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71화 (86/233)

* * *

한편 그 시각, 제국의 귀족들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지금의 시점에 와서는 시민연합군이 제국 전체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몰래 만남을 가져야만 했다. 요즈음 그들은 시민들이 자신의 집을 습격하지 않을지 매일 전전긍긍하고 있을 정도였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위대한 제국을 반란 수괴들로부터 되찾을 수 있을지 얘기해 봅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제국과 권력을 되찾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군사들을 보내 황성을 습격하도록 했지만, 그들의 방비는 생각보다 굳건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고용한 군사들마저 점점 새로운 임시 정부가 마음에 든다며 흩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무력마저 잃어 갔다.

그래서 그들이 새롭게 고민하고 있는 방안은….

“다른 왕국의 힘을 이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지금 공화정이 세워진 탓에 다른 군주정 나라들도 자신의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예, 그들은 아돌브 제국에서 일어난 일이 자신들의 지배 체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이라면 충분히 반란을 진압하는 데 힘을 빌려줄 겁니다.”

그렇게 상황을 되돌릴 방법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의 이야기는 제국 북부에 생긴 자치 도시 노스던 연맹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노스던 연맹은 최근 엄청나게 성장했더라고요.”

“예, 체계를 꽤 갖춘 모양입니다.”

그들은 노스던 연맹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전에 노스던 연맹으로 보낸 군대가 형편없이 깨져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최근 노스던 연맹이 흑마술사를 받아들인 거 아십니까?”

“아, 맞아요. 제국 내에서도 ‘흑마술 자치 도시’라고 불리더군요.”

“그래서 경계도 엄청나게 삼엄해졌더라고요.”

“우리가 노스던 연맹 영역을 탈환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꺼낸 그 말에, 귀족들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곧 귀족 한 명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무력으로 이종족들을 이길 수는 없죠.”

“게다가 거기 흑마술사들까지 가세했으니…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이제는 노스던 연맹을 무너뜨리기는 무리일 겁니다.”

“그래요, 노스던 연맹은 괜히 건드리지 맙시다.”

결국 그들의 회의는 노스던 연맹만큼은 내버려 두자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 * *

나는 수뇌부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회의할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집에서 좀 쉬려고 했던 내가 투덜거리며 수뇌부에 도착했을 때, 에이프릴이 내게 전한 건 당혹스러운 소식이었다.

“임시 정부가 항의했어.”

“예? 무슨 항의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 법을 어기고 흑마술사를 받아들였냐는 내용이야.”

나는 황당해서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수뇌부의 일원들은 모두 심각한 얼굴로 편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껴서 편지를 읽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한 인사치레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핵심 문장은 이것이었다.

『흑마술사를 받아들이는 건 제국의 법을 위반하는 사항입니다.

노스던 연맹이 제국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제국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건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자치 도시에 왜 제국의 법을 논한단 말인가? 이곳은 우리의 법으로 굴러가는 자치 도시인데?

다른 수뇌부 일원들도 내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도 이 항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요. 다만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죠.”

“어떻게 해야 외교적 마찰을 줄일 수 있을지 말입니다.”

나는 그 말에 편지지 한 장과 펜을 빼 들었다. 그리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가 굽히고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노스던 연맹은 그 무엇보다 강하니까요.”

“확실히 흑마술사, 아니, 마법사가 합류한 이후로 저희는 강해졌긴 하죠. 무력 충돌을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네, 게다가 제국의 임시 정부는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곳이고요. 그러니까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나는 빠르게 펜을 움직였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준 내용이 적혀 내려갔다.

제국은 감히 우리에게 협박을 하려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 * *

제국의 임시 정부는 늘 바빴다.

그들은 제국의 법을 새롭게 정해야만 했고, 수장을 정해야 했고, 귀족들과 부르주아를 상대해야만 했으며, 시골에 있는 농민들을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고, 다른 나라를 경계해야만 했다. 그래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요즘 그 무엇보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 있었다.

“노스던 연맹에서 편지가 도착했다던데.”

바로 노스던 연맹이었다.

임시 정부의 일원들은 노스던 연맹에 관해 말을 얹기 시작했다.

“노스던 연맹은 너무 커 버렸어.”

