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집착보다 내 탈영이 빠르겠다 11화 (12/233)

* * *

그는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으며, 그가 본 것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아퀼라는 어릴 적부터 쉽게 오해받는 타입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섬뜩한 주홍빛 눈과 매서운 눈매, 늘 기본적으로 짓고 있는 무표정, 표현이 적은 성격, 말수가 적은 편.

그런 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퀼라가 매사에 무관심하고 둔감하다고 오해하게 했다.

실상 그는 관찰력이 좋고 예민한 타입이었지만, 그는 딱히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렸던 시절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는 것의 결과를 짐작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그를 불길한 아이로 여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랄수록 그의 주홍빛 눈이 점점 선명해졌을 때.

“여보, 아무래도… 우리 아이 이종족의 피를 너무 강하게 물려받은 것 같아.”

“대체 왜? 자기는 혼혈이라고 했잖아.”

“…어쩌면 여보가 완전한 제국민이 아니라, 이종족의 피가 약하게 섞여 있던 걸 수도 있어….”

그의 뛰어난 신체 능력이, 이종족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으로 성장했을 때.

“아무래도 우리 애는 계약 마법이 효과를 발휘할 것 같아.”

“그러면… 국경방위군으로 입대하게 된다는 소리야?”

그의 부모는 성장하는 아퀼라를 지켜보며 계약 마법이 발현되고 이후엔 국경방위군에 입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서로를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들은 아이를 잃는 게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전에, 아이에게 더 정이 들기 전에, 아이를 버리기로 했다.

“그래도 너는… 너라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정이 든 아이를 국경방위군에 보내 생이별할 일을 염려했던 그들은 그렇게 어렸던 아퀼라를 버렸다.

아퀼라는 그 순간에도 주홍빛 눈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부모는 그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 순간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으나.

그의 부모는 굳어 있는 그의 행동을 오해한 듯, 슬픈 눈으로 서둘러 떠나갔다.

그것이 부모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고아원에서 지내게 된 계기였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는 일에 체념해 버리게 된 이유였다.

이후 열일곱이 되고 계약 마법이 손목에 나타났을 때,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고아원을 떠나 곧장 입대를 자원했다.

그는 배정받은 ‘클레도어 산악 대대 18중대 알파 소대’라는 곳에서 꽤 잘 적응했다.

그는 불 속성의 오러를 다루는 재능이 있었으며 타고난 신체 능력도 뛰어났다.

다른 동기들이 낙오하는 가운데 그는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으며, 동기들은 그를 어렵게 여기는 듯했다.

‘리니아, 칼, 사루비아, 마그네, 요한, 빌리, 히피.’

그는 동기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 탓인지 동기들은 그가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듯했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늘 그랬듯 입을 다물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동기들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부모가 그를 떠나갔을 때처럼,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있어야만 했다.

‘안 돼.’

눈을 감아 보려고 해도, 눈꺼풀마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야, 쟤 아직도 왜 안 나와?!”

“횃불! 전부 횃불 들고 빨리 와 봐!”

그리고 그 순간, 드디어 그의 다리가 움직였다.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는 곧장 강물로 뛰어들어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손 하나를 강하게 붙잡는 데 성공했다.

폭포 아래로 떨어지고, 유일하게 살아 있는 동기 하나의 얼굴을 봤을 때.

“죽지 마. 죽지 말라고, 제발….”

그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심장을 압박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애의 눈과 마주친 순간, 그는 심장이 멈추는 기분을 느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서 유일하게 생기를 품고 환하게 빛나는 금빛 눈이, 그의 눈을 그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눈 너머를 읽어 내고 있었다.

“나, 나는 그 누구도….”

누구도 죽기를 바란 적 없다. 난 너희와 척지고 지내려던 게 아니었다.

왠지 그녀에게만큼은 해명해야 할 기분이 들어, 그가 덜덜 떨면서 그렇게 말하려 했을 때.

“흡, 콜록! 알아.”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네 생각, 흡! 다 안다고.”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생전 처음 느끼는 짜릿한 감각이 그를 지배했다.

‘사루비아.’

그 이름이 그의 혀끝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떻게 해서든 평생 사루비아만큼은 살리겠다고 약속하는 일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느낀 유대감에, 그는 제 모든 것을 사루비아에게 갖다 바치고 싶어졌다.

“안아 줘.”

그녀가 눈이 풀린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추위에 덜덜 떠는 몸을 감싸 안은 순간, 그는 평생 그녀의 체온이 자신의 것과 같아지도록 만들고 싶어졌다.

‘…큰일이네.’

그는 지금 사루비아를 대상으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이 이 상황에는 부적절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도무지 사루비아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 * *

우리는 추락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산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폭포 옆 암벽을 기어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지쳐 있었다. 폭포에서 떨어졌을 때 둘 다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이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죽어 버린 동기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둘뿐이었다.

“업어 줄까.”

“응.”

화상을 입은 다리 탓에 내 걸음이 느려지자, 아퀼라는 곧장 내 앞에 자신의 등을 보였다. 나는 그의 등에 업혔다.

“추워?”

“응.”

우리 둘의 몸은 모두 젖어 있었지만, 아퀼라에게서 나오는 열기가 옷을 조금씩 말려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불 속성 오러를 쓰면 몸도 뜨거운가 봐.’

