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 뒤, 나는 곧장 수뇌부로 향했다.
차이키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에 수뇌부 사람들과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흑마술사들이 노스던 연맹에서 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내가 그 소식을 수뇌부에 전하자, 수뇌부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니까 흑마술사들이 뭐라 했냐면….”
아까 차이키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사실 흑마술사들은 어딘가에 정착하여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제국에서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해제할 것을 요청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어디에서 흑마술에 대한 규제가 풀리든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노스던 연맹은 아주 매력적인 도시였다. 노스던 연맹의 사람들은 아르콘들을 받아들일 만큼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니, 흑마술사 또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흑마술에 대한 규제가 없는 도시라면 어디라든 다 좋았다.
그래서 차이키는 나에게 내내 깍듯한 태도였다. 그는 자신들을 노스던 연맹에 대한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이것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 그대로 수뇌부로 달려온 거고 말이다.
“흑마술사들을 받아들인다면 아주 유용할 겁니다.”
방위부의 최고위원이 말했다.
“우선 방위를 걱정할 필요가 크게 줄어듭니다. 자치 도시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과 부르주아의 연맹이 쳐들어온다 해도 병사의 부상 및 사망을 최소화하면서 이길 수 있어요.”
“게다가 노스던 연맹은 인구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죠. 흑마술사들이 의사 역할을 할 수도 있고요.”
행정부의 최고위원도 덧붙여 말했다.
“생활도 훨씬 윤택해질 겁니다. 농사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맞아요, 비록 흑마술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저희가 규제를 마련하면 되는 일이에요. 사람을 해치거나 마을에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흑마술을 허용하면 됩니다.”
몇몇 위원들이 흑마술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흑마술이라는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기술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어떤 아르콘들은 흑마술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건 어떡하죠?”
나는 머릿속에 카론을 떠올렸다.
“흑마술사들 중에는 어린 아르콘을 착취했던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과연 저희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흑마술사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유일하게 걸림돌이 되는 건 바로 이 문제였다.
흑마술사들은 어린 아르콘을 착취했다. 과연 다른 아르콘들은 흑마술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흑마술의 활용 방안을 논의하며 활기찼던 회의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노스던 연맹에 거주하는 것을 허용할 때 제한을 두는 게 어떨까요? 과거를 검증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게 가능할까요? 또 누군가는 다른 곳에서 나쁜 짓을 했을 거예요.”
“흑마술사들은 사실상 범죄자 집단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범죄자들을 우리 영역에 받아들이겠다고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또 그들이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뭐, 범죄자들이 맞긴 하지.’
흑마술사를 폄훼하기 위해 제국이 만들어낸 극단적으로 사악한 이미지와는 별개로, 많은 흑마술사들은 흑마술을 사용하기 위해 크든 작든 범죄를 저질러 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부산물을 거리낌 없이 외부에 방출한다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마술사들이 가진 유용함을 외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속죄의 의미로 우리 땅에서 일하게 할 수는 없을까요?”
“속죄의 의미로?”
“예, 사실 흑마술사들은 지금 노스던 연맹이 아니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떠돌이 신세에요. 지금 그들이 우리에게 굽히고 들어와야 하는 처지인 거죠.”
이 관계에서 갑과 을이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그렇다면 저희가 그들을 받아줄 때 조건을 내거는 일도 가능할 겁니다. 받아주는 대신, 반드시 주 몇 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식으로요.”
그건 꼭 감옥의 노역과도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다른 수뇌부 일원들이 내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른 거주민들도 흑마술사들의 수용을 납득할 수 있겠군요.”
“예,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라고 한다면….”
“거기다가 이득도 얻을 수 있고 말이죠.”
마침내 수뇌부의 총위원장의 결정이 떨어졌다.
“좋아요, 그렇다면 흑마술사들이 조건부로 노스던 연맹에 편입하도록 받아주는 걸로 합시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본 결정이었다. 앞으로 노스던 연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 *
먼저, 우리는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다.
“모든 재료들은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조항을 써넣죠.”
“기후를 변화시키는 흑마술은 금지합시다. 농사를 망칠 거예요.”
“마물이나 해충을 만들어내는 흑마술도요.”
흑마술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대가는 마을에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우리는 최대한 빈틈없는 규제를 만드느라 한동안 몹시 바빴다. 그래서 나는 며칠간 집에 늦게 들어가며 수뇌부에서 일해야 했다.
