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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90)화 (190/190)

에필로그 4화(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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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디를요?”

은새가 눈을 깜빡였다.

벨키오르는 대답하지 않고 지그시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알겠어요. 위그드라실 님께 말하고 올게요.”

벨키오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은새는 위그드라실에게 별이와 마수들을 맡기고 그를 따라나섰다.

평소처럼 마법으로 이동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벨키오르가 날개를 펼쳤다.

그의 몸이 변화하면서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 하늘을 뒤덮었다.

은새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와! 어쩐 일이세요? 본체화를 다 하시고.”

[오늘은 날아서 이동할 것이다. 등에 올라타도록.]

“네!”

냉큼 벨키오르의 등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은새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다시 봐도 그녀의 이상향에 꼭 맞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은새는 안락하게 운반되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맨 처음으로 유희를 했던 왕국이다. 이제는 제국으로 통합됐다고 했나.”

“이곳이…….”

사람들이 있었다.

이 세계에 올 때마다 드래곤들만 만났던 은새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스토리형 던전의 세인나이츠 제국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높지 않은 건물들과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 그리고 바쁘게 굴러가는 마차.

한국과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들뜬 은새가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첫 유희를 나오신 지 얼마나 지난 거예요?”

“상당히 오래됐지. 내가 맛이 괜찮다고 생각한 식당들이 남아 있지 않게 됐으니. 아니, 내가 왔을 때보다 많이 발전한 상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왕국이 제국으로 바뀔 정도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은새는 혹시 벨키오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두근두근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왕에게 부름을 받기 전 공주를 납치한 광룡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광룡이요? 동족이셨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나중에 찾아가 봤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동족이 하는 일을 신경 쓰지 않지만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광룡은 토벌 대상이다.”

은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벨키오르는 노점상에서 먹을 것을 사서 은새에게 안기며 얘기를 이어 갔다.

옥수수 향이 나는 빵이었다.

“그곳에 가니 실제로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까마득하게 높은 탑에 갇혀 있었지. 주변이 다 가시넝쿨로 뒤덮여 있어서 인간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

“구하셨나요?”

“아니. 공주가 거절했어.”

“왜요!”

빵을 조금 뜯어 먹으려던 은새가 경악했다.

벨키오르가 얼른 먹어 보라는 듯 손을 밀어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은새는 빵을 입에 넣었다.

길거리에서 산 거라고 믿을 수 없게 부드럽고 촉촉했다.

“광룡의 정체는 동족이 아닌 마물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공주와 사랑에 빠진 그것은 곧 다른 나라로 시집갈 공주와 도피를 했지. 마물은 내 정체를 알아보고도 공주를 포기하지 않았어.”

“세상에…….”

“이후 왕이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실패했다고 들었다. 영리한 마물이었으니 알아서 잘 피했겠지.”

“신기하네요.”

은새는 드래곤과 인간 군대를 마주하고도 공주를 지키려 했던 마물의 마음을 짐작해 봤다.

그런 마물에게 신의를 지킨 공주도 대단했다.

이게 동화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두 사람은 거리를 조금 더 둘러보았다.

이곳이 목적지라고 생각했는데 벨키오르는 은새를 데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는…….”

신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울창한 숲이었다.

빽빽한 나무 탓에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긴 왜?

“예전에 이곳에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가 살았다.”

“……! 진짜요?”

벨키오르의 세계에는 수많은 이종족이 살아가고 있었고 마녀도 한 부류였다.

벨키오르가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인간들은 그렇게 믿었지. 하지만 내가 만난 마녀는 기근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있었다. 밖에서는 인간들이 굶어 죽는데 이곳의 아이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생기가 넘쳤어.”

“…….”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릎을 꿇더군.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어. 아이들만은 살려 달라고.”

은새는 의문이 들었다.

드래곤을 보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이들을 구해 달라고 한 마녀. 그녀가 정말 아이들을 잡아먹었을까?

그녀의 의문을 알아차린 것처럼 벨키오르가 말했다.

“마녀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도 마녀를 잘 따랐다. 마녀가 호통 치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아이들이 울며불며 마녀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으니. 거기에 세뇌의 흔적이나 거짓은 없었어.”

“벨키오르 님이 악당이 됐네요.”

“그래. 그저 이 숲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촌극의 주인공이 되었지.”

벨키오르가 피식 웃었다.

