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7화 (78/233)

#27. 어서 오세요, 흑마술 자치 도시 노스던 연맹에

그냥 제이슨이 납치되었다니, 정말 황당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또 제이슨은 무슨 이유로 누구한테 납치된 거고?

그러니까 패티와 매티의 말에 의하면 내막은 다음과 같았다.

“제이슨이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이슨은 늘 저희와 함께인데 말입니다!”

“그래, 그래…. 제이슨은 너희와 언제나 함께 다니는데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얘기구나.”

“그래서 저희는 찾아갔습니다!”

“제이슨의 집으로!”

“그래, 방금 찾아갔다 온 거구나….”

조리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말을 해석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침착한 태도로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말대로,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를 싫어하면서도 늘 그들과 함께 다녔다. 그는 패티와 매티를 속 썩이는 자식 대하듯 했다.

싫어하면서도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동료애 그 자체인 애증의 관계이지.

“그런데 집에 제이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제이슨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제이슨의 집 문가에 이런 종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보고 나서야 패티와 매티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루비아에게

너의 소중한 동료는 내가 데려간다.

이 자를 되찾고 싶다면 우리에게 순순히 협력하도록.』

그리고 그 편지를 읽고 나서 내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이게 누군데?”

아니, 납치를 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써 놔야지, 납치범이 누구인지 모르면 어떻게 협상을 하겠는가? 하여간 이 납치범도 대단히 멍청한 놈이 틀림없다.

또 그것뿐만이 아니라….

‘제이슨은 나한테 별로 소중한 동료는 아닌데….’

나를 자극하려면 베니나 유리 같은 사람을 납치하는 게 빨랐겠지만, 음. 왜 하필 제이슨이지?

‘내 주변인 중에 그나마 제일 납치하기 쉬웠던 건가?’

그렇다 쳐도 난도가 더 낮을 패티와 매티도 아니고 그냥 제이슨이 납치당하다니, 하여튼 그의 운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난 제이슨의 불쌍한 인생에 애도를 표하며 아퀼라, 패티와 매티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패티와 매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혹시 거기 어떤 흔적 같은 건 안 남아 있었니? 제이슨이 저항한 자국이라거나.”

“아뇨!”

“없었습니다!”

“추측 가는 사람은 있고?”

“아뇨!”

“없습니다!”

“에휴….”

내가 마치 이시나 님처럼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자, 옆에서 아퀼라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루비아, 너한테 원한을 가진 사람을 생각해보는 건 어때?”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

나는 아퀼라의 말을 듣고 천천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

내가 그동안 엿 먹인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난 로판 여주답게 다양한 곳에서 엿을 먹였고, 나에게 원한을 가졌을 만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황제라든, 귀족들이나 부르주아라든가, 내가 설산 대대에서 쫓아낸 중대장이라든가, 자이든이라든가, 내가 클레도어 산악대대에서 엿 먹인 로산이라든가….

“젠장! 적이 너무 많아!”

나는 머리를 싸맨 채 그렇게 외쳤다가, 결국 내가 직접 현장을 수색해 보기로 했다.

나 사루비아, 반드시 그곳에서 납치범이 누구인지 알아낼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패티, 매티.”

“예?”

“그냥 제이슨 집으로 앞장서!”

“예!”

* * *

그러나 나는 제이슨의 집에서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했다. 제이슨 같은 훈련받은 군인이 납치당하면서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이상한데. 제이슨은 멍청한 애가 아니야.”

내가 또다시 머리를 싸매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 중 한 명인 윈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몸싸움의 흔적이 없는 건 이상한 일이지. 제이슨보다 더 강한 자라 하더라도 제이슨은 체술을 익혔으므로 충분히 맞설 수 있었을 거다.”

“그럼 단순히 강한 자가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자라는 겁니까?”

“아니, 하다못해 내가 제이슨을 힘으로 제압하려 해도 충분히 훈련을 받은 제이슨은 기지를 발휘하여 흔적을 남길 틈이 있었을 거다. 그러니 제이슨이 남긴 흔적이 없다는 건 하나다. 그건 바로….”

윈터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이 사특한 수를 쓴 거다.”

“사특한 수라면….”

“수면제를 이용했거나, 흑마술을 썼겠지.”

“아, 흑마술!”

순간 내 머릿속에 좋은 수가 떠올랐다.

나는 최근에 흑마술로는 정말 못 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내가 아팠을 때도 그 원인을 흑마술로 진단할 수 있었지 않나?

그러니 이번에도 흑마술을 이용하여 누가 제이슨을 납치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빅팀을 불렀다.

