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네 명의 미친놈들이 나한테 집착한다』 원작의 비밀
“달린, 총 내려놔.”
“윈터 님?”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사격장을 지나던 윈터는 달린이 거대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 달린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지만, 달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대로 윈터를 돌아봤다. 총구는 윈터에게로 향해 있었다.
“잠깐, 달린.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까딱하지도 말고.”
“무슨 일 있습니까?”
달린을 진정시키려고 한 말이었는데도, 윈터의 의도와 다르게 달린은 오히려 더 불안하다는 눈빛을 했다.
‘젠장, 도대체 누가 달린에게 총을 준 거야. 분명 총기류는 잘 관리되고 있을 텐데.’
저대로 총이 발사된다면 윈터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총이 급소를 관통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실수로 총을 쏘는 것 정도야, 지난날의 달린의 행보를 생각하자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달린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윈터는, 달린의 뒤에서 그 총을 휙 빼앗아 들었다. 무거운 총이 어깨에서 내려가자 달린은 잠시 휘청했다.
‘십년감수했군.’
윈터는 총을 원래의 자리에 안전하게 두고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달린을 쳐다봤다.
“달린, 네가 왜 총을 들고 있던 거지?”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달린에게 총을 들게 둘 리가 없었다. 이 부대 전대미문의 고문관, 전설의 사고뭉치 달린이라면 총기 난사 사고를 일으키고도 남을 것이다.
“이시나 님이 한번 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의외로 검보다 총이 나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윈터는 압존법 따위는 지키지 않는 엉망진창인 그녀의 말을 지적하는 건 이제 포기하기로 했다. 다나까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발전했다고 칭찬해 줘야 할 일이다.
대신, 이시나가 달린에게 총을 권유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도대체 이시나는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혹시 제가 총 쏘면 안 되는 겁니까?”
윈터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묻는 달린의 주황색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물론 달린에게 총을 쥐여 주면 그녀의 사고로 주변 사람들이 몇 명이나 죽어 나갈지 모른다는 사실은 둘째치고서라도….
“그래, 안 돼.”
윈터는 절대로 달린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히잉, 역시 제가 많이 모자랍니까…?”
“…아니, 총은 위험하다. 널 위해서 해 주는 말이야.”
그래, 이건 달린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점점 사루비아와 닮아 갈수록, 윈터도 자신이 더 이상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후우, 그래…. 애먼 데 화풀이하면 안 되겠지.’
닮은 것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지만 달린을 앞에 두고 있을수록 더욱 껄끄러워지는 기분이라, 윈터는 그대로 뒤돌아 이시나를 찾아 나섰다. 달린에게 총을 쥐여 준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 윈터는 건물 구석에서 아퀼라와 함께 있는 이시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시나.”
“아, 윈터 님.”
이시나가 가볍게 경례했다. 윈터는 대충 인사를 받고는, 이시나에게 곧장 물었다.
“달린에게 총을 권유했다면서.”
“아…! 네, 그렇습니다.”
“왜 그랬지? 달린한테 총을 쥐여 주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 건지 짐작하지 못했나?”
그 말에 이시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눈을 휘어 보였다. 본인도 전설의 고문관 달린이 총을 들었을 때 일어날 일을 대충 짐작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이시나가 눈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할 때, 아퀼라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윈터 님, 달린은 말리셨습니까?”
“그래, 다시는 총을 들지도 말라고 했어.”
“아, 감사합니다. 그걸 말해 뒀어야 했는데.”
아퀼라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래, 아마도 사루비아의 죽음으로 제일 힘든 건 아퀼라겠지. 평소에 크게 내색하지는 않더라도, 달린이 총을 든 모습을 본다면 아퀼라도 사루비아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이상하단 말이지.’
사실 윈터는 요즘의 아퀼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카론이 달린을 졸졸 쫓아다니는 거야 뭐, 사루비아가 떠올라서 그럴 것이다. 카론은 사루비아를 자신의 누이이자 가족으로 여겼으니, 달린에게서 사루비아의 흔적을 찾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아퀼라가 달린을 감싸고 챙기는 건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모든 것들에 미숙한 감이 있는 카론과 달리, 아퀼라는 분명히 ‘사루비아와 달린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루비아가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던 아퀼라가, 금세 변심해서 달린을 마음에 두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아퀼라의 감사 인사를 들은 이시나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아퀼라에게 질문했다.
“왜? 총을 좀 만지게 해 둬야 적응하지 않겠어?”
이시나는 녹색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총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손에 배기는 굳은살, 발달하는 팔 근육과 어깨 근육, 다리 근육… 그런 것들이 있잖아. 지금 총을 만지게 해서 그런 것들을 발달시킬 생각이었는데. 그래야 나중에 사루비아가 돌아왔을 때 그 몸에 적응하기 쉽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윈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시나와 아퀼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반면 아퀼라는 이시나가 한 말을 완전히 이해한 모양이었다.
“뭐 하러 그렇게 고생시킵니까? 어차피 제대하고 나서 데려올 건데.”
아퀼라가 속내를 알 수 없는 주홍빛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데려오고 난 후에는 제 품 안에서 곱게 키울 겁니다. 더 이상 힘든 일은 전혀 안 하고, 그냥 집에 얌전히 있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글쎄, 사루비아 성격에 집에 얌전히 있기만 하지는 못할걸. 주기적으로 날뛰어 줘야 할 것 같은데.”
“앙탈 부리는 건 제가 잘 받아 주면 됩니다. 만약 본인이 다시 총을 잡고 싶다면… 그때 가서 다시 잡게 하면 됩니다. 아르콘의 몸이니까 어차피 금방 근육도 발달할 겁니다.”
