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와 매티는 돈이 엄청나게 많다! 아마 그들은 이 부대에서 가장 재력가일 것이다.
상단에서 일하다 왔다고 한 패티는 사실 거대한 상단의 후계자이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왔다고 한 매티는 사실 영지 하나에 버금가는 광활한 토지의 주인이다.
사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아르콘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국경방위군으로 끌려오게 된 케이스였다. 어머니 쪽에 희박하게 아르콘의 피가 섞여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패티와 매티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패티와 매티의 부모님은 거의 그들의 장례를 치르는 심정으로 그들을 국경방위군으로 보냈지만…
그들은 개그캐라서 절대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이후 여주 달린과 친해진다.
그래서 달린은 ‘권력’을 제공하는 베니와 ‘돈’을 제공하는 패티와 매티를 모두 조력자로 얻게 되지만!
‘내가 이러려고 원작을 떠올린 거지.’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패티와 매티는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저 둘과 친해지면 좋을 텐데, 음….
‘…과연 대화가 통하긴 할까?’
사실 패티와 매티의 정신 상태를 고려했을 때, 내가 그들과 친해지는 것보다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을 갈구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 있었다.
원작에서 그들의 중재자이자 그들의 절친한 동기, 유일한 정상인 제이슨. 제이슨과 친해진다면 패티와 매티와의 관계도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원작이랑 다르게 한 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다….
‘분명히 원작에서는 친했잖아….’
하지만 지금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아….”
제이슨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고, 밀피와 베니가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달래 주고 있었다.
“그냥 제이슨,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내가 가벼운 어조로 그렇게 묻자, 다시 제이슨이 괴로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 힘듭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제이슨은 상당히 평범한 신병이었다.
평범하게 실수하고, 평범하게 고참들 앞에서 긴장하고, 평범하게 탈영하고 싶어 하고….
그러나 제이슨은 패티와 매티의 대비 효과로 왠지 엄청나게 엘리트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패티와 매티가 사고를 치는 동안 가만히 있는 제이슨을 보면 어쩐지 그가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이슨은 선임들로부터 ‘제발 동기들 관리 좀 해라.’, ‘넌 너만 잘하면 다냐? 동기들은 네가 챙겨라.’, ‘연대책임 모르냐?’ 등의 발언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고참들도 막지 못하는 전설의 고문관 패티와 매티의 사고를 그 혼자 막는 건 당연히도 불가능했다.
“저는 제 동기들이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응, 우리도 다 그래.”
상등병들이 하는 말에 따르자면 보통 어리벙벙하고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 병사, 소위 ‘고문관’은 자신감이 결여된 태도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실수를 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또 실수하고. 그런 악순환인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저 그들을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면 자신감을 붙일 수 있다고 상등병들은 설명했다.
그러나 패티와 매티는 그런 전형적인 타입의 고문관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새롭고 참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늘 생각 없이 행동하여 실수를 연발했는데, 자신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에 별로 겁을 내지 않았다. 선임들에게 아무리 털린 뒤라도 헤헤 하고 웃으며 일어나서 선임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하다못해 그들에게는 ‘공포와 폭력 어쩌구’의 교육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간상이야….”
내가 맞장구를 치자, 제이슨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전 제 동기들이 정말 싫습니다…. 정말, 정말 싫습니다…!”
‘내 동기가 아퀼라라서 참 다행이야….’
…아니, 그런데 분명 원작에서는 친했는데?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지?
나도 웬만해서는 제이슨에게 마음을 넓게 열고 동기를 받아들이라고 조언을 해 볼 텐데, 패티와 매티가 지금까지 친 무수한 사고들을 떠올리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시간을 두고 좀 지켜봐야겠다.’
혹시 모르지 않나. 나와 아퀼라가 친해진 것처럼, 그들에게도 친해질 계기가 생길지.
결국 제이슨에게 아무런 위로도 해 주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는 제이슨을 슬쩍 지나쳐 자리를 빠져나갔다.
* * *
“앗, 이시나 님!”
저 멀리 복도에서 이시나의 모습을 발견한 내 얼굴이 밝아졌다.
이시나, 그는 비록 흑막이기는 하지만, 그건 오히려 그가 인간관계를 다루는 데 아주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임들과도 모두 잘 지내고, 심지어 그 인성 파탄 85기와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시나한테 제이슨 기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슬쩍 떠봐야지.’
그라면 괜찮은 조언을 해 줄지도 모른다!
이시나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하던 바로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내가 걸음을 멈췄다.
아니, 창문에 붙어 있는 저 벌레는….
“꺄아아아아악!”
벌레를 본 내가 거의 점프하다시피 하며 창문에서 멀어졌다.
XX, 미친 거 아니야? 대체 저게 뭐지?? XX, XX, XX!
“꺅! 꺄아악!”
