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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5화(2) (75/233)

탕-!

“엄마야!”

“꺄악!”

페어리가 창틀에 붙을 때마다 베니와 나는 몸을 움찔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심지어 베니는 혼잣말로 저렇게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안 돼. 네 아버지가 우리 부대에 오신다면 <황태자 습격 사건> 순한 맛 버전이 발생한다고!’

그건 지금 부대를 습격하고 있는 페어리 떼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한편, 우리가 놀라던 모습을 지켜보던 유리는 혀를 쯧쯧 찼다.

“대체 마물은 잘 잡는 애들이 왜 저런 거에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정말로 억울했다. 저 페어리가 나한테 달려드는 것보다는 거대한 마물 한 마리가 달려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 저건 완전 무섭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유리가 우리를 보며 어이없다는 눈을 했다.

“야, 벌레도 너희 보고 무서워하겠다.”

…저거 뭔가 예전 삶에서 자주 들었던 말 같은데.

어쨌든 우리가 페어리 떼를 열심히 무서워하고 유리가 우리를 한심하게 여기든가 말든가, 벌레들의 습격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생각보다 너무 심한데….”

“예?”

“생각했던 것보다 페어리들이 너무 많다고.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틈으로 건물에 들어온 건 아닐지 모르겠어.”

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기에, 나는 얼른 그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얼굴로 당당하게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완전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그래. 이 김에 나가서 또 확인하고 와라.”

“예?”

“야, 나가서 건물 순찰하고 와.”

유리가 쿨하게 손가락을 뻗어 베니와 나를 가리킨 후, 쿨하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아오, 진짜….’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베니와 함께 숙소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탈영하고 싶다….”

“전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베니의 말을 들으니 더 탈영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 탈영하면 저 페어리 떼에 파묻히겠지? XX, 일단 탈영은 참아 보는 걸로 하자.

힘없는 발걸음으로 복도로 나온 내 눈에 산체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산체스?”

그는 걸레를 들고 창문을 문지르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페어리 떼가 두려워 창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루비아 님, 오셨습니까!”

평소에도 내게 깍듯한 산체스였지만, 산체스는 내 뒤에 서 있는 베니를 발견한 후 허리를 굽혀 90도 인사를 했다. 두 손은 몸에 딱 붙이고 머리는 거의 바닥을 향해 처박은 상태였다.

…이 세계에 저런 살벌한 인사법이 있었나? 아니, 지금 장르가 좀 바뀐 것 같지 않나?

“너 뭐 하니?”

“창문을 닦고 있었습니다. 얼룩이 묻어서.”

산체스가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나는 떨떠름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벌레가 너무 가까이서 보이지 않아…?”

“제가 더 강합니다.”

…해석해 보자면 페어리보다 자신이 더 강하므로 페어리 떼 따윈 두렵지 않다는 의미겠군. 대단하다, 산체스…. 역시 모든 걸 힘으로 판단하는구나….

황태자 습격 당시에 산체스가 이 부대에 없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가 이 부대에 있었다면 그는 거뜬히 황태자를 이겨 버렸을 거고 그렇게 우리 부대는 공중분해의 길로….

아니, 어쨌든. 산체스가 강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나는 그에게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베니와 함께 건물을 순찰하러 떠났다.

* * *

베니와 건물 순찰을 시작한 이후, 나는 아퀼라를 만났다.

아퀼라를 만나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든 나는 곧장 내 속에 있던 것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탈영하고 싶어.”

“그래.”

우리는 우리가 왜 군대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존재론적인 고민을 나눴다.

그냥 탈영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건물 순찰을 베니에게 넘기고 아퀼라와 대화를 이어 갈 때, 삐걱거리며 어딘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퀴퀴한 냄새….”

‘타로 님이군.’

어제 이후로 문 하나만 빼고 밀폐된 탓에 이틀째 환기를 하지 못한지라 소대 건물 안의 냄새는 좋지 못했다.

지휘사관용 숙소의 문을 열고 나왔다가 그 냄새를 맡은 타로가 복도에서 괴로워했다.

“도대체 이 부대에는, 콜록, 무슨 마가 낀 거지?”

불쌍한 타로…. 이 부대에 와서 고생밖에 안 했다니….

심지어 타로는 정말 말년이었다. 그는 이번 3개월을 마지막으로 제대하는 것이다.

지휘사관 첫 진급 시기에 ‘황태자 습격 사건’을 겪고, 지휘사관 마지막 시기에 ‘페어리 습격 사건’을 겪은 타로는 정말 인생에 마가 제대로 낀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보면 그의 인생은 수미상관을 지킨다고 할 수 있군.

“타로 님, 괜찮으십니까?”

막 남자 숙소에서 나온 윈터가 타로를 보며 물었다. 사실 타로를 진짜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냥 예의상 한 말 같았다.

“하, 그래…. 너도 상말에 고생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타로가 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 78기도 곧 진급인데… 상등병 때 정말 꾸준히 고생만 하는구나….”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힘없는 목소리의 타로는 비척거리며 다시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윈터와 내 눈이 마주쳤다.

“사루비아.”

“예?”

“머리 모양이 바뀌었군.”

“예? 아, 아마 그럴 겁니다.”