“콩깍지는 여전하구나…. 사루비아의 성격은 ‘앙탈’보다는 ‘폭력과 공포’에 가깝지….”
윈터는 아퀼라와 이시나의 대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윈터가 입을 열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아퀼라, 분명 사루비아를 잊은 줄 알았는데.’
최근에는 달린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루비아에 대한 언급도 전혀 하지 않아서 사루비아가 막 죽었을 당시에만 힘들어 하고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퀼라는 분명 사루비아를 다시 언급했다.
…아퀼라가 달린을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럼 도대체 아퀼라가 달린에게 그동안 보인 모습은 뭐였지?
“아퀼라, 물어볼 게 있다.”
윈터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요즘 달린에게 왜 그렇게 잘해 주는 거지?”
“그래야 사루비아가 돌아왔을 때 제대로 예뻐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퀼라가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루비아 성격에, 본인이 불안한데 저까지 적응 못 하면 엄청 짜증 낼 겁니다. 주변 반응이 좀 태연하고 자연스러워야 사루비아도 별생각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아퀼라는 얼마 전 어두운 동굴 속에서 달린을 껴안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직까지 밝은 곳에서 껴안는 건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느낌은 익숙해졌어.’
아퀼라 자신이 적응해 두지 못한다면 사루비아가 돌아왔을 때 보일 반응이 음성 지원된다.
‘아니, XX, 네가 불러내 놓고 네가 낯가리면 어쩌자는 거야, XX. 너 진짜 사람 빡치게 할래, 어? 나 다시 확 그냥 돌아가 버릴까, 응?’
한편 이시나는 그런 아퀼라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퀼라와 사루비아, 그놈들과 함께 있으면 그 사이에 끼어서 답답해지는 건 늘 이시나였으니까.
“사루비아가 돌아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한편 여전히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윈터가 아퀼라의 주홍빛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설마….”
윈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퀼라 너… 흑마술사와 거래한 건가?”
아무리 흑마술이라도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쉬이 할 수 없었지만.
딱 한 가지 재료만 있다면 가능했다. 그 한 가지 재료를 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아무도 해내지 못했을 뿐.
“블랙 드래곤의 심장.”
얼마 전 그들이 처치했던, 1급 마물 블랙 드래곤의 심장.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아퀼라가 맡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아마도….
“아퀼라, 블랙 드래곤의 심장이 너한테 있구나.”
윈터가 경악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아퀼라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너, 달린의 몸에 사루비아의 영혼을 불러올 생각이구나.”
그 말에 아퀼라가 주홍빛 눈을 또렷하게 뜨고 윈터를 응시했다. 분명히 뜨거운 빛깔의 눈인데도 어쩐지 서늘한 기분이어서, 순간 윈터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같은 아르콘의 몸이고, 나이대도 크게 다르지 않고, 성별도 같고, 무엇보다 생김새도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 그게 최선의 몸입니다. 게다가 달린과도 나름의 합의가 진행된 게 있지 말입니다.”
“대체 달린이 왜 그런 일에 합의를…. 아니, 그보다도 너…!”
“사루비아는 처음에는 좀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잘 달래면 괜찮아질 겁니다.”
아퀼라는 사루비아가 자신의 새로운 몸에 대해 짜증내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예쁘다고 백 번쯤 말해 주며 온몸에 입 맞춰 주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리고 제 품에 가둬 놓고 안아 주면 금방 얌전해질 거고.
사루비아는 뜨거운 것에 약하니까, 짜증 낼 때마다 안아 주면 금방 화가 풀리고 얌전해진다.
달린의 영혼이 빠져나간 동안 달린의 몸은 잠깐 죽은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때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자신이 제대할 때 몸을 데리고 부대를 빠져나가면 된다.
사루비아는 아퀼라가 수도에 사 놓을 집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다시 돌아왔고 국경방위군 생활도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 사루비아도 당연히 아퀼라 자신을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사루비아의 인생에는 아퀼라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아퀼라가 사루비아를 사랑했듯이, 당연히 사루비아도 아퀼라를 사랑했다.
“너 정말 미쳤구나.”
윈터가 시린 빛깔의 청회색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아퀼라의 눈을 본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사루비아가 죽은 이후로 쭉, 아퀼라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건 사루비아도 매일 듣던 소리 아니었습니까.”
아퀼라는 후임들에게 사루비아가 어떻게 불렸는지를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렇게 사루비아가 허무하게 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아퀼라의 모든 일상은 늘 사루비아가 곁에 있었다.
아직 사루비아와 함께하지 못한 일상이 많았다.
처음으로 사랑을 손에 넣었는데.
그들은 분명 가족이 될 수 있을 거였고, 지금까지 그들이 삶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함께 해 볼 시간이었는데.
이대로 군대에서 삶을 끝내기에는 사루비아의 삶도, 그 자신의 삶도 너무 아까웠다.
따라서 아퀼라는 모든 일을 바로잡기로 마음먹었다.
사루비아가 누렸어야 할 것들도, 그가 가졌어야 할 것들도 모두 되찾을 것이다.
무릎 위에 앉혀 두고 예쁘다고 말해 주고, 눈이 오는 겨울에는 창가에 앉아 함께 코코아를 마시고, 예쁜 드레스를 입혀 놓고 키스해 주고, 봄에는 꽃을 꺾어다 화관을 씌워 주고, 사랑해 주고, 또 사랑해 주고….
“그러니까 사루비아도 다시 제 품으로 데리고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