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왜? 그게 누구냐고?”
“네, 그렇습니다.”
내 질문을 들은 유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날 에이프릴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나는 어쩐지 그녀가 말한 ‘죽은 애’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물론 선임의 얘기를 함부로 캐묻고 다니는 것은 연대책임으로 털릴 정신 나간 행위였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 정도 짬을 먹은 선임들 중 유일하게 신뢰 관계가 있는 유리에게 몰래 질문했지만.
유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내가 입대했을 때 에이프릴 님은 이미 일등병이셨는데….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태셨지….”
아하, 그때도 미쳐 있었다는 거군.
“그때도 딱히 친하게 지내는 분은 없으셨어. 후임들이랑도 유난히 안 친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 뭐. 그나마 대화하시는 분이라고는 맞후임이신 루이즈 님 정도?”
“…아하, 답변 감사합니다.”
결국 에이프릴이 일등병 때도 저런 상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잠깐만.’
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에이프릴 님 동기 분들은 에이프릴 님보다 전부 약해서 죽은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이전에 그레이라는 신병이 그런 미친 발언으로 에이프릴의 분노를 샀었지.
그때 그녀가 보인 태도로 보아, 에이프릴은 분명히 동기가 있었다.
동기가 죽는 경우야 이 부대에서 흔하다. 보통 처음 들어오고 반년 안에 운이 없거나 약한 이들은 대부분 죽으니까.
그렇지만 첫 2년을 보내고 나면 웬만한 마물을 처치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는 의미여서, 보통 일등병으로 진급하면 자신의 목숨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는 했다.
하지만, 왠지 찜찜한 건….
“…유리 님, 에이프릴 님께 동기 분이 계셨습니까?”
그 말에 유리가 숨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그녀가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너 다시는 이런 거 묻지 마라. 한 번만 더 물으면 죽는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기수가 입대하기 전의 일이라, 나도 플라토 님께 들었는데….”
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프릴 님의 동기는 일등병이 되고 얼마 안 가 죽었다고 들었어.”
…역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에이프릴이 저토록 미친 인간처럼 행동하는 이유.
그건 그녀의 동기가 첫 2년을 버티고도, 수십 번의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기고도, 죽었기 때문이다.
에이프릴과 너무 깊은 동기애를 맺은 상태로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에이프릴의 심정을 좀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2년 후에 아퀼라가 죽는다면?’
…아무래도 나는 에이프릴보다 성격이 더 괴팍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에이프릴이 나한테 천사 짓 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먼저 죽은 자신의 착한 동기에 나를 투영했던 것일지 모른다.
“야, 아퀼라. 잘 들어.”
내가 근엄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아퀼라를 툭툭 치자, 그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 죽으면 뒤진다.”
“…뭐?”
“죽지 마! 나 두고 죽으면 너를 죽여 버릴 거야.”
“그게 무슨…. 아니야, 알았어.”
아퀼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황빛 눈으로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절대 그럴 리 없지.”
어쩐지 그의 눈빛에서 어떠한 욕망과도 같은 빛이 번뜩였다. 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까워서 어떻게 죽어.”
“흠, 좋아.”
다행히 그도 생존에 대한 의지가 무척 강한 듯해서,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절대 죽지 말아야지.’
물론 원작에서 나는 죽긴 하지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원래의 내가 죽을 시기를 알고 있다는 건 생존에 큰 도움이 되겠지.
물론 언제나 죽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이 아포칼립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겠지만….
‘좋아, 강해져서 다 부숴 버리는 거야.’
갑자기 훈련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서, 나는 그날 이를 악물고 총을 쐈다.
* * *
제대 D-2556일.
오늘은 아마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날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에이프릴 님, 제가 짐 싸는 거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에이프릴에게 다가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거대한 가방에 짐을 챙기고 있던 에이프릴은, 코웃음 소리를 내며 나를 돌아봤다.
“너 내가 떠난다니까 좋아서 이러는 거지?”
“아닙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오늘로 이 부대를 떠날 텐데, 표정 관리 정도야 좀 못해도 괜찮다!
그렇다. 내일은 새로운 기수가 들어오는 날이고.
그 말인즉슨. 오늘은 떠날 사람들이 떠나는 날이라는 뜻이었다.
“에이프릴 님은 어떤 부대로 가시는 겁니까?”
“제72특공사단은 같고, 제39보병여단으로 가는 것 같던데 더 자세히는 나도 몰라.”
“아하…. 어쨌든 앞으로 2년만 있으면 제대일 텐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에이프릴 이 미친X이 떠난다니.’
평화로운 여자 숙소의 모습은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나 떠나는 거 기뻐할 시간에 크리스 님 제대나 좀 축하해 드리지?”