“사루비아, 요즘 피곤해?”
“음, 아니, 피곤하긴 한데 대충 그렇게 할 시간은 있는 것 같고….”
“대충 그렇게 하는 게 뭔데?”
“이런 거.”
물론 나는 그동안에도 아퀼라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음….
둘째로, 우리는 흑마술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을 시작했다.
아르콘들뿐 아니라 기존의 마을 주민들까지도 흑마술사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흑마술 중에는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도 있다는 사실을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흑마술의 이름을 마법, 흑마술사의 이름은 마법사로 바꾸었다.
다행히 그건 어렵지 않았다. 흑마술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의료 기술 덕분이었다.
“의사가 없었는데 덕분에 살았구먼!”
“의사도 치료하지 못한다는 병이었는데 살았어!”
의사가 부족했던 마을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금방 흑마술사를 받아들였다.
셋째로, 우리는 마법 연구 기관을 창설했다. 흑마술사들, 아니, 마법사들이 일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곳에서 매일 8시간씩 주 5일 동안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이전 세계의 기억에 비하면 양호한 처사였다. 그들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당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것마저도 많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렇게 하여 마법사들은 마을을 위해 일하게 되었고, 마을은 눈부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우와! 비가 내린다!”
가뭄일 때는 마법사들이 비를 내려주었고.
“침입자!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방지 흑마술은 수상한 사람을 잡아냈고.
“마물이 마을로 내려왔다!”
그들은 사람뿐 아니라 마물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마물을 제거하는 건 바로 우리였고 말이다.
아, 한편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와, 제이슨!”
“제이슨이 마법을 썼어!”
그랬다. 제이슨은 알고 보니 마법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빅팀이 쓴 위치 추적 마법을 목격한 이후로 그는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고, 마법사들로부터 천천히 마법을 배워 가고 있었다.
제이슨은 자신이 마법사가 된 것에 대해 몹시 감동하는 눈치였다.
“어쩐지… 그동안 내 인생이 너무 가혹하더니만 이런 보상을 주려는 거였구나.”
“축하해, 제이슨!”
“제이슨, 좋겠다!”
“하하, 이 녀석들!”
이제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가 성가시게 굴어도 허허 웃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요즘 제이슨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즘 일은 어때, 빅팀?”
빅팀은 제이슨의 마법 선생님이었다.
동시에, 그는 노스던 연맹에서 일하는 모든 마법사들의 수장이 되었다. 우리는 빅팀이 그동안 혁명에 공헌한 대가로 마법사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다.
그 결과, 빅팀은 자신을 따르는 수십 명의 마법사들을 아래에 두게 되었다.
“요즘은 정말 좋습니다, 하하.”
이전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태도가 된 빅팀이 말했다.
“이야, 정말 한 자리 차지하더니 사람이 달라 보이는데?”
내가 그를 띄워주기 위해 과장된 어조로 칭찬하자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동안 빅팀이 고생을 좀 많이 하긴 했다. 그는 권력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봐, 빅팀.”
바로 그때, 그의 뒤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빅팀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빅팀이 진저리를 치며 스프링 타듯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히익!”
그랬다. 그는 바로 산체스였다. 산체스가 나타나자마자 빅팀은 자동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무,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설치해 줬으면 하는 마법이 있는데.”
“가, 가겠습니다요!”
…역시 빅팀은 누군가의 위에 있는 것보다는 밑에 있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응. 아무래도 계속 비굴하게 살 운명이 아닐까….
“휴우.”
나는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진 노스던 연맹의 광경을 바라봤다.
제국의 변방에 위치해 여러모로 열악했던 이전과는 달리 몰라보게 발전한 연맹의 광경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우리 노스던 연맹은 최근 ‘흑마술 자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기피되어 오던 흑마술을 받아들이고 유용하게 사용한 점이 주목되면서, 주위 도시들에서도 흑마술사들을 탐낼 정도였다.
그러한 질시의 시선은 흑마술 기술을 선점한 노스던 연맹을 오히려 더 부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납치당한 제이슨 한 명을 구하려다, 도시 전체를 발전시킬 기막힌 방법을 찾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다.
농사는 번영하고, 나날이 새로운 발명품들이 등장하고, 도시는 더욱 안전해지고, 사람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있었다.
왠지 도시를 광고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시트콤의 한 장면인 것처럼 허공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서 오세요, 흑마술 자치 도시 노스던 연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