“아이들은 물론 마녀도 살려 주었다. 행복하게 잘 지내는 이들을 해할 이유가 없으니까. 마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기뻐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살아갈 아이들을 걱정한 것 같더군.”

“잘하셨어요.”

거기까지 듣자 은새는 슬슬 벨키오르가 무슨 의도로 이런 얘기를 해 주는지 짐작이 갔다.

그녀는 벨키오르를 따라 다음 장소로 갔다.

그곳은 어느 왕국의 영지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벨키오르가 입을 열었다.

바람에 그와 은새의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오래전 저기 저 가문의 딸이 요정의 저주를 받아 깊은 잠에 빠졌다는 소문이 왕국에 파다하게 퍼졌다.”

은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왠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데……?

이번 얘기뿐만 아니라 이전의 얘기들 모두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았다.

“나는 직접 보지 않았으나 요정 중에는 유독 장난이 심한 자들이 있지. 그리고 그녀의 깊은 잠을 깨운 건 정체를 감추고 유랑 중이던 수인족의 왕이었어. 그는 요정을 찾아가 단판을 벌였고 여자는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둘은 금세 사랑에 빠졌고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더군.”

“왜 제게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이제 질문할 차례였다.

벨키오르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이종족과 인간이었다.

공주와 마물.

마녀와 아이들.

귀족 영애와 수인족의 왕.

그들은 종족의 벽을 넘어 마음 깊이 교류했고 심지어 사랑에 빠졌다.

벨키오르와 자신처럼.

“그대와 내가 우연한 계기로 만나 연정을 나누게 된 건 특별하기는 해도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대가 드래곤이거나, 내가 인간이었다면 결실을 맺는 게 빨라졌을 수는 있겠으나 그뿐.”

“…….”

“내게 반려는 그대뿐이고 내가 자연으로 돌아갈 그날까지 사랑할 상대도 그대뿐이니. 이걸 언제나 기억해 주길 바라.”

벨키오르의 금색 눈동자가 한순간 짙어지는 듯하다가 기이한 열기를 품었다.

표정도 온화하게 바뀌었다.

연인 앞에 선 평범한 사내처럼.

“은새, 그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겠지. 수호자의 의무를 내려놓은 나와는 달리 그대는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으니까.”

“벨키오르 님도 별이를 돌보셔야지요.”

“그래. 그 일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어.”

다음 순간, 그들의 발밑에서 금빛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갑자기 풍경이 바뀌었다.

은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름다운 들꽃이 한가득 자라난 들판이 보였다.

“와…….”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빛과 탁 트인 하늘.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은새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장관에 시선을 빼앗겼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해 주겠나?”

그때 벨키오르가 무언가를 소환해 냈다.

드래곤 하트 반쪽으로 만들어진 반지였다.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때 은새가 건넨 선물의 보답이었다.

루비나 다른 보석에 비할 수 없이 선명한 색채를 띠는 반지를 본 은새는 가슴이 뛰었다.

드래곤 하트인 건 몰라도 벨키오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물건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반려의 인이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은새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건, 벨키오르의 청혼이었다.

“……네! 계속, 함께 있어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은새가 벨키오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기꺼이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받아 주었다.

위그드라실의 신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을 보고 별이가 뛰어왔다.

“누나~”

그런데 아이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은새를 보며 한참을 머리를 갸웃거리던 별이는 다시 도도도 뛰어와 은새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이가 양 뺨을 붉히고 해사하게 웃었다.

“누나, 아빠랑 뭐 하고 왔어요? 행복한 냄새가 나요.”

“행복한 냄새? 그게 뭐야?”

“움…… 슈크림처럼 달콤하고 폭신폭신한, 쪼쪼가 햇빛 아래에서 누워 있을 때랑 똑같은 냄새요!”

별이는 기분 좋은 듯이 머리를 비볐다.

은새가 아이의 구불구불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별이야, 괜찮다면 내가 앞으로도 계속 별이와 같이 지내도 될까?”

“네! 나는 누나 옆이 제일 좋아요. 히히!”

“고마워.”

아이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제 정말 해피 엔딩이었다.

까악!

황새를 선두로 마수들이 몰려와 은새와 벨키오르를 둘러쌌다.

[좋은 날이구나.]

위그드라실이 연인을 축복하며 가지를 흔들었다.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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