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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6화(2) (77/233)

“…에휴.”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자, 아퀼라와 윈터는 이제 대치를 멈추고 멋쩍은 표정을 했다. 하긴, 그놈의 속성 때문에 저렇게 앙숙처럼 기 싸움을 해대는 게 본인들도 어이없는 일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지….

“제발 그만 좀 해라.”

유리는 다시 쿨한 손짓으로 그들에게 꺼지라는 시늉을 했고, 그들은 정말로 이 복도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순식간에 갈등이 일단락되다니, 사실 78기의 실세는 유리인 걸까?

“유리 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너는, 에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 유리가,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사루비아, 내가 너에게 조언해 줄 게 있는데.”

“예.”

“남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예?”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유리는 진심인 것 같았다.

“어…. 인간이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은 역시 폭력과 공포이지 말입니다.”

“…아니, 네가 남자를 고를 때 봐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 뭔지 아냐고.”

“아.”

세상에,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다니. 갑자기 내가 진짜 로판 영애가 되어 또 다른 영애와 스몰토크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오…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유리가 나라 잃은 표정을 했다….

“아니야, 사루비아….”

“그럼 역시 얼굴입니까?”

“아니.”

“재력…?”

“그것도 아니야.”

“아, 인성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부 틀렸다, 사루비아.”

유리가 갑자기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을 했다.

“남자를 고를 때 제일 중요한 건 사회성이다.”

“예?”

“명심해. 사회성이 제일 중요해.”

…정말 뜬금없는 말이다. 게다가…

“저, 그런데 솔직히 유리 님도….”

“나도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알아. 하지만 나보다 부족한 놈들은 안 돼.”

유리는 이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회성 없는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고. 잘 생각해, 사루비아.”

하지만 수많은 로판 남주들은 사회성이 떨어지는걸. 물론 이 세계 사람인 유리는 그런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 조금 전 아퀼라와 윈터가 대치하던 걸 목격하고 나서 유리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혹시 윈터 님과 아퀼라를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걔네는 안 돼! 아니라고!”

갑자기 강한 부정을 한 유리가, 저 복도 너머를 가리켰다.

“그래, 저기만 해도 사회성 멀쩡한 놈이 있잖아. 사회성 없는 놈들보다는 저런 놈이 나아.”

유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알타이르가 이시나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이시나의 손에 이불이 들려 있는 걸로 보아 심부름을 시킨 모양이었다.

“아하, 알타이르 님 말씀이십니까?”

“미쳤니? 이시나 말이야!”

“아하.”

내가 유리가 이러는 저의를 짐작해 보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살필 때, 이제 우리가 있던 곳에 도착한 알타이르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여어, 유리, 사루비아. 뭐 하냐?”

알타이르는 평소처럼 쾌활한 태도로 유리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반면 언제나 그렇듯 유리는 눈을 흘기며 어깨 위에 올라간 그의 팔을 치워 냈다.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귀찮게 하지 마라.”

“아, 왜, 뭔데~?”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고자질을 했다.

“유리 님이 사회성 있는 남자가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미쳤나? 너 요즘 은근히 기어오른다?”

유리는 나를 노려봤지만, 진심으로 나를 갈굴 기세는 아니었다.

알타이르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뭐, 사회성? 하하! 윈터한테 없는 그거 말이구나!”

역시 78기의 유일한 사회성, 알타이르. 윈터에게 사회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군.

‘…그런데 유리가 사회성 언급하는 이거, 로판 클리셰 아니겠지? 나중에 유리가 알타이르와 모종의 관계가 된다는 떡밥 아냐?’

솔직히 좀 미심쩍었다….

그러다가 나는 알타이르의 뒤에서 이불을 든 채 대기하고 있던 이시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시나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군….’

아무래도 78기 두 명끼리 대화하도록 두고, 우리는 자리를 떠야겠다.

그래서 난 알타이르와 유리가 덥석 물을 수 있는 떡밥을 던졌다.

“두 분은 제대하시면 뭐 하실 겁니까?”

“뭔 제대는 벌써 제대야. 아직 2년은 더 남았는데.”

“그래도 슬슬 생각하실 때가 됐지 않았습니까.”

나야 제대가 한참 남았으니 농담으로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는 수준이었지만, 유리와 알타이르는 이제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글쎄다….”

유리는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고.

“뭐, 뭐 할 거냐고? 그, 그런 어려운 질문을….”

알타이르는 넌 나중에 뭐 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고3처럼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오, 역시 말년에게 하기 딱 좋은 질문이군.

“에이프릴 님은 흑마술 수색 특수군으로 가시겠다고 했는데, 들으셨습니까?”

“뭐? 정말?”

알타이르와 유리의 눈이 일제히 동그래졌다.

“어후, 야, 유리…. 제대하고 나서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자.”

“그래, 거기로는 절대 안 가야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알타이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제대를 했는데 입대를 또 하는 인간이 어디 있어? 대체 거기는 왜 가셨대?”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이 세계의 비밀을 밝혀내시겠다고….”

