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 뒤 우리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허겁지겁 정부 청사 건물로 달려갔다.
이미 정부 청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내가 교육부 최고위원이었기에 무사히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가블 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사루비아 양!”
다행히 가블 님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루비아 양도 알다시피, 그동안 제국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연합한 황실군은 수도를 습격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시민 혁명군에 의해 막혀 왔지.”
“예, 생각보다 그들이 잘 버텼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금방 점령당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수도 밖에서도 시민 혁명군이 봉기하여 가세한 덕에, 황실군의 세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도 들었다.
“그래, 수도를 도무지 탈환하지 못하니 이제 황실군이 목표를 바꾼 모양이야.”
“그렇다면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네. 그들은 이 노스던 연맹을 공격하려는 거야!”
“세상에.”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러니까 가블 님의 말에 따르면 수도를 뺏지 못한 황실군이 대신 우리 노스던 연맹을 향해 행군하고 있다는 거였다.
“연맹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도착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마 내일 중이면 노스던 연맹의 국경에 도달할 거야. 그리고 그들의 수는 십만 명쯤 된다고 하네. 우리 모두가 전쟁에 출정해야 해.”
“십만 명….”
나는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지만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저희에게는 오러탄이 있으니, 브테인 왕국을 이겼듯 우세를 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오러탄이라는 강점이 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상대의 수가 워낙 많으니 끝없는 싸움이 될 거야. 체력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그들에 비해 비축한 자원이 부족하다는 거지.”
“아….”
하긴, 우리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측의 총알이 전부 떨어지면 끝나는 거였다.
“시민 혁명군 측에서 물자를 지원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뭐가 문제인지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곧 전 국경방위군 출신에게 소집 명령이 내려질 걸세. 그러니 자네도 준비하고 있도록.”
“예.”
나는 아퀼라, 이시나와 함께 심각한 얼굴이 되어 정부 청사를 나왔다. 우리 뒤를 시무룩한 얼굴로 뒤쫓아오고 있는 달린도 함께였다.
“사루비아 님, 저는 이제 죽는 겁니까?”
“뭐? 죽긴 왜 죽어! 당연히 우리가 이길 건데!”
달린이 답지 않게 불길한 말을 뱉기에 나는 달린에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얘가 왜 갑자기 급발진해서 데드 플래그를 밟는 거야?
“하지만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중대장 출신이니까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측에는 탄환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하아….”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쩌면 달린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물자가 부족한 상태로 적군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니까 말이다.
“안 되겠어. 뭔가 방법이 필요해.”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머리를 굴려 보려 했지만, 판세를 뒤엎을 기막힌 방법이 그렇게 금방 나올 리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물자를 덜 쓰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거지.’
오러탄은 하나의 탄환으로 큰 살상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보다도 더 큰 화력을 낼 수 있는 전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술이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몇 시간 뒤 침울한 얼굴로 긴급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다들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혹시 자원을 최대한 절약하여 이용할 방안, 혹은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전략적 고견을 나눠주실 분이 있으십니까?”
총위원장이 그렇게 물었지만, 위원들은 모두 침묵했다.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일단 가용 자원 리스트를 먼저 점검해 보죠. 이 일대에서 가장 풍족한 자원이 뭡니까?”
총위원장이 기존 주민 출신 위원을 향해 묻자 그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 이곳의 특산품이라면 기름이랑 크랜즈 열매가 있습니다.”
“아니, 특산품 말고 전쟁에 도움이 되는 건 없습니까?”
“기름으로 불을 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을 꺼낸 의원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공격이 아니라 수성전이니 총을 쏘는 것보다는 불을 지르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기름? 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루비아 양?”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건데, 우리 측에는 속성 오러가 있었다!
내 주위의 사람들뿐이 아니더라도, 많은 아르콘이 모였으니 속성 오러를 쓸 수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탄환에 오러를 담아 쏘는 오러탄. 거기서 탄환에 속성 오러가 담긴다고 가정하고, 위원이 말한 대로 기름을 이용한다면….
강력한 한 방을 보여주고 상대를 겁에 빠뜨리면, 이 전쟁에서 도망치게 만들 수도 있겠지!
나는 들뜬 목소리로 방금 생각해낸 아이디어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모양으로 설명을 듣던 위원들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 * *
거대한 북소리가 울렸다.
