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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2화 (67/233)

그래도 앞으로 옆집에 살 거니 안면은 익혀 두는 게 좋겠다 싶어, 나는 그에게 살갑게 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그도 아르콘을 꺼리는 사람은 아닌지, 호의적인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예,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그는 거기서 인사를 마칠 생각이 없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뭘 하고 계셨어요?”

“아, 그냥 낙엽을 쓸고 있었어요.”

“그러시구나, 하하. 그러고 보니 혼자 사세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려다, 그의 눈빛에 담긴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뭐지?’

저건 어딜 봐도 호의 이상의 감정이었다. 게다가 나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는 태도가 보였군. 음, 그러니까 내 말은….

‘나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군.’

사실 이건 흔한 일이었다. 나는 로판 여주답게 대단한 미모를 가지고 있으니, 길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도 꽤 있었다.

물론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뇨, 남편이랑 같이 살아요.”

“아…. 결혼하셨나 봐요.”

“예, 결혼을… 안 했네?”

“네?”

“그러고 보니 아직 결혼을 안 했구나?”

나는 남자랑 대화하다 말고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결혼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닌가? 결혼을 했나?”

“저, 저기요? 결혼식을 올리셨다는 건가요?”

“아뇨? 결혼식은 아직이요.”

“그럼 아직 결혼을 안 하신….”

“그런데 저희는 결혼식이 있기 전에 결혼을 한 걸로 치자고 약속했어요. 그러면 저희는 결혼을 한 거 아닐까요? 애초에 결혼을 했다고 규정짓는 건 누굴까요?”

“하, 하하….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남자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누군가의 팔이 불쑥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아퀼라!”

시장에서 장을 본 것들을 한 손에 바리바리 들고 있는 아퀼라였다.

“뭐 하고 있었어, 사루비아?”

그렇게 말하며 아퀼라가 경계 어린 눈으로 내 앞에 있던 남자를 노려봤다. 저절로 몸을 움찔하게 만들 만한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아, 아뇨?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제 마당에는 우리 둘만이 남았다.

“하아….”

아퀼라가 피곤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를 경악시킬 만한 말을 입에 올렸다.

“너는 너무 예뻐, 사루비아.”

“그,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네 주위에는 이상한 놈들이 너무 많이 꼬인단 말이지.”

“으음…. 그래서 결혼했다고 말하고 있던 참이었어.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의문이 생겼어, 아퀼라.”

나는 진지한 눈으로 아퀼라를 보며 물었다.

“우리는 결혼을 한 걸까, 안 한 걸까?”

“뭐? 당연히 한 거지.”

“그런데 아까 저 남자의 반응을 보니까 우리가 정상적인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 다른 사람한테 우리가 결혼한 게 맞는지 물어볼까?”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아퀼라가 살살 달래는 듯한 얼굴로 나를 껴안으며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곧 결혼식을 올릴 건데. 안 그래, 사루비아?”

“으음, 그렇지….”

우리는 그대로 함께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아퀼라는 곧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되겠어.”

“뭐가?”

“하루라도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겠어. 최대한 빨리.”

“뭐? 물론 슬슬 올릴 때가 되긴 했지만, 갑자기 왜?”

“네 주위에 별 이상한 놈들이 너무 꼬이니까.”

그의 로판스러운 대사를 들으며 나는 “어머….” 하고 볼을 붉히려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는 마땅한 드레스 샵도 없고….”

결혼식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다 갖춰지지 않았음을 강조하자, 아퀼라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도에 다녀와야겠어.”

“응?”

“수도 번화가에서 결혼식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봐뒀잖아. 가서 사와야겠어.”

그 필요 물품에는 아퀼라의 정장이나 내 드레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그걸 사러 다시 수도까지 갔다 오겠다고?

…하지만 수도에 가지 않으면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북부는 유통이 발전하지 않아 수도만큼 다양한 예식용 물건들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도 함께 갈까?”

“넌 여기 있어도 괜찮아, 사루비아. 듣기로는 아직 이곳의 수뇌부가 안정되기까지 도움이 필요한 것도 같고. 사루비아 너도 도움이 될 거야.”

“그거야 그렇지.”

