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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59화 (63/233)

플라토가 내 머릿속에 박아 넣었던 마물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고스트타이거는 암벽, 나무 위, 늪, 하다못해 물속까지 온갖 영역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마물이었다. 위험한 지형에서 워낙 자유롭게 오가는 탓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이 사람에게는 흡사 유령처럼 보인다 하여 ‘고스트타이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들었다.

도리와 함께 주변 병사들도 고스트타이거에 의해 습격받았는지, 몇몇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으나, 발톱에 의해 할퀴어진 것 같았다.

“안 돼!”

고스트타이거에게 목덜미를 물린 도리의 몸이 힘없이 암벽 아래로 사라졌다.

우리가 고스트타이거와 함께 사라진 도리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암벽 앞에 있던 누군가가 빠르게 움직였다.

“알타이르 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군장을 등 뒤로 던져 버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검을 뽑아내며 암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추락한 건지, 착지한 건지는 몰라도,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고스트타이거는 함정이다!’

이건 모르는 게 더 바보였다.

알타이르가 고스트타이거를 처치하고 나서 “해치웠나?” 하고 있으면, 그 뒤에 바로 스카퍼가 나타나서 알타이르를 해칠 게 분명했다!

“안 돼!”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나는 알타이르와 마찬가지로 군장을 벗어 던지고, 총을 꽉 쥔 채 암벽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아, 알타이르 님!”

암벽은 경사가 져 있어서 발을 잘 디디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암벽 아래에서, 고스트타이거를 앞에 둔 알타이르가 검을 들고 있었다. 고스트타이거는 여전히 도리를 물고 있었는데, 도리는 충격으로 인해 기절한 것 같았다.

‘곧 스카퍼가 나올 텐데….’

내가 불안한 눈빛을 할 때, 내 옆에서 아래를 지켜보던 베타 소대의 선임이 외쳤다.

“상등병들 이상만! 빨리 아래로 내려가!”

“예…!”

‘…원작에서도 이랬을 거 아니야.’

상등병들은 뒤늦게 스카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가 스카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한다고 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니, 내가 직접 행동해야 한다.

‘XX, 그냥 미친 짓 한번 해 보자.’

결국 나는 알타이르가 그랬듯 암벽에 몸을 굴리다시피 하여 아래로 떨어졌고.

쿵-!

나와 동시에 뛰어내린 누군가가 내 옆에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쳐다봤다.

“사루비아, 너 정말….”

윈터가 감탄했다.

“정말 겁이 없군.”

“…….”

“상등병들 이상만 내려오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나를 잠시 세상 겁대가리 없는 애 보듯 보긴 했지만, 윈터는 에이스답게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는 알타이르의 옆으로 달려갔고, 나도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러 명의 선임들이 차례로 암벽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야, 너 뭐야?!”

상등병만 내려오라고 했던 감마 소대의 선임 하나가 나를 보고 외쳤지만, 이미 우리 소대의 부대원들은 몸 상태가 멀쩡하기만 하면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었다. 아퀼라와 카론, 이시나, 산체스, 베니까지 암벽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알타이르가 고스트타이거와 대치하고 있던 쪽으로 달려갔다.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우리를 돌아본 알타이르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었다.

“다들 뭐 이렇게까지….”

세상에,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저렇게 가오를 잡다니.

‘남주들도 저 가오를 좀 배워야 할 텐데….’

고스트타이거에게 물려갔던 도리의 몸은 조금 떨어진 곳에 눕혀져 있었다.

그리고 윈터와 알타이르가 함께 고스트타이거를 상대로 현란하게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몇몇 선임들까지 가세하니 고스트타이거는 금방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 XX, 대체 행군 중에 이게 뭔 고생이냐?”

마침내 바닥에 쓰러진 고스트타이거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알타이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쾌한 얼굴로 다른 병사들에게 말했다.

“다들 내려와 주셔서 감사하고, 이제 행군 끝내러 갑시다!”

“아, 사람 간 떨어지게~!”

“뭔 일 생기나 했네.”

행군할 때까지만 해도 다들 힘들어 죽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몬스터에게 물려간 후임을 구해내는 사건을 겪고 나니 다들 보람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왜 안 나타나지?’

분명히 지금 고스트타이거로 인해 방심했을 때 스카퍼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소설의 법칙 아닌가.

‘뭐지? 이 타이밍이 아닌가?’

힘들게 암벽 아래까지 내려왔던 부대원들은 일이 다 끝났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는 분위기였다.

윈터는 고스트타이거의 시체로 다가가고 있었고, 알타이르는 기절한 도리의 몸을 데리고 올라오려는 것 같았다.

