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황태자가 등장했는데 장르가 군부물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에이프릴은 정말로 미친X이다.
“얘들아…. 놀랍게도 내가 방금 숙소에서 초파리 한 마리를 발견했어.”
에이프릴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건 다 너희들이 숙소를 더럽게 관리해서 그런 거 아닐까…? 어떻게 초파리가 한 마리나 존재할 수 있지?”
‘XX, 매일 쓸고 닦는데 초파리 한 마리가 밖에서 들어온 걸 어쩌라고.’
그렇지만 내 속마음을 밖으로 티 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에이프릴의 말을 경청하는 척할 뿐이었다. 내 옆에 서 있는 유리는 이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초파리 한 마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나니까, 이 숙소가 너무 불결하게 느껴져서 차마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유리와 내가 바로 대답하자, 에이프릴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말했다.
“그래, 역시 너희들도 이 숙소를 더 깨끗이 청소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먼지 한 톨 안 나올 때까지 청소 시작한다.”
‘XX!’
고작 초파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숙소 모서리까지 꼼꼼히 청소시키고, 자신이 손가락으로 쓸어 본 후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면 다시 청소를 지시하는 저 예민함은 기본이었고.
“얘들아, 혹시 방금 밖에서 동물 울음소리 같은 거 못 들었니?”
“자, 잘 못 들었습니다?”
“흐음, 분명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부대 내에 동물이 들어온 것 같아.”
“저는 못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네 고참이 거짓말한다는 거니?”
“아,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아, 아닙…. 아니…. 모두 맞는 말씀이십니다!”
본인 심심할 때마다 말꼬투리를 잡아 말장난을 하는 건 물론이고, 본인이 동물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유로 동물이 나올 때까지 소대를 순찰하게 만드는 까탈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저 때 아무리 찾아도 동물이 나오지 않아 결국 새 한 마리를 붙잡아 갔더니, 불결한 새를 데리고 왔다는 이유로 다시 숙소를 청소하게 되는 결말을 맞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루이즈, 훈련에서 낙오한 소대원들은 역시 따로 일을 내려 줄 필요가 있겠지?”
“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산에서 산딸기를 따오는 걸로 할까?”
“…예?”
“얘들아, 들었지? 훈련에서 낙오한 소대원들은 산에서 산딸기를 따 오는 걸로 하자.”
“저… 산딸기는 한참 찾아야 나올 텐데….”
“없으면 만들어 와.”
이날 낙오한 소대원들은 산을 한참 뒤져 가시덤불을 헤쳐 가며 산딸기를 따 와야 했고.
“너 지금 날 왜 그렇게 봤니?”
“그,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럼 내가 본 건 헛것이니? 아, 혹시 내가 마물의 독에 중독되어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에이프릴 님, 애들 교육은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됐고, 지금부터 저기 있는 바위를 옮긴다, 실시.”
“저, 저 바위를 어떻게….”
“실시!”
에이프릴은 훈련병 블레어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거슬렸다는 이유로 거대한 바위를 언덕 위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참고로 그 바위는 언덕 꼭대기에 올리고 나니 다시 반대쪽으로 미끄러져서, 나는 시지프스 신화가 눈앞에서 실현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녀는 정말 미친X이었다는 얘기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은 미쳤어.”
그리고 내가 이걸 다시 복기하고 있는 건, 오늘 중대 연합 훈련에서 낙오한 내게 에이프릴은 벌로 모래밭에서 실 찾기를 시켰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바늘에 내 손가락이 찔릴 것을 염려하여 바늘 대신 실을 숨겨 주었다. 참 감사한 배려였다.
“어떻게 저렇게 창의적인 거지…?”
세상에서 창의성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군인이다.
그러나 에이프릴은 군인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창의성이 넘치는 인간이었고, 그걸 후임들에게 발휘할 수 있는 짬밥까지 갖춰 버린 것이다.
‘탈영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에이프릴에게서 가끔씩 묘한 서늘함을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조약돌 사이에 쇠구슬을 던져 놓고 찾으라고 했던 그날 숙소에서 자신이 X같냐고 물었던 순간이라던가, 그렇게 천사 짓 하다가는 너부터 죽을 거라고 했던 순간이라든가….
나는 그녀의 연녹색 눈빛에서 차분하고 서늘하게 정제되어 다듬어진 광기를 보았다.
‘…아냐, 생각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흔들어 그녀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그래, 오랜만에 낮잠 잘 수 있는 시간인데 얌전히 눈 붙이고 잠이나 자자.
그나저나 그녀가 곧 이 부대를 떠난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드디어 이 부대에서 미친X 한 명이 사라진다니.
국경방위사령부는 다른 군과는 구별되는 특이한 계급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수도방위군 등에서는 ‘이등병’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훈련병’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한 계급당 2년이라는 기묘한 체계도 그랬고.
무엇보다, 우리는 병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등병을 마쳤을 때 우리는 ‘지휘사관’으로 진급하는데, 그건 오로지 국경방위군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계급이었다.
지휘사관은 병 계급으로 취급받지 않고, 다른 군으로 치자면 부사관으로 취급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경방위군에는 부사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지휘사관이라는 계급이 메우고 있을 뿐.
그래서 만약 수도방위군 등의 다른 군과 만나면, 우리의 기묘한 계급 체계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우리의 상등병과 그들의 상등병은 결코 같지 않으니까.
어쨌든, 에이프릴은 곧 지휘사관으로 진급하고, 그것은 그녀가 다른 부대로 떠난다는 의미였다.
