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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87)화 (187/190)

186화 –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저 자식 미친 건가?”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네.”

그렇게 말하면서 양설과 왕호연의 신경은 온통 아지트 쪽에 쏠려 있었다.

저 문이 과연 열릴까?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최인호의 난동은 점점 거세졌고 결국 참지 못한 진해성이 벌컥 문을 열고 나왔다.

아마 안에서 신원 확인을 한 뒤에 추적자들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뭐야? 당신 누군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찾아와서 난동이야?”

“잡화점을 운영한 게 당신들이지? 갑자기 ‘나비’의 유통을 막은 이유가 뭐야? 상도덕이란 게 있는 거야?”

“어느 댁 순진한 도련님인지는 몰라도 이 바닥에서 뭔 상도덕을 찾아. 파는 사람 마음이지.”

진해성이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 없는 최인호는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 이 되먹지도 않은 불법 헌터들이.

자신이 ‘참교육’을 해 줘야겠다며 이를 득득 갈면서도 금단 증상으로 인한 타는 듯한 갈증이 심해져 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됐고, 있는 물량 다 가지고 와.”

“가지고 와? 참 나. 맡겨 두셨어요? 듣자 듣자 하니까…….”

진해성이 손을 뻗으려 하자 경호원으로 따라온 헌터가 최인호의 앞을 막아섰다.

순간 진해성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안 그래도 천창현이 도천 길드에 붙잡혀 비상이 걸렸는데 딱 봐도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개망나니 자식이 쳐들어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니 다혈질인 그의 성격에 참을 리 없었다.

‘잘난 척이란 잘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붙잡힌 꼴이라니!’

천창현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 읊조리며 진해성이 ‘광전사’ 스킬을 발동했다. 그의 눈동자에 난폭한 붉은 기운이 어른거렸다.

섬광처럼 빠르게 움직인 그는 경호원의 목을 졸랐다. 경호원은 신체 강화 계열 헌터였는지 즉시 반격했지만 광전사 모드인 진해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몸을 피하…… 피하십시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호원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 외쳤으나 난생처음 날것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최인호는 금단 증세에 시달릴 때와 다른 의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으…… 으악! 피! 피가!”

“크르르…….”

축 늘어진 시체를 바닥에 내던진 진해성이 짐승 같은 목 울림소리를 내며 최인호에게 다가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최인호는 엉덩이 걸음을 치다 뭔가에 가로막히자 딸꾹질을 했다.

“이봐, 계속 지껄여 보지 그래? 약에 눈이 돌아선 제 발로 걸어온 곳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의 소굴인 줄도 모르고.”

어느새 나온 오하나가 문가에 기대 낄낄거렸다. 스치듯 그녀를 지나친 이아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최인호를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나, 나는 일반인이라고!”

“그래서?”

이아람이 손목을 우드득 꺾었다.

“일반인이면 살려 줘야 할 이유가 있나?”

“당연히……!”

“하하핫! 이봐, 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는 게 당신 같은 약해 빠진 일반인들이야.”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뒷세계에서 ‘당연히’라는 것은 없었다.

오하나의 조롱에 위기감을 느낀 최인호가 필사적으로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잠깐! 살려 주면 원하는 만큼 돈을 줄게!”

“오, 정말?”

“그래. 내가 K미디어 대표야, 우리 아빠가 K그룹 회장이라고! 내가 말만 하면 강남에 있는 건물 몇 채쯤은……!”

“그래? 그런데 당신 목숨값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죽어.”

“……!”

잠깐의 희망 고문을 한 오하나가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으아아아!”

최인호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새끼는 하필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설아, 숨어!”

양설과 왕호연은 황급히 몸을 피했다.

배부른 포식자가 사냥감을 가지고 놀듯, 이아람과 오하나는 서서히 최인호의 목을 조여 왔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를 비웃듯 여기저기로 공격이 날아왔다.

“커헉!”

일반인인 그가 헌터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건 처음부터 요원한 일이었다.

살려 달라고 외치는 최인호를 구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장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온 양설과 왕호연에게 그런 인간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작전 중에 정체가 발각되는 것만큼 최악의 경우는 없었다.

있는 집 자식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 간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씹……!”

최인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양설은 왕호연을 은폐물 뒤에 숨기고 환영 스킬을 사용하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앞에 나섰다.

“설아, 뭘 어쩌려고!”

“이건 기회야, 언제까지 이 주변만 어슬렁거릴 수는 없잖아?!”

양설의 얼굴이 변화했다. 효과적으로 정체를 감출 수 있으면서 그녀에게 익숙한 외형.

“잡았다!”

“악!”

쫓기면서 공격당해 너덜너덜한 상태로 최인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여유롭게 그를 따라오던 이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멈칫했다.

“여기 누가 있는데?”

