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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1화(2) (66/233)

“윈터, 너에게 먼저 발언 시간을 주겠다.”

알타이르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윈터는 그의 상황극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원래 알타이르는 늘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동기이므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그동안 사루비아에 대해 잘못 생각해 왔던 것 같군. 내 생각보다 약했어.”

“그래.”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는….”

“잠깐!”

얼른 윈터의 말을 막은 알타이르가, 유리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유리, 잊지 않았지?’

‘그래.’

그들은 윈터가 모든 것에 뛰어난 엘리트였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유독 서투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알타이르와 유리가 고향에서 해 봤던 망한 연애 썰을 풀 때, 윈터는 타인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헐, 윈터. 연애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야, 그냥 호감을 가질 수 있겠다 싶으면 가볍게 만나는 거지.”

알타이르와 유리가 그렇게 말했으나, 그때 윈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아니. 사랑은 앞으로 평생 이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때야 비로소….”

“그래, 나는 지금까지 올바르지 못한 사랑을 해 온 쓰레기다.”

“나는 이제부터 쓰렉이르라고 불러 줘.”

어쨌든, 그들은 윈터의 감정을 속이는 일 정도야 아주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의 그들의 예상대로 혹시 윈터가 사랑에 빠지기라도 했으면, 그는 그것을 티 내다가 전출에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일만은 막아야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절친한 친우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면 좀 꼴 보기 싫을 것 같기도 했고.

그리하여, 알타이르와 유리는 혹시 윈터가 사랑에 관한 말을 꺼내면 아니라고 설득하기로 약속했고.

알타이르가 가장 먼저 특유의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더 챙겨 주려는 거구나~? 우리도 그 얘기를 했거든! 솔직히 너도 라인인 거 인정만 안 했지 거의 라인이었잖아~.”

“이제 라인을 넘어서서 거의 친여동생처럼 챙겨 줘야지.”

알타이르와 유리의 말을 무시하고, 윈터가 굳은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후임에 대한 애정?”

“친여동생처럼 여기는 마음?”

그러나 결국 윈터는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그 말을 해 버렸다.

“사랑에 빠진 것 같군.”

“안 돼! XX,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도 진짜! 이럴 줄 알았어!”

그들이 괴로워하자, 윈터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

“다들 왜 그러는 거지?”

“네가 사랑에 빠지면 왠지 꼴 보기 싫을 것 같아서.”

“너 티 내다가 영창 갈까 봐.”

그러자 윈터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군법을 지켜 행동할 거니까.”

…그 말에, 알타이르는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사랑에 빠졌다면서?”

“그래. 하지만 군법을 어길 순 없어.”

“그럼 잘될 마음이 아예 없는 거냐?”

“제대하고 난 뒤의 이야기겠지.”

“아니, 제대하고 난 뒤에 잘되려고 해도, 여기서 미리 네 마음을 티 내든가 해야 할 거 아냐!”

알타이르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야, 연애는 암살이 아니야! 사랑을 숨기면 안 된다고!”

“하지만 군법도 어길 수는 없지.”

“하….”

말문을 잃은 알타이르를 대신하여, 이번에는 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넌 진짜 천생 군인이다…. 그냥 말뚝 박아라….”

유리가 보기에는, 사루비아는 앞으로도 윈터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게 분명했다….

* * *

“내가 전부 틀렸어.”

윈터는 그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루비아에 대해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모조리 전부 틀렸어.’

그는 자신이 입대 이전의 과거에 대해 물었을 때, 침묵하다가 이곳보다는 나았다고 말하던 사루비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는 그냥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음…. 정말 그럭저럭 자랐습니다. 뭐, 어쨌든 여기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팔을 다쳐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때, 사루비아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차라리 이곳이 낫다고.

“입대하기 전보다, 킁… 차라리 지금이, 지금이 낫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안 돌아갑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윈터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윈터 자신이야 부모가 두 분 다 이종족이고, 경제력이 갖춰진 집안에서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지만.

부모 없이 홀로 남은 어린 이종족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르지 않는데. 그 고아원에서 사루비아가 행복했을 리 없었다.

“보호자가 없는 어린 이종족들은 때로는 흑마술사에게 주술로 묶여 이용당하기도 한다.”

윈터 스스로 그런 말을 했으면서도, 그렇다면 사루비아의 과거는 과연 어땠을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자기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윈터가 생각한 대로, 사루비아는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에 늘 긍정적이고 밝은 게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런 말도 했었지.’

“사람의 생김새가 아무리 무섭게 생겨 봤자, 그런 것보다 훨씬 무서워해야 할 것들이 세상에 수없이 많지 않습니까.”

자신을 보고도 전혀 겁먹지 않는 사루비아가 한 말이었다.