상등병에서 지휘사관으로 진급할 때는 교육 본부에서 한 달간의 짧은 교육을 받고 랜덤으로 새로운 부대에 배치된다고 했다. 우리 부대의 지휘사관 엘리엇과 크리스도 다른 부대에서 온 경우였고.
그러니까 마물 토벌이나 경계 근무, 행정 업무 등에도 참여하지만 훈련에는 참여하지 않고 평소에는 훈련병들에게 일을 시키며 누워 있는 것이다.
‘부러워 죽겠네.’
도대체 내가 에이프릴처럼 진급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지?
‘…최소 5년?’
결국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래, 그냥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흘려보내자….
그때, 에이프릴이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낮잠을 자려던 나를 흘끗 바라보며 가볍게 물었다.
“뭐 해? 아직 안 자?”
“아….”
그대로 누워서 대답할지 아니면 몸을 일으킬지 고민하던 나는, 내 눈앞에 있던 사람이 에이프릴임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졸려서 제대로 사고하지 못했군. 뒤질 뻔했네.
“지금 자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뭐 잘 자라.”
에이프릴은 나에게 대충 손을 휘적거리고, 자신의 자리로 가서 관물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약하게 콧노래까지 부르는 게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마도 곧 진급해서 그런 거겠지.
왠지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말이라도 꺼내야 할 분위기라, 내가 간신배 같은 웃음을 얼굴에 띠워 보이며 말했다.
“에이프릴 님, 진급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에이프릴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하하!”
그녀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너 내가 이 부대 떠나서 좋지?”
“아, 아닙니다, 그런 거…! 그저 진급하셔서 진심으로 축하드린 겁니다…!”
“그래, 뭐~. 그런 걸로 하자~.”
그녀는 날 놀려먹는 게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가, 관물대를 닫으며 말했다.
“넌 지휘사관으로 진급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5년 3개월입니다.”
“이런, 정말 안타깝다~.”
‘저 미친X, 진짜….’
어떻게 사람이 남의 제대를 가지고 놀려먹을 수 있지?
내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는 동안, 여전히 즐거운 얼굴을 유지한 채 그녀가 말했다.
“그래, 사루비아. 대신 너는 다음 달에 후임들 더 들어오니까 그걸로 만족해.”
‘지금 장난하나?’
고작 후임 몇 명 더 받는 거랑, 진급하는 게 어떻게 같을 수가 있지? 심지어 그 후임들은 살지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에이프릴은 남의 속이 타들어 가도록 만드는 데에는 재주가 있었다.
“하하, 어차피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신병들인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이프릴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져 있어서, 나는 긴장하여 몸을 더 바짝 폈다.
“왜? 예전에는 후임들이 살도록 돕고 싶다면서?”
그렇게 묻는 에이프릴의 목소리는 떠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건 나에게 뼈아픈 말이었다. 레이나를 챙겨 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을 때 더 마음이 불편했으니까.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럼 지금은 알고 있고?”
“네, 그렇습니다.”
“정말?”
에이프릴이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좋아, 사루비아…. 그럼 이 질문에 대답해 보도록 하자….”
‘대답하지 못하면 뒤지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괜히 그녀에게 말을 붙여서 스스로 재앙을 불러온 것 같다.
“내가 예전에 너한테 했던 말 기억 나? 네가 레이나를 챙겨 줄 때?”
…그건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이 꽤 인상적이었으니까.
“천사 짓 할수록 저만 죽는다고 했습니다.”
“으음, 기억하나 보네.”
에이프릴은 너무나도 산뜻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
“…저번처럼 후임을 챙겨 주다가 그 후임이 죽으면, 저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니 최대한 무덤덤해지는 게 좋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그건 절반만 맞는 대답.”
그녀가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고는, 비밀 얘기라도 해 주는 듯이 목소리를 줄인 채 말했다.
“사루비아, 있잖아….”
“예.”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마물 소탕 때는 마물만 무서운 게 아니야….”
‘…산의 지형을 조심하라는 건가?’
하긴, 나는 예전에 폭포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에이프릴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여기서는 약하게 보이면 금방 이용당하는 거야.”
“…예?”
“위기의 순간 옆에 있는 동료들을 지켜 줄 게 아니라, 자기 살겠다고 본능적으로 위험에 밀어 넣는 인간들도 있거든.”
‘무슨….’
“딱히 걔네가 악의적으로 그러는 건 아니야. 그런데 마물 하나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 뒤에 자신의 몸을 숨기는 애들이 분명히 있다고.”
순간 에이프릴의 얼굴을 본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빳빳이 세웠다.
말을 이어 가는 그녀의 눈빛에서, 평소와는 다른 서늘함이 보였으니까.
“사루비아, 너는 너한테 잘해 주는 선임, 예를 들어 이시나와 같은 애들을 잘 따르는 타입이지만….”
평소의 그녀도 미쳐 있긴 했지만, 보통 그녀는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말을 이어 갈수록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조금씩 광기를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광기는 꼭….
몇 년 동안 차분하게 꾹꾹 눌러 놓았던 광기가, 견디지 못하고 진동하며 상자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자기한테 잘해 주면, 본능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애들도 있다고.”
나는 마침내 그녀가 말했던 ‘천사 짓 하다가는 너부터 죽는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문장 그대로였다.
만만하게 보이다가는.
죽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죽은 애를 봤어.”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이프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죽은 애가 분명히 있다고. 그리고 사루비아 너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눈 안에서, 어떠한 침통함과도 같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너는 절대 착하게 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