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 떼는 마물이 아닌데… 왜 흑마술의 부작용이라는 겁니까?”
“페어리 떼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측해 봤을 때, 그곳에는 얼마 전에 체포된 흑마술사의 거처가 있었어. 원래 페어리 떼가 봄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시기에 페어리 떼가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흑마술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지.”
정말 어딜 가나 내 인생에 흑마술이 끼어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늘 안 좋은 방향으로.
‘그러니까, 이런 게 바로 흑마술의 부작용이라는 거구나….’
내가 흑마술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대가로 가장 소중한 기억을 바쳤듯, 그 흑마술사도 흑마술을 사용한 후 부작용으로 페어리 떼를 왕창 탄생시켰다는 소리 같았다.
어찌 됐든 흑마술이 발동될 때는 반드시 부정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로 피해 입는 게 우리라니, XX!
“흑마술사들이 요즘 기승을 부린다고 하더라. 당분간 아마 우리도 피곤할 거다.”
‘…XX, 에이프릴 파이팅.’
이런 식으로 에이프릴을 응원하게 될 때마다 정말 자존심 상한다….
내가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에이프릴이 이 세계를 깨부수기를 바라고 있을 때, 유리는 이제 페어리 떼의 대처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페어리 떼가 건물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돼. 그러니 우린 모든 출입구를 폐쇄해야 하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유리는 꼭 먼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태도가 페어리 떼를 처음 겪는 사람의 것 같지는 않아서, 내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유리 님은 페어리를 겪어 보신 적이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유리가 어쩐지 비통함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루비아 네가 입대하기 한 반년 전쯤이었어. 그리고 그때는….”
유리의 눈빛이 갑자기 애절해졌다.
“에이프릴 님이 계셨다….”
“아….”
나도 덩달아 아련한 표정이 되었다.
에이프릴이 얼마나 깔끔을 떨고 벌레를 싫어하는 성격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는데, 페어리 떼의 습격을 겪다니….
“에이프릴 님은 정말 출입구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없도록 본인이 꼼꼼히 확인하셨지….”
빈틈이 있었다면 후임들이 얼마나 털렸을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평소보다 여섯 배쯤 예민하셨어….”
“그런 말도 안 되는….”
평소보다 여섯 배 더 예민한 에이프릴이라니, 그쯤 되면 그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건 그냥 걸어 다니는 재앙이잖아.
유리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반드시 페어리 떼로부터 습격을 막아 낸다. 에이프릴 님의 마음으로 빈틈을 허용하지 않겠어.”
“넷슴다….”
…혹시 원작 사루비아가 페어리 떼에 대비하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은 없나? 아니, 아무리 봐도 저것들도 마물이란 말이야….
* * *
제대 D-1902일.
벌레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훈련은 중지되었다.
대신 우린 그 시간에 무기고와 비품 창고가 있는 건물을 단단히 폐쇄하였다. 테이프로 빈틈이 없도록 문과 창문을 틀어막고, 환풍구까지 틀어막았다.
그다음에는 식당을 틀어막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대 건물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숙소가 있는 소대 건물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창문과 환풍구가 모조리 틀어막혔고, 유리는 매서운 눈빛으로 화장실 배수구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그리고 며칠은 버틸 수 있을 식량이 보급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소대 건물의 하나뿐인 문도 폐쇄될 준비를 마쳤다. 아직 경계 근무는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완전히 폐쇄되지는 않았지만.
“아, 피곤해….”
나는 열심히 테이프를 붙였더니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복도를 걸었다. 이제 일도 끝나고 훈련도 없으니 숙소에서 계속 쉴 수 있긴 하겠지만, 나에게는 차라리 훈련을 하는 편이 나았다.
‘사실 이런 거에 대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물론 페어리 떼의 습격도 나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지만, 내가 더 시급하게 대비해야 할 건 바로 내 죽음이다!
“이시나 님.”
내가 진지한 얼굴로 이시나의 이름을 부르자, 이시나가 고개를 스윽 돌려 내 얼굴을 쳐다봤다.
“왜, 사루비아?”
“이시나 님은 제가 뭘 보충하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제가 더 개선하면 좋을 점 말입니다.”
나는 조금 전 이시나에게 패티와 매티, 제이슨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지만, 이시나가 너무나도 수상한 눈으로 나를 봤기 때문에 그 질문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 특유의 통찰력으로 내가 무언가 일을 꾸미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정말 억울했다….