처음에는 빅팀이 내가 부려 먹은 데에 대한 원한으로 인해 제이슨을 납치한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정작 현장에 불려온 빅팀은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빅팀은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 만한 위인이 못 되었으니까.

갑자기 나에게 불려온 빅팀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사루비아 님, 무슨 일이십니까? 저번에 사루비아 님이 물어보신 노스던 연맹의 경계를 방어하기 위한 마법을 연구 중이라 요즘 엄청 바쁜데….”

“빅팀, 우리 동료 중 하나가 납치당했어. 네가 흔적을 찾아줬으면 해.”

“흔적이라면….”

빅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이곳을 지나간 발자국을 추적할 수 있는 흑마술이 있습니다. 그걸 통해 이어지는 흔적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제이슨이 어디까지 끌려갔는지 알 수 있겠다!”

발자국을 잡아내는 흑마술은 아주 간단하다고 했다. 다만 빅팀은 그 대가로 마을에 폭우가 내릴 거라고 했다.

“폭우라면…. 그 정도라면 큰 피해가 되지는 않겠군.”

작물 수확철은 막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은 큰비가 내려도 피해가 가지 않는 시기였다.

나는 빅팀에게 흑마술의 사용을 허가했고, 그는 어디서 가져온 돼지의 피를 이용하여 마법진을 그린 뒤 조심스럽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잠시 뒤, 그가 낭패라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흔적이… 없습니다.”

“흔적이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사루비아 님.”

갑자기 빅팀이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곧게 세우고 말했다.

“발자국조차 없다는 건 한 가지 의미밖에 없습니다.”

“뭐? 그게 뭔데?”

“또 다른 흑마술사가 흔적을 지운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니까, 그냥 제이슨은 윈터의 추측대로 정말 흑마술사에게 납치된 것이다.

* * *

그런데 흑마술사가 대체 제이슨을 왜 납치한단 말인가?

“혹시 내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활동할 때 감옥에 집어넣었던 놈들인가?”

하지만 특별히 나한테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흑마술사를 감옥에 집어넣는 건 우리의 직업이었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실적이 더욱 뛰어났다.

그렇게 나는 제이슨을 찾아내지 못한 채 고민했고, 다음 날, 제이슨의 집 앞에 다시 한번 편지 한 장이 놓였다.

그리고 편지의 첫 줄을 읽자마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루비아에게

드디어 네 동료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군.』

‘우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고 있어!’

아마도 흑마술을 이용하고 있는 거겠지? 늘 빅팀의 도움을 받아 적을 쳐부수기만 했던 나인데, 이번에는 내가 역으로 흑마술사에게 당하고 있다니 분하기 짝이 없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졌다.

『제이슨이라고 했나? 네 동료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아직까지 네 동료는 무사하니 걱정할 것 없다. 물론 네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지.

우리가 너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네가 그 무리에서 꽤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너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자이기도 하지.』

‘그래서 대체 네가 누군데?’

나는 답답해졌지만 일단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다음과 같다.

첫째, 흑마술의 금지 관련 법령을 풀어주고 더 이상 흑마술사들을 제국 차원에서 범죄자로 여기지 않도록 복권시킬 것.

둘째, 흑마술의 이름을 ‘마법’으로 돌려놓을 것.

셋째, 국가 차원에서 마법 기관을 운영하여 우리에게 합당한 보수를 지급할 것.

우리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네 동료는 순순히 풀려날 거다.

전국흑마술사연합

12장로 소속 차이키 씀.』

‘차이키?’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누군지 도무지 생각은 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자 옆에서 아퀼라가 그가 누구인지 일러 주었다.

“이전에 사루비아 네가 붙잡았던 2황자군 측 흑마술사야. 그를 통해서 2황자군과 연락을 주고 받았었는데 기억나?”

“아, 맞다! 그랬지!”

그 후에 쓸모가 없어져서 그냥 풀어줬는데, 이런 식으로 범죄를 일으키다니!

나는 이번 일에 대해 천천히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니까, 제이슨을 납치한 건 흑마술사 연합이다. 그들은 흑마술사들의 위치가 제국에 의해 마법이 금지당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제국의 권력 관계가 바뀌었으니, 새롭게 권력을 쥔 집단에게 제 무리의 지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를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권력자들 중 한 명이 나이기 때문이고.

‘내가 권력자로 인정받다니.’

정말 기분이 미묘했다, 음…. 어쨌든 나도 이제 노스던 연맹의 교육부 최고위원이니까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

한편, 그들이 보낸 편지 제일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와주세요

-제이슨-』

……어쩐지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글씨였다.

나는 그의 짧은 문장을 보며 다시 한번 제이슨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필 납치당할 사람으로 선택되다니, 얘는 정말 되는 일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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