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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55화 (59/233)

‘그래, 빙의했는데 원작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나는 다른 빙의물 여주들처럼 원작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저 사탕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럼 우선 저 사탕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할 텐데….

‘중대장이 압수해 갔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중대장실에 있으려나? 아님 비품 창고?

사실 어디 보관했든지, 중대장은 완전히 잊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슬쩍 가져와도 알지 못할 게 분명하다.

흑마술에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 아티팩트를 스스로 사용했을 리도 없고….

‘일단 산체스한테 물어보자.’

아티팩트들을 보관한 위치와 흑마술의 대가에 대해 떠보기 위해, 나는 산체스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 * *

“산체스, 네가 예전에 가져와서 압수당했던 아티팩트 말이야!”

“넷슴다?”

“그중에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이라는 게 있었잖아.”

“예.”

뜬금없는 얘기인데도 산체스는 묵묵히 내 말을 경청했다. 스승이 따르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저 충성심. 산체스라면 내가 갑자기 흑마술 아티팩트 얘기를 해도 수상하다며 선임들에게 보고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어떻게 쓰는 거야? 대가가 뭐야?”

“쓰시려는 겁니까?”

“그래, 필요한 일이 있어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비밀에 부쳐야 해. 네 스승의 명예를 걸고.”

“…예, 그렇다면 비밀로 하겠습니다.”

역시 산체스. 베니에게 참 대단한 충성심이군.

“그 사탕의 경우에는 선명하게 만들고자 하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며 사탕을 전부 녹여 먹으면 됩니다. 그럼 점점 기억이 선명해진다고 들었습니다.”

“대가는?”

“또 다른 기억을 대가로 합니다. 기억 하나를 선명하게 만들려는 것이니, 다른 기억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겁니다.”

“또 다른 기억이라면…. 그냥 무작위로 사라지는 거야?”

“아닙니다. 어떤 기억을 잃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

산체스가 늑대를 닮은 듯한 회색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본인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기억이어야 합니다. 뺏길 수 없을 만큼 아주 소중한 기억 말입니다.”

“아주 소중한 기억?”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가던 현실적인 세계와는 너무도 상반된, ‘흑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두뇌 회전 속도가 좀 느려진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 기억을 가져가는 건데? 흑마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이해가 잘 안 가거든.”

“이미 사탕 자체에 흑마술이 담겨 있는 것이니, 조건을 충족한 순간 마법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되찾고자 하는 기억을 떠올리며 사탕을 녹이다 보면 어느 순간 신호가 오는 겁니다. 그 신호를 받으셨을 때, 대가로 바치고자 하는 기억을 말씀하시면 마법이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그 신호라는 게 어떤 식이냐니까?”

“그건… 저도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신호를 받으시면 바로 아시게 될 겁니다. 원래 흑마술이라는 건 그런 식입니다.”

여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산체스의 말대로 직접 사용해 보면 알게 될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기억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걸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일단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원작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알타이르나 유리를 살리고, 앞으로의 내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사탕을 사용할지 말지는 그 사탕을 손에 넣은 뒤에 결정해도 되는 문제다.

“산체스, 그럼 중대장님은 그 아티팩트를 압수해서 어디로 가져가셨는지 알아?”

“그걸 알았으면 제가 이미 털어 왔을 겁니다.”

“으응… XX 강하구나….”

* * *

그렇다면 아티팩트의 위치를 알 만한 사람에 대해 떠올려 보자.

1번. 중대장.

…너무 당연한 소리를 했군. 패스.

‘아냐, 우리 소대 부대원들 중에는 없을까?’

…솔직히 아까부터 외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짐작 가는 사람은 있다.

‘윈터.’

산체스의 짐에서 아티팩트를 발견한 당사자이고, 평소 중대장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중대 본부 건물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윈터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윈터에게 물어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어서 문제지….

물론 내가 가그네가 파워를 잃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 후 윈터는 나를 자주 봐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알타이르가 가끔 내 근무 시간을 좋은 시간대로 조정하는 것을 눈감아 주었고, 내가 사소한 실수를 하는 것 정도는 봐주고는 했다.

평소 원칙주의자인 그의 행보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니, 누가 봐도 나는 그의 라인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아무리 내가 자신의 라인이라도 윈터가 ‘흑마술 아티팩트’에 관한 일까지 눈감아 줄 리는 없었다….

그건 황실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이고, 윈터는 군 생활의 암묵적인 규칙 정도는 가끔 어길 수 있어도 절대 아돌브 제국의 법을 어기지는 않는다.

‘머리를 쓰자.’

윈터에게 솔직히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루비아 님, 그런데 말입니다….”

“잠시만, 나 지금 하던 생각만 마치고 놀아 주….”

옆에서 익숙하게 관심을 조르는 카론을 밀어내다가,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정신없어!’

카론은 내 정신을 빼놓는 데 선수였다.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그렇다면 나도…

‘윈터의 정신을 빼놓자!’

늘 나보고 얌전히 굴라고 잔소리하는 이시나가 알면 기겁할 일이겠지만,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 * *

“윈터 님, 윈터 님, 윈터 님!”

“사루비아, 이름을 부를 때는 더 낮은 톤으로 한 번만 부르도록.”