그거야 오늘 아침에 이시나가 내게 ‘머리끈으로 머리를 세 번 묶을 때 머리카락이 튀어나오지 않는 기술’을 전수하며 내 머리로 시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혼자 묶을 때에 비해 훨씬 깔끔하게 묶여 있었는데, 그 차이를 알아채다니. 역시 윈터.

내가 아무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그 순간, 윈터의 얼굴이 변했다.

그래, 그는 분명 미묘하게… 미묘하게… 귓가가 붉어져 있었다!

‘뭐지?! 날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가? 로판 클리셰?!’

긍정 회로 다시 나와! 야, 재가동 시작해!

나는 언제나 이 세계가 원래는 로판 세계였음을 잊지 않고 있었고, 내 마음속에는 늘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원작 남주2의 귓가가 붉어지는 신체 변화가 발생했을 때! 바보처럼 ‘혹시 화났나?’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붉어진 귓가나 목 등은 반드시 로판 클리셰다!

내가 눈빛을 번뜩이며 윈터를 대놓고 노려보다시피 보자, 윈터가 입을 열었다.

“아, 좀 덥다 했더니 그쪽 때문이었군.”

그러나 윈터는… 아퀼라 쪽을 가리키면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어리둥절해졌을 때, 이번에는 못마땅한 얼굴의 아퀼라가 윈터에게 말했다.

“윈터 님, 그러고 보니 세 달 뒤면 진급이시지 말입니다.”

또 시작하겠군. 그놈의 불 속성과 얼음 속성.

몬스터도 아니고 인간한테 속성이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성의 영향으로 아퀼라와 윈터가 저렇게 대립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참 어이가 없었다.

“지휘사관으로 진급하실 거 미리 축하드립니다. 다른 부대에서도 잘 지내십시오.”

아퀼라가 그렇게 말했는데, 진짜 축하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아퀼라의 주홍색 눈을 보았다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윈터가 이 부대를 떠나서 잘됐다고 시비 털고 있는 거군.’

“그래, 나도 곧 진급이지.”

윈터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혹시 또 모르지. 내가 다시 이 부대로 발령받을지.”

‘저것도 도발이겠지…. 아니, 그냥 평소의 윈터답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놓치지 않고 분석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정말 기분이 안 좋은 게 맞았구나.’

로판 클리셰가 아니라, 윈터는 아퀼라 때문에 열이 올랐나 보다….

아퀼라와 윈터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럴 가능성은 작은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리 인사드리는 겁니다.”

“네 말대로 확률이라는 게 존재하니, 그 작은 가능성에 운을 맡겨 보고 싶군. 그리고 아직 인사를 나누기에는 3개월이 남았지.”

“그렇지만 3개월은 너무 짧습니다.”

“글쎄, 난 3개월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점점 더 아연한 기분을 느꼈다.

‘지들이 뭔 사교계 영애야?’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속내를 숨겨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 아니, XX, 도대체 저 화법을 왜 내가 쓰지 않고 쟤네들이 쓰고 있는 거지?

둘 다 무표정의 얼굴이었지만 점점 살벌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좀 이곳을 탈주하고 싶어졌다.

누가 보면 꼭 여주를 두고 두 명의 남주가 경쟁하는 태도였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 XX 아포칼립스 세계에 통수를 맞은 게 몇 번인데.

도무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오도카니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윈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사루비아.”

“예, 예?”

“내가 다른 부대로 가고 나면.”

“예?”

“편지를 써도 될까?”

“예?”

“네가 제대하고 난 이후에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난 그 도움을 줄 수 있다.”

윈터는 대답을 강요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아퀼라도 이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XX, 이게 뭔 상황이야.’

도대체 왜 이제 불똥이 나한테까지 튄 거지…?

“윈터 님.”

이번에는 아퀼라가 윈터를 호명했다.

“조심하십시오. 오해받지 않도록.”

“뭐?”

“194쪽의 군법 제15장 93조를 잊으셨습니까? 하나, 군 내 교제가 이루어지는 경우 그 대상자들은 서로 다른 부대로 전출된다. 둘, 지휘 관계에 있는 자들의 교제 시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셋, 군 내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너, 너는 그걸 왜 외운 건데?”

내가 말을 더듬으며 묻자, 아퀼라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인상 깊어서.”

“어어, 그래….”

아퀼라가 방금 했던 말은 예전에 윈터가 아퀼라와 나 우리 둘에게 읊어 줬던 것이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 그대로 되돌려 주다니.

그러나 윈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어차피 3개월 후에 다른 부대로 가니 오해받아 전출될 일을 걱정할 건 없겠군.”

“둘, 지휘 관계에 있는 자들의 교제 시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모든 법이 옳은 건 아니지. 어떤 건 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아퀼라와 윈터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괴로워졌다….

바로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순찰하고 오랬더니 너는 여기서 뭐 하냐?”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건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유리였다.

“유리 님…!”

그리고 이 순간 유리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유리, 나를 구하러 왔구나…!

“순찰 끝났으면 빨리 숙소에 들어올 것이지.”

…아니, 나를 갈구러 왔구나.

내가 이 불합리한 운명에 대해 속으로 저주를 시작하려 할 때, 다행히도 유리는 내게서 관심을 거두고 아퀼라와 윈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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