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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8화(2) (81/233)

“삼십육! 삼십칠! 삼심팔! 페어리 떼는 총 삼십구 마리입니다!”

비품실에 들어간 지 1분도 흐르지 않았는데, 패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숫자를 외쳤다.

‘역시, 태어나자마자 상단에서 구른 놈다워.’

“그럼 여기 있는 종이로 때려잡겠습니다!”

‘역시, 시골 생활의 마스터였던 놈은 남달라.’

매티도 공포 따위 전혀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고, 한참 동안이나 방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몇 분이 흘렀을 때, 패티와 매티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왔다.

“걱정 마, 제이슨!”

“페어리 떼는 우리가 처리했어!”

“사루비아 님! 해결했습니다!”

“끝냈습니다!”

“뭐, 뭐?!”

제이슨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가, 동기들의 얼굴을 보더니 용기가 났는지 비품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후, 문 너머에서 제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잖아?! 심지어 수도 정확해 보여!”

“이런 일이라면 또 우리 전문이라고!”

“좋아, 오늘도 한 건 해결!”

마법소녀 같은 대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시시덕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패티와 매티는 원작에서 여주 달린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설명꾼이었고, 말이 많은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줄줄 읊고 다녔다. 그런 만큼 나는 그들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다.

상단주의 아들이면 경영을 배울 법하지만, 안타깝게도 패티가 영 명석하지 못한지라 상단주는 아들에게 그냥 창고를 관리하는 잡일을 시켰다.

‘하지만 패티는 대신 저렇게 한번 훑어보면 정확한 수량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

매티는 유감스럽게도 농사에 별 소질이 없었기에, 매티의 부모님은 매티에게 그저 집안일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시골에는 벌레가 XX 많이 나오고.’

정말 이건 딱 패티와 매티를 위한 일이었다.

그때, 비품실에서 나온 제이슨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쓰, 쓸 데가 있었어….”

이제 패티와 매티의 쓸모를 좀 확인하게 됐군. 좋아, 앞으로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와 친해지겠지?

내가 흐뭇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갑자기 제이슨이 우다다 달려왔다.

“사, 사루비아 님!”

“응?”

그리고 제이슨은 꼭 산체스가 하는 것처럼 허리를 굽혀 90도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뭐?”

이 자식, 왜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야?

“패티와 매티에 대해 그렇게 잘 파악하고 있으신지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를 위해 그렇게 도우라고 하실 줄은! 저는 벌레가 정말 싫었는데, 배려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뭐, 뭐? 그냥 제이슨,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큰일이다.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럼 패티랑 매티는 누가 통제하냐고….’

난 도저히 패티와 매티를 다룰 자신이 없… 아, 아니야!

‘이건 기회다!’

제이슨은 이 일로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가 패티랑 매티랑 친해지도록 만든다면, 이후 제이슨을 통해 패티와 매티의 도움을 얻는 건 더욱 쉬워진다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저절로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얼른 내리고, 제이슨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제이슨…. 이 일로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게 하나 있긴 하다.”

“그, 그게 뭡니까?”

“네가 앞으로 네 동기들과 잘 지내는 거야.”

“예?”

제이슨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봐 봐, 패티랑 매티도 뭔가 잘하는 건 있었잖아, 어? 너도 계속 패티랑 매티를 돕다 보면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사실 앞으로 저들이 제이슨에게 도움이 될 일 없는 걸 알고 있긴 한데, 그걸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뭐…. 그냥 제발 앞으로 네 동기들 뒤치다꺼리는 원작처럼 네가 하란 말이다, 제발….

내가 생각해도 이기적인 마음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제이슨이 뭔가 깨달은 얼굴을 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짜 이 말을 믿네. 좋아, 이걸로 됐어.’

오늘의 은혜를 계기로 제이슨은 앞으로 자신의 동기들이 사고를 쳐 대도 그 사이에서 지친 표정으로 설명하는 원작과 같은 캐릭터가 될 것이다!

* * *

사루비아가 떠난 자리, 그곳을 보고 있던 제이슨이 중얼거렸다.

“사루비아 님, 생각보다 후임들을 잘 챙기는 타입이셨지 말입니다….”

“그렇지, 뭐….”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베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내가 큰 도움을 받았지….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은근히 다 알고 챙겨 주시긴 해.”

투스타의 딸을 노리는 사루비아의 검은 속내는 알지 못할 베니가 수줍게 웃었다.

“맞아…. 내가 자이든의 동기라 꺼려질 만도 하신데,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더라.”

진심으로 밀피에게 관심이 없어 그가 뭘 하든 관심 없는 사루비아의 태도를 알지 못할 밀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는 제이슨의 눈을 마주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좀 미쳐 있긴 하지만, 나쁜 분은 아니셔.”

“…베니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닌데, 조금 미쳐 있기보다는 많이 미쳐 있으시지….”

베니와 밀피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제이슨은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생각했다.

‘방금 패티와 매티가 나를 도와줬듯이, 서로의 부족함을 메꿔 주는 게 동기라는 거구나!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내 동기들을 챙겨야 하는 거고!’

제이슨의 눈이 반짝거렸다.

* * *

“사루비아.”

“예?”

페어리 건을 해결하고 제이슨에게 조언까지 성공리에 마친 내가 신나서 복도를 걸어갈 때, 뒤에서 이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틈에 이시나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건지 물어봐도 되니?”

“예?”

이시나가 평소와 같이 암녹색 눈을 다정하게 휘며 말했다.

“자꾸 흑마술에 관심을 가지고, 이건 추측일 뿐이지만 산체스의 흑마술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도 같고….”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흑막인 건 알고 있었는데….’

