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군은 이제 막 어둠에 익숙해져 시야를 되찾고 있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빛 속성의 오러가 담긴 탄환을 쏜다면 어떻게 될까.
“으아아악!”
어둠 속에 있었다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시야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자신들의 눈가를 붙들었다.
빛 속성 오러는 섬광탄과도 같은 효과를 냈다. 황실군은 제대로 균형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탕탕탕-!
물론 우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고 말이다.
우리 추격대 측의 사상자가 거의 없는 반면, 황실군은 후퇴 전선의 뒷 열에 섰던 병사들이 아예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상태였다.
“후퇴! 빠르게 후퇴한다!”
이제 뒤쪽에 있던 병사들은 앞쪽의 병사들을 방패 삼아 도망치고 있었다.
너무 멀리까지 가면 우리에게도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우리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압승했다는 사실이었다.
“와아아아!”
다시 한번 기지를 발휘해 전쟁에서 대승을 거뒀다. 우리를 얕보던 제국에 다시 한 방을 먹여 주었다.
고양감과 성취감으로 가슴이 높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무지 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나는 옆에 있던 아퀼라를 강하게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
“아퀼라, 우리가 해냈어!”
“그래, 사루비아. 네가 해냈네.”
아퀼라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따뜻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마주 안아주었다.
“넌 참 대단해. 어떤 시련이 닥쳐도, 굳은 의지로 뭐든 해내잖아.”
“음, 사실 이번 일에는 네 공도 있어. 이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네가 나를 루비라고 해준 덕에… 아무튼 그래.”
그 말에 아퀼라가 소리 없이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퀼라와 다른 병사들과 함께 어렵게 거둔 승리를 기뻐하는 시간을 가졌다.
* * *
“왔다!”
내가 연맹 정부 청사의 회의실 안에 발을 딛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일어선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들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사루비아, 축하해.”
새로운 정부의 행정부 최고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에이프릴이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뭘… 말씀이십니까?”
이 자리는 황실군을 패퇴시킨 뒤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 주요 인원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왠지 이 사람들이 다들 내게 축하를 전하고 있었다.
“뭐긴 뭐야, 네 덕분에 승리한 거나 다름없잖아.”
“아….”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별거 아니었는데 이렇게 칭송받다니 민망했다.
내가 어색하게 내 자리에 앉자,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꺼냈다.
“사루비아 양?”
“네?!”
그는 바로 국경방위군의 전 대장이자 연맹 수뇌부를 지휘하는 현 총위원장이었다. 그가 에고트 마을 이장을 상대로 했던 선거에서 승리해 총위원장이 된 것이었다.
국경방위군의 전 대장이었으니, 그는 내게도 까마득히 높은 사람이었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사루비아 양, 이전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왔지만 정말 대단하군. 이번 일도 수고했네.”
“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하….”
도시의 총위원장 눈에도 들다니, 음. 정말로 실세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총위원장이 나를 향해 번뜩이는 무언가를 건넸다. 물건을 본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내 손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것. 그건 바로 금괴였다.
내가 놀란 눈으로 총위원장과 금괴를 번갈아 보자, 그가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훈장일세. 원래라면 이름을 새겨 줘야겠지만, 이곳 북부가 낙후되어 고급 제련 기술자가 없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입니다.”
사실 나는 이걸 팔아서 결혼식에 보탤 생각으로 신나 있었다. 내가 훈장을 받게 되다니, 물론 그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를 향해 다들 따뜻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어색한 시간을 견딘 뒤, 비로소 회의가 시작되었다.
“황실군은 우리의 속성 오러탄에 생각보다 겁을 집어먹은 모양입니다. 다시 침략할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보다는 차라리 시민 혁명군을 더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더군요. 다시 그쪽으로 침입할 기세입니다.”
“하긴, 거기는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농민들이 대부분이니 황실군이 떼로 덤비기만 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얼마간의 효능감을 맛보게 되겠죠.”
그러니까 황실군은 이제 우리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돌린 모양이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동안은 연맹의 영토에 침략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모든 전쟁이 끝이 났다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 도시를 지켜내기 위해 몇 번 더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당장의 전쟁이 끝난 것에 기뻐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각 부서에서 앞으로의 도시 운영 계획에 대한 발표를 시작해 볼까요.”
그 후 각자의 운영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나 또한 앞으로의 교육 계획에 대해 세부적인 기획을 발표했다.
