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군대에서는 계급이 다지만 가끔씩은 몸을 사려야 한다
제대 D-2374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이글거리며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나무들은 더욱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나갔고, 새들은 지저귀는 소리를 내며 나무로 날아들었다.
여름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이든과 밀피의 뒤를 이을 새로운 신병이 온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오늘 신병 온 거 아십니까?”
“아, 그래?”
이제는 지긋지긋한 빨래를 하며 내가 카론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했다. 빨리 일등병으로 진급해서 이 잡일에서 탈출하고 싶다.
“흠, 신병이라….”
카론의 말에 반응해 주기는 했지만, 이제 신병이 온다는 것에 별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카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내 관심을 끌기 위해 꺼낸 말이겠지. 손에서 물기를 탈탈 털어 낸 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신병은 몇 명이래?”
“총 네 명이었습니다.”
뭐 어차피 한 달 뒤면 그중 절반은 사라져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전부 사라져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여자였습니다!”
“…흠, 그래?”
카론은 내가 관심 있어 할 줄 알았던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여자 신병이라….’
갑자기 내 머릿속에 레이나 때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번에도 괜히 정 붙이지 말자. 어설픈 책임감으로 후임을 챙겼다가 죽고 나서 괴로워지느니, 처음부터 유리처럼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여자 신병’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여자 숙소에서는 막내이기 때문이었다. 유리가 시키는 일은 전부 내가 해야 했다.
그러니 제발 이번 신병은 날 대신해서 막내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
빨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나는 훈련을 받고 있는 신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저기 있네.”
모두 하나같이 어리바리해 보였지만, 신병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그들의 훈련을 슬쩍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나타난 이시나가 내 옆에 와서 섰다.
“뭐 해? 신병 보고 있었어?”
“아,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이시나 님은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중대 본부에 심부름이 있어서. 아퀼라는 아직 그곳에 있어.”
그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중대장님이 일을 시키셨거든.”
“아….”
내 표정에도 안타까움이 실렸다.
이전에는 윈터가 중대장의 픽이었다면, 이제는 짬이 쌓이고 후임 관리로 바쁜 윈터 대신 아퀼라가 중대장의 픽이 된 것이었다….
일등병으로의 진급이 반년 남았기 때문에, 중대장도 아퀼라에게 일을 시켜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요즘 그를 슬슬 부려 먹고 있었다.
‘불쌍한 내 동기….’
역시 사람이 중간만 가야지, 너무 뛰어나도 피곤해진다. 내가 아련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이시나가 말을 이었다.
“저 신병들의 이름도 방금 듣고 왔는데 알려 줘?”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 말입니다.”
물론 난 저 신병들의 이름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이시나는 내 선임이니 예의상 궁금하다고 말해 주었다. 이시나는 그들의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샤인, 머슬, 카시어, 그리고 베니였어.”
“…다시 한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어쩐지 익숙한 이름을 들은 것만 같은데.
“저 여자 신병, 이름이 뭡니까?”
“그 신병 이름은 베니야.”
순간 엄청난 쾌감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베니! 베니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