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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8화 (80/233)

“그나저나, 이 문제는 저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주변에 편지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거기에는 바로 어려운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윈터와 이시나, 그리고 그냥 내가 하는 일이 궁금했던 카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사루비아 네가 그 편지를 수뇌부에 가져가서 의논해야 할 것 같다.”

윈터가 내 말에 긍정했다. 흑마술을 복권시키려면 현재 제국을 운영하는 임시 정부에도 연락해야 하는데, 그들에게 공식적인 서한을 보내려면 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수뇌부에 가기 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실 나 스스로도 흑마술의 금지가 풀리고 마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흑마술을 이용하여 아픈 곳을 진단할 수 있는 건 몹시 편리했다. 이게 실용화되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흑마술을 사용하기 위해 인간을 희생하는 일도 발생하긴 했지만, 그런 흑마술에 대해서는 엄격히 규제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제대로 된 규제만 존재한다면 흑마술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오히려 그동안 제국 전역에서 흑마술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바람에 살아남은 흑마술사들의 몸값이 치솟아서, 소수의 빽 있고 돈 있는 사람들, 즉 귀족이나 일부 부르주아만이 이 기술을 전유하고 있었다.

만약 금지가 풀린다면 흑마술이 대중화되며 서비스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설득하고 제이슨을 구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믿으며, 나는 그대로 수뇌부로 향했다.

* * *

“네? 안된다고요?!”

그러나 이어진 수뇌부의 회의에서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뇌부의 일원들이 내놓은 답은 흑마술사와의 협상은 어렵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자, 에이프릴이 설명해 주었다.

“사루비아, 물론 우리는 제국의 임시 정부에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풀 것을 요청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다면 임시 정부가 허용하지 않을 거란 얘기입니까?”

“그래, 너도 알잖아. 제국민들은 흑마술사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

난 그 말에 제국민들과 흑마술사의 관계를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그동안 흑마술사들은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어린 아르콘을 부려 먹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가 없는 제국민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흑마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제국의 농사를 망치는 등 피해도 많이 끼쳤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흑마술사는 주로 귀족이나 부르주아와 유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흑마술사를 고용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은 주로 귀족이나 부르주아의 명령을 따랐다.

그러한 흑마술의 대가로 인해 피해를 입은 건 결국 평범한 제국의 시민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시민들이 권력을 잡은 임시 정부는 결코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가….”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내가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흑마술의 규제를 풀어주지 않는 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유용한 흑마술을 놓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 좀 쓰지 않고 산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제이슨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비록 내가 제이슨과 막역한 관계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제이슨을 전우 정도로는 여기고 있었단 말이다!

“물론 우리 도시의 일원이 납치된 건 심각한 문제니까, 우리가 그를 되찾을 수 있는 특수부대를 꾸려 볼게. 아무래도 흑마술사가 상대인 만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에이프릴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특수부대를 꾸릴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얼마 뒤면 나와 아퀼라의 결혼식이었으니까!

나는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한 뒤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그래,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안 되겠다. 수뇌부에서 특수부대를 꾸리기 전에, 내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 * *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내가 아는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제이슨을 구출할 방법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패티와 매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쌍둥이 같은 행동, 정말 놀랍군.

“흑마술사의 집에 쳐들어갑시다!”

“그리고 제이슨을 데려옵시다!”

물론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기각. 우리는 제이슨이 어디 있는지 몰라. 흑마술사들이 흔적을 감쪽같이 지워놨기 때문에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음, 그렇다면 흑마술사들에게 은근히 정보를 캐내는 건 어떨까? 그간 경험에 따르면 흑마술사들은 주로 멍청한 경향이 있으니까 잘만 하면 제이슨의 위치를 구슬려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시나가 의견을 냈고 나는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흑마술사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시나의 말대로 흑마술사들이 멍청하긴 했지만, 그래도 흑마술사 연합이 납치한 거면 똑똑한 흑마술사 한 명쯤은 있겠지.

그나저나 흑마술사들이 대체로 멍청하다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그 덕에 지금 제이슨이 납치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이슨이 고문을 당하리라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흑마술사들은 어린 아르콘을 착취한 극악무도한 놈들이지만, 그래도 이상한 데에서 멍청하고 어리숙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제이슨은 지금 무사하긴 할 것이다.

“이봐, 빅팀.”

“네, 네?!”

내가 껄렁한 어조로 빅팀을 부르자, 그가 놀라서 펄쩍 뛰며 대답했다.

“뭐, 네가 생각하기에는 방법이 없냐? 좋은 흑마술 없어?”

