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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7화(2) (79/233)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눈을 하고 있을 때, 유리가 답답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그럼 당연히 계약 마법은 흑마법이지, 어이없네. 국경방위군은 군대다. 음식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힘든 우리는 힘들다. 도대체 이거랑 뭐가 다르냐?”

유리는 알타이르의 말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뭐지?’

유리와 내가 알타이르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생긴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고민해 보다가,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혹시 모든 마법은 흑마법인 겁니까?”

내가 그렇게 질문하자, 유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양 반문했다.

“그럼 흑마법이 아닌 마법이 있어?”

…아, 그렇군.

내가 빙의한 이 세계에는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거다. 텔레포트라든가, 4원소를 다룬다든가 그런 것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술적인 힘은 오직 흑마법뿐인 것이었다.

‘어쩐지 저번에 유리가 마탑이 뭐냐고 되묻더라니.’

마탑뿐 아니라 마법 자체가 없는 줄은 몰랐지. XX, 그럼 어찌 됐든 천재 또라이 마법사 남주 같은 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거군.

계약 마법도 흑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흑마술사가 어린 아르콘들을 착취한다는 말을 들은 후 생겼던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을 마쳤을 때, 알타이르가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려 유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래, 당연히 계약 마법은 흑마법이지. 국가에서 금지한 힘을 국가가 사용했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국가는 흑마법을 썼어. 그렇다면 우리가 추론해 낼 수 있는 게 있는데….”

“뭔데.”

“대규모로 흑마법을 발동하는 데에 대한 대가가, 어딘가에서 계속 치러지고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얘기였다.

‘모든 흑마술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대가 혹은 부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나만 해도 원작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내 원래 세계에서의 이름을 바쳤지 않는가.

“그래서, 너희 생각에는 그 대가나 부작용이 뭐일 것 같아?”

알타이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는 잘….”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우리는 모른다는 대답을 내놓으며, 알타이르가 정답을 알려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알타이르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나도 모르지!”

“…장난해?”

“아니, 다른 선임들이 모르는 걸 나라고 해서 어떻게 알겠어?”

유리가 까칠하게 눈을 떴지만 알타이르는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정말 에이프릴 님이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것’을 일으킬 생각이라면! 이 계약 마법에 걸린 대가나 부작용이 뭔지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이야. 지금도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을 텐데, 우린 아무것도 모르니까.”

“흠….”

원작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애초에 달린은 이 세계가 군부물이든 아포칼립스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녀는 아마 어떤 세계관에 떨어져도 잘 살 것이다, 응….

‘에이프릴이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간 이유도 그거겠구나.’

흑마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은 아마도 ‘흑마술 수색 특수군’일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흑마술 수색 특수군도 흑마술을 박멸하기 위해 흑마술에 관련된 지식을 공부해 왔을 테니까. 마치 우리가 마물에 대한 정보를 외우는 것처럼.

그래서 에이프릴은 이 계약 마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흑마술 수색 특수군’에 들어갔을 것이다.

‘대체 이 지옥의 서바이벌 아포칼립스 군대에서 그런 생각은 또 언제 한 거야?’

내가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유리는 계약 마법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 알타이르와 제대 이후에 관한 이야기나 나누기 시작했다. 앗, 이 틈에 얼른 자리를 떠야지.

아까부터 이불을 들고 대기해야 했던 이시나도 나와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던 듯, 내가 눈빛을 보내자 자연스럽게 알타이르로부터 빠져나왔다.

내 옆에서 걸으며, 이시나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사루비아, 너 요즘 흑마술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일까?”

“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냥 잠깐 궁금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흑마술 아티팩트를 쓸 일도 없고.

‘그래….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 알 바냐.’

일단 이 X같은 곳에서 제대나 하고 보자.

만약 그 사이에 에이프릴이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것’을 일으키고 계약 마법을 해제하기라도 한다면 그녀에게 절이나 108번 해 줘야지.

* * *

페어리 떼의 습격 일곱 시간째.

이제 슬슬 페어리 떼에 가려져 있었던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편히 숙소에서 꿀이나 빨기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군대는 나를 편하게 두지 않았다….

“야야, 거기 틈 있는 거 아냐?”

“뭔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막아!”

혹시나 빈틈으로 페어리 떼가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모든 빈틈을 점검했다고 생각했는데 페어리 떼는 허술하게 막아 놓은 곳은 귀신같이 뚫고 들어오고는 해서, 우리는 그때마다 얼른 대처하느라 한참을 고생했다.

“곧 끝나겠네….”

복도에 선 내가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며 아련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다급한 얼굴의 밀피가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뭐야? 뭔 일 있어?”

내가 밀피를 불러 세우니 밀피는 그제야 놀란 얼굴로 내게 묵례했다.

“저, 도리가 실수로 비품실의 창문을 열어서 페어리 떼가 그 안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훈련병들끼리 수습하려고….”

“아하….”

그걸 수습하지 못하면 연대 책임으로 다 함께 털릴 미래가 훤했으므로, 나는 밀피의 뒤를 따라갔다.