그들은 내 교육 기획안에 대해 정말 획기적인 생각이라고 감탄하면서도 어쩐지 경외심과 두려움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음, 뭔가 찜찜한데.
하여튼 수뇌부의 회의는 그렇게 황실군이 다시 침략하지 않으리라는 결론으로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 * *
회의를 마치고, 나는 들뜬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간에 맞춰 나를 반기러 나온 아퀼라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팔짝 뛰어 그의 품 안에 매달렸다.
“사루비아, 잘 갔다 왔어?”
“응!”
그를 꽉 끌어안고 평균보다 높은 그의 체온을 흠뻑 느끼며, 나는 오늘 회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늘어놓았다.
“더 이상 황실군이 공격하지 않을 것 같대. 아, 그리고 총위원장 님이 나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전쟁에서 공을 세운 대가로 훈장을 받았어. 아, 또 있잖아….”
한참이나 이야기를 들어준 후에야 아퀼라는 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요즈음의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이제 노스던 연맹도 완성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를 향한 위협도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제국의 임시 정부는 우리를 완전히 인정했고, 제국에 남아 있던 귀족 일당도 우리에게 참패한 후 우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거기다가 아퀼라와 내 결혼식 계획도 완벽했고, 내 인간관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아퀼라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한창 뜨거워야 할 신혼인데 대체 몇 번이나 실존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거냐고, XX.
‘그래서 대충 그렇게 됐다’의 시간을 보낸 뒤, 함께 침대에 누운 채 나는 아퀼라에게 그간 나누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천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퀼라, 요즘은 정말로 행복한 것 같아.”
“나도 그래.”
“애칭으로 불러줘.”
“사랑해, 내 루비.”
특히 그가 나를 애칭으로 불러줄 때마다 나는 행복해졌다.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행복을 목 끝까지 삼켜서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솔솔 흘러나올 것 같아서, 나는 아퀼라와 별 시답잖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아퀼라, 네가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그랬지?”
“폭포에서 떨어진 뒤 네 눈을 봤던 순간부터.”
“그럼 그 시절 내가 가끔 윈터 님이 잘생겼다는 발언을 했을 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였어?”
“…정말 답답했지.”
“하하,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이시나 님이 자꾸 너랑 나를 떼어놓으려 했던 것도 그래서야?”
“이시나 님은 눈치가 빠르니까.”
“와, 역시 흑막다워.”
“너 이시나 님이 그 소리만 들으면 뒷목 잡는 거 알아?”
“알아,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어. 객관적으로 이시나 님은 흑막이 맞잖아.”
“…흑막은 너 아닐까, 루비.”
“뭐? 내가 뭘 했다고?”
옅은 행복에 젖어 오만 가지 잡담을 늘어놓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어떤 XX가 우리가 이토록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방해한단 말인가?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놈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 집을 자신의 집처럼 드나드는 놈은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옷을 주워 입었다. 아퀼라도 내 옆에서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누굴까? 이시나 님? 카론? 의외로 윈터 님일 수도 있겠다.”
“알타이르 님이나 유리 님일 수도 있어.”
“아, 그렇지. 달린일지도 몰라. 음, 어쩌면 빅팀일지도?”
그렇게 추측되는 인물들에 대해 늘어놓으며 우리는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우리가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앞에 나타난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인물이었다.
“패티? 매티? 너희가 여기 왜 있어?!”
늘 한 쌍처럼 붙어 다니는 패티와 매티가, 오늘도 한 쌍으로 붙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차라리 친분이 더 있는 쪽을 고르자면 제이슨이었지, 나는 패티나 매티와는 정말로 별 인연이 없었다. 그랬기에 내가 그들의 등장에 놀라고 있었을 때, 그들은 폭탄 같은 발언을 던졌다.
“큰일 났습니다, 사루비아 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아까는 패티와 매티가 한 쌍이라고는 표현했지만, 사실 그들은 제이슨까지 포함해 한 쌍이었다.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에 대해 욕하면서도 사실 그 누구보다 그들을 걱정해서, 그들이 어딜 가나 붙어다니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제이슨은 어디로 가고 패티와 매티 둘만 있단 말인가?
“무슨 일이지?”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은 아퀼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나도 그들을 달래듯이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 봐.”
그리고 그들이 꺼낸 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이슨이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뭐?!”
결혼식을 앞둔 마지막 대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