이시나의 뛰어난 두뇌 회전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을 줄은 몰랐다….

“그,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 사루비아, 흑마술 아티팩트가 담긴 포장지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다 보이거든….”

…사탕 껍질 말하는 거였군. 더 치밀하게 행동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너도 알다시피 폐기물 처리는 내 담당이고, 그래서 내가 잘 증거 인멸도 해 줬으니까… 나를 그렇게 수상한 사람처럼 보는 시선을 멈춰 주겠니…?”

“…시정하겠습니다.”

역시 이시나, 눈치가 참 빠르군. 내 속마음까지 짐작하다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루비아.”

갑자기 이시나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네 성격상 패티랑 매티, 제이슨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데 괜히 401기끼리 친하게 지내도록 만들려 하는 것 같고.”

“…….”

“너 뭘 꾸미고 있는 거니?”

…생각해 보니 이시나는 최근 내 행보를 모두 지켜봤다.

내가 알타이르와 유리와 함께 흑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나, 조금 전 제이슨에게 조언해 주던 것 모두.

대답을 종용하는 그 눈빛 앞에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늘 다정해 보였던 이시나의 눈빛은 이 순간 압력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가 붙어 다닌 지가 3년인데, 어쩌면 그도 나에게 나름의 정을 갖고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슬쩍 떠볼까…?’

그 특유의 흑막 속성을 이용한다면, 내가 이후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하든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솔직하게 말하면 도와주실 겁니까?”

그리고 그 말에 이시나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더니.

“아니?”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단호한 거절이었다.

…하긴, 내 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안다고 답하는 게 더 이상하겠군.

“예…. 그런데 제가 뭘 꾸미는지는 왜 물어보신 겁니까?”

“그거야 네가 사고 칠까 봐 불안하니까….”

…분명 나는 이시나에게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말이었다.

* * *

제대 D-1826일.

오늘은 마침내 지휘사관 타로가 제대하는 날이자, 쿨민트아이스 78기가 진급하여 다른 부대로 떠나는 날이었다.

‘타로…. 정말 파란만장했지….’

이 부대에 온 지 2년 만에 지치고 수척해진 타로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나는 눈물을 훔쳤다.

‘타로 님, 밖에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내가 속으로 타로의 제대식을 먼저 치르고 있을 때, 숙소 옆자리에서 자신의 짐을 챙기던 유리가 말했다.

“나는 제40보병여단으로 가게 됐어.”

“그래도 설산여단처럼 힘든 곳으로는 가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응, 그나마 다른 부대들 중에서는 이 부대에 가까운 편이기도 하고. 뭐, 이제 뭔 상관이겠냐마는.”

유리는 부대원들과 헤어져야 하는데도 평소처럼 냉정해 보였다. 숙소를 같이 쓰던 사람이 두 번째로 진급하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해져서, 나는 그녀가 짐을 싸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뭐, 너도 수고했다.”

물론 내 본론은 이게 아니고.

“꼭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서 말뚝 박으십시오.”

“이게 작별 인사를 하랬더니 저주를 하네? 미쳤냐?”

이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차마 나를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채로, 유리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아, 3년 만에 유리를 놀릴 수 있게 되다니 너무 즐거워!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알타이르는 제107산악여단으로 배치받았고, 윈터는 우리보다 늦게 중대장실로 불려가서 아직 모르겠네.”

“아, 그렇습니까? …어? 유리 님이 제40보병여단이라면…. 그러고 보니 에이프릴 님은 제39보병여단으로 배치받으셨는데….”

에이프릴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유리와 내 표정이 동시에 아련해졌다.

“이제 제대했겠구나, 그 미친X….”

“저는 아직도 극존칭을 뗄 수가 없습니다….”

“설마 진짜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것’을 일으키려는 거 아니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분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마저 짐을 챙겼고, 나는 가방을 메고 나가는 유리의 뒤를 졸졸 따랐다.

‘유리도 가는구나.’

세상에, 이제 내 제대는 5년 남았다!

…5년?

‘5년이나 남았어? XX, 진짜.’

내가 급격하게 어두워진 얼굴로 유리의 뒤를 따라 걸을 때, 저 멀리 서 있는 알타이르가 손을 크게 저어 보였다.

“여, 유리! 짐 다 챙겼냐?”

“어.”

“사루비아, 너도 잘 있어라!”

알타이르는 내게 쾌활한 얼굴로 인사한 뒤, 유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살려 놓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다들 모여 있었나?”

“아, 윈터!”

낮은 목소리와 함께 윈터가 나타났고, 알타이르와 유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너는 어디로 배정받았냐?”

활짝 웃으며 윈터의 어깨를 팡팡 치던 알타이르가, 갑자기 윈터를 위아래로 훑은 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너… 왜 떠날 준비를 안 해…? 너 설마….”

유리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 윈터 너 설마….”

“그래.”

윈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휘사관으로 복무하게 됐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가.

“안 돼!”

알타이르와 유리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고! 이러다가는 저 자식 진짜로 영창 간다니까!”

“…역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윈터 너 말뚝 박아. 제발 말뚝 박아! 장교가 되러 떠나라고!”

그리고 그들이 절규하는 와중에도, 윈터는 태연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아, 사루비아. 반갑군. 나는 이곳에 2년 더 있게 됐는데.”

“오…. 축하드립니다.”

이미 원작을 통해 알고 있던 결과였기에 놀랍지는 않아서,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꾸해 주었다.

좋아, 이로써 원작의 시작 지점이 다가오고 있구나….

…그리고 원작 속 사루비아의 죽음도 다가오고 있군,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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