밀피를 따라 도착한 비품실 앞에는 이미 베니와 제이슨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듯한 이시나도 있었다.

“사루비아?”

“아, 이시나 님. 수습이 잘 될지 불안해서 왔습니다.”

나는 비품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제이슨을 쳐다보았다.

“그냥 제이슨이 수습하는 겁니까?”

“도리가 반쯤 기절은 했지만 겨우 탈출했어. 여전히 열려 있을 창문을 닫고 페어리 떼를 치워야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다들 가기 싫어해서….”

그러니까 짬이 제일 낮은 제이슨이 당첨됐다는 얘기군.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더한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거고.

“산체스는 어떻습니까? 벌레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그 말에 대답한 건 바로 베니였다.

“별로 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아하, 지금 보니 베니도 자기 일 아니라는 태도였다. 본인들은 짬을 조금이나마 먹었으니 저런 건 막내들이 하라는 거였겠구나…. 뭐, 늘상 있는 부조리지.

나는 곧 저 지옥 속으로 입장해야 할 제이슨에게 애도를 표했다. 세상에, 쟤는 운이 없어도 어떻게 저렇게 운이 없지?

‘쟨 타로 님이랑 함께 굿이라도 해 봐야 한다.’

“그, 그러니까 저 안에 있는 페어리 떼를 죽여서 치우기만 하면 되는 거 맞습니까…?”

제이슨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고, 이시나는 그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아니. 먼저 페어리 떼의 수를 확인해야 해. 평소에는 위험해서 금지되었지만, 만약 오십 마리가 넘으면 화염방사기를 써도 되거든.”

“그러니까 벌레의 수를 일일이 세야 한다는 겁니까…?”

“응, 맞아.”

…역시 친절한 말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참 이시나다웠다.

그나저나 화염방사기 한 번 쏘려면 벌레의 수부터 확인하고 보고해야 한다니, 역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국경방위군의 일처리다웠다!

제이슨의 얼굴이 더욱 절망에 빠진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원작에서 그러했듯 패티와 매티를 통제할 사람이 필요하니, 나는 제이슨을 패티와 매티와 친해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기회였다!

“밀피, 가서 패티와 매티 좀 불러와!”

“…진심이십니까?”

“너 지금 말대꾸하냐?”

“가, 갔다 오겠습니다!”

심부름에 특화된 밀피는 언제나 그렇듯 쏜살같이 사라졌고.

잠시 후, 그는 패티와 매티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사루비아 님!”

“무슨 일이십니까?”

우와, 쟤네 벌써 둘이서 대사 하나 나눠서 말하는 거 시작했어…. 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패티, 매티, 잘 들어라.”

내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저 안에 페어리 떼가 가득 차 있는 상황이고, 우리는 저걸 수습해야 한다….”

“아하! 저희가 수습하면 됩니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말 끊지 마, XX들아.”

역시 통제하기 어려웠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 벌레의 수를 세고 보고하는 것. 둘, 벌레가 오십 마리 이상일 경우에 화염방사기를 이용하고, 그 미만일 경우에 손으로 때려잡는 것.”

남들은 당연히 패티와 매티가 또 사고를 칠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나는 원작에서의 그들을 알고 있었다.

이건 딱 패티와 매티를 위한 일이었다. 원작에서 제이슨이 어떤 식으로 이들을 받아들이게 됐는지 짐작이 갈 정도로.

“패티, 너는 페어리의 숫자를 센다. 매티, 너는 벌레를 잡는다. 이해했니?”

“예, 이해했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힘차게 답한 패티와 매티가 비품실 문을 열려 하자, 멍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제이슨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사루비아 님, 진심이십니까?! 진심으로 이들을 들여보내시려는 겁니까?”

제이슨이 거의 발작적으로 비품실 문손잡이를 더욱 힘주어 꽉 쥐었다.

“페, 페어리 떼가 이 안에 가득하다는 얘기 못 들었냐?! 빨리 물러나! 너희가 또 무슨 실수를 할지 모르잖아! 물러나! 빨리!”

그래, 평소 패티와 매티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렇게 의심할 법도 하지. 그들이 비품실을 넘어서 복도를 페어리 떼로 꽉 채울 거라고.

하지만 패티와 매티에게도 잘하는 일은 한 가지씩 있는 법이다.

“제이슨, 내 말을 믿어 봐.”

“하지만…!”

“…혹시 폭력과 공포가 수반되어야 믿음을 가지는 타입이니?”

“아니오, 그냥 믿겠습니다.”

제이슨이 깔끔하게 비품실 문에서 몸을 뗐다. 음, 역시 폭력과 공포가 우리를 구원한다.

“벌레 따위 우리가 해결해 줄게!”

“기다리고 있어, 제이슨!”

제이슨이 비켜서자마자, 패티와 매티는 통통 튀는 목소리로 외친 후 비품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실수로 문을 벌컥 열어 페어리 떼가 쏟아져 나오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 안 돼….”

한편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제이슨은 바닥에 주저앉아 허망한 눈으로 비품실 문을 쳐다보기만 했지만, 페어리 떼가 두려운지 그는 차마 문을 열지 못했고….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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