“어… 제가 흑마술을 쓸 수 있는 있지만, 그곳에 흑마술사들이 훨씬 많이 있으니 다 막힐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법을 고민해 보란 말이야!”

답답해진 마음에 내가 괜히 빅팀에게 성을 내자 아퀼라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음… 좀 안정이 되는군….

나는 흑마술사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다시 짚어 보았다.

흑마술사들은 흑마술이 인정받는 세상을 원한다.

그렇다면 비록 제국으로부터 흑마술 규제에 대한 해제를 허가받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흑마술을 인정할 수는 없는 걸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파박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거야!”

방법이 있었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건, 흑마술사들에게 흑마술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국의 임시 정부가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아도 노스던 연맹의 힘만으로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루비아, 그렇다면 일단 노스던 연맹 내에서만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건가?”

내 뜻을 알아차린 윈터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만, 저는 더 나아갈 예정입니다!”

“어떤 방식이지?”

“그건 지금부터 아시게 될 겁니다!”

* * *

“흠…. 일은 잘 진행되고 있으려나….”

흑마술사 차이키는 노스던 연맹이 있는 쪽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는 입이 막힌 채 연신 신음을 내뱉고 있는 제이슨이 있었지만 그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봐, 걱정 마라. 네 동료들이 잘만 해준다면 너를 바로 풀어줄 거야.”

사루비아의 예상대로, 그는 제이슨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상태였다.

흑마술사들은 편견과 달리 사실 인질을 고문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다만 흑마술이 환영받는 세상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그의 앞 허공에 갑자기 휙 하고 웬 편지가 나타났다.

사루비아가 답장을 쓰면 그에게 도착하도록 흑마술을 걸어놓은 편지였다.

“이건….”

편지를 읽은 그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전국흑마술사연합에게

제국을 설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아직 제국의 임시 정부는 흑마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쪽이니까.

그렇지만 노스던 연맹 내에서는 흑마술에 대한 금지령을 푸는 데 성공했다. 노스던 연맹은 자치 도시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이번 주 토요일 우리 연맹에서는 흑마술의 사용 허가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식이 있을 예정이다.

기념식에서는 밧줄을 자르는 행사가 있는데, 그곳에는 우리에게 소속된 흑마술사 빅팀이 대표로 나서게 된다.

앞으로 흑마술사와의 화친을 위하여 가능하다면 전국흑마술사연합에서도 사람을 한 명 보내줬으면 한다.

물론 절대 함정은 아니다. 단지 빅팀과 함께 밧줄을 자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생각해보고 빠른 답변 부탁한다.』

“역시….”

편지를 읽은 차이키가 미소 지었다. 노스던 연맹에서는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풀어 달라는 그들의 제안을 들어줄 의지가 있다!

비록 아직 제국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차이키는 잠시 이것이 함정이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았지만, 이쪽에는 수십 명의 흑마술사들이 있으니 괜찮았다. 붙잡혀도 탈출할 방법 정도야 마련해 둘 수 있을 거다.

빅팀은 사루비아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흠, 편지는 잘 도착했겠지.”

전국흑마술사연합에 보낸 편지를 떠올리며 내가 중얼거렸다.

그 편지의 내용은 함정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노스던 연맹은 실제로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해제했다.

아직까지 제국의 임시 정부는 흑마술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치 도시였으니까. 제국의 그 누구도 자치 도시의 운영에 간섭할 수 없었다.

다른 수뇌부의 일원도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데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왜냐하면 현재 자치 도시 안에 있는 하나뿐인 흑마술사 빅팀은 선하다 못해 호구 같은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흑마술은 상당히 유용했고 말이다.

물론 기념식을 열기로 한 건 정말로 흑마술의 사용을 축하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빅팀.”

“예?”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정말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럼요, 그놈들도 아마도 이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제이슨을 되찾기 위한 ‘약간의 흑마술’을 준비해 두었다. 그 방법을 떠올리며 나는 진실된 흑막처럼 미소 지었다.

얼마 뒤, 나는 다음날 우리 집 앞에 편지 한 장이 도착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루비아에게

노스던 연맹 내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확인했다. 정말로 흑마술에 대한 규제가 해제된 것도 확인했지.

너희가 부탁한 대로 이번 기념식에 사람을 보내겠다. 이번 기념식이 무사히 이루어진다면, 우리 전국흑마술사연합은 노스던 연맹에 협조하도록 하겠다.

참고로 너희의 인질은 무사히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물론 너희가 이번 기념식에서 헛수작을 부린다면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지.

그럼 빠른 답장 바란다.

전국흑마술사연합

12장로 소속 차이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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