“자치 도시를 허락한 우리 잘못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걸 철회하면 너무 쩨쩨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체면을 생각할 때입니까? 노스던 연맹이 나라를 집어삼킬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이전에 아르콘과 협력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노스던 연맹을 경계하고 있었다.

노스던 연맹이 브테인 왕국군을 내쫓아준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이 등을 돌린다면 그 무엇보다 무서운 적이 될 것이다.

그들은 노스던 연맹으로부터 도착한 편지를 뜯어봤다. 그리고 굳은 얼굴이 되었다.

“이건….”

『아돌브 제국의 임시 정부에게

잘 지내고 계십니까?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고 있군요. 임시 정부의 여러분도 따뜻한 봄기운을 즐기며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공문 확인했습니다. 흑마술사에 대한 임시 정부 여러분의 입장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임시 정부의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노스던 연맹은 연맹 내의 법을 따르는 자치 도시입니다. 저희는 흑마술사에 대한 규제를 해제했고, 흑마술사를 받아들인 건 노스던 연맹의 법을 따른 결과입니다.

저희가 임시 정부의 법을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스던 연맹의 수뇌부 드림』

“이게…!”

임시 정부의 일원 한 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편지의 어조가 무례할뿐더러 임시 정부를 무시하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건방진 일이군요!”

그들은 관성적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이 상황을 그들 입맛에 맞도록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노스던 연맹을 제압할 방법이 있습니까?”

“무력 충돌은 피해야 합니다. 손실이 더 큰 전투가 될 테니까요.”

“게다가 흑마술사까지 끌어들였으니 더욱 부강해졌을 겁니다.”

회의장에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 대응할 아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스던 연맹은 너무 강대해졌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결국 그들은 침울하게 그런 결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노스던 연맹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불가침의 도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

“우와! 따뜻한 물이 나와!”

화장실에서 물을 튼 내가 감탄했다.

그동안 수도관에서는 찬물만 나왔는데, 흑마술사들 덕분에 이제 따뜻한 물도 나오는 것이다. 역시 흑마술사들을 받아들인 건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신나서 곧장 욕조에 물을 받았다. 욕조에는 금세 따뜻한 물이 잔뜩 담겼다. 물 안에 손을 넣어보니 딱 적당한 온도였다.

“아퀼라, 아퀼라!”

내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아퀼라의 이름을 부르니, 그는 금방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사루비아?”

나는 방긋 웃어 보이며 욕조를 가리켰다.

“우리 욕조에 들어가자!”

그 말에 순식간에 아퀼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퀼라는 참 수줍음이 많았다.

나는 속으로 흑마술사, 아니, 마법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동안 욕조는 거의 장식품이다시피 했는데, 덕분에 저희는 한 욕조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얼른 옷을 벗고 한 욕조에 들어갔다. 물속에서 살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 정말 기분 좋았다.

아퀼라에게 몸을 기대어 누우며, 내가 말했다.

“아퀼라, 우리 결혼식 말이야.”

“응.”

우리의 결혼식은 정확히 일주일 남았다.

드디어 우리도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정말 감개무량했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일을 떠올리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정말로.”

아퀼라가 어쩐지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기다렸어.”

어쩐지 깊고 넓은 원한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기에 나는 숙연해졌다.

드디어 모든 게 다 끝났나 싶어 평화롭게 결혼이나 하려 했더니 갑자기 그냥 제이슨이 납치당하면서 흑마술사 건도 해결해야 했지…. 정말 끝까지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어쨌든 마법사들을 받아들여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어.”

“그게 뭔데?”

“결혼식에 마법사를 이용하는 거야!”

난 들뜬 목소리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마법으로 화려한 폭죽을 터뜨리고, 야외 결혼식이니까 혹시 비가 오면 식장에만 비가 안 오게 막아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바람이 부는 효과를 주고, 피아노 소리가 더 잘 울리게 해 주고….”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내가 따뜻한 물속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떠올리며 몽롱한 눈빛을 지으니, 아퀼라가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루비, 나는 네가 좋은 거라면 다 좋아. 나는 어떤 결혼식이라도 좋거든.”

“응.”

“예를 들어 당장 여기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좋아.”

“…다 벗고?”

“…우리 둘뿐이라면 나쁘지 않은데.”

나는 아퀼라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가끔씩 이 자식은 이상한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난 정말 행복해.”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예쁘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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