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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그것이 무엇인가.
마치 ‘네미집’의 작가가 한국 군대의 ‘마음의 편지’를 그대로 쓰려다가 단어 하나만 바꾼 것처럼 보이는 이 편지는, 군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라 할 수 있었다.
황실에서는 국경을 지키는 아르콘들의 여론 악화와 폭동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겉으로 위해 주는 척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정작 이 계약 마법은 해지해 주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자꾸 우리에게 ‘진솔한 의견’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열린 사람이라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했다.
중대장실 앞에는 ‘사랑의 편지함’이란 것이 존재했는데, 양철통을 대충 벽에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는 그 통 안에 군 생활의 고충과 바라는 개선 사항을 적은 쪽지를 집어넣으면, 그 편지는 그대로 대대장에게까지 전달된다….
라는 건 공식적인 설명일 뿐, 사실 그 편지는 중대장의 선에서 컷 되었다.
어쨌든, 그렇더라도 사랑의 편지라는 건 잘 쓰기만 한다면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황태자를 단두대로.]
물론 이딴 걸 사랑의 편지로 쓴다면 어떤 식으로든 범인은 색출되어 영창으로 끌려갈 것이다.
[최근 가그네 님이 자꾸 빨랫감을 바닥에 쏟고 다시 빨아 오라고 하고, 잘 때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다음 날 아침에 연대책임으로 모두를 갈굽니다. 도와주세요.]
이런 것도 별로 효과적이지는 않다.
사실 중대장은 최대한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가그네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거고, 내가 적어 놓은 상황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색출당할 거니까.
사랑의 편지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총기 난사하고 싶습니다.]
만약 이런 편지가 들어 있다면!
이제 중대가 터지고! 대대가 터지고!
위로 줄줄이 터지는 것이다!
물론 중대장이 편지를 발견하고 자신의 선에서 잘라내기는 하겠지만, 그 편지가 위쪽까지 전달된다면….
부조리를 잡아내면 실적이 된다. 중대장의 윗선부터는 자신의 실적을 늘리기 위해 온 부대를 뒤집어 놓을 것이다.
심지어 ‘총기 난사’라니, 미리 막지 않는다면 큰 사고가 터지고 결국 황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 것이니까.
‘정말 끔찍하군….’
상상만 해도 몸이 떨려 와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종류의 편지는 황태자가 부대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부대를 초토화시키겠지….
하여튼, 나는 이 사랑의 편지라는 제도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편지를 잘못 써서 잘못 발각된다면 내 모가지가 날아가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도박이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어차피 가그네는 처벌받지 않겠지만….
‘잘 쓴다면 힘을 잃게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
조금 뒤, 나는 비품을 적어 놓는 수첩에서 쭉 뜯어낸 종이에 조심스럽게 글자를 쓰고 있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왼손으로 자음만 쓰고 있었다. 모음은 왼손으로 카론이 쓰기로 했으므로.
“좋아….”
자음을 모두 적은 뒤, 나는 망을 보고 있는 카론에게 손짓했다. 빠르게 달려온 카론이 내 손에서 볼펜과 종이를 받아들었다.
나는 카론이 모음을 적는 동안 망을 봤다. 절대로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지만….
‘하지만 이렇게 확실한 해결 방안이 또 없지.’
마침내 카론이 다 적었다면서 나에게로 종이를 들고 다가왔고, 나는 종이를 정성스럽게 몇 겹씩 접었다.
“자, 이제부터 편지를 넣으러 가자.”
중대장실이 있는 복도는 다행히도 비어 있었다.
내가 카론에게 손짓하자, 카론은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달려가 반대편 복도에서 누군가 오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망을 보는 동안,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편지함 안에 종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가 편지함 안으로 떨어진 순간.
“가자!”
내가 소리를 낮춘 채 거의 입 모양만 움직여 외쳤고, 카론과 나는 빠르게 복도를 빠져나갔다.
“허억, 허억…. 아오, 심장 쫄려 뒤질 뻔했네…. 카론, 그냥 우리는 이 시간에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야, 알겠지?”
오늘 보수 작업을 위해 중대에 왔던 건 소대원 모두에게 해당되니, 범인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글씨체를 위장하기 위해 우리가 한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예, 예…! 혹시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냐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몰라, 선임 뒷담화라도 했다고 하지.”
“예…?”
“아, 그러면 안 되겠군. 그냥 오늘 식단 뭐 나올지 얘기했다고 하자.”
“예, 알겠습니다!”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건 절대로 비밀이야.”
카론과 비밀을 지키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 뒤, 나는 우리가 사용했던 펜을 잘 처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내 손에서 잉크 냄새가 날까 봐 손도 박박 닦았다.