그의 등에 내 몸을 바싹 붙이고 있자, 물에 빠진 후 계속 떨려 오던 몸도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파랗게 변했던 손끝도 조금씩 제 혈색을 되찾아 갔다.

“넌 안 추워?”

“어.”

“안 힘들어?”

“네가 혼자 걷겠다고 하면 그게 더 힘들걸.”

지독히도 건조하게 보이는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나, 우정이나, 동료애나, 모성애…. 그런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도 있다.

한 달 동안 함께 고생하던 동기들이 모두 죽어 버리고, 이제는 정말 둘밖에 안 남았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마음이 그런 거였다.

“사루비아.”

“너 그 이름 처음 부르는 거 알아?”

“더 불러 줘?”

“오늘만 부르게?”

“아니.”

“그럼 됐어.”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이상하게 들릴 만한 대화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맹목적이었다. 한 달간 제대로 말도 나눠 본 적이 없으면서.

나를 업고 산을 오르는 게 힘든지 아퀼라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나를 내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맞게 올라가고 있는 걸까?”

“방향은 틀림없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해?”

“그럼 부대까지 찾아가야지.”

그 말을 하고 나서, 정적이 감돌았다. 불편하지 않은 정적이었다.

“아퀼라, 있잖아.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해봐.”

“나 앞으로 너 귀찮게 굴어도 돼?”

“얼마든지.”

“네 앞에서 찡찡대도 돼?”

“그렇게 해.”

“너는 뭘 원하는데?”

그 대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히 그 질문을 했다. 그저 그에게 확인받고 싶을 뿐이었다.

“죽지 마, 사루비아.”

“응.”

“너만은 절대 죽지 마. 절대 떠나지 말라고.”

“안 죽을게.”

“네가 살아 있다는 걸 계속해서 확인시켜 줘. 계속 나에게 매달려 줘.”

“약속할게.”

그때, 어디에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있나 본데?”

“응, 그런가 봐.”

“내려 줘.”

“응.”

그는 나를 순순히 자신의 등에서 내려 주었다.

나를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 주고는, 그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너 입술이 파래.”

“아직 몸이 다 안 녹았나 봐.”

아퀼라는 제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내 입술 위를 쓸었다.

“네 손 따뜻하다.”

“더 해 줘?”

“응.”

그가 한 손을 가만히 내 입가 위에 얹고 있는 모습은 관점에 따라 이상하다고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저 추웠고 아퀼라는 그저 나를 잃기 싫었을 뿐이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응.”

“그럼 돌아가자.”

“응.”

조금 더 걷자, 드디어 부대원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데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곧 사라지고야 말았다. 중대장이 우리의 소대 선임들에게 하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중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왠지 불길한 말이었다.

“이번 신병들을 한 명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니, 다들 제 책무를 다하지 못했군.”

그렇게 말하는 중대장은 정말 실망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다들 요즘 군기가 빠진 것 같군. 오랜만에 중대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겠어.”

중대장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지휘사관들을 너무 풀어 준 모양이야. 실전에서 열심히 하라고 훈련에서 빼 준 건데, 실전에서도 이렇게 개판인 것을 보면.”

‘저, 저렇게까지?’

큰일 났다.

우리 소대의 제일 고참들까지 털리고 있다….

잠시 후, 중대장과 소대장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남은 선임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일 놨냐? 적어도 마지막에 뛰어든 신병은 막았어야지!”

“시정하겠습니다.”

“이야, 도대체 요즘 너희들이 하는 일이 뭐냐? 폭포에 떠내려가는 신병은 찾지도 못해, 심지어 걔 구하겠다고 동기가 뛰어드는 것도 못 막아. 그동안 뭐 했냐?”

지휘사관 중 제일 고참인 크리스가 상등병들을 혼내는 소리였다.

이제 아퀼라와 나는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혹시 지금 우리 X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큰일 났다. 우리 때문에 지금 저렇게 혼나고 있는데, 우리가 살아 돌아간다면 또 우리는 그것대로 X된 것 같다….

“…휴우, 얘들아,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구나.”

이번에는 상등병 중 최고참인 에이프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솔직히 너희들도 드래곤이 나타날 줄은 몰랐겠지. 드래곤 때문에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이럴 때까지 밝고 맑은 느낌의 에이프릴의 목소리는 상상 그 이상의 공포를 선사한다. 저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신병들 관리하라고 시켜 놨더니, 폭포 속에 애들 휘말리는 것까지 못 막은 새끼들은 뭐냐고.”

“…….”

“머리 박아, 새끼들아.”

‘안 돼!’

내 머릿속에서 강렬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내리갈굼이 차례차례 이어질 것이고, 우리를 발견했을 때 분위기는 아주 험악해질 것이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퀼라와 나는 그들이 있는 장소로 재빠르게 동시에 달려갔다.

“허억, 허억…. 에이프릴 님!”

우리가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 모두가 유령이라도 본 사람들처럼 우리 둘을 쳐다봤다.

선임들이 혼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내리깔고 있었던 일등병들과 훈련병들은 우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고.

상등병들은 너희가 왜 살아 있냐는 듯한 눈빛을 했으며.

에이프릴과 그녀의 옆에 선 루이즈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정적이 감돌고, 마침내 에이프릴이 씩 웃어 보였다.

“…돌아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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