“저, 아….”

알타이르와 윈터에게 혹시 다른 마물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냐고 물으려던 바로 그 순간.

“아.”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그것이 나타났다.

피의 냄새를 맡고 나타난 마물.

피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온다는. 내가 선임들에게 몇 번이고 교육받았던.

원작의 ‘네비집’에서 알타이르를 죽였을.

이 산의 잡식성 청소부. 2급 마물.

“스카퍼.”

피를 흘리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마물.

갈색의 흉측스러운 거대한 몸뚱이, 털이 가득 자라 있어 눈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얼굴, 무엇이든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입, 그리고 입 주위로 가득 자라 있는 수염.

몸 전체가 기괴한 생김새였지만, 그 무엇보다도 스카퍼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스카퍼에게는 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미끄러지듯이 땅 위를 움직인다. 그리고 음식을 집어삼키기 위해 몸뚱어리에 난 미끄러운 촉수로 먹을 것을 끌어당긴다.

음식을 한 번에 녹이기 위해 산이 흐르는 침이 분비되는 입 안, 그리고 음식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산을 분비할 수 있는 촉수.

‘아, 저 부상 때문이었구나.’

나는 스카퍼가 무엇으로 인해 이곳으로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고스트타이거에게 물렸던 도리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닥에 눕혀져 있던 도리의 몸 위로 촉수가 움직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행동했다.

레버를 올리고 내리면서 탄환을 장전하고. 동시에 당긴다.

탕-!

탄환이 발사되자마자, 알타이르는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던 탓에 이제야 스카퍼를 본 윈터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도리의 머리 위로 올라와 있던 스카퍼의 촉수가, 탄환을 맞은 뒤 힘을 잃고 아래로 추락했다.

“이런!”

알타이르는 곧장 도리의 몸 위로 엎어지며 도리를 감쌌다.

‘머리를 박살 내야 해!’

머리에 타격을 입은 건 아니었기에, 스카퍼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머리를 공격하려다가.

스카퍼의 행동을 본 순간 방향을 바꿨다.

스카퍼는 침을 뚝뚝 흘리며 입을 거대하게 쩌억 벌리고 알타이르를 집어삼키려 했다.

‘원작에서 사루비아가 스카퍼의 머리를 쏜 것보다, 스카퍼가 알타이르를 공격한 게 빨랐다고 했어!’

그렇다면 나는 알타이르로부터 스카퍼를 떨어뜨려 놓는 방향으로 먼저 공격해야 한다!

탕-!

탄환에 맞으며 스카퍼의 몸이 크게 흔들렸고.

윈터도 오러 블레이드를 쏘아 스카퍼의 촉수 몇 개를 잘라 냈다.

공격을 받자, 스카퍼는 자신의 식사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완전히 알타이르로부터 몸을 떨어뜨렸다.

바로 지금, 공격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므로 스카퍼가 내게 다가오고 있을지라도 나는 물러날 수 없었다. 스카퍼가 나를 향해 촉수를 길게 뻗어 오는데도, 나는 스카퍼의 머리 부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치지지직-.

산이 피부에 닿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바로 지금.

탕-!

탄환이 스카퍼의 머리를 박살내며 꿰뚫었고, 그대로 스카퍼의 몸은 힘없이 추락했다.

“너….”

도리를 감싸고 있던 알타이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막았어.’

알타이르는 도리의 몸을 부축해서 스카퍼의 시체로부터 벗어났고, 윈터는 놀란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거의 마지막으로 암벽을 오르고 있었던 이시나와 유리가 총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추락하다시피 하여 암벽 아래로 내려왔다.

“바, 방금 뭐였어?!”

늘 냉철한 유리가 말을 더듬어 가며 알타이르의 어깨를 쳤다. 그녀는 알타이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다가, 내게로 다가왔다.

“사루비아, 다친 데는 없….”

“흑.”

억눌린 듯한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입술만 삐죽 내민 채 울음을 참으려 애썼다.

아팠다.

모든 게 끝났다고 인지하니, 산이 닿았던 팔의 피부가 쓰라려 왔다.

“왜, 왜. 어디 다쳤어?”

유리가 당황했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원래 울음이 나오려고 할 때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난 정말 또박또박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흑, 아, 아프, 흐앙.”

갑자기 모든 게 서러웠다.

도대체 난 왜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이 고생이나 하고 있단 말인가?

국경방위군에서 눈물은 없고 어쩌고, 이제 그런 건 모르겠다.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나는 그냥 서러워져서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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