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모양을 잡는다고 생각해 봤더니, 오러는 곧장 내 뜻에 따라 둥그렇게 총을 감쌌다.
‘생각보다 쉽잖아.’
처음 검에 오러를 싣는 훈련에 비하면 빠른 속도였다.
오러로 소리를 차단할 준비를 마친 내가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으로 윈터를 쳐다봤다.
“…그래, 준비가 된 것 같군.”
총을 쥔 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윈터가 그렇게 말했다가, 짧게 덧붙였다.
“사루비아, 이종족은 마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온 존재다.”
그거야 나도 잘 아는 얘기였다. 우리가 남들보다 쉽게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윈터에게 처음부터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 총을 들어도 되는 거냐고 되물으려 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원작에서의 사루비아도 총을 쐈구나.
원작에서 윈터가 달린을 말렸던 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사루비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구나.
윈터의 말대로 총을 잡고 방아쇠 위에 손을 올렸을 때, 나는 기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상등병인 브레이브는 훈련병 시절부터 검 대신 도끼를 잡은 드문 케이스였다. 그는 그 무기를 기막히게 잘 다뤘으니까.
처음 도끼를 잡았을 때, 그는 자신이 반드시 이 무기를 써야 한다는 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다.
이거다. 나는 이것을 잡아야만 한다.
“그 총은 반동이 강해.”
옆에서 윈터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손에 들린 총과 내 앞에 놓인 과녁밖에 없었다.
나는 손에 강하게 힘을 주어 방아쇠를 꺾었고.
탕-!
격발음이 울려 퍼졌으나, 오러를 두른 탓에 큰 소음은 아니었다. 탄환이 발사되었다는 것을 적당히 알 수 있는 정도였다.
총의 반동으로 인해 그대로 몸이 뒤로 밀려났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훈련으로 키운 힘을 이용해 겨우 버티고 설 수 있었다.
나는 처음 목표로 했던 과녁, 빨간색 원판을 노려보았다.
원판은 탄환에 정확히 맞은 후 덜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네가 그 반동에 잘 적응할 줄 알았어.”
나는 윈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조금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사루비아, 이종족은 마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온 존재다.”
아르콘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며 살아남았다.
아르콘에게는 마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각자의 전투 방식이 무조건 존재한다.
‘…발사되는 시간을 계산하면, 이쯤.’
아무도 내게 알려 주지 않은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꼭 그 기술들은 내 영혼에 박혀 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시점에 총을 쏴야,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지.
탕-!
다시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의 특성에 따라 탄환이 하늘에서 흩어졌으며.
바닥에는 새 한 마리가 추락해 있었다.
윈터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을 때, 나는 무표정한 눈으로 새가 추락한 장소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아, 이거였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총에 재능이 있었다.
아르콘의 신체 능력 덕에 총의 반동을 이겨내는 건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총의 속도와 궤적을 계산하여 이동하고 있는 목표물을 맞히는 일.
단 두 번의 사격으로 그 감각을 익혔다는 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었다.
윈터는 내가 갑자기 총을 들어 과녁이 아닌 새를 쐈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고, 내 사격에 놀란 건 윈터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내 소유의 총을 받았고, 앞으로도 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내 사격 재능이랑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뒤질래? 머리 박아.”
‘이, 이 미친….’
“얘네들이 미쳐 가지고…. 허락도 없이 멋대로 총을 쏴? 죽고 싶어서 환장했니? 그렇게 죽고 싶은 거면 탈영이나 해!!”
그렇다…. 그런 이유로 지금 윈터와 나는 에이프릴에게 털리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사격 연습을 한 건데, 사격 연습 때문에 죽게 생겼군.’
물론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좀 털릴 만한 짓이긴 했지만,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아까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탈영하기 딱 좋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