왠지 온몸이 찜찜한 기분에 내가 손을 탈탈 털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내게로 달려온 이시나가 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으, 으스느 늠?”
이시나가 내 입을 막은 채 창문을 노려보았다. 창문을 탕탕 쳐서 벌레를 내쫓은 그가 그제야 내 입에서 손을 떼 주었다.
“아니, 사루비아…. 뭘 이런 것 갖고 그래….”
“하지만 벌레가 완전 컸습니다! 이시나 님도 보셨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대는 빌어먹을 산 위에 있고, 나는 이곳에서 온갖 벌레들을 다 봐 왔다. 사람들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법한 벌레들도 많았다.
내가 밖에 나가서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방을 봤다고 하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겠지? 하지만 억울하게도 그건 꽤 흔한 벌레였다….
어쨌든, 창문에 붙어 있는 벌레는 온갖 벌레에 익숙해진 나도 경악할 만한 흉측한 생김새였다.
기본적으로는 초록색 나방처럼 보였는데, 몸이랑 더듬이의 길이가…. 아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니 다시 떠올리지 말자.
“하아…. 너는 좀 얌전해질 필요가 있어.”
이시나가 어쩐지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기에, 나는 입을 닫았다. 음, 좀 시끄러웠나 보군….
이시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말했다.
“사루비아 네 말대로 확실히 심상치 않은 벌레기는 했어.”
“네! 제가 오바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네가 오바한 건 맞고….”
“예….”
“어쨌든 좀 찜찜한 게 있어서, 아무래도 보고해야겠어.”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이시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XX, 내 죽음이고 뭐고, 패티, 매티, 제이슨의 관계고 뭐고 저 벌레를 처리하는 게 우선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오랜만에 평화롭나 했다….
* * *
조금 뒤, 중대장은 진지한 얼굴로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페어리 떼가 이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
페어리라면 내가 알기로는 동화 속 요정, 혹은 로판에 나오는 요정 같은 것이었는데, 이 세계에 그런 게 존재한다고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선임들은 다들 중대장의 말을 듣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모두 페어리 떼에 대비하도록. 습격하는 동안에는 경계 근무를 설 필요 없다. 중대장이 실망하기 전에, 빨리 행동하도록!”
“예!”
‘대체 뭐지?’
* * *
그리고 페어리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선임들의 말에 따르면, 페어리는 ‘붉은눈초록몸노란다리나방’을 줄여 이르는 말이라고 했는데, 그 사이즈와 외형 때문에 벌레가 아니라 마법적인 존재로 착각한다는 데에서 ‘페어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그리고 페어리는 떼로 움직이는 습관이 있지.”
페어리들은 수백 마리, 아니, 수천 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황폐화시킨다고 했다. 지구에서 들어 봤던 메뚜기 떼의 습격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다.
내가 목격했던 한 마리의 페어리는 다른 페어리들이 움직이기 전에 미리 움직인 놈 같다고 했다. 즉 곧 페어리가 우리 중대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페어리 떼는 마물인 겁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놀랍게도 그건 마물이 아니다.”
“예?”
“그건 놀랍게도 그냥 평범한 곤충이다.”
“아니…. 완전 마물처럼 생겼지 말입니다….”
“걔네는 마물보다 더 강해.”
유리가 인상을 팍 쓴 채 말했다.
“걔네는 국경도 자유롭게 오가지. 왜냐하면 마물들도 페어리 떼를 피해 갈 정도거든.”
“…그 정도면 그냥 마물로 분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동의해. 이 문제는 흑마술분류협회에 따져야 한다.”
“아, 마탑 말입니까?”
“뭐?”
유리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탑이 뭐지?”
“마법을 관리하고,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그런 탑 없습니까?”
“뭔 소리야? 그런 탑이 어디 있어?”
정말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의 유리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 ‘마탑’이란 건 없는 모양이다.
그럼 능력 있고 잘생긴 천재 마탑주도 없겠지? 있는 건 군대밖에 없군, XX….
“저 페어리 떼는 그냥 이렇게 마음대로 이동하는 겁니까? 박멸한다든가, 그런 건 불가능합니까?”
내가 그렇게 질문하자, 순식간에 유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넌 아직까지도 이곳을 몰라? 박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 걸 감사히 여겨야지. 박멸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 일을 맡는 건 우리라고.”
“아하…. 역시 유리 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는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런 내 얼굴을 보고 있던 유리가 중얼거렸다.
“사실, 굳이 따진다면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예? 페어리 떼는 마물이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흑마술 수색 특수군이 해야 하는 일입니까?”
“아, 너희는 모르겠구나. …그런데 너라면 뭐….”
유리는 망설이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게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얼른 자세를 낮추어 귓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나도 위에서 소문을 대충 들은 건데, 이번 페어리 떼는 흑마술사가 사용한 흑마술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