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수도에 다녀온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아퀼라가 당황하고 있을 때, 사루비아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교육부 최고위원으로 임명된 사루비아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북부의 교육은 너무나도 미흡했습니다. 수도의 아이들의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수도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기회를 잃어야 했습니다.”
“오오!”
“맞는 말이야.”
사루비아의 힘찬 연설은 곧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난데없이 사람들의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사루비아의 모습에 아퀼라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사루비아의 연설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러분, 마을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교육입니다!”
그녀가 소리 높여 외쳤다.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야 이 노스던 연맹 또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의무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또 무상으로 기본 교육을 받는 겁니다.”
“의무 교육이라고?”
사람들이 사루비아의 말에 뜨겁게 반응할 때, 사루비아가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제가 실시할 교육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무대 위로 커다란 글씨가 써진 포스터가 올라왔다. 그 포스터의 내용을 읽은 순간, 아퀼라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학교 교육을 오후까지 진행하여 우리 학부모님들이 돌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야간 자율 학습을 신설하여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겠습니다.”
“오오, 애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니!”
“정말 좋은 생각이야!”
“어, 엄마?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렴! 다 너희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그러는 거야!”
“또한, 매년 네 번씩 모든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시행되는 시험을 실시하겠습니다. 그 시험을 통해 자녀가 자치 도시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을 겁니다.”
“공통된 시험이라니, 왜 진작 저런 생각을 못 했지?”
“시험을 네 번이나 본다고? 엄마, 저는 싫어요!”
“조용히 하렴! 저렇게 좋은 정책을….”
그 후로도 사루비아의 연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루비아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부모님들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교육부 위원이 아주 훌륭하군!”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증가할 수 있겠어요!”
“애들을 학교에 묶어놓을 수 있다니, 아주 편해지겠어!”
이제 사람들은 사루비아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사루비아! 사루비아! 사루비아!”
그리고 아퀼라는 그 가운데 한숨을 푸욱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사루비아…. 대체 그사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물론 그의 사루비아가 교육부 최고위원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른 건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역시 사루비아는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가 없는 애였다.
그래도 아퀼라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사루비아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는가. 그는 그런 사루비아가 못 견디게 자랑스러웠다.
* * *
아퀼라가 돌아온 뒤, 나는 그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퀼라는 내가 그런 일 때문에 갑자기 교육부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데에 황당해하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잘 됐다며 축하해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 매일 출근하기로 했어. 이제 나도 백수 탈출이야.”
“잘됐네. 축하….”
그러다가 아퀼라가 입을 딱 다물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는 백수인 건가?”
“…우리가 혁명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잠깐 동안은 백수일 수도 있지.”
“글쎄….”
그렇지만 아퀼라는 여전히 자신이 백수 신세가 된 게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그렇다. 많은 로판에서는 남주와 여주가 모두 백수, 즉 귀족이지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로판의 남주와 여주인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어색한 상황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쨌든 아퀼라의 새로운 직업 문제는 다음으로 미뤄두고, 우리는 결혼식의 날짜에 대한 의논을 시작했다.
“다음 달쯤에 하면 괜찮겠지?”
“응, 준비할 게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그럼 이날로 잡자.”
그렇게 날짜를 정한 뒤에는, 청첩장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이곳에는 당연히 청첩장 대행업체 같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고도로 발달한 웨딩업체 같은 건 없는 탓에, 우리는 일일이 하나하나 청첩장을 만들어야 했다. 아니, 이런 건 원래 여주가 귀족이면 사용인들이 알아서 처리해주는 거 아니었냐고.
하지만 나는 이미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청첩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잠시 후….
“다 했다!”
나는 뿌듯하게 지금까지 만든 청첩장들을 내려다보았다. 청첩장을 모두 만들었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뻔했다.
“이제 이걸 돌리고 오자!”
우리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청첩장을 돌리는 시간이었다.
* * *
청첩장 더미를 들고 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얘기하던 알타이르와 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서 네 태도가 문제라니까?”
“문제는 무슨, 난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야.”
“난 너랑 술 마실 생각 없거든? 그럼 윈터는 왜 안 부르는데?”