“물론 그것도 너무 기쁘지 말입니다!”
알파 소대의 지휘사관 크리스는 바로 오늘 제대를 한다.
제대라니, 상상만 해도 너무 달콤한 단어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까마득한 단어이기도 하지, XX.
내가 입대한 시점에서 이미 크리스는 제대가 1년도 남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사실 나는 크리스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조차 없었다. 이시나는 그걸 두고 ‘짱박혀 있다’라고 부르는 거라고 알려 줬다.
“에이프릴 님은 제대하고 나면 뭐 하실 겁니까?”
물론 그녀가 제대하고 어떻게 살지는 X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예의상 던진 질문이었다. 저건 국경방위군 소속 대원들끼리 매일 한 번씩은 묻고는 하는 단골 질문이다.
“나…?”
그러자 에이프릴은 화사하게 웃어 보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이 세계의 비밀을 찾으러 갈 거야.”
“…예?”
내 표정이 저절로 굳었다.
‘이 세계의 비밀’, 그건 꼭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왔을 인간이나 쓸 법한 표현이었다.
‘…농담인가?’
굳어 있는 내 표정은 개의치 않고, 에이프릴이 말을 이어갔다.
“있잖아…. 내 생각에 이 세계는 좀 이상하거든…. 정확히는, 우리를 둘러싼 이 체계 말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으응, 그냥…. 국경방위군의 존재라던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마물 같은 것들~?”
“…아….”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도 나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들었다는 양 반응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세계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일 것이고, 에이프릴의 의문은 내가 품어 왔던 것과도 비슷했으니까.
한참을 머뭇거리던 나는 결국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네, 이상합니다….”
“응?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이 체계가 유지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체계가….”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에이프릴이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녀는 국경방위군에서 지내는 동안 스스로 이 세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계약 마법이 걸린 이종족들, 계속해서 증식하는 마물들과 의미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이종족들.
에이프릴은 이 불합리한 체계가 백 년도 넘게 유지되어 온 것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가 소설 배경을 위해 만들어 낸 극적인 체계이겠지만, 이게 현실이 된다면 좀 다르다. 어떻게 이런 불합리한 체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이 체계의 일원이 되어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겠지. 에이프릴은 그 예외인 것이고.
“이 체계가 이상하다고 여긴 사람은 나 말고 처음 봤어.”
에이프릴이 어쩐지 멍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동기 빼고는 네가 처음이네.”
그녀가 스스로 ‘동기’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얼마 전 알아낸 사실에 대해 말해야 할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느꼈다.
“저, 에이프릴 님….”
“왜?”
“감히 한 가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에이프릴이 장난스럽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며 말했다.
“좋아, 원래대로라면 네 질문 따위 받아 주지 않았겠지만, 난 오늘 이 부대를 떠나니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정말 그녀다운 말투였다.
“예, 그…. 에이프릴 님 동기께서 후임들한테 얕보여서… 일등병 때 목숨을 잃으셔서…. 그래서 저한테 충고해 주신 겁니까? 약하게 보이지 말라고?”
“뭐?”
그러자 에이프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동기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흠, 어떤 괘씸한 애인지는 몰라도 한 번 털고 갈 시간도 없겠네.”
난 그녀에게 지금 이 얘기를 꺼낸 걸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유리를 죽이고 내가 다시 유리한테 죽을 뻔했다.
“내 동기 이름은 베논이었어.”
에이프릴이 너무나도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걘 다 잘했지. 엘리트였어. 천생 군인이었고, 사실 난 걔가 말뚝 박는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거야. 군대 체질이었거든.”
왠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할 분위기여서, 나는 혀를 굴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침을 삼켰다.
“뭐, 얕보여서 죽은 건 맞아. 그런데 네 얘기는 반만 맞고 반은 틀렸지. 걔는 후임들한테 얕보일 만한 애가 아니었거든. 내가 그랬잖아, 천생 군인이라고.”
“예?”
내가 고개를 갸웃했을 때, 문밖에서 알타이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프릴 님, 준비 다 되셨는지 루이즈 님이 묻습니다.”
“금방 나가겠다고 해.”
에이프릴은 나와 아무 얘기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등을 돌려 가방을 닫았다.
이내 신발을 신은 그녀가, 숙소 문 앞에 서서 내게 등 돌린 채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얕보인 건 걔가 아니라 나야. 걔는 나 대신 죽었어.”
곧 그녀가 숙소를 나가고, 나는 나 혼자밖에 남지 않은 숙소에서 중얼거렸다.
“환장하겠네.”
그녀가 나에게 투영한 건 그녀의 동기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