사루비아는 용감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남들처럼 사소한 걸로 겁먹기에는 그런 것보다 더 어두운 현실을 봐 온 것이었다.

‘더 무서운 것이라….’

그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 팔을 다친 채 엉엉 울던 사루비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루비아는 울면서 자신의 눈물을 닦아 주던 이시나에게 칭얼거렸다. 윈터에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군다고 생각했는데, 맞선임인 이시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친근하게 굴고 있었다. 이시나는 그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사루비아의 태도가 익숙한 것 같았고.

‘그리고, 멍든 어깨….’

사격 훈련을 반복해서 하면 어깨에 멍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이상하게도 윈터는 그 멍 자국을 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윈터는 그 순간 완전히 깨달았으니까.

사루비아가 처음부터 강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강해져야 했을 거고, 강한 척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아주 연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낯선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윈터의 기준에서 제멋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거슬렸지만, 이상하게도 사루비아는 어떤 행동을 하든 거슬리지 않을 것 같았다.

윈터는 군법을 어기고 제국법을 어기는 사루비아의 모습을 가정해 보았다.

…역시, 별로 그녀를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야.’

연약한 존재에서 시작한 사루비아의 삶이 그녀 나름의 의지를 갖고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사루비아가 삶을 위해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서?

윈터는 오직 사루비아만큼은 지적하지도 않고 내버려 두고 싶어지는 이 마음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애썼으나…

‘…사실 다 변명일지도 모르지.’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사루비아가 그의 삶에 뛰어들어, 그가 정립해놓은 원칙들을 모두 박살 내면서 행동하고 있는데도.

윈터는 오히려 그녀를 더 지켜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답을 알면서도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지.”

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았다. 언제까지나 그것을 모른 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침내 윈터는 결심했다.

비록 알타이르와 유리의 앞에서는 그들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군법을 준수하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군법을 어기지 않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앞으로 윈터는 그저 그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할 작정이었다.

* * *

“사루비아, 뭐 하던 거지?”

“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실수로 화단의 꽃들을 깔아뭉갰고, 급히 그것들의 흔적을 없애고 있던 참이었는데….

‘들켰군.’

결국 나는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윈터를 쳐다봤다. 반성하고 있다는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윈터 님. 제가 꽃들을 실수로 뭉개긴 했지만, 절대로 상황을 은폐하고 있던 건 아니고….”

나는 상황 설명을 시작했지만, 윈터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담백했다.

“그렇군.”

“…예?”

“네 뜻대로 하도록.”

“잘 못 들었습니다…?”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지.”

‘…내 뜻대로 하고 나면 나를 갈구겠다는 의미인가?’

그러나 윈터는 정말로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뭐지?’

평소라면 꽃을 뭉갠 것과, 그 일을 은폐하려 든 것으로 약 20분에 걸친 잔소리를 듣고 있었을 텐데….

돌이켜 보니, 요즘의 윈터는 이전과 달리 내게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라인을 타서 그랬다기에는, 내가 그 어떤 짓을 하든 그러려니 내버려 두는 태도가 영 거슬렸다.

이게 로판 클리셰에 따라 사랑에 빠졌다든가 하는 전개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 윈터는 달린 또한 완전히 통제하려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한 결과,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이제 그냥 나를 포기했구나!’

…아니, 물론 내가 실수를 몇 번 저지르긴 했지만 이 정도로 포기한다고?

나를 포기해 줬다니 참 편하긴 한데,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빴다….

* * *

윈터의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퀼라,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아, 예.”

“맞붙으면 다칠 수 있지 않나.”

윈터와 아퀼라는 어쩐지 훈련 때마다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꼭 원작에서 여주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때와 비슷해 보이는 태도였다.

‘…로판 클리셰?’

좋아, 긍정 회로 재가동 시작한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소설 여주가 되었고 둘이 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건 아닐까?

“불을 어떻게 얼리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못할 것 같나?”

…그냥 불과 얼음 속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갈등이었구나…. 이제 윈터가 짬을 먹었으니 아퀼라에 대한 불편함을 티 낼 수 있게 된 거고….

하긴, 윈터는 예전에 아퀼라가 처음 불 속성의 오러를 각성했을 때부터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에휴, 로판은 무슨….’

이제 안 속아! 안 속아! 안 속는다고, 이 XX들아!

* * *

“음….”

쭈그리고 앉은 채로 윈터와 아퀼라,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루비아를 바라보던 베니가 중얼거렸다.

“맛있다.”

“…너 뭐 먹니?”

뒤에서 이시나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끼어들어, 베니가 얼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역시 맛있었기에, 베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군 생활의 소소한 낙은 계속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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