좋아, 이걸로 모든 뒤처리는 완벽하다.
이제 폭탄이 터지기까지 기다리면 된다….
* * *
탕탕-.
중대장은 중대장실을 나서며 가볍게 사랑의 편지함을 두드려 보았다. 일종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뭐지?”
그러나 그는 편지함에서 울리는 소리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안의 내용물이 들어 있을 때의 소리였던 것이다.
‘설마 누가 사랑의 편지를 썼나?’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에 기겁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를 꺼내 빠르게 편지함을 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편지함이 열리고, 그는 정말로 여러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벼, 별거 아니겠지….”
그래, 정말로 별거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랑의 편지함에 들어 있는 건 기껏해야 국경방위군에 관한 욕이라든가, 식단을 개선해 달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태세로 종이를 편 중대장은, 누가 보아도 왼손으로 쓴 게 분명한 삐뚤삐뚤한 글씨를 발견했다.
“헉…!”
그리고 그 내용을 읽은 그는 놀라 숨을 멈추고 말았다.
『가그네 상등병의 괴롭힘으로 인해 국경을 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윽고, 배에 힘을 준 그는 외쳤다.
“비, 비상~!”
놀라서 달려온 하사 한 명에게, 그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다시 한번 외쳤다.
“소대장들을 전부 불러와! 비상, 비상!! 너희들에게 대실망이다!!”
* * *
잠시 후, 알파 소대의 소대장은 하얗게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알파 소대에게 몹시 실망했다.”
“예, 예…. 실망하실 만합니다….”
알파 소대의 지휘사관이라는 이유로 불려온 엘리엇과 타로도 얼굴에 핏기 한 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엘리엇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다시 읽어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 글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이건 진짜 미친놈이다…!’
‘탈영하겠습니다’도 아니고 ‘국경을 넘겠습니다’라니,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이라 더욱 무서웠다…!
“마, 말년에 이런 일이….”
제대가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할 수 있는 그는 자신의 안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국경을 넘겠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물론 정말로 국경을 넘는다면 이 편지를 쓴 사람만 죽고 말겠지만, 만일 중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음이 윗선의 귀에 들어간다면 대대는 물론이고, 사단 단위로 탈탈 털릴지도 모른다.
‘이, 이건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탈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탈군? 아니면….’
엘리엇은 국경 너머가 아돌브 제국의 북쪽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탈남?’
진짜로 탈남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한편 다크서클이 퀭한 타로는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다가 벽을 짚고 섰다.
‘이 부대에 안 좋은 기운이 흐르는 건가?’
18중대로 배정받자마자 겪은 ‘황태자 습격 사건’으로 인해, 그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때 쇠해진 기력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 후로 그는 없는 사람처럼 지휘사관용 숙소에서 잠만 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다니.
역시, 18중대에 마가 제대로 낀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중대장의 앞에 선 소대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고, 엘리엇과 타로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중대장실을 나갔다.
부대원들을 찾아 떠나는 그들의 눈빛에는 각자의 각오가 번뜩이고 있었다.
‘반드시 무사히 제대하고 만다.’
‘내 잠을 방해한 원인을 처단하겠어.’
* * *
우리 소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그네가 선임들한테 무참히 깨지고 자숙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상등병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진심으로 쓴 것 같아서 두려운데….”
그들은 진지하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사랑의 편지를 쓴 주인을 알아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글씨체로 유추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냐?”
“누가 봐도 왼손으로 쓴 게 분명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들 왼손으로 똑같은 문장을 쓰게 한다면?”
“그건 대놓고 색출하는 거잖아. 안 돼.”
“XX, 그럼 역시 방법이 없나….”
레온과 브레이브, 플라토와 자라는 결국 글씨체에서 주인을 찾아내는 것은 포기했다.
종이를 진지하게 들여다본 78기 세 명도 고개를 저었다.
“윈터, 너도 모르겠나?”
“예, 모르겠습니다.”
“윈터까지 모를 정도면 정말 아무도 모르겠군….”
이마를 짚은 플라토가 중얼거렸고, 자라가 슬쩍 우리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최근에 가그네에게 직접 혼난 경우가…. 얼마 전에 밀피가 압존법을 실수해서 털렸고, 블레어와 토피오가 작업하다 실수해서 털렸고, 아니면 다른 훈련병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범위가 너무 넓어서 추려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상등병들의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던 타로가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후임들이 더 이상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거겠지.”
“그래, 야. 누가 진짜 국경이라도 넘어서 뒤진다면 부대가 전부 뒤집힌다고.”
엘리엇도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로 가그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내가 몇 주 동안 공들여 온 인물이 끼어들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저희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알타이르는 유들유들한 얼굴로 자신의 양옆에 있는 윈터와 유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