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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44화 (47/233)

* * *

베니의 훈련을 구경하고 난 뒤, 나는 사격장으로 이동해 내 훈련을 시작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일은 훈련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실력을 길러내는 거니까.

탕-!

총구에서 발사된 탄환이 과녁 하나를 반쯤 부순 게 눈에 들어왔다.

“휴, 난… 천재가 아닐까…?”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반파시킬 수 있는 사격 솜씨! 정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내 머릿속에 조금 전 구경했던 베니의 검술이 떠올랐다.

‘진짜 천재란 바로 그런 거겠지….’

어쩐지 방금 스스로를 칭찬했던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자의식 과잉 방지해야겠다!

뭐, 비록 훈련 면에서는 이미 천재인 베니를 도와줄 수 없겠지만.

‘대신 부대 생활이라도 잘 적응하도록 도와줘야겠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으니 나도 베니에게 존경받는 선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 *

“자, 지금 부대에서 제일 기수가 높으신 분은 70기 타로 님이신데….”

나는 사랑스러운 후임 베니를 앞에 두고 선임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타로 님은 늘 피곤해하셔서, 소대 일에 개입하지 않으시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기력을 잃으셨지….”

“‘그 사건’이 뭡니까?”

“있어, ‘그 사건’이라는 게….”

베니가 아리송하다는 눈빛을 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 갔다.

“음, 그리고 디어 님은…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이라 나도 잘 모르는데….”

디어는 베니와 함께 온 지휘사관으로, 진급하며 다른 부대로 떠난 레온과 브레이브와 같은 기수였다. 폭력과 공포의 대명사인 레온과 브레이브가 떠났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어쨌든 디어는 갈색 곱슬머리에 청초한 인상을 가진 남자 선임이었는데, 여느 지휘사관들과 마찬가지로 전역을 앞두고 소대에 별 관심이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디어가 매일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오늘 밥 뭐냐?’밖에 없었다.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플라토 님은, 깔끔한 분이시니까 네 일만 잘하면 되고. 그리고….”

“아, 아퀼라 님?”

내 뒤를 본 베니가 흠칫하며 아퀼라의 이름을 불렀다.

“아퀼라?”

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아퀼라의 주홍빛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일은 끝났어?”

“응.”

그는 오늘도 중대 본부에 끌려갔다 온 참이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남주 가오가 2씩 떨어지고 있잖아….’

“피곤해?”

“별로.”

단답으로 대답한 아퀼라는 베니를 흘끗 쳐다본 후, 그녀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고 나에게 달라붙었다.

“왜?”

아퀼라는 내 허리에 자신의 팔을 둘렀는데, 이건 그가 피곤할 때 나오는 습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피곤해 보이지 않는군.

후임 앞이니까 떼어 내려고 했지만 아퀼라는 오히려 자신의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마음에 들어?”

“아.”

순간 귓가에 닿는 숨이 뜨거워서 나는 몸을 움찔했지만, 아퀼라가 팔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떼어 낼 수는 없었다.

“뭐, 뭐가?”

“저 후임 말이야.”

“베니는 착하고 실력 있고 좋은 애잖아?”

“난 마음에 안 드는데.”

…나는 아퀼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그가 지금 베니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 무엇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너 지금 질투하니…?”

내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되묻자, 그가 몸을 움찔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숙소에서의 직속 후임을 챙겨 주는 걸로 질투하는 건 너무했나 보지.

아퀼라야 늘 내가 자신을 필요로 함을 확인받고 싶어 하니, 요즘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베니를 챙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베니는 드디어 날 숙소 막내에서 탈출하게 해 준 귀중한 후임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고 있겠지만, 그녀는 투스타의 딸이었고! 내가 그녀를 챙겨 주는 건 당연했다!

“야, 후임이랑 동기랑은 다르지.”

그렇지만 아퀼라는 묵묵부답이었기에, 나는 그의 기분이 풀어질 만한 말을 추가했다.

“후임은 내가 챙겨 주는 거고. 너는 다르잖아.”

나는 내 허리를 두르고 있는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순식간에 내 손으로 온기가 전해져 왔다.

“내가 의지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아퀼라는 대답 없이 내 손을 마주 잡았다.

“네가 질린다고 해도 계속 너한테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너나 도망가지 마.”

“그건 너도 약속해 줘야 해.”

“응, 응.”

아퀼라의 말투에서 나는 그의 기분이 완전히 풀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분….”

“응?”

“혹시 결혼하셨습니까?”

“뭐라고…?”

내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베니를 쳐다봤다.

“그건 군법 위반이야. 말이 안 되잖아?”

“아…. 그럼 약혼하셨습니까?”

