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53화 (56/233)

“으응, 그렇구나….”

베니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산체스가 그런 이유로 자신을 따른다는 게 참 갑작스러웠다….

그때 빨래장의 문을 열고 밀피가 들어왔다.

“밀피 님.”

베니는 그에게 가볍게 묵례했고, 산체스에게도 선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부터가 강함의 시작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산체스도 깍듯하게 밀피에게 인사했고, 밀피는 몹시 부담스러워했다.

그들을 인사시킨 후, 베니는 그들이 잘 지내도록 간단한 소개를 도와주었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고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산체스를 적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지휘사관 타로 님은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기력을 잃으셔서 늘 피곤해하는 상태이셔.”

“맞아. ‘그 사건’ 이후로 소대 생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으시니, 그분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돼.”

베니와 밀피의 설명에, 산체스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그 사건’이 뭡니까?”

베니와 밀피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렇지만 그 둘 모두 ‘그 사건’이 뭔지는 몰랐으므로, 답해 줄 수는 없었다.

“으응, ‘그 사건’이라는 게 있어.”

“맞아, 그런 게 있지.”

그들은 차례대로 선임들을 소개해 주었고, 마침내 사루비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사루비아 님은….”

베니가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그 이름을 말할 때면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때 밀피가 선수를 치며 베니의 말을 뺏었다.

“사루비아 님은 좀 돌아 계시지.”

“…으응, 좀 그러시지. 아, 아니.”

밀피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만 베니가 정신을 차리고, 원래 하려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사루비아 님은 참 좋으신 분이야. 정말 다정하셔.”

그러자 밀피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는 눈빛으로 베니를 쳐다봤지만, 베니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가장 동경하는 분이야. 내가 군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던 건 다 사루비아 님 덕분이지.”

“하지만 좀 돌아 계셔.”

“…물론 그것도 맞아.”

결국 다시 밀피의 말에 동의하고 말았지만, 베니는 사루비아가 좋았다. 베니는 사루비아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칭찬을 읊을 수도 있었다.

‘사루비아 님은 천재셔.’

물론 그녀의 사격도 뛰어났지만, 베니가 사루비아가 천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말 똑똑하시지….’

단순히 지능이 높거나, 암기를 잘하거나, 지식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사루비아는 정말 영리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눈치가 빨랐으며, 상황 판단을 잘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주위 인물들을 통제하는 것에도 능했다.

게다가 그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전에 자신이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을 때도 잘 해결해 주었지 않은가.

‘나도 사루비아 님을 닮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베니는 사루비아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사루비아 님은 정말 멋진 분이셔….”

베니가 사루비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하자, 밀피가 떫은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에휴…. 선임들이든, 동기든, 후임들이든…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한 명도 없냐….”

물론 베니는 밀피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을 이어 갔다.

‘아, 하마터면 그 사실을 빼놓을 뻔했네! 그렇게 중요한 걸 잊을 수가!’

무언가를 깨달은 베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산체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사루비아 님이 아무리 예쁘시다지만, 사루비아 님은 무조건 아퀼라 님과 결혼할 거니까 넘보지 마!”

“…넷슴다?”

“뭐, 뭐라고? 베니….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 말하지.”

산체스가 처음으로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양 반응했고, 밀피는 진지하게 베니의 정신 상태를 염려하는 것 같았지만, 베니가 힘주어 외쳤다.

“그게 요즘 내 인생의 낙이야! 두 분이 결혼하시면 난 반드시 피아노 반주를 할 거라고!”

“예, 예…?”

“얼굴을 봐! 얼굴만 봐도 두 분이서 결혼하실 것 같잖아! 하, 꼭 결혼하실 때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베니는 산체스에게 사루비아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 * *

“산체스.”

함께 보수 공사를 하다가, 나는 옆에서 일하던 산체스의 이름을 불렀다.

마침 주변에는 다른 부대원들이 없었다. 흑마술 아티팩트에 대해 몰래 질문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는 소리다.

우선, 처음부터 그 아티팩트에 대해 질문하면 너무 목적이 뻔해 보이니까…. 흑마술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보도록 하자.

“산체스, 너 용병이면 흑마술사랑도 아는 사이니?”

그 말에 옆에서 미친 불도저처럼 삽질하던 산체스가 고개를 들었다.

“흑마술사 말씀이십니까.”

그다운 무뚝뚝한 어조였다.

“예, 아는 사이입니다.”

“너는 어떻게 흑마술사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거야? 흑마술사에게 죽는 어린 아르콘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예전에 윈터에게 흑마술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그 점이 계속 궁금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저와 알던 흑마술사는 이종족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종족을 이용하는 흑마술사도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산체스가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놈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이종족을 부려 먹고 있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놈을 XX해서 XX를….”

“으, 으응, 그렇구나….”

역시 산체스, XX 강하네….

아무래도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산체스, 너 무슨 아티팩트들을 가져왔던 거야?”

“아티팩트들 말씀이십니까.”

“응.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들이지?”

내가 그렇게 묻자, 산체스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을 회상하는 얼굴을 했다.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부채와,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과, 원하는 사람의 심장을 멈출 수 있는 저주 인형과,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 토끼 인형과….”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

지금 내게 가장 유용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충격적인데?

“그렇구나…. 산체스 네가 가방에 토끼 인형을 들고 왔구나….”

“예.”

“…….”

그래도 산체스가 말한 것들이 모두 쓸모 있어 보이기는 했다. 그 물건들을 중대장에게 압수당한 게 아쉬울 정도로. 일단 내겐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 하나만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 아티팩트는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데?”

“모든 흑마술은 반드시 대가를 수반합니다.”

산체스가 험상궂은 얼굴로 진지한 표정까지 지으니 좀 무섭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말에 경청했다.

“흑마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것입니다. 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아, 그래서 어떻게 쓰는 거냐니까?”

“예를 들어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부채의 경우, 사람의 손톱 열 개를 필요로 합니다.”

“이런 미친….”

…나는 ‘기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사탕’에 가지고 있던 관심을 그냥 가볍게 버렸다. 아무리 유용해 보인다 해도,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그렇구나. 손톱 열 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지구에서의 삶의 기억을 불러올 마음은 없다….

아직 원작에서의 기억이 그렇게 절실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달린이 나와 달리 편하게 지내면서 집착받고 있는 걸 선명히 기억하게 된다면 그냥 배알이 꼴릴 것 같았다.

그냥 내 원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도록 하자.

‘그동안 흑마술 아티팩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관심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역시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어색하게 맞장구를 쳐 준 후 다시 삽질을 시작하려 했을 때, 이번에는 산체스가 내게 먼저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혹시 85기 분들과 친하십니까?”

“응?”

인성 파탄 85기?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들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말투가 비슷하신 것 같아서.”

“…뒤질래, XX?”

“특히 방금 그 말투가 좀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이 XX 날 기분 나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

아냐, 내가 85기처럼 인성 파탄일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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