을 타고 올라가려던 바로 그 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지?!”

내가 멍한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고개를 들었을 때.

“사루비아!”

“아….”

머리 위로 환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사루비아! 엘! 괜찮나?”

…갈라진 고스트그룸의 가죽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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