“아니, 그거 다 군법 위반이라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베니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어쩐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꼭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가, 아퀼라의 얼굴을 보고는 더 어이없어졌다. 얘는 대체 이 상황에 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거지? 평소에는 웃지도 않던 애가?

“네 말대로 베니는 정말 괜찮은 후임 같아.”

“뭐?”

갑자기 태세는 왜 전환한 거야…?

* * *

제대 D-2308일.

군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아니, 정정하겠다. 더럽게 느리게 흘러갔다.

어느덧 베니가 입대한 지 두 달이 되었고, 그동안 나는 무탈한 군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비록 베니의 동기 세 명이 죽긴 했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내게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유순한 후임인 베니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었고.

그리하여 군대에서 보기 드물게 평화로운 나날이 흘렀다.

어느 날 밤, 나는 잠을 자던 중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에 눈을 떴다.

잠에서 깨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눈만 굴려 유리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유리는 잘 자고 있군.’

좋아,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갔다 오면 되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끝을 들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건 뭔 닌자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니.’

사실 비교적 상식인인 유리는 밤중에 자신을 깨운다 해도 평범하게 욕만 하고 말 텐데, 에이프릴의 기상천외한 갈굼으로 인해 나는 닌자 근성이 뼛속까지 박혀 있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들어가려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흑, 흑….”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나는 곧 저게 귀신일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귀신이라면 국경방위군 같은 X같은 장소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곳은 여자 화장실이고, 저 안에서 들려오는 건 여자의 울음소리다. 나는 숙소를 나오기 전 유리가 숙면에 빠진 것을 잘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저 안에 있는 게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베니겠지.’

잠깐만, 이거 어째….

‘왠지 데자뷔가 드는데….’

예전에 빨래장에서 울고 있던 카론을 마주친 것도 같았고, 음…. 혹시 후임들이랑 친해지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가…? 요즘 젊은 애들 트렌드인가?

이 상황이 퍽 곤란했기에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화장실 앞에 조심스럽게 선 채 들어갈 타이밍을 노렸다.

‘그래, 지금 들어가서 고민을 들어보고 달래 주면 되겠….’

쾅-!

그때 안에서 무언가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난 몸을 움찔했다.

‘지, 지금 들어가도 되나?’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망설여졌다.

나는 문에 귀를 가져다 댄 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냐, 정신 차려….”

울음기가 섞인 베니의 목소리였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데….”

베니가 하는 말만 들어서는 뭐가 문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한 달 전에 동기들 세 명이 모두 죽은 거? 아니면 가족과 헤어져서 군대에 갇힌 거? 매일 빡센 훈련을 하고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거? 부대 시설이 열악한 거?’

…XX, 문제가 너무 많아서 대체 그중에 뭐인지 알 수도 없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너도 변해야 한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멈췄고, 그 뒤에는 물소리가 들렸다. 세면대에서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들어가서 달래 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머릿속에 베니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

‘낮에는 아주 멀쩡함. 밤에는 눈물을 흘리고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 같음. 쾅 소리를 떠올려 보자면 벽에 자신의 머리를 박은 걸 수도 있음.’

…XX, 큰일 났다. 이건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이건 중대장과 면담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

지금 베니의 증상들을 그대로 중대장에게 읊어 준다면 중대장은 비상을 외치며 뒤로 넘어갈 것이다.

아무래도 극심한 우울증이 분명한데, 내가 개입하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그때, 베니가 문가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나오려는 게 분명했다!

‘지금 들키면 X된다.’

나는 숨을 곳을 찾다가 얼른 옆에 있던 빨래장으로 뛰쳐 들어갔다.

지금 베니와 마주친다면 베니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내가 들었음을 알 것이고, 내가 자신을 안 좋은 이미지로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상태가 더욱 나빠질 수도….

그래, 역시 저 상태에서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야.

내가 숨을 죽이고 빨래장 안에 숨어 있는 동안, 베니가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 같았다.

“휴….”

그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은 채, 나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역시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지.”

모든 게 완벽한 후임인 베니도 속으로는 힘들어하고 있던 모양이다.

“…아, 맞다.”

하마터면 내가 나온 이유를 잊을 뻔했네.

XX, 일단 화장실부터 가고 생각하자.

* * *

그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어쩐지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베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베니, 왜?”

“저, 사루비아 님….”

내게로 가까이 다가온 베니가 작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얘기해 보라는 신호를 보내자, 베니가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어젯밤에 어디 계셨습니까…?”

“어?”

“잠깐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돌아와 보니깐 계시지 않아서….”

“아.”

베니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후 비어 있는 내 자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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