역시나 윈터가 지적을 시작했지만, 이미 그의 지적에 익숙해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윈터 님, 혹시 저번에 산체스로부터 중대장님이 압수해 가신 흑마술 아티팩트 말입니다….”

“흑마술 아티팩트?”

내가 꺼내서는 안 될 것들을 입에 담으니, 윈터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순간적으로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예, 예. 그 흑마술 아티팩트, 혹시 중대장실에 있는 겁니까!?”

“…그런 걸 왜 묻는 거지?”

“지금 그렇게 태평히 계실 때가 아닙니다! 큰일입니다, 큰일! 아무래도 산체스가 그 아티팩트를 찾아 어디든지 박차고 들어갈 기세입니다!”

“뭐라고?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지금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행동해야 합니다! 곧 행군이라 지금 혼란스러우니, 지금 쳐들어가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중대장실에 있습니까?!”

“…아니, 중대장실은 아니다. 그보다도 산체스가 지금 행동하려는 건가?”

“예?! 그럼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아까 산체스가 그 아티팩트들이 있을 만한 곳을 묻길래 저는 중대장실일 거라 생각해서, 중대장실을 빼고 모든 곳을 다 얘기했습니다!”

그렇다. 내 전략은 윈터가 정신을 차릴 틈이 없게 말을 쏟아내는 것이다.

“지휘통제실이랑, 행보관실이랑…. 산체스가 그곳들을 다 뒤지다가 아티팩트를 발견하면 어떡합니까?!”

“혹시 비품 창고 얘기도 했나?”

“예? 아, 그곳은 얘기 안 했습니다…. …헉! 생각해 보니 베니에게 말하면 산체스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경 쓰시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왜 그걸 지금 떠올린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보니 그만….”

“…벌써 열여섯 번째로 말하는 거지만, 사루비아 너는 행동하기 전에 5초간 먼저 생각을 한 후 행동하는 게 좋겠군.”

윈터의 지적이 다시 쏟아졌지만, 이번에야말로 나는 속으로 웃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윈터의 반응을 통해 비품 창고에 아티팩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 * *

중대장이 비품 창고에 흑마술 아티팩트를 보관한 건 대단한 천운이었다.

그는 귀찮은 마음에 대충 아무 데나 던져 둔 것이겠지만, 비품 창고는 우리가 접근하기 아주 쉬운 곳이었다.

중대장실의 경우라면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상황이 잘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와 함께 몰래 비품 창고에서 흑마술 아티팩트를 가져올 사람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카론, 준비됐지?”

“예!”

역시 언제나 충성스러운 맞후임 카론. 사랑의 편지 사건을 통해 이미 검증된 인재!

“정말 이 일이 끝나면 나중에 저에게 만민평등주의와 국가의 존재 목적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실 겁니까?”

“그, 그래.”

…카론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즐겁게 듣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이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그렇다고 내가 살다 온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얘기라고는 저런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카론이 재미있게 들어주어서 다행이다. 사실 뭔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들어주는 착한 후임이지만.

‘…진짜 카론은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없나?’

사실 지금 기억이 더 필요할 사람은 내게 아니라 카론일 텐데, 내가 그 아티팩트를 사용해도 될지 모르겠다.

“카론.”

“예?”

“너는 원래 기억이 필요 없니?”

“예? 별로….”

카론이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아니, 잃어버린 기억이 궁금하지도 않나?

“저는 지금에 만족하니까 괜찮습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낙천적인 대답이었다.

“그, 그래. 근데 정말 필요 없어? 왜?”

“그러면 사루비아 님이 관심도 더 써 주시고, 그리고….”

“으응….”

정말로 애가 점점 관종이 돼 가는 기분인데.

“그리고 저는 흑마술 아티팩트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왜? 대가 때문에?”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음, 저는 그냥 흑마술 자체가 싫은 것 같습니다.”

카론은 자신 스스로도 흑마술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대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 카론은 뛰어난 육감을 가졌다고 나오니까.’

마치 지진이 일어나면 동물들부터 대피하는 것처럼, 카론은 본능적으로 흑마술의 해로운 기운을 인지하고 피해 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일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망을 잘 보고 있어야 해!”

“예!”

카론이 비품 창고 입구에서 열심히 망을 보는 동안 나는 창고 안을 샅샅이 뒤졌고.

“…이건가?”

쓰레기인 줄 알았던 허름한 상자 안에서 누가 보더라도 이질적이고 수상한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채, 볏짚으로 만들어진 작은 인형, 그리고… 분홍색 토끼 인형….

산체스가 이런 걸 스스로 들고 왔다니, 세상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장지에 싸여 있는 사탕 하나가 보였다!

“찾았다!”

내가 빠르게 사탕을 움켜쥔 순간, 밖에서 카론이 목소리를 높여 크게 인사했다.

“어? 안녕하십니까!”

선임이 왔다는 의미였다!

나는 사탕을 재빨리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후, 대충 근처에 있던 물건을 아무거나 집었다.

그리고 비품 창고 안으로 들어온 건….

“사루비아? 여기서 뭐 하냐?”

“블루?”

선임이 아니라 내 베타 소대의 동기, 블루인 건 다행이었지만….

…하필 그 순간 내가 움켜쥔 도끼를 본 블루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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