“알타이르 님, 유리 님!”
“흠흠.”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둘은 아무것도 얘기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 입을 딱 다물었다.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무슨 얘기 하고 계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흠흠….”
“그냥 이 자치 도시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 예….”
누가 봐도 수상쩍긴 했지만, 나는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그래, 엄연히 로판 세계인데 여기서 로맨스 좀 찍을 수도 있지.
“사루비아, 그래서 너는 무슨 일이야?”
“아, 전해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나는 품 안에서 종이 두 장을 소중하게 꺼냈다.
“이걸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건… 앗!”
“아앗!”
청첩장을 받은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희! 결혼식을 이제야 하는구나!”
“난 쟤네가 이미 결혼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니었다고 하더라.”
물론 그들이 놀란 건 조금 다른 포인트였던 것 같지만 말이다….
둘은 신기한 눈으로 청첩장을 살피더니, 다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윈터네 집에 술이라도 함께 마시자고 찾아가야겠군.”
“그래, 그 불쌍한 자식. 저번에 사루비아로부터 배운 폭탄주 기술을 선보여 줘야겠어.”
“좋아, 마시고 죽자.”
그러더니 둘은 비장한 얼굴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 윈터네 집으로 가는 거겠지.
나는 허망한 눈으로 그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윈터의 곁에 저 둘이 있어주어서 참 다행이었다….
“음…. 뭐, 우리는 다음 사람을 찾으러 가자.”
“그래.”
아퀼라는 나보다 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왜 저런 희한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와서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 뒤로도 우리는 각양각색의 반응을 겪었다. 예를 들어….
“베니, 너에게 부탁할 게 있….”
“아앗! 내가 해냈어! 아버지! 제가 해냈습니다!”
“베, 베니? 진정해….”
“내 팔 년간의 숙원이 이루어졌어! 피아노 반주는 제가 하겠습니다!!”
“으응, 그걸 부탁하려고 했는데 고마워….”
청첩장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른 베니라든가.
“오랜만이다, 루나?”
“사, 사루비아 님?”
자치 도시에서 다시 만나게 된 루나는 내 청첩장을 받아들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사루비아 님이 결혼을 하신다니….”
“왜, 꼽냐?”
“아니, 단지 상대가 누구인지 안타까워서 말입… 아.”
아퀼라를 발견한 루나는 갑자기 그럴 수 있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저번에 본 저분이라면 그럴 만합니다. 저분도 좀 미쳐 있으신 것 같으니.”
“뭐?”
“아닙니다, 어쨌든 결혼식 때 뵙겠습니다!”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루나도 그렇게 내 결혼식에 참석을 약속했고.
“우와! 결혼하면 사루비아 님이 웨딩드레스를 입으시는 겁니까?”
“그렇지.”
“우와! 저 웨딩드레스는 처음 봅니다! 너무 신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난 거야…?”
카론은 단지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할 뿐이었다. 내가 애써 키웠지만 정말 알 수 없는 애였다.
“윈터 님, 여기 청첩장을….”
“…우리 부모님도 초대해야겠군.”
그리고 청첩장을 받고 미묘한 얼굴이 된 윈터라든지.
“이시나 님! 저 여기 청첩장을…!”
“사루비아….”
“…이시나 님, 지금 우십니까?”
“아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 말도 안 돼…. 내가 그동안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를 다른 누군가가 채 간다니….”
“이, 이시나 님?”
“아퀼라 저 도둑놈….”
이시나는 내 청첩장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내가 눈시울을 젖힌 이시나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던 그 순간, 누군가가 이시나의 집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간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 바로 달린이었다.
“달린? 너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맞다, 너에게도 청첩장을 주려고 했는데.”
“청첩장 말씀이십니까? 와! 정말 신나… 앗, 사루비아 님, 지금 여기서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뭐? 큰일?”
달린이 드물게 긴박한 목소리와 심각한 표정을 내는 걸 보면 뭔가 정말로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내가 달린을 향해 휙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대뜸 폭탄 발언을 던졌다.
“자치 도시로 황실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