지금도 국경방위군의 고위 간부들은 수뇌부를 차리는 데 있어 가끔씩 내 조언을 구하고는 했다. 내가 혁명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핵심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퀼라는 수도로 떠나고, 나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결론이 기정사실화되어가는 듯했다.

똑똑똑-

바로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저 노크 소리의 강도로 보아 나는 이미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들어와, 카론.”

곧 카론이 신난 얼굴로 집 안으로 튕겨지듯 들어왔다.

“사루비아 님, 사루비아 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뇨, 그냥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래….”

내가 이제는 익숙하게 카론의 텐션을 받아주고 있을 때, 아퀼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카론을 불렀다.

“카론?”

“예?”

“나는 일이 있어서 수도로 떠나야 할 것 같아.”

“아, 그렇습니까?”

“그래. 그래서 그동안 사루비아를 부탁….”

그렇게 말하던 아퀼라는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혼란에 가득 찬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부탁해?”

“네?”

“사루비아를 부탁해? 너한테 사루비아를 부탁한다고? 뭔가 이상한데….”

“왜 그러십니까, 헤헤! 저에게 믿고 맡겨 주십시오! 제가 사루비아 님을 잘 지키겠습니다!”

“아냐, 뭔가 잘못됐어…. 그럼 사루비아, 카론을 부탁해…? 이것도 이상한데. 애한테 애를 맡겨?”

“아니, 아퀼라. 그동안 내가 카론을 얼마나 잘 돌봤는지 알면서!”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항의했지만, 아퀼라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누구한테 누구를 부탁하는 거지? 아, 이시나 님이 필요해….”

“아냐, 이시나 님 요즘 잔소리 완전 많단 말이야!”

“그래, 그래서 적임자야….”

그 말을 남기고, 아퀼라는 물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눈으로 나와 카론을 보았다.

“내가 수도에 갔다 올 동안, 제발 잘 있어야 해…. 알겠지?”

“예, 당연히 잘 있을 겁니다!”

“날 뭘로 보고? 아무 일도 없을 거거든.”

“그래, 사고 치지 말고….”

그렇게 말하는 아퀼라의 얼굴이 어쩐지 애절해 보였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내가 사고를 친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음.

* * *

다음날, 아퀼라는 진짜로 수도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좀 외로워진 내가 집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퍼즐 따위를 맞추고 있을 때, 우리 집에 찾아온 건 이시나였다.

“사루비아, 아퀼라가 너를 잘 돌봐 달랬어.”

“저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혼자 있는 동안 네가 집에 불을 낼 수도 있잖아.”

“아니, 제가 카론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이시나가 온 게 반갑기는 했다. 혼자 집에 있는 건 심심했으니까.

나는 이시나와 요즘 도시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국경방위군의 일부는 당분간 그대로 국경에서 근무하기로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경 너머에 아직 남아있는 마물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빅팀이 만들어 주는 흑마술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마물들을 국경 쪽으로 유인하고, 다가온 마물들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국경 너머의 마물들을 차차 사냥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새로운 마물은 더 이상 생기지 않으니 그 작업도 곧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자치 도시의 수뇌부는 잘 모집되고 있는 모양이다. 몇몇 부서에서는 인재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는 모양인데, 음, 어쨌든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뭐. 난 평범한 삶을 살 거니까.

그때, 누군가가 빠르게 우리 집 쪽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카론이 언제나 그랬듯 익숙하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카론, 너도 심심해서 왔니?”

“아퀼라 님이 안 계신 동안 사루비아 님을 지켜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누굴 지킨다고, 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내가 그동안 카론을 얼마나 정성껏 키워왔는데.

그러다가 문득 카론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발견한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이를 먹고도 칠칠치 못하게 저렇게 옷에 흙을 묻히고 다니다니.

“카론, 뒤돌아봐.”

“네?”

카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았고, 나는 그의 옷에 묻은 흙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옷 세탁해야겠다… 잠깐만.”

그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카론의 옷에 묻은 흙먼지는 단순히 더러운 곳에 있어서 생긴 거라고 보기 이상했다. 정확히 특정 부위에만 동그랗게 흙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흙이 묻어 있는 무언가에 부딪힌 건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옷을 살폈지만, 모양만 봐서는 흙이 왜 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카론, 이 흙은 어디서 묻은 거야?”

“아, 길에서 아이들이 던지는 돌에 맞았습니다.”

“풉,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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