양설은 숨소리를 죽였다. 그런다고 들키지 않을 리 없었지만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눈에 은새의 모습으로 변한 양설이 잡혔다.

“유은새 헌터? 기한은 며칠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의아하다는 듯한 그 목소리에 양설은 그들이 천창현과 인질 교환을 하기 위해 은새를 유인하려고 했다는 걸 눈치챘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뭐라고 하면서 유인했을지 머리를 팽팽 굴렸다.

일신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은새가 끄떡할 리 없으니 -그녀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무신경하다는 걸 잘 아는 양설이었다- 역시 ‘나비’에 중독된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으려나?

설마 그 맹한 여자가 진짜로 여기 오려던 건 아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양설은 차라리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적어도 은새보다는 자신이 이런 상황에 익숙할 테니까.

양설이 생각에 빠져 대답을 하지 않자 오하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렴 어때. 혼자 온 거 맞겠죠?”

“마수들까지 안 데려온 건 의외인데.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진해성!”

주변의 기척을 면밀히 감지한 그들은 아무도 없다고 판단했다. 광전사 모드의 진해성이 뒤에서 양설을 덮쳤다.

외형만 은새일 뿐, 능력은 그대로인 양설은 우악스러운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놔! 뭐 하는 짓이야!”

“손님맞이가 거칠어서 미안한데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라요.”

이아람이 접근해 김일문이 만든 특수 아이템을 발동하면서 양설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왕호연이 있을 방향에서 미세하게 이능파가 흔들렸지만 양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별짓을 다 한다고 속으로 짜증을 내면서도 양설은 순순히 그들에게 붙잡혔다.

왕호연이 이 상황을 길드에 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

“뭐야, 왜 도천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

며칠째 도천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초조해진 진해성이 의자를 거칠게 밀고 일어났다.

그가 다리를 떨 때부터 예민해져 있던 오하나가 소리를 지르려는 걸 조인준이 막았다.

“맞아요. 한우리 길드장 직통 번호로 연락했어요.”

“유은새가 도천의 공주님 아니었어? 바로 반응이 와야지.”

“그만큼 천창현 헌터를 쉽게 놔 줄 수 없다는 거겠지.”

팔짱을 낀 이아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도 도천 길드의 침묵을 불안하게 느끼던 차였다.

혹시 길드원들을 끌고 이곳을 습격하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인질 교환을 제안할 때 만약 두 명 이상의 인원을 대동할 시, ‘나비’에 중독된 사람들을 살릴 방도는 영영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못을 박아 뒀기에 대의를 생각한다면 그러지 못할 것이었다.

대의고 나발이고 친구부터 살리겠다고 뛰어들 불같은 성정의 남궁솔이라면 모를까, 도천 그룹의 직계로 헌터가 되기 전까지 재벌가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배운 한우리는 결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지금 도천 길드 S급들은 뭘 하고 있는가?

“천창현 헌터는 괜찮을까요?”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라. 그 인간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놈이야.”

진해성이 양설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유은새 헌터, 친구들이 오지 않아 많이 서운하겠습니다?”

“……친구는 얼어 죽을.”

현재 양설은 강림석이 있는 거대한 진 위에 구속구로 묶인 채 누워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 괴이쩍은 문양이 지속적으로 생기를 빼앗는 게 느껴져 기분이 더러웠다.

우리가 위험한 임무에 그들을 투입하면서 회복력을 올리는 S급 아이템을 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피죽도 못 얻어먹은 미라 꼴이 될 뻔했다.

양설은 그 와중에도 진의 모양을 빠짐없이 머릿속으로 외웠다.

곧 죽어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그녀가 있는 힘을 쥐어짜 그들을 불렀다.

“야, 천창현의 졸개들.”

“…….”

그곳에 있는 헌터들의 입이 일순 다물렸다.

유은새의 성격이 원래 저랬나? 들었던 것과 많이 다른데…….

“……지금 우리한테 한 말이에요?”

“그럼 너희 말고 누가 있는데?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도 있었잖아.”

“그걸 이제야 물어보는 거예요?”

“어. 한우리도 있고 최미리내도 있고 남궁솔, 김유하, 서인찬도 있는데 왜 하필 나야?”

줄곧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은새가 아무리 그딴 협박에도 넘어갈 정도로 맹하다고 해도 하필 SS급을 노린 이유가 설명이 안 됐다.

“그야, 꼭 당신이어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천창현 헌터가.”

이아람의 시선이 언뜻 강림석이 있는 진을 향했다. 거기서 양설은 천창현이 은새를 이 진 앞으로 끌어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여튼 음습한 새끼.

“중독자들의 이능 폭주를 막을 방을 방법은?”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진해성의 얼굴에 선명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걔네는 그냥 다 죽는 거야. 펑- 터져서. 그러게 왜 뭔지도 모를 물건을 좋다고 주워 먹어?”

그 순간, 내부의 불이 모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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