“한결같이 미쳤군. 이해할 수 없어.”

유리가 시니컬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그녀는 나보다도 에이프릴과 더 긴 시간을 보내온 것이다.

“어쨌든 두 분은 혹시 국경방위군에 말뚝 박으실 생각이….”

“…머리 박고 싶니?”

“시정하겠습니다.”

내가 얍삽하게 웃어 보이자, 유리가 나를 째릿 노려보다가 다시 생각에 잠긴 듯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좋아, 이 틈에 이시나랑 자리를 뜰 수 있겠군.’

그러나 우리를 내버려 둘 생각은 없는 건지, 이번에는 알타이르가 말을 걸었다.

“야, 사루비아. 그래서 에이프릴 님은 도대체 무슨 세계의 비밀을 밝히시겠다는 건데?”

“음, 이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에 관한 거라고 하셨습니다.”

“…뭔 체제?”

“아르콘들이 계속해서 국경방위군으로 복무해야 하는 불합리한 처지가 도대체 어떻게 계속 유지될 수 있었는지, 그런 말을 하셨는데….”

“아니, 잠깐만.”

갑자기 알타이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가 그렇게 계약 마법을 맺었으니까, 우리는 마법을 따르고 법을 따르는 거잖아?”

“넷슴다.”

“물론 누군들 이 상황이 좋겠냐만은… 에이프릴 님의 말씀은 꼭… 꼭….”

말을 더듬던 알타이르가 마침내 그 단어를 입에 올렸다.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야, 야.”

유리는 식겁해서 알타이르의 입을 틀어막았고, 앞에 서 있던 나와 놀란 눈을 한 이시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협박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방금 너희 뭐 들었냐?”

“그런 사실 없습니다.”

우리는 얼른 유리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으며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얼굴을 했다.

그제야 유리는 다시 알타이르에게 경고하는 눈빛을 보낸 후 알타이르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 주었다.

“너는 입조심 좀 해.”

“하지만 생각해 봐. 그 에이프릴 님이잖아?”

“그분이라면 그럴 만도 하… 아니, 조용히 해.”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나는 이 틈을 타서 자리를 뜰 수 있을지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알타이르는 날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루비아. 생각을 해 봤는데, 만약 에이프릴 님이 반… 읍!”

“그 단어 말하지 말라고! 반 자도 꺼내지 마!”

유리가 오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반역’은 군대에 있는 우리가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단어였다. 심지어 내가 빙의한 이곳은 황제가 존재하는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역과 잘못 얽혔다가는 목과 몸통이 분리되는 것을 떠나, 사지까지 전부 작별 인사를 고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오케이, 오케이. 앞으로는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것’이라고 부를게.”

…이상하다, 저 단어를 들으니 뭔가가 떠오르는 기분인데. 하긴 이 세계 사람들은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 뭐.

“어쨌든 에이프릴 님이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것’을 저지르려는 게 아니라면… 그분이 말하는 체제가 뭔지 생각해 봤거든.”

알타이르가 자신의 손목 부근을 가볍게 톡톡 건드렸다.

“아무래도 이 계약 마법을 말하는 거겠지. 이게 우리를 국경방위군에 가둬 놓은 체제 그 자체니까.”

“예…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에이프릴은 이 계약 마법을 없앨 방법을 찾으러 갔다는 얘기일까?

계약 마법은 오래전에 아르콘이 아돌브 제국의 황제와 맺은 계약이고, 그 계약은 피를 타고 흐르며 효력을 발휘한다…는 게 내가 계약 마법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알타이르 님은 이 계약 마법에 대해 더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알타이르가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좋아, 더 배우려는 태도! 아주 기특한 질문이군.”

제길, 아무래도 내 질문이 그의 내면에 있는 ‘꼰타이르’를 자극했나 보다.

“계약 마법은… 상당히 애매한 마법이지.”

“왜 그렇습니까?”

“시간이 갈수록 아르콘의 피가 제국민들과 섞이면서 점점 희석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뭘 근거로 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기준을 정하는 걸까?”

“네 말대로 그건 이상하네.”

“그렇지, 유리? 아르콘임을 판단하는 기준도 그렇고, 효력을 발휘하고 며칠 내에 입대해야 하는 건지도 명확한 기준이 없고, 계약 마법은 이래저래 불분명한 게 많다고.”

나는 점점 알타이르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들을 국경방위군에 묶어놓은 이 ‘계약 마법’이라는 건 정말 이상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어.”

“그게 뭡니까?”

“자, 일단 계약 마법은….”

알타이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 마법은 흑마법이야.”

“…예?”

“뭔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되물었지만, 유리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알타이르를 쳐다볼 뿐이었다. 심지어 이시나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흑마법은 금지되었잖아.’

제국 차원에서 금지하고 ‘흑마술 특수 수색군’까지 만들어 단속하고 있는 게 바로 흑마법인데, 제국 차원에서 맺은 계약 마법이 바로 흑마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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