‘그래도 뭐, 패티, 매티, 제이슨의 문제는 걔네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니까….’
나도 굳이 간섭하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죽음이라든가. 내 약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라든가.
그리고 이시나는 통찰력이 뛰어나니, 내 약점에 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아….”
그러나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이시나는 한숨을 푸욱 내쉰 후 말했다.
“머리 좀 잘 묶고 다니고, 셔츠 깃 자꾸 말리니까 그것 좀 잘 피고, 신발 끈 좀 잘 묶고, 응?”
아니, 이런 걸 말한 게 아니었는데….
“넷슴다….”
“너 귀찮은 건 아는데 잘 챙겨 입고 다녀야지….”
왠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말에 내가 작게 대답하자, 그가 다시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그리고 그는 이전에 행군에서 그랬듯, 능숙한 손길로 내 머리카락을 다시 묶어 주었다. 물론 내가 머리를 못 묶는 건 아니었지만, 다만 귀찮았을 뿐이었다….
“오.”
손을 올려 머리를 만져 본 내가 감탄했다. 정말 프로 같은 솜씨였다.
“왜 이렇게 잘 묶으십니까? 여동생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이시나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외동이었는데,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거든. 그것도 부모님께 여동생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기 위해 연습했던 거였지.”
“오.”
원작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어릴 적 얘기에 내가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여동생을 원한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음, 별건 아니고 그냥 어린애들이 그렇듯이 동생을 원한 거였는데.”
이시나가 과거를 떠올리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동네에 같이 놀던 남자애들은 이미 많았고 걔네는 시끄러웠으니까 여동생을 원한 거였지, 뭐.”
“아하.”
“결국 여동생은 얻지 못했지만.”
이시나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후 그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뭐,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 왜입니까?”
“그때의 난 몰랐지만, 말 지긋지긋하게 안 들을 것 같아….”
“…하하.”
“진짜 말 지지리도 안 들어….”
* * *
“하아….”
남자 화장실에서 한숨을 푹 내쉬며 나오는 제이슨을 본 내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다크서클은 이제 더 진해져 있었다. 타로의 절반 정도?
…저걸 그대로 두는 게 맞나? 정말 쟤네가 알아서 친해지기는 할까?
“그냥 제이슨, 괜찮냐?”
“아, 사루비아 님…. 예, 괜찮습니다….”
“오늘도 네 동기들이 뭔 사고를 친 건 아니지?”
“예, 아직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이 눈을 부릅뜨고 복도를 달려가며 외쳤다.
“야, 그냥 제이슨! 네 동기들 좀 잘 챙겨라! 지금 걔네 둘이 서로 발이 꼬여서 넘어져서 기절했단다!”
“예…?”
제이슨의 얼굴이 순식간에 망연자실해졌다.
그러다가, 그는 곧 갑자기 밝아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절해 있으면 사고를 못 치니…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사고를 못 칠 거지 말입니다.”
…나는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진심으로 좋아 보였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래, 너라도 그냥 제이슨이라 다행이다.”
나는 제이슨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제이슨이 고문관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은 고문관과 고문관이라는 느낌인데, 만약 제이슨까지 고문관이어서 고문관과 고문관과 고문관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정말 모두가 괴로웠을 것이다.
패티와 매티를 통제할 유일한 인물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물론 원작 시점에서의 일이고, 아직은 아니지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드림이 복도를 날듯 뛰어가며 제이슨에게 외쳤다.
“그냥 제이슨! 무리에서 떨어진 것 같은 페어리 한 마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데! 패티와 매티가 기절해 있던 방에 페어리가 들어와서 둘이 깨어났다고 하더라! 어휴, 뭔 비명이 그렇게 큰지!”
“…인생….”
제이슨이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는 차마 그를 위로해 줄 말도 없어 그냥 자리를 떠났다….
벌레가 제이슨의 몫까지 고문관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구나….
* * *
저 산 너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선임들은 모두 빠르게 움직였다.
“비상! 페어리 떼가 나타났다!”
“모두 문을 막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그건 페어리 떼의 출몰을 알리는 신호였다.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말을 듣자마자 소대장과 부사관들까지 나와 빠르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지난 사흘간 막아 놓은 창문들을 잘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문까지 틀어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출입구가 폐쇄되고.
두두두두-!
무언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움찔하며 놀랐다. 창문에 거대한 무언가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소름 끼치기 짝이 없었다.
벌레 떼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