제복을 갖춰 입은 병사들이 긴장하여 오와 열을 맞춰 총을 든 채 행진했다. 병사들이 발을 구를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쿵쿵쿵-
저 멀리로 완전 무장한 채 행군하는 황실군이 보였다.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후원을 받은 군대답게, 한눈에 보더라도 좋은 총을 든 게 눈에 띄었다. 와, 저건 나도 만져보지 못한 최신 소총인데….
내가 그들의 무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들은 우리의 앞에 도달했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우리를 향해 외쳤다.
“반역도들은 성문을 개방하고 나라를 무너뜨린 것에 대한 책임을 져라!”
우리를 향한 경고성 발언이었지만, 우리 측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꺼져라!”
“나라를 망친 건 너희들이다!”
“귀족의 개는 물러가라!”
상대도 우리가 이렇게 나올 것을 안 듯, 뭐라 반응하지 않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 개시!”
그 말과 함께, 우리 측도 행동을 시작했다.
황실군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눴고, 우리 또한 총을 겨눴다. 다만 우리가 겨눈 건 바로….
“무, 물총?”
우리가 저들을 향해 물총을 쏘자, 그들은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들 중 누군가가 물총에서 나오고 있는 게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건 기름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물총에 기름을 담아 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름을 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곧….
탕-!
불 속성의 오러가 담긴 탄환이 발사됐기 때문이었다.
아퀼라를 비롯하여 불 속성 오러를 쏠 수 있는 자들 몇 명이 앞에 위치해 있었고, 그들이 쏜 탄환에는 불꽃이 둘러져 있었다.
탄환이 우리가 미리 쐈던 기름에 닿자마자 요란한 폭발 소리가 들렸다.
파바방-!
“으아악! 불이다!”
오러탄이 터짐과 동시에,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기름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황실군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어쩔 줄 모르며 우왕좌왕했다.
“이런, 후퇴하지 말고 공격하라!”
황실군의 대장은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앞 열에 있는 자들은 온몸에 불이 붙어 무력화된 상태였다.
그들은 빠르게 부상자를 수습하고 열을 바꿨지만 우리도 그동안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탕-! 탕탕-!
기름을 쏜 뒤 불 속성 오러를 통해 불꽃을 붙이는 작업이 쉴 틈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기름과 불탄을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쏟아부을 수 있는 동선을 미리 세밀하게 짜두고 짧은 시간이나마 철저히 훈련한 덕이었다.
불 속성 오러가 담긴 탄환은 단순히 불화살을 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거리에 불꽃을 퍼뜨릴 수 있었다. 거기다가 우리는 탄환을 아끼고도 큰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공격을 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압도적인 병력차로 인해 우리 측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치밀한 전략에 말려든 상대는 우리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
기나긴 공성과 수성의 공방전이 이어진 끝에.
“후퇴하라!”
마침내 완연한 패색 속에 그들은 화상을 입어 죽어가는 병사들을 미처 수습하지도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승리의 기쁨에 젖어 환호했다.
“우리가 이겼다!”
“적이 후퇴했다!”
나도 그 사이에서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이번 일이 내 덕분임을 아는 몇몇 병사들이 사방에서 포옹해 왔지만, 나는 그들을 밀어내지 않고 이 기쁨을 즐길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후퇴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우리가 아니었다. 곧, 우리 측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적들을 쫓아라!”
“와아아아!”
잔뜩 사기가 오른 우리 측 병사들은 그대로 성 밖으로 나가 적군을 쫓았다.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그들의 뒤를 보며 달렸다. 신체 능력도 우리가 훨씬 우수한 데다 수성 중 더 효율적으로 체력을 보존한 덕에 그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충분히 우리의 사격 거리 내에 들어왔다고 느껴졌을 때, 대장이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그러자 몇 명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뭐, 뭐지?”
오러를 담아 쏜 탄환이 허공에서 터지자마자,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왜냐하면 방금 탄환을 쏜 병사들은 어둠 속성의 오러를 쓰는 병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빛 속성의 오러를 다루는 달린이 존재하듯, 당연히 어둠 속성의 오러를 다루는 병사들도 존재했다.
그들이 쏘는 탄환은 일시적으로 사방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게 가능했다. 즉, 적군의 시야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황실군이 어디가 앞인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우리는 빠르게 일반적인 오러를 실은 탄환을 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황실군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의 작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장은 다시 한번 공격 개시를 알리는 명령을 내렸고, 미리 준비된 일부 병사가 앞으로 나왔다.
“달린!”
바로 달린을 포함해 빛 속성 오러를 쓰는 병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