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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2부 61화 (65/233)

* * *

브테인 왕국군과 국경방위군 간 전쟁이 벌어졌다.

아돌브 제국의 북부에서 일어난 그 전쟁은, 단 하루 만에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는 데에서 ‘하루 전투’라는 이름이 붙었다.

결과는 브테인 왕국의 대참패였다.

아르콘들이 탄환에 오러를 담아 총을 쏘는 새로운 전투법을 개발해서, 브테인 왕국군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다.

브테인 왕국군은 새로운 전투법에 대응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경방위군은 브테인 왕국군을 제국에서 내쫓는 데 성공했고, 북부 도시는 아르콘들의 자치 도시가 되었다.

“드디어 끝났어….”

내가 감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전쟁에서 대승을 거뒀다. 브테인 왕국군은 생존자들을 수습해 간신히 달아났다.

“역시, 난 너를 한눈에 알아봤다니까, 사루비아?”

에이프릴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칭찬의 말을 건넸다.

“너의 재능을 잘 발휘해서 승전을 거뒀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루비아.”

윈터는 근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음, 역시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내가 재능을 개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답군….

한편, 아퀼라는 미묘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전투에서 빠지라고 했던 것이 민망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퀼라, 봐봐. 내가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했지?”

“…정말 그러네.”

아퀼라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어쩌면 너를 믿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 미안해, 사루비아.”

“아니, 다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란 건 알고 있어.”

내가 아퀼라의 처지였어도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잃은 아퀼라가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아퀼라가 없으면 남은 시간을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퀼라 네가 없었으면 내 계획은 실패했을걸.”

“응?”

“빈말이 아니야. 정말로.”

아퀼라가 내 이름을 되찾음으로써 난 자신감을 얻었고, 끈기 있게 이번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아퀼라, 그리고 그가 되찾아준 내 이전 세계의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오러탄을 개발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아퀼라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귀에 닿도록 올라갔다.

아퀼라가 이제 안정된 것 같아서, 나는 다른 얘기를 해 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북부 도시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곳에 오기 전 우리는 수도에 있던 집을 팔고 다시 돈을 받은 상태였다.

수도의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살 때만큼 많은 돈을 받지는 못했지만, 북부의 집값은 더 싸니 괜찮을 것이다. 어쩌면 매물이 없어서 땅을 사고 직접 집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걱정하는 건, 북부 원주민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이전에 대민 지원을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우리를 완전히 낯선 존재로 여기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도시가 갑자기 이종족들의 자치 도시가 된다니, 과연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무력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코앞이었다. 우리는 긴장한 채로 마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때 우리의 앞에 보인 광경은….

“와!”

“환영합니다!”

“뭐지?”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깃발이나 옷 등을 흔들며 기쁘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명백히 우리에게 호의적인 태도였다.

“혹시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나?”

우리를 제국군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렇다고 치기에는 누가 봐도 이종족인 화려한 머리색이 우리 병사들 곳곳에 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마을에 발을 들였다. 국경방위군의 대장이 선두에 서서 걸음을 멈추자, 대표자로 보이는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와 목례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이게 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러분이 브테인 왕국군을 내쫓아 주셨잖습니까.”

아,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아서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지금 보니 마을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주택 곳곳이 무너져 있었고, 마을의 나무들은 몽땅 베여서 황폐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브테인 왕국군이 마을을 점령한 동안 저들은 억압당하고 수탈당했던 것이다.

브테인 왕국군은 저들로부터 식량과 장작, 각종 생활 물품을 보충했을 거고 점령당한 마을 주민들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종족이 나타나 브테인 왕국군을 한 번에 내쫓아 주었으니, 아무리 멸시하던 이종족이라 해도 열렬히 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도가 싹 바뀌었구나….’

이제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에는 두려움보다는 동경과 선망이 담겨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북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일도 해결되었다.

* * *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아르콘들의 정착 작업을 위해 건설업자들을 불러 새로 집을 짓도록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을 주민들의 집을 보수하는 일도 도와주었다. 어차피 이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니까.

마을 주민들은 그로 인해 우리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국경방위군의 간부들은 자치 도시의 법령을 만들었고, 그렇게 우리의 자치 도시는 무리 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래, 마침내 우리의 혁명이 마무리된 것이다.

“정말 긴 날들이었어….”

나는 새로 생긴 집 침대에 느지막하게 누워 있었다.

이전에 내 취향대로 맞춘 집 가구들을 팔아버린 건 아까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새로 지은 집도 아퀼라와 둘이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유리였다. 유리는 집에 들어온 뒤 고개를 돌려 나를 찾다가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태평해 보이는 내 모습에 황당한 듯했지만 이제 내 선임이 아니어서인지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사루비아, 잘 지냈어? 너에게 전해줄 소식이 있어서 왔어.”

“그게 뭡니까?”

“이번에 수뇌부 주도로 자치 도시의 총위원장 선거를 치르기로 했거든.”

“총위원장 선거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유리의 설명에 따르자면 곧 자치 도시의 대표자를 결정하는 투표가 있을 것이라 했다.

아, 참고로 우리의 자치 도시는 북부의 여러 도시들을 연합한 것이므로 ‘노스던 연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쨌든 노스던 연맹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 지도자를 선거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선거로 결정하는 겁니까? 그냥 국경방위군의 대장님이 맡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다르게 생각하니까.”

“아….”

이곳에서 원래 살아가던 주민들은 아르콘과의 공생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도시 자체가 아르콘만으로 구성된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안에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 주민들도 자치 도시의 수뇌부에 참여하고 있었고, 이번에 기존 주민과 아르콘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총위원장을 선발하게 된 것이다.

하긴, 그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선거가 민주적인 방법인 것 같다.

“그럼 총위원장 후보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 측에서는 국경방위군의 대장님이 나가시고, 주민들 측에서는 에고트 마을의 이장 출신이 나오기로 했어.”

“에고트 마을의 이장 출신이라…. 그렇지만 결과가 너무 뻔한 거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존에 마을에 살던 사람들보다 이번에 새로 온 국경방위군의 수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마을 주민이 선거에서 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면이 있지. 그래서 선거는 오로지 공약만을 공개하기로 했어.”

“그 말씀은….”

“후보가 누구인지, 아예 비밀에 부치겠다는 거야.”

“아하.”

오로지 공약만을 보고 투표하는 것, 그건 꽤 공정한 방법 같았다.

“하지만 미리 공약을 퍼뜨리고 다닐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래서 서로를 감시하게 되겠지. 게다가 우리도 양심은 있고 말이야. 적어도 우리 측에서는 부정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그러지 않고도 당선되리라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난 유리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는 이제 자치 도시의 주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기로 했으므로 나랑은 크게 관련이 없는 이야기 같았지만, 그래도 유용한 정보였다.

“아, 그리고 수뇌부의 부서 몇 개에서 관리위원을 모집한다고 했는데 지원해 보지 않겠어?”

“관리위원이라면….”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아는 수뇌부의 부서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노스던 연맹의 수뇌부는 방위부, 재정부, 행정부, 교육부, 사법부 등으로 부서를 나누어 놓았다.

“응, 넌 꽤 재능이 있는 편이잖아.”

그러니까 유리는 지금 나에게 감투를 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유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에이, 제가 무슨~.”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다 네가 한 자리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완전 평범하게 살아갈 겁니다.”

“그래? 아쉽네. 뭐, 그럼 알았어…. 다음에 보자, 사루비아.”

“예, 잘 가십시오.”

그렇게 유리가 떠나고 난 뒤, 나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유리의 제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감투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는 완전 평범한 마을 주민이지, 뭐.’

물론 워낙 스펙타클한 인생을 살아온지라 전적은 좀 화려하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지낼 예정이었다. 나 스스로도 별로 감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말이다. 응, 절대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집안일이나 해놔야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퀼라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간 참이었다. 그동안 뭐라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 낙엽이 가득 쌓인 게 생각나, 나는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쓸며, 나는 옆집을 흘끗 보았다. 그곳은 이사 온 아르콘이 아닌 원래의 아돌브 제국민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제 이곳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앞으로 이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건 우리의 주요한 과제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평범한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는 게 꿈이었다.

내가 옆집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던 그 순간, 옆집의 문이 열렸다. 나는 황급히 눈알을 굴렸지만 이미 옆집의 문을 열고 나온 남자와 눈이 마주친 뒤였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나와